지금 영국산 거친 사운드의 혼합물로 완성된 랩 스타일이 음악의 새로운 물결을 이루고 있다. 그 최전선에 있는 믹스 마스터들이여, 비트를 구원하소서.
Slowthai 슬로타이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거주지가 있어요. 우리 모두에게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보스도 있어요. 우리 모두에게는 같은 고생과 고난, 시련의 시절이 있습니다. 음악이 솔직함에서 우러나오는 한 그것들의 출처는 상관이 없어요. 다른 언어로 된 음악이라도 리스너는 그 노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Miss LaFamilia 미스 라파밀리아
“제 믹스테이프 <Elements>가 올해 나와요. 언제나 나의 첫 프로젝트를 ‘요소들’이라고 이름 짓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줄 것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니까요. 다양한 분위기와 느낌, 다재다능함. 그 모든 걸 한 앨범에 담고 싶어요.”
Unknown T 언노운티
“음악적으로 저는 이 물살이 얼마나 험한지 건드려보는 중이에요. 다들 나를 거친 드릴 랩을 하는 사람으로 알죠. 그래서 아프리칸 재즈 스타일의 소리를 섞어 터뜨렸어요. 난 이걸 화학자처럼 다뤄요. 두 개의 다른 물질을 섞고, 반응을 확인한 후, 펑.”
최근 주목받고 있는 영국 힙합 신의 대표 주자, 래퍼 슬로타이(Slowthai)는 미국 뮤지션들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멤피스 출신 래퍼들, 그러니까 스페이스고스트퍼프, 레이더 클랜, 심지어 엘리엇 스미스까지도 즐겨 들었어요.” 본명은 타이런 프램프턴(Tyron Frampton)인 이 26세 래퍼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존재들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말했다. 그는 지금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업계에 대서양 반대편에서 온 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팝 컬처를 통해 성장한 이들이 꽤 있다며 활짝 웃었다. “미국인은 보통 좋은 소리를 내는 치트키를 갖고 있거든요. 그 노래들에 그냥 아무 말이나 해도 착 달라붙는다니까요.”
현재, 그 영향의 조류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영국 출신 랩 아티스트들, 이를테면 헤디 원(Headie One), 디가 디(Digga D), 아이보리안 돌(Ivorian Doll)과 센트럴 씨(Central Cee), 액슬 비츠(AXL Beats), 엠원 온 더 비트(M1 on the Beat)와 엠케이 더 플러그(MK the Plug) 같은 프로듀서들이 자신들만의 음악을 창작해낸 것이다. 영국 특유의 그라임과 2010년대 초 시카고에서 성공한 묵직한 베이스의 랩 서브 장르인 드릴을 합친 스타일이 그것이다. 언노운 티(Unknown T)와 셰이보(Shaybo) 같은 런던 랩 신의 신인 아티스트는 아프리카 및 서인도 리듬과 멜로디, 자메이카 댄스홀, 심지어 재즈마저 그들의 노래에 주입하여 캠던타운은 물론 애틀랜타에서도 인기몰이 중인 ‘클럽 뱅어’를 양산하고 있다. 드레이크는 2020년 7월 발표한 싱글 ‘Only You Freestyle’에서 헤디 원과 협업했고, 유튜브에서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현재 조회수 3,270만 회를 넘긴 상태다. 2020년 2월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투팍의 부활이라 칭송하던 브루클린의 아티스트 팝 스모크는 거의 모든 작업을 액슬 비츠 같은 영국 프로듀서와 했다.
특히 슬로타이의 커리어는 갈수록 커지는 영국 랩에 대한 관심을 대변한다. 브렉시트가 야기한 혼란 속에서 그는 데뷔 앨범 <Nothing Great About Britain>을 발표했고, 조국의 보건, 경제, 정치적 위기와 부의 불평등, 계급 간 갈등에 대해 신랄한 시선을 보냈다. 그 앨범의 파급 효과가 얼마나 컸던지, 슬로타이는 리암 갤러거와 일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미국 힙합 보이밴드 브록햄프턴(Brockhampton)과 함께 투어를 돌았다. 그리고 2021년 2월, 2집 <Tyron>을 계기로 메인스트림에 입성한다. 본명 ‘타이런’을 타이틀로 내세운 이 자전적 앨범은 영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미국에서는 에이셉 라키가 자신의 브랜드 ‘AWGE’를 통해 이 앨범을 발매하면서 수록곡 ‘MAZZA’에 참여하기도 했다.
슬로타이에게 영향을 끼친 음악은 영국에서 드릴 장르를 추구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준 사운드와 동일한 동시에(그가 스스로를 드릴 래퍼로 규정하진 않지만), 라디오헤드의 실험적인 요소와 엘리엇 스미스의 깊은 생각이 담긴, 때로는 어두운 가사가 조합됐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등장한 2017년 무렵에는 그런 음악적 절충 방식이 호평을 받기만 한 건 아니다. “그즈음 라디오 방송국은 우습게도 ‘당신 음악은 대체 뭐로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신을 랩 쇼에 출연시켜놓고서는 펑크 음악을 틀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라고 하더군요. 제 머릿속에서 음악은 그냥 음악일 뿐이에요. 이젠 영국에서 우리만의 사운드를 찾았고, 우리의 정체성을 가지게 됐죠. 다른 데서 뭐가 잘나가는지는 중요치 않아요. 그 잘나가는 게 바로 여기에 있으니까. 그리고 여기, 영국은 우리의 고향이죠.”
영국 랩의 새로운 물결은 지극히 영국적이다. ‘난 크럼블에 커스터드를 곁들여 먹는 게 좋아.’ 언노운 T가 NSG의 싱글 ‘Kate Winslet(케이트 윈슬렛)’에서 쓴 가사다. 영국의 또 다른 뮤지션들은 영국에 거주하는 동남아, 아프리카, 카리브해 이주민의 문화와 고난, 그리고 자신들이 사는 동네를 인용하곤 한다. 영국 정부가 어떻게 드릴 음악과 젊은 흑인들의 이미지를 악마화했는지 탐구하는 책 <Cut Short: Youth Violence, Loss and Hope(단절: 청소년 폭력, 상실과 희망)>를 출간할 예정인 작가, 시어런 타파(Ciaran Thapar)는 런던 남부의 10대들이 이미 2017년부터 드릴에 빠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노래에 등장하는 거리, 사건, 학교, 뭐가 됐든 그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답니다. 드릴 장르의 곡들은 그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록한 전쟁 보고서라고 할 수 있어요.” 시어런 타파의 말이다. 영국의 경찰과 정부 관료들은 드릴 아티스트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부정적으로 보고, 과격한 가사가 살인, 흉기 사용 범죄, 갱단 활동 등을 증가시킨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 장르의 1세대 스타들 다수가 도덕적 공황과 투옥, 사망 사건을 거치고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다듬어진 사운드가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어런 타파는 말한다. “래퍼들의 가사는 점점 영리해졌죠. 그로 인해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다소 상업적이고 화려한 버전의 드릴이 나타났고요. 이후 등장한 아티스트들은 그런 음악을 하는 방법을 배워서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 이들이에요.”
21세 언노운 티는 런던의 호머튼에 있는 자기 집에서 프렌치프라이를 먹으며 줌으로 이번 인터뷰에 임했다. 그는 현재 <Adolescence>라는 믹스테이프 작업을 하며 새로운 스타일의 멜로디컬한 랩 음악을 차용하는 중이다. “음악에서 온갖 얘기를 풀어놓는 건 제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서죠.” 그는 2018년 새해 전야 파티에서 한 학생을 칼로 찔러 죽였다는 누명을 쓴 적이 있다. “그러니까 저도 아티스트로서 균형 있게 필터링할 필요가 있어요. 저는 사람들이 상황을 이해하고 제대로 알았으면 해요. 그래야 내 음악을 느낄 수 있는 거예요.” 언노운 티는 춤추게 만드는 빠른 리듬의 곡 ‘Homerton B’로 2018년 랩 신에 뛰어들었고, 곡은 발표되자마자 성공했다. 이는 그가 ‘여자들도 듣고 즐길 수 있는 곡인가’ 여부에 따라 성공이 결정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드릴과 그라임은 둘 다 역사적으로 남성 본위의 장르다.
어떤 여자들은 노래를 들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 짜릿한 노래를 만들기도 한다. 라비다 로카(Lavida Loca)와 티잔도스(TeeZandos) 같은 아티스트는 능숙한 이야기꾼이자 생생한 디테일로 장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버밍엄 토박이인 미스 라파밀리아(Miss LaFamilia)도 빠르게 떠오르는 중이다. 그녀는 자신을 독단적인 ‘보스 레이디’라고 소개한다. 4년 전에는 모델 에이전시인 ‘라파밀리아 돌스’를 시작한 바 있다. 그러다 랩으로 돌아선 이유는 무시하기 힘든 찜찜함 때문이었다. “어느 날 생각을 했죠, 내 안의 더 깊은 열정을 충족시켜야겠다고.” 줌 인터뷰 때 그녀는 전날 밤 술자리의 폐허를 숨기고자 카메라는 꺼두고 음성만 들려준 채로 얘기를 이어갔다. “그냥 커리어가 아니라 하면서 진짜로 즐거운 일. 내 집에 온 것처럼 딱 맞는 느낌이 필요했어요.” 영국의 그라임과 랩 음악을 소개하는 플랫폼인 GRM 데일리에 2019년 미스 라파밀리아의 첫 노래 ‘Addictive Remix’가 포스팅됐을 때, 영상은 한 달 만에 조회수 100만을 기록했다.
“현재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어요. 그게 현실이에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무시당했거든요. 지금은 그 오랜 허기를 채울 무언가를 갈망하는 시기랄까요.” 미스 라파밀리아는 좋아하는 가수로 미스 뱅크스, 알리카이 할리, R&B 뮤지션 돌라포 등을 꼽는다. 미국 아티스트들에 대해서는 ‘바다 너머에서 그들이 우리를 향해 애정 어린 손길을 뻗어오고 있다’라고 표현하며, 빌보드 어워드 수상자이기도 한 믹 밀이 며칠 전 자신에게 어느 레이블과 계약했는지 DM을 보내 물어봤다고도 했다(“DM으로 ‘야, 너 쩌는데.’ 그러더군요.”). “우리는 미친 듯이 장벽을 깨고 있고, 제 바이브는 온 세상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제 사운드가 제법 인터내셔널하니까.”
영국의 힙합은 확실히 국경을 건너 번성했다. 드레이크도, 카니예 웨스트도 드릴 신에 빠졌으니 말이다. 이런 교류에도 불구하고 영국 랩 신은 확고히 본토만의 퀄리티로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슬로타이와 인터뷰한 노샘프턴의 장소는 그가 어머니, 약혼녀와 같이 살고 있는 집 지하실이었다. 그곳은 슬로타이가 히트 앨범인 <Tyron>의 대부분을 녹음하고, 그 앨범 이후로도 51곡을 더 작업한 공간이다. 이 사실은 하나의 은유 같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멋진 음악 천재 중 하나가 영국 이스트 미드랜드의 어둑한 동굴에서 차트 정상급 앨범을 만들다니! 슬로타이의 랩 소재가 되는 것들, 이를테면 영국의 보건 서비스나 정치 제도 등은 영국인이 아니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일 수 있지만, 그 노래에 담긴 에너지는 범세계적이다. 이 아티스트들의 음악 앞에서는 아마 당신도 볼륨을 최대로 키우게 될 것이다.
- 포토그래퍼
- Tim Walker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글
- Maxine Wally
- 스타일리스트
- Gerry O’Kane
- 헤어
- Cyndia Harvey for Oribe(@ Art Partner)
- 메이크업
- Sam Bryant(@ Bryant Artists)
- 매니큐어
- Jewel Trin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