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Never Ends 도쿄 올림픽의 막은 2021년 여름 내렸지만, 그 열기는 아직 채 식지 않았다. 모두를 넘어서 마침내 꼭대기에 오른 선수부터 당당한 ‘영 파워’를 보여준 선수,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 자신이란 원석이 존재함을 증명해 보인 선수까지. <더블유>가 그라운드 밖에서 이들과 함께 특별한 레이스를 펼쳤다.
#W올림픽 히어로즈_다이빙
WOO HA RAM
도쿄 올림픽 4위, 한국 다이빙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우하람. 점프하기 직전의 강렬한 긴장과 흥분, 물속에 잠길 때의 먹먹한 정적을 사랑하는 소년의 꿈과 야심.
우하람의 다이빙을 보고 있자면, 그 짧은 순간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잠시 정지하는 것 같다. 힘찬 도약, 우아한 공중회전, 고요한 입수. 세 단계로 이루어진 동작은 간결하고 가벼우며 절도 있다. 우하람은 말수가 적고 조용조용 말했다. “선수로서 인터뷰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엔 나가지 않으려 해요. 그냥 그러려고요.” 다이빙 황무지였던 한국에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과 동메달 3개를 안겼고(개인 종목으로는 26년 만의 쾌거였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선 한국 다이빙 선수 최초로 결선 진출해 11위를,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를 거머쥐고, 2019년 세계선수권과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는 4위를 기록하며 한국 다이빙 역사의 최초를 쓰고 있는 선수지만, 인터뷰로 만난 그는 내성적인 소년에 가까웠다.
“어릴 때부터 물을 좋아했어요. 물속에 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거든요. 마음이 고요해지는 순간이에요.” 경기 직전 온 신경을 한 점에 모아 집중한 그는 사방의 미세한 소곤거림까지 다 들린다고 한다. 작은 소음마저 밀어내듯, 그는 보드에 오르자마자 빠르게 점프한다.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속에 잠기는 제 모습을 상상해요. 그런 다음 보드 위에 올라서면 바로 뛰어요.” 가장 중요한 건 ‘몸이 이끄는 대로 몸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생각은 사라지고, 몸의 감각만 살아 있는 상태예요. 반복 연습으로 익힌 몸의 감각을 따라야 해요. 저는 그 순간의 긴장과 흥분을 즐겨요. 관중들의 시선 속에서 더 멋지게 보여줄 수 있어요.” 무대 체질인지 묻자, “다이빙할 때만 그래요. 평소엔 아니고”라고 거듭 강조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쑥스러움 많은 소년이다.
우하람은 여덟 살 때 방과 후 학교 수업으로 다이빙을 접하고 금세 푹 빠졌다. 우하람을 발탁한 홍명희 전 국가대표 코치는 “하람이는 그때부터 탁월했어요. 다이빙이 아닌 어떤 운동이든 특출 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컸을 겁니다”라 말했지만, 우하람은 한 번도 다이빙 아닌 다른 종목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람은 즐기는 걸 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한국에서 비인기 종목이지만 다이빙으로 꿈이 생겼고요. 전 이것저것 재지 않아요.” 우하람은 하나에 매섭게 골몰하고 집중하는 사람이다. 완벽주의 성향도 있고, 외골수 같은 면모도 있다. 사춘기 무렵인 중학생 때부터 선수촌 생활을 하며 내향적인 성격이 됐단다. 그런 그에겐 다이빙이 전부다. “악착같이 해요. 어릴 땐 타고났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칭찬이지만 그 말이 참 싫었어요. 넌 노력 안 해도 이 정도는 한다는 뉘앙스였거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잘하는 사람이 남들과 연습을 똑같이 하면 그런 소리 듣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남들보다 더 많이 연습하죠.”
어쩌면 완벽주의 기질은 이 종목에서 필연적으로생길 수밖에 없을 것도 같다. 점프와 낙하, 입수까지 고작 1초에서 3초 남짓 되는 순간에 자신의 기량을 펼쳐야 하는 스포츠이자 찰나의 정교한 예술을 해내는 모습은 경이롭다. 회전 수를 다 채우고 기술을 실수 없이 구사해도 손발의 미세한 각도, 입수 시 물방울의 튀김 정도까지 점수가 되어 등수를 가른다. “기록경기지만 사람이 보고 평가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우아하게 해내는 게 중요하죠. 맞아요. 몸의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이런 걸 해낼 수 있는 자질 혹은 미덕은 어떤 걸까. “반복 연습과 정신력. 아무리 연습을 잘해도 기회는 한 번이죠. 여섯 번의 기술을 해야 하지만 한 번이라도 실수해선 안 돼요. 자신감 있게 하는 게 중요하죠. 전 자신 있습니다.”
우하람의 자신감은 다름 아닌 간절함이다. “누구보다 간절했고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하루에 70~80번 정도 뛰고, 평소에도 영상을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요. 주로 제가 잘했던 영상으로요. 다른 사람을 똑같이 따라 할 순 없으니 내가 잘했던 영상을 보면서 감각을 되살리는 게 중요해요. ‘아, 이거였지, 이런 느낌이었지’ 이렇게.” 선수로서 코로나19로 인해 올림픽이 미뤄지고, 선수촌이 폐쇄되고, 수영장도 이용하지 못하는 나날이 5개월 이상 이어진 것은 악재였다. “힘들었어요. 연습 공간이 없어 웨이트 정도만 하다가 다시 발판 위에 서니 이걸 어떻게 했지 싶더라고요. 그래도 하다 보니 몸이 기억하는 거예요. 그만큼 반복 연습이 중요한 거죠.”
까마득한 10m 높이에서 오직 자신의 맨몸으로만 점프해야 할 때, 두려움이 덮쳐오진 않을까? 그는 “솔직히 지금도 두려워요. 모든 다이빙 선수들에겐 비슷한 두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라고 토로한다. “보통 중학생 무렵 처음으로 10m 높이에 올라 뛰는데, 그때가 다이빙 선수로서 첫 위기예요. 그때 그만두는 선수가 많거든요. 무서웠지만 기본기를 잘 배웠기 때문에 다치거나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를 믿고 뛰었어요. 지금도 단지 반복을 통해 두려움이 무뎌지는 거죠. 극복 안 하고 그냥 해요. 일단 하고 생각해요. 그러면 괜찮다는 걸 알게 되죠.” 우하람은 두려움을 극복하려 애쓰지 않는다. 두렵지만, 그저 자신을 믿고 한다. 함으로써 나아간다. 이 선수는 경기처럼 삶도 그렇게 살아진다는 걸 안다.
어깨 위에 새긴 오륜 마크 위 파도가 치는 타투는 그의 꿈과 삶 자체다. 올림픽은 우하람에게 다이빙을 시작했을 때부터 동경하던 꿈의 무대였고, 목표를 몸에 새기고 싶은 마음에 타투를 새겼다. 이번 올림픽 4위는 그 목표를 향한 과정이다. “처음엔 아쉬웠지만 메달 딴 선수들은 저보다 더 잘하는 선수들인 걸 인정해요. 한 단계만 더 올라가면 메달을 딸 수 있는 희망적인 4위라고 생각하니 좋아졌어요. 한국 다이빙에서 꿈처럼 바라만 보던 올림픽 메달이 코앞에 있으니 되게 기분이 좋아요. 전 파리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자신이 있고, 설령 따지 못하더라도 저는 올림픽 무대에 계속 도전할 거예요. 더 이상 젊지 않을 때가 오더라도 꿈을 계속 좇고 싶어요.” 우하람에게 다이빙은 여전히 전부고, 전부일 것이다. “이 분야에서 최고이고 싶은 건 누구나 당연할 테니까. 다이빙은 부상도 많고 선수 생명이 길지 않은 스포츠지만, 전 아예 못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 아주 오래, 오래 하고 싶어요.” 우하람이라는 이름은 ‘하늘에서 내려준 사람’이라는 우리말이다. 다이빙 선수로서 그 이상의 이름은 없을 것 같다.
- 컨트리뷰팅 에디터
- 최진우
- 글
- 이예지
- 포토그래퍼
- 윤송이
- 스타일리스트
- 노지영
- 헤어&메이크업
- 김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