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로에 하우스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공식 데뷔한 가브리엘라 허스트. <더블유 코리아>는 동시대 패션 월드에서 가장 핫한 그녀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엄격한 환경주의자인 그녀는 끌로에 하우스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주입하고자 한다. 이 뉴욕 디자이너의 합류는 프랑스 브랜드 끌로에의 완전히 새로운 챕터를 열 것이다.
인터뷰하게 되어 반갑다. 답변을 쓰는 당신은 지금 어디인가?
가브리엘라 허스트 파리의 끌로에 사무실이다.
재작년 여름,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당신은 한국을 방문했다. 특별하고 재미난 기억이 있나?
모든 순간이 특별하고 즐거웠다. 박물관도 가고 유명한 한국식 피부 관리도 받았다. 아름다운 거리와 거리를 메운 작고 예쁜 가게를 방문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자면 방문 기간 중 만난 친절한 사람들이다.
팬데믹 상황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전 세계 모두에게 그랬듯 내게도 팬데믹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류가 이 전례 없는 위기를 극복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가 한마음으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 않나?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움직임이 기후 변화를 비롯한 또 다른 위기에 대응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첫 번째 패션쇼를 선보인 소감이 어떤가?
끌로에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2021 A/W 컬렉션은 하우스의 역사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기회였다. 지구와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컬렉션을 선보이고 싶었고, 셸터슈트(Sheltersuit)를 선보이는 방식 등으로 이 세상에 기여하는 보다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려 노력했다. 2021 A/W 컬렉션을 시작으로 앞으로 지속적인 진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해 우리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다. 실제로 레디투웨어 컬렉션의 55%에 인체와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소재를 사용했다. 이 소재들의 15%는 세계공정무역기구(WFTO)에 가입된 아칸조(Akanjo)와 마노스 델 우루과이(Manos del Uruguay)가 생산했다. UN 난민기구와 함께하는 메이드51(Made51)과도 협력했다. 짧은 기간 동안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한 컬렉션이 완성되었기에 첫 컬렉션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첫 컬렉션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하우스의 전통과 미래를 함께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비 아기옹(Gaby Aghion)의 정제된 디테일과 아름다운 소재는 끌로에의 정체성이다. 또한 그녀가 보여준 삶에 대한 진중한 태도는 내게도 매우 소중한 가치다. 나는 끌로에에서 선보이는 나의 첫 컬렉션이 섬세한 디자인과 과감한 활동성을 동시에 보여주기를 원했다. 또 하나하나의 아이템에 뚜렷한 목적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스케치보다 먼저 소재를 고민하고 어떻게 보다 친환경적인 컬렉션을 완성할지 고민하며 디자인했다. 더 아름답고 영감을 주는 디자인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를 위해 나와 나의 팀은 보다 기민하고 효율적으로 일했다. 생물학적 다양성과 농약 사용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핸드백 안감을 코튼에서 리넨으로 바꾸고, 최대한 유기농 원단을 사용했다. 단시간 내에 이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팀원들에게 고맙다.
지속 가능성을 빼고 당신을 이야기할 수 없다. 당신은 자원 소모를 피하려 애쓰고, 낭비에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윤리와 핵심 가치를 내려놓지 않고 럭셔리 컬렉션을 전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지속 가능성을 포기했다면 지금보다 가브리엘라 허스트 브랜드 비즈니스가 3배쯤 커졌을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었고 대신 천천히 가는 길을 택했다. 물론 끌로에 비즈니스는 규모 면에서 완전히 다르고 가브리엘라 허스트에 비해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끌로에에서도 얼마든지 보다 긍정적인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농약 사용이 잦은 코튼 안감을 리넨으로 대체한 것도 그 일환이다. 오가닉 코튼조차 재배 시 많은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완전히 지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우아하고 성숙한 끌로에의 여성상을 담은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은 멋진 일이다. 다만 이제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하니까. 끌로에의 가치는 유지하되 합성섬유 사용을 줄이려 한다. 또한 업사이클링과 투명한 공정에도 지속적으로 힘쓸 것이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2021 A/W 컬렉션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적은 소재를 4배가량 사용했다. 시간이 부족했지만 지구를 착취하는 방법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은 영원할 수 없다. 모두를 위해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
자신의 레이블이 아닌, 7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브랜드를 준비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무엇인가?
그동안 내 이름을 건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해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했다. 더 큰 무대라 할 수 있는 끌로에에도 이 노하우를 적용해 브랜드의 성공을 이끌고 싶다. 쉽지 않은 목표지만 내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원동력이기도 한다.
자신의 브랜드를 전개할 때와 가장 차이를 두는 지점은 무엇일까?
브랜드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지혜와 전쟁을 상징하는 그리스 여신 아테나의 지적인 여성성이 핵심 가치다. 그래서 여성 경영자를 위한 옷을 많이 선보인다. 반면 끌로에에서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영감을 얻어 보다 감각적이고 젊은 감성을 선보이려 한다. 두 브랜드는 완전히 다르다. 가브리엘라 허스트의 여성은 공항에서조차 루스하고 캐주얼한 실루엣을 선택하지 않는다. 무릎보다 짧은 길이의 스커트도 마찬가지다. 반면 끌로에에서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 또 스캘럽(Scallop) 디테일은 끌로에만의 DNA와 같은 요소다. 끌로에 걸(Chloe Girl)은 계속 성장하지만 영원히 젊은 감성을 간직할 것이다. 아테나와 아프로디테는 모두 강한 여성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다만 사람들이 브랜드보다는 컬렉션 그 자체에 집중해주었으면 한다.
하우스 창립자 가비 아기옹에게 “끌로에는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 당당한 자신감이 인상 깊었다. 칼 라거펠트와 스텔라 매카트니, 피비 파일로, 클레어 웨이트 켈러, 그리고 나타샤 램지 레비. 전임자들과 다른 본인만의 장기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이전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무심해 보이지만 명민한 프랑스식 여성미를 유지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과 같은 시대정신을 더하고 싶다.
당신은 뉴욕에 사는 디자이너이고 당신의 가족은 우루과이에 양 목장을 소유하고 있다. 두 나라의 정체성을 가진 디자이너가 만드는 프렌치 럭셔리란 어떤 것일까?
나는 목장에서 전통의 개념과 특별한 결과를 위해서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프랑스 문화 속에 깃든 창조성과 음식과 예술에 대한 조예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시간 속에 정제된 우아함이야말로 프랑스 문화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팬데믹 때문인지 디자이너들은 그저 옷을 만드는 것 대신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그 포장하는 기법에 공을 들여야 했을 것이다. 끌로에는 현재의 파리 통행금지 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여, 끌로에의 창업자인 가비 아기옹이 초기 컬렉션을 선보였던 브라스리 립을 떠나 생제르맹데프레의 자갈길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모델을 촬영했다. 물리적인 패션쇼를 준비하는 것은 어땠나?
끌로에서의 첫 번째 패션쇼이고 가비 아기옹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기도 한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통행금지 덕에 가능했던 야간 촬영은 마치 마법 같았다. 생제르맹데프레는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이다. 가비 아기옹과 그녀의 남편은 이곳을 중심으로 좌파 작가 운동(Movement of left bound writers)에 적극 참여했다. 가비 아기옹의 첫 번째 패션쇼가 열렸던 브라스리 립도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모델 출신답게 클로징 의상을 직접 입고서 피날레를 장식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종의 신고식 같은 건가?
팬데믹 동안 사람들은 많은 제약 속에 꼭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모델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도 쉽지 않아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고, 클로징 의상을 직접 입는 결정을 하게 했다. 내게는 일종의 도전이었지만 다행히 아름다운 쇼가 완성되었다.
많은 여성이 커리어의 지속성에 대해 고민한다. 패션 산업에서 풍부한 노하우를 가졌을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일이란 어떤 것인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커리어 지속은 현재가 있기에 가능하다. 지금 열정과 혁신이 나와 함께한다면 얼마나 오래 일할 것인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 패션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가? 당신은 왠지 아주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만 같다.
패션 업계가 환경보호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고 싶다. 생각과 습관을 조금만 바꾼다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여전히 많은 패션 기업들이 친환경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그런 걱정은 불필요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모두가 함께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빠르게 변화해야 한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 더 큰 문제와 공포가 우리를 위협할지 모른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을 마주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패션 에디터
-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