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iginal [CL]

W

 “제가 이렇게 도전적인 룩을 시도하는 큰 이유는 ‘여기 이런 사람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자기 자신한테마저 기준과 틀을 정해놓고 산다면 괴롭잖아요.” 이것이 씨엘이다. 음악 하는 삶에서 한 번 멈춰본 씨엘은 다시 시작하며 이 의미를 되새겼다. <더블유>는 레디투웨어 컬렉션으로는 6년 만에 돌아온 장 폴 고티에의 컬렉션을 은밀히 공수했다. 다섯 명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의상부터 고티에의 아카이브 피스까지. 그 개척자적인 패션을 한국에서 가장 먼저 취하기 타당한 여자가 바로 씨엘이다. 

노란색 줄무늬 톱과 레깅스는 JPG by Ottolinger 제품, 모자는 JPG Studio, 슈즈는 Christian Louboutin 제품.

<W Korea> 화보 촬영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지금 시각 밤 12시 13분이니까 정도면 양호하지(웃음).

씨엘 의상 여덟 벌을 갈아입었는데 정말 예상보다 빨리 마쳤다.

그런데 메이크업은 지웠네? 인터뷰 끝나고 어디 가나?

이 얼굴로 이 시간에 어딜 간다고?(웃음)

아, 내가 오래 기다릴까 지우고 인터뷰하러 나오셨구나. 집에 가면 피곤해서 메이크업 지우기 귀찮을 텐데.

나는 이제 자면서도 메이크업을 지울 수 있는 수준이다. 구석구석 잘 닦으면서.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고티에 컬렉션을 특별히 공수해 씨엘다운 화보를 찍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추진하느라 패션 에디터가 복잡한 과정을 치르고 있는데, 당신과 고티에의 패션이 탁월한 만남이라고 생각했기에 진행한 기획이다. 혹시 그와 인연은 있나?

고티에 쇼에서도 만난 적이 있고, 인연은 있지. 그 사적 인연 여부를 떠나 내가 어릴 때부터 마돈나를 워낙 좋아했다. 고티에는 마돈나의 아이코닉한 의상을 만든 분이고. 고티에의 의상은 그 컬러풀함과 보디 셰이프가 강렬한 무대 의상을 연상시킨다. 무대 의상은 자칫 특정 요소가 과해지면서 아티스트의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의상의 비율이나 밸런스가 이상해지기 쉬운데, 장 폴 고티에는 그런 면을 고려하면서도 가장 화려한 의상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 같다.

일이 없을 시간대에는 보통 하나?

특별한 일 없으면 밤 10시에서 1시 사이에는 잠자리에 든다. LA 쪽과 연락하며 일하다 보니 밤늦게 자든가 아침 일찍 일어나든가 둘 중 하나다. 생활의 루틴을 만들어서 건강하게 지내려고 일찍 일어나는 쪽을 택했다.

건강하게.’ 운동도 하나?

PT도 하고, 요즘은 저녁이나 밤에 달리기를 한다. 혼자 음악 들으면서 뛰는 거 너무 좋더라. 잡생각이 사라진다. 또 다른 종류의 몽상 같다는 느낌? 마스크 쓰고 뛰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갑옷 장식 데님 콘브라는 Jean Paul Gaultier Archive, 그래피티 시스루 톱과 팬츠는 JPG Studio, 오른손 약지의 뿔 장식 링은 JPG by Alan Crocetti, 나머지 링은 모두 Arsenix 제품.

우리 예전에 화보 인터뷰로 만난 있다. 솔로 ‘나쁜 기집애’직후니까 8전이다.

와, 정말 오래전이네!

이후 종종 당신이 어떻게 사나 궁금했다, 변화도 있었고. 최근 년간을 굵직하게 써머리해줄 있겠나?

우와… 굵직하게 해보려 해도 워낙 많은 일이 있어서(웃음). 어디서부터 어떻게 굵직하게 얘길 해야 할지.

당신이 시작하고 싶은 부분부터.

정말 최근이라고 하면 앨범 작업을 마무리 중이고. ‘베리체리’라는 팀을 만들었다. 애초 계획으로는 지난해 11월 말에 앨범이 나왔어야 하는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부딪쳐봐야 알 수 있는 게 많더라. 혼자 팀을 꾸려 일하면서 새롭게 배우고 알게 되는 것들이 생겼다. 여름 안에는 발표하려 한다. 씨엘의 첫 정규 앨범 제목은 <알파>다. ‘시작’이라는 뜻에 ‘알파 피메일(Alpha Female)’이라는 의미도 있다.

아무래도 투애니원 시절의 씨엘과 지금의 씨엘은 다른 챕터를 통과하는 중일 것이다. 아티스트 인생에서 번째 챕터가 시작된 시점을 스스로 언제부터라 여길지 궁금했는데, 이번 앨범이 시작점이 될까?

그럴 수 있지. 그렇다, 내 첫 앨범이 나오려는 ‘지금’이 바로 그 시점 맞다.

머지않아 무대에서 씨엘의 비주얼 콘셉트도 <더블유> 화보에서처럼 화려한 모습일까?

화려하다는 면에서는 비슷할 거다. <알파>가 첫 정규 앨범인 만큼 가장 씨엘다운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도장 찍는 기회라면 좋겠다. 사실 요즘 시대에 앨범이라는 건 아티스트와 팬을 제외한 대중에게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고, 앨범보다는 싱글이 빠른 속도로 소비된다. 어차피 앨범이 그런 속성을 지닌 거라면 이왕 내는 것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걸 뚜렷하게, 의미를 담아서 하고 싶다.

2016투애니원 해체 후 2019년 12월, 그간의 일을 돌아보는 미니 앨범 <사랑의 이름으로>발표했다. 그때도 전곡 작사 작곡에 참여했지만 이번 정규 작업은 훨씬 본격적인 경험이고 느낌도 달랐을 텐데 어땠나?

아주 재밌었다. 미국에 가 처음으로 다양한 이들과 작업해봤을 때도 그렇고, 오늘처럼 화보 촬영을 하고 인터뷰하는 일도 그렇고, 나는 이 모든 작업과 과정이 재밌어서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는 내가 전 회사를 나오면서 인터뷰하는 대신 내 일기를 모아 발표하는 느낌으로 만든 거다. <알파>의 프리뷰 같은 느낌으로, 씨엘의 목소리를 내면서 스토리텔링을 한 첫 프로젝트.

왼손 약지의 콘브라 모티프 링은 JPG by Alan Crocetti, 나머지 손의 반지는 모두 Arsenix 제품.

<사랑의 이름으로>실린 트랙명들에는 ‘+처음으로170205+’, ‘+소중한 추억190519+’ 식으로 암호 같은 숫자가 붙어 있기도 했지.

그 곡들의 주제는 모두 ‘씨엘’이고, 그 ‘이고(Ego)’가 강하면서도 내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진 않았다. 가사에 좀 더 집중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DONE161201+’ 뮤직비디오에서는 다양한 사람이 등장해서 나를 대신해 립싱크하는 방식이었고, ‘+처음으로170205+’는 내가 어릴 적부터 찍은 사진을 콜라주해서 만들었고. ‘+DONE161201+’ 뮤직비디오의 경우 내가 아이폰으로 편집하며 완성했다.

앨범 소개글 마지막에 ‘세상 모든 씨엘을 위해’라고 썼다. 세상의 다른 씨엘은 어떤 인물들이라고 생각하나?

씨엘은 나에게도 ‘얼터 이고’ 같은 존재다. 2007년 연말 가요 시상식 때 YG 패밀리의 무대에서 랩을 하며 세상에 맨 처음 등장할 때부터 그런 개념으로 시작했다. 그러니까 시작을 한다는 건 누구나 겁이 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씨엘을 ‘용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겁이 난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가운데 스스로 움직이거나 변화를 맞이하는 것도 모두 크고 작은 용기다. 내 음악을 들으며 공감하는 분들이 있다면 우리 용기를 내보자고 응원하고 싶다.

씨엘은 ‘없는 여자’처럼 보이는데(웃음).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경우가 많지. 하지만 겁은 항상 갖고 있다. 나는 일할 때 많은 부분에 신경을 쓴다. 신경을 별로 안 쓰는 상태라면 겁나는 일도 없을 거다. 신경 쓰는 만큼 겁도 따른다.

<사랑의 이름으로>는 <알파>대한 단서이면서 씨엘의 이전 챕터를 정리하는 의미가 있다. 앨범 소개글에 ‘걸어보기도 전에 달리기 시작해 걷는 법도 쉬어 가는 방법도 모른 채 13동안 많은 이루고, 많은 느끼고 많은 잃기도 했다’라고도 썼는데. 우선 당신이 ‘이룬 것’꼽자면 뭘까?

씨엘을 만난 것. 어쨌든 모두 다 그녀가 한 거니까.

아카이브를 재해석한 핑크색 마린 룩은 모두 JPG Studio, 슈즈는 Christian Louboutin 제품.

살아온 날들을 종합적으로 돌아보고 한번은 털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경험에서 무엇을 크게 느꼈나?

나는 내가 살아오고 해온 것들을 정리할 시간이나 기회가 없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열다섯 살 즈음 이 길에 들어서면서 그때 ‘맞다’고 생각한 모든 선택의 연장선에서 살아온 셈이다. 그 나이라면 정체성도 다 형성되지 않았을 때다. 대신 나의 본능과 DNA로 인해 나오는 것들, 또 만들어지는 것들이 다 결합해 씨엘이 됐을 거다. 정리 후, 정리된 걸 소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직접 부딪치며 알고 느끼는 것들이 있었다. 인정해야 하는 것도 있고, 후회라는 감정도 있고… 뭔가를 선택했을 때는 다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선택이 맞는지 의심하는 순간 역시 없지 않았고.

복잡다단한 소화의 과정이었겠지만 어쨌든 시간적인 면에서는 이전보다 여유 있는 시간이었을 같다. 아마 처음 맞이하는 종류의 시간이었겠지?

<사랑의 이름으로>를 내기 전에 한 2년 정도였나, ‘시간이 간다’는 걸 또 다르게 느낀 시기가 있다. 처음으로, 내 선택과 의지에 따라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낸 시간. ‘아무것도 안 하면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를 체험했다.

8인터뷰 때, 투어 마치고 집에 오면 ‘뜨겁게 달려야 같은데 멈춰버려서 가슴이 터질 듯한’ 느낌이 든다고 언급했다. 당신이 아무것도 한다는 씨엘의 음악 인생을 영위하는 아니라 자연인 그대로 자신을 놔뒀을 때의 상태를 말하는 거겠지. 어떻던가?

사소하고 기본적인 것들인데도 내가 제대로 못하는 게 많더라. 예를 들면 처음으로 비행기를 혼자 타봤다. 비행기를 그렇게 많이 타고 해외를 돌아다녔지만 그때마다 누구와 함께하고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았으니… 결제를 하고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짐 찾는 것부터 비로소 혼자 해본 거다. 그렇게 사소한 일들 앞에서 너무나 겁이 났고, 겁나는 그 기분이 너무 싫었다. ‘그래 이렇게 작은 일부터 내가 하나하나 부딪치고 느껴보고 경험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화려한 삶을 사는 스타의 생활 지수는 0점인 경우가 적지 않지. 사는 공간을 꾸리고 수리할 문제를 해결해야 때도 그렇고.

나는 그 분야에서 0점, 아니 마이너스였다(웃음). 그러다 2년여 전 미국에 가 살면서 그 점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했다. 생활을 하는 것, 그게 한마디로 ‘운영’이잖아. 나는 내 집과 생활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꽃병의 물도 내가 직접 갈고, 설거지할 때가 되면 하고, 그렇게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가꾸는 경험 말이다. 하나씩 배우고 싶었다. 그런 걸 모르면 나에게 자유가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여전히 서툴지만 이제 어느 정도는 하고 산다.

보편적 또래들에겐 대단치 않은 일인데 처음 해보는 일을 하나씩 해냈을 때의 쾌감이 은근 크지 않나?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고(웃음).

쾌감, 너무너무 있다. 그냥 달리며 사느라 누군가 대신해주는 것들이 계속 쌓이면, 결국 나의 라이프스타일의 질은 낮아진다. 내 생활의 요소를 어느 정도는 왜 직접 해내야 하는지, 그게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갔다.

베리체리’팀원 말로는 당신이 술도 늦게 시작해서 신기했다고 하더라. 보통은 성인이 되면 이제 해방됐다는 듯이 들이는 문화가 있기 마련인데 당신은 그렇지가 않은 사람이라고.

음악 말고는 다 늦게 시작했다.

씨엘이 진정한 독립 비로소 다시 태어난 거라고 치면 앞으로 누릴 문화도 많이 남은 셈이다. 새로 태어났으니 나이도 훨씬 어려지는 셈이고. 그렇다면 지금 씨엘의 나이가…

음주 나이로 치면 신생아지(웃음).

7월에 나올 Jean Paul Gaultier X Sacai 협업 쿠튀르 컬렉션의 예고편으로 장 폴 고티에의 프렌즈들에게 3D 슈트를 선물했다.

당신이 ‘잃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뭔가? 씨엘로 후부터는 전에 말한 실질적인 생활의 면면을 잃었다고 있을까?

2019년 <사랑의 이름으로>를 만들 즈음에는 내가 늘 가지고 있던 루틴을 잃었다고 느꼈다. 그 루틴이라는 게 매일 스튜디오 가서 작업하고, 무대에 오르고, 무대 전후의 준비하는 일들이었다. 그때 상황으로는 ‘잃은 것’이라기보다는 ‘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나을까? 나에게는 그런 삶이 일종의 놀이였다. 한동안 그 놀이를 못한다는 점에서 아끼는 장난감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앨범을 통해 다시 내 루틴을 세팅하는 시기를 보냈지.

소중한 장난감을 잃어버리면 애타게 그립고 다시 원하게 되는 법이니까.

그렇다. 갖고 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느낌. 그런 면에서 어떻게 보면 사람을 잃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나 자신을 잃은 것이려나? 다 지나간 일이지만, 어쨌든 나에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런 경험 없이 꾸준히 해나갈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런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한테는 새로운 기회가 됐다. 작업이든 생활이든 온전히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경험을 안겨줬고, 덕분에 새롭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다른 관점도 갖게 됐고.

씨엘의 공식적인 미국 데뷔 싱글은 2016년 8발표한 ‘Lifted’이고, 2019년 <사랑의 이름으로>미국에서 작업했다. 지금은 물리적인 이동의 자유가 제한됐지만 여전히 미국의 스태프들과 교류하며 음악 작업을 한다. 시장의 본고장인 미국에서의 활동과 교류를 통해서는 느꼈나?

사실 지역적인 경계는 이제 더 이상 없다고 본다. 디지털로 얼마든지 미국의 스태프들과 함께 작업할 수도 있고. 다만 혼자 음악 작업을 하며 미국을 오가면서 새롭게 느낀 점은 있다. 나는 한 시스템 안에서 오랫동안 똑같은 이들과 일을 한 사람이다. 심지어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면서도 늘 같은 프로듀서, 감독, 스타일리스트 등등과 작업했다. 그러다 미국에서 또 처음으로 낯설고 다양한 사람을 만난 거다. 어느 쪽이든 장단점은 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작업을 통해서는 다른 시선이 생기면서 생각도 달리 트이고, 좀 더 다양한 층위가 생긴다.

국내 발매용 음악과 미국 발매용 음악 스타일에 차등을 둬야 한다는 의식은 했나?

내가 일일이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잖아. 그렇기 때문에 의식이라는 걸 하다 보면 끝이 없다. 어느 순간 ‘내가 언제부터 여기에 맞추고 저기에 맞추면서 살았지?’ 싶더라. 조건과 환경 따라 맞추며 살았다면 내가 시도하고 보여준 그 모든 것을 대부분 못했을 거다. 그저 내 취향대로, 혹은 꼭 내가 좋아했던 건 아니어도 그때의 내 느낌대로 가는 게 맞다.

보디 모핑 드레스는 JPG Studio, 슈즈는 Christian Louboutin, 이어링은 Alexander McQueen 제품.

당신이 ‘Ego’라는 말을 쓰기도 했고, 모든 아티스트에겐 자신 스스로의 시선이 필요할 테지만 확신을 어떻게 다지는지 궁금하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믿는 일이 중요한가?

믿음도 중요하고,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에겐 나쁘게 굴지 않을 거잖아. 잘 보이고 싶고, 그러기 위해 노력할 거고, 만남의 순간이 기대되고. 좋아하는 상대에게 할 법한 모든 것을 스스로에게 적용해보면 된다. 그러기가 물론 쉽지 않다. 특히 내 직업은 ‘아니’라는 말을 계속 듣는다. ‘이 옷을 입으면 다리가 굵어 보여서 안 돼’ 식으로, 회사나 케이팝 시스템에 속해 있을 때는 어떤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뭘 해도 나는 부족하고, 뭘 성취해도 더 해야 할 것만 같다.

맥락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어느 유명한 디자이너 선생님이 ‘남이 비위 맞춰주니까 내가 비위 맞춰주면서 살아야 한다’말한 떠오른다. 그럼 당신은 몸에 대한 외향적인 시선이나 자신에 대한 판단으로부터 현재 많이 자유로운 상태인가?

결과적으로는 생각의 방식과 시선의 문제라고 본다. 어떤 기준과 틀이 없으면 된다. ‘이래도 되나?’ 싶은 갈등이 생기고 ‘이게 맞는 거야’라는 틀이 있으면, 살기 괴롭잖아? 내가 현재를 살고 있다면 너무 생각을 많이 하지 말고 그냥 살았으면 한다. 그럼 고민의 순간이 덜 찾아온다. 내가 이렇게 도전적인 룩을 많이 취하는 큰 이유는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해서다. 나는 선택적으로 내 음악적 삶을 한 번 멈추고 잠시 쉬었잖아. 다시 시작하면서 ‘내가 왜 이 일을 다시 하고 싶지?’라고 자문했을 때 의미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이렇게 해볼 수도 있다’라는 걸 보여주자는 답을 찾은 거다. 그것만이 다는 아니지만 그 의미가 중요한 동기가 됐다.

나’표현하고 보여주며 살지 않으면 죽을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하나?

나에게는 무대 위가 가장 ‘피스풀(Peaceful)’하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과 내가 가진 결핍, 내 DNA에서 나오는 것 등등 그 모든 것들의 밸런스가 잘 맞는 곳이 바로 무대다. 역동적인 무대를 통해 가장 명상적인 상태를 느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발표한 ‘Wish You Were Here’ 뮤직비디오를 보며, 부모님이 이채린의 신생아 시절부터 비디오를 찍어두신 알고 놀랐다. 당신이 훗날 스타가 예감이라도 걸까? 물리학자인 아버지 이기진 교수는 얼마 전 <퀴즈 블럭>에도 출연했고 어떤 분인지 알고 있었지만, 당신 어머니의 모습은 처음 봤다. 부모님에게서 각각 어떤 면을 물려받았나?

어머니는 아주 영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영적인 면과 차분하고 참을성 있는 기질을 물려주셨다. 아빠는 궁금한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워낙 많은 사람이고, 행동으로도 잘 옮긴다. 또 자신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신다. 부모님의 기질을 균형 있게 물려받은 건 내 동생 같고, 나는 아빠를 다소 극단적으로 닮은 듯하다(웃음).

조가비 모티프의 보디 슈트는 JPG by Marvin M’toumo, 부츠는 Bonbom 제품.

만약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10초반의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똑같은 인생을 선택하고 싶나?

그럴 것 같다.

지금의 씨엘이 그때의 씨엘에게 한마디만 해준다면 뭐라고 하겠나?

‘너의 목소리를 들어라.’ 아니다, 목소리는 자주 거짓말을 한다. ‘너 오늘 너무 피곤해서 작업 못해’ 식으로(웃음). 이렇게 말해야겠다. ‘너의 느낌을 믿어라.’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기는 것이 있나?

웬만해서는 ‘다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게 내 약점 같다. 나는 남을 신경 쓰기보다 내 자아가 강하다. 사람이 스스로를 미처 다 알지 못해도 그 자체의 강한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걸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나 자신에게 안 좋은 경우도 생기는 듯하다.

예를 들면 어떤 경우인가?

화를 잘 안 낸다. ‘내가 그때 어떻게 해야 했다’라고 생각하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린다. 괜찮다 싶은 일,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나에겐 많다. ‘이건 그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정리했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보통의 경우보다 시간이 더 지나서 뒤늦게 하게 되는 것 같다.

웬만해서는 화나지 않고 포용하다가 뒤늦게 깨달음을 얻는 사람. 어떤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상처를 받을 시간만큼 크게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참을성이 많다는 거고, 내가 단단해서 그저 내 갈 길 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게 좋은 점이기도 하고 안 좋은 점이기도 하다. 한번 사람을 믿는 채로 쭉 가다가 사실 그 믿음이 틀렸다는 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알아버리면…

주얼 장식 시스루 보디슈트는 JPG by Lecout Mansion,청키한 플랫폼 부츠는 Rick Owens 제품.

우는 편인가, 울음이 없는 편인가?

원래는 정말 울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내가 울음 나오는 포인트가 좀 생겼다. 큰일이 일어나면 오히려 울지 않는데, 누군가에게 공감이 갈 때 그렇게 눈물이 나온다. 왜냐면 나는 보편적이지 않은 패턴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남에게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경험이 나와도 딱 들어맞아 공감하면 그 감동 때문에 운다.

기억나는 공감의 울음은 어떤 경우였나?

내 큰 약점이 하나 더 있다. 기억력이 좋지 않다(웃음). 이건 다라 언니가 잘 알아, 언니가 증인이지. 어떤 순간은 시간이 지나도 사소한 것까지 선명하게 다 기억난다. 그런데 어떤 건 통 기억을 못하고 산다. 본능적으로,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씨엘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씨엘이 어떤 존재인지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JTBC <슈퍼밴드 2>시작으로 이제 당신을 자주 보게 되겠지. 심사위원진에 윤상, 유희열, 윤종신, 이상순 외에 씨엘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나는 묘한 위안과 쾌감을 느낀다.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에는 여자 참가자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들어서 관심을 가졌다. 음악 활동을 하다 보면 여자 프로듀서나 엔지니어의 존재가 드물다. 여자 참가자가 나온다면 내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조언을 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응원을 하고 싶다.

현재 아티스트 씨엘의 삶을 향한 욕구 외에 어떤 욕망이나 욕구가 당신에게 있나?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내 삶을 잘 가꾸고 만들어가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것들은 언제나 그렇듯 자꾸 생겨나지만, 계속 배우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나가는 것. 그거야말로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이다.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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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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