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 싱어송라이터 백예린이 어느 날 문득 록 밴드를 꾸린다 했을 때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린 이들이 있을 거다. 하지만 백예린, 고형석, 조니, 김치헌이 뭉친 밴드 ‘더 발룬티어스’의 음악을 듣는 순간 그 물음표는 이내 느낌표로 바뀔지 모른다. 여름의 문턱, 마침내 세상에 나올 이들의 데뷔 앨범은 당신을 강렬한 록의 자장으로 데려갈 것이다.
지난 5월, 화려한 데뷔를 기다리는 록 밴드로부터 그들의 셀프 타이틀 데뷔작의 데모가 담긴 메일이 도착했다. 수록곡들이 주는 첫 느낌은 ‘반가움’. 하드한 노이즈 기타 톤에서는 1990년대 미국 얼터너티브, 그런지 록의 향수가 두둥실 떠올랐고, 어딘가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정조준한 듯한 축축한 영어 가사에서는 오아시스와 블러로 대변되는 브릿팝이 들려왔다. 캐치한 멜로디, 금방 깨져버릴 것 같은 유리잔을 연상시키는 여성 보컬의 불안한 음색이 어우러지며 앨범은 묘한 매력을 발했다. 아이돌, 힙합 음악이 메인스트림을 장악한 오늘날, 반항적 제스처가 드리운 이들의 록 넘버는 듣는 이를 먼 과거로 데려가기도 했다. 록 페스티벌이 말 그대로 록 페스티벌이던 시절, 그러니까 라인업의 많은 자리를 팝스타들에게 내어주며 멀쩡한 제 이름 대신 ‘아트 앤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묘한 명칭으로 불리기 이전, 그곳에서 열광하며 노닐던 기억들. 이들의 음악은 그 시절 페스티벌 현장의 대형 스피커 너머로 울려 퍼질 것만 같은 기분 좋은 기시감을 머금고 있었다. 누군가는 분명 5월 말 세상에 닿을 이들의 음악을 듣고 먼 과거로 항해할 것이다. 백예린(보컬), 고형석(베이스), 조니(기타), 김치헌(드럼)으로 구성된 밴드 더 발룬티어스(The Volunteers)가 머지않아 꽃가루 세례를 받으며 데뷔 무대에 서는 날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밴드 구성원에서 유독 낯이 익은 한 사람이 있다. 밴드의 프런트우먼이자 2012년 그룹 ‘15&’으로 데뷔해 2015년 솔로 뮤지션으로 변신한 싱어송라이터 백예린이다. 백예린의 지난 행보는 거대한 자본과 치밀한 전략이라는 두 바퀴로 움직이는 케이팝 시장에서 살짝 비켜나는 ‘엇박’과도 같았다. 2019년 JYP와의 전속 계약이 종료된 이후 백예린은 혈혈단신으로 1인 레이블 ‘블루 바이닐’을 설립하며 지난날과의 결별, 혹은 모종의 변화를 선언한다. 같은 해 3월엔 전곡에 작사·작곡으로 참여한 솔로 앨범 <Our love is great>을 발매하며 거대 팬덤 중심으로 굴러가는 ‘콘크리트’ 음원 차트에 깊숙한 한 방을 날렸다. 음원 공개 당일, 타이틀곡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는 멜론, 네이버뮤직을 비롯한 국내 6개 실시간 음원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는데, 특히 멜론에선 24시간 하루 동안 123만913명이 해당 음원을 재생하며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이는 여가수 음원으로는 역대 2위 실시간 이용자 수 기록으로, 1위는 146만을 기록한 아이유의 ‘삐삐’다). 2년 3개월의 공백기를 통과해 발매한 <Our love is great>은 결국 이듬해 열린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으로 등극했다. 선정위원 정병욱은 다음과 같은 심사평을 남겼다. “이 아름다운 음악들이 음원 차트에 머무르는 기간만큼 한국 대중가요의 수준도 그만큼 올라갔다.”
데뷔 후 꾸준히 R&B 음악 속에서 유영해온 백예린은 이제 록 밴드 ‘더 발룬티어스’의 보컬로 무대에 서게 됐다. 아마 사람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선회를 보며 이런 물음표를 떠올릴 것이다. ‘왜 하필 록이었을까?’ “한동안 공백기를 가지며 앨범 작업을 하지 않은 시기가 있었어요. 그 당시 제 안에서 다른 음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계속해서 고개를 내밀기도 했고요. 어린 시절부터 늘 로커의 삶을 선망했거든요. 그들은 한없이 자유롭잖아요. 사람들이 제게 전형적으로 기대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표출하는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게 바로 록이었고요.” 백예린이 말했다. 그렇게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2017년, 백예린을 필두로 그녀의 친구이자 인디 음악 신에서 잔뼈 굵은 세 멤버 고형석, 조니, 김치헌이 더 발룬티어스라는 이름으로 모여들었다. 베이시스트 고형석과 기타리스트 조니는 2011년 데뷔와 동시에 EBS <스페이스 공감>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 ‘올해의 헬로루키’에서 대상을 거머쥔 록 밴드 ‘바이바이배드맨’ 출신이며, 드러머 김치헌은 다양한 인디 밴드와 뮤지컬 현장에서 세션 맨으로 활약해왔다. 밴드의 탄생 과정, 그러니까 네 사람의 만남은 다소 우연에 가까웠다.
“2015년 바이바이배드맨이 발매한 앨범 <Authentic>에 푹 빠져 있었어요. 그해 열린 바이바이배드맨의 공연은 아무리 작은 클럽하우스에서 열린다 한들 하나도 빠짐없이 관람했을 정도예요. ‘나도 이런 음악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는데 뒤풀이 자리에서 인사를 트고 친해지면서 함께 밴드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백예린이 말했다. 이후 2017년 고형석과 10년지기 대학 동기 김치헌이 드러머로 영입되며 이들은 4인 멤버 구성을 완성했다. 고형석은 말한다. “밴드를 여럿 해보면서 느낀 건, 처음 밴드를 만드는 단계에 너무 많은 목적과 뜻을 품으면 언젠가 그것들이 조금씩 뒤틀리면서 밴드 해체의 수순을 밟을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멤버 개개인의 욕심이나 뜻이 완전히 같을 순 없으니까요. 더 발룬티어스가 그랬던 것처럼 ‘하고 싶으면 하자.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밴드를 시작하는 게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멤버 또한 ‘어떤 연주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친구’이기 때문에 함께하는 거죠.”
우스갯소리를 좀 해보자면, 네 사람은 음악으로 만났지만 ‘술’로 진정 하나 됐다. 음악 여행이라는 그럴싸한 구실을 앞세워 술 마시고, 놀고, 또 술 마시러 떠난 세 번의 여행에서 네 멤버는 가족만큼 돈독해졌다고 말한다. 2017년, 첫 여행은 새 멤버 김치헌을 환영하는 OT격 되는 여행으로 백예린의 애견과 함께 경기도 애견 카페로 떠났다. 같은 해 겨울, 일본 도쿄 여행에선 ‘더 발룬티어스’라는 밴드명이 탄생하기도 했다. 일본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 백예린은 밴드명 후보로 수십 개의 이름을 떠올렸고 그때 적은 메모를 도쿄에 도착해 멤버들에게 들려줬다. 당시의 메모를 볼 수 있냐는 에디터의 질문에 백예린의 얼굴은 장미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2017년 12월 10일에 적은 메모인데 너무 부끄러워서 저도 술기운을 빌려 멤버들에게 보여줬어요. ‘No Government’도 있고 ‘Self Government’, ‘The Charity’…. 제가 많이 급진적이었네요(웃음). 그때 한창 오아시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봤거든요. 거기서 전해지는 반항 정신, 시대 정신에 강하게 이끌린 것 같아요.” 자원봉사자들이라는 의미의 ‘더 발룬티어스’는 이들이 밴드로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던 당시의 상황이 담긴 이름이기도 하다. “밴드를 결성했을 당시만 해도 멤버 모두 소속사가 달랐어요. 지금과는 다르게 제 앞가림을 겨우 할 때다 보니 수중에 돈을 쌓아놓고 있지도 않았고요. 여러모로 공식적으로 녹음하고, 사진 찍고, 뮤직비디오를 만들 여력이 안 됐던 거죠. 그런데 주변에서 저희의 데모를 듣고 돈은 필요 없으니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때 경험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밴드 활동을 하는 한 남들에게 도움 받은 만큼 음악으로 보답하자는 마음이 있었죠. 예린이에게 ‘더 발룬티어스’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어요.” 고형석이 말했다.
2018년 밴드는 사운드 클라우드를 통해 총 다섯 트랙의 앨범 <Vanity & People>을 공개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정식 발매 앨범이 아님에도 현재 앨범의 총 스트리밍 횟수는 300만에 달한다. 밴드는 ‘가내수공업’에 가깝게 앨범의 다섯 번째 트랙 ‘Summer’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제작했는데, 여기엔 밴드가 세 번째로 떠난 제주도 여행의 장면이 담겨 있다. 차를 타고 달리다 무작정 내린 길목에서 담배를 태우고, 여름 해변에서 무지개색 튜브를 끼고 물장구치며, 모래 묻은 발로 서로의 등에 발자국을 남기며 보낸 시간들. <Vanity & People>을 통해 선공개한 다섯 트랙은 고스란히 5월 발매하는 첫 정규 앨범에 수록되었다. 앨범을 여는 첫 트랙이자 “나는 무자비한 록스타니까, 베이비(Cause I’m a ruthless rockstar, baby)”라는 가사가 등장하는 ‘Violet’은 더 발룬티어스가 가장 처음 작업한 곡이다. “‘Violet’은 사람들에게 ‘우린 이런 음악을 하는 밴드다’라고 선언하는 트랙과 다름없어요. 제일 하드하죠. 이 곡을 합주할 때면 ‘내가 이래서 기타를 쳤구나’ 느껴질 만큼 신나고요.” 조니가 이어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듣던 음악이 1990년대 미국의 얼터너티브나 그런지 록이었어요. 록을 하는 사람으로서 죽기 전에 반항, 저항의 정신이 담긴 이 장르의 음악을 해보고 싶었죠. 더 발룬티어스를 통해 마침내 도전할 수 있었고요. 마침 멤버 모두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TM)의 팬이기도 했죠.” 이들이 음악적 레퍼런스라 말하는 RATM은 1990년대 활발히 활동한 얼터너티브 록 밴드로 당대 음악 신에선 말 그대로 ‘저항’의 아이콘이었다. 1992년 셀프 타이틀 데뷔작을 발매했을 당시엔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부처에게 공양하기 위해 분신하는 것) 사진을 앨범 재킷으로 사용하며 비타협적 저항 정신을 전면에 내세웠고, 199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는 공연 도중 성조기를 불태우는 파격적 퍼포먼스를 펼쳤다. “인터뷰하러 오기 전 멤버들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밴드의 정체성을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어요. ‘시대를 향한 반항 정신과 세계 평화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내 안에서 피어나는 흑염룡’(웃음).” 백예린이 말했다. 인터넷상의 헤이터들을 향해 가운뎃 손가락을 치켜들고(‘Violet’), 사회불안장애를 주제로 “꺼져, 난 이 지루한 시기를 끝내버릴 거니”라 말하는(‘S.A.D’) 등 로 파이의 굉음들이 부유하는 가운데 세상을 향해 빅펀치를 날리는 더 발룬티어스의 음악엔 그들이 입모아 말하는 저항, 그 무언가가 넘실댄다.
인터뷰 당시 더 발룬티어스를 진정 ‘로커’라 느낀 대목은 록 밴드를 향한 세간의 암묵적 시선에 스스로 좀먹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한국에서 록 밴드라 하면 홍대발 인디 음악, 돈 없는 애들이 하는 음악이라는 시선이 있잖아요. 거기서 한껏 멀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자고로 밴드는 멋져야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앨범을 녹음할 때 무리해서 좋은 장비를 사용하려 했고, 첫 프로필 사진 촬영에도 힘을 줬어요. 어쨌든 저희 같은 밴드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로 인해 어떤 시장이 생길 수도 있고, 이를 보고 용기 내 새로 음악을 시작하는 사람도 생길 테니까요. 우리가 잘 되든 안 되든, 이기든 지든, 모든 것에 베팅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고형석이 말했다. 나아가 이들은 장르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을 거라 말한다. “더 발룬티어스는 ‘하고 싶어서’라는 마음 하나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어요. 저희가 하는 장르에 있어 어떤 제한도 둘 생각이 없어요. 아무리 정통 록에 기반한 기타 리프를 짠다 한들 예린이의 팝적인 보컬이 가미되는 순간 그 노래를 한 장르로 규정지을 수 없는 것처럼요. 다음 앨범에선 갑자기 헤비메탈 밴드가 돼 있을지도 몰라요(웃음).” 김치헌의 말이다. 술 마시기 좋아하고, 술 마시며 나누는 음악 이야기를 그것보다 훨씬 좋아하는 이 ‘좋아서 하는 밴드’는 자신들의 앞날을 이렇게 그린다. “언젠가 글래스턴베리 무대에 서서 연주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하며 스무 살 무렵 음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꿈을 20대 중반에 접었거든요. ‘난 안 되겠다.’ 하지만 이 밴드와 함께하면 다시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니의 말을 이어받아 백예린이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우리 설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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