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우의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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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예고도 징후도 없이 불현듯 온다. 드라마 <달이 뜨는 강>을 통해 방송가에 드문 경우로 남을 미션을 치른 나인우는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청량한 초록빛의 더블 재킷과 팬츠, 슈즈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 제품.

KBS <달이 뜨는 강>의 주인공이 급하게 나인우로 교체된다고 했을 때, 수긍보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나인우는 묵묵하게 5주 만에 20회 분량을 찍었다. 드라마 7회부터 ‘온달’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다. 고된 강행군으로 체중이 7~8kg이나 빠지고, 회차가 거듭될수록 점점 야위어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루에 1시간, 아니 한숨도 못 잔 적이 더 많았다. 그 노력 끝에 나인우는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난데없이 다가온 기회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셈이다. 그는 드라마와 함께 영화 <그녀의 버킷리스트>를 촬영했고, 새 드라마 <징크스의 연인> 캐스팅 소식도 알렸다. 나인우는 지금 누군가 앞다투어 찾는 배우로 성장하는 중이다.

화사한 꽃무늬 셔츠는 디올 맨 제품.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더 크고 어깨도 상당히 넓다. 부딪치면 튕겨 나갈 것 같은데(웃음).

나인우 만나는 분마다 어깨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실제로는 그렇게 넓지 않은데. 좋은 거겠지?

키가 187cm다. 어릴 때부터 컸으면 어딜 가나 튀는 남자였겠다.

글쎄, 어딜 가나 머리를 자주 부딪친다(웃음). 키가 커서 불편한 점이 많다. 우선 관절이 안 좋고, 길어서 컨트롤하기 어렵다. 흔히 키가 크면 태가 난다고 하지만 실은 뭘 해도 어색하고 삐거덕거리는 느낌이 있다. 비 선배님의 춤선이 예쁜 건 그만큼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거다.

온달의 액션 연기가 그런 뼈를 깎는 노력에서 나왔군. <달이 뜨는 강>에 합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주인공이 당신으로 교체된다는 소식에 ‘이 친구는 어디서 나타났지?’ 의아한 반응이 많았다.

<그녀의 버킷리스트>라는 영화를 찍고 있다가 저녁에 회사로 좀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들어가 대표님과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 또한 배우로서 한 작품이 엎어질 위기에 처하는 게 너무 안타깝더라. 다음 날 <달이 뜨는 강>의 윤상호 감독님과 미팅을 했다. 목소리 녹음하고 저녁에 의상 피팅하고, 그다음 날부터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제작진 측에서도 여러 고민을 했을 텐데,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달이 뜨는 강>의 윤상호 감독님과 다른 역할로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감독님과는 이미 안면이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내 전작이 사극이었던 터라 한복을 입은 모습이 쉽게 그려지셨던 것 같다. 마침 당시 촬영하고 있던 영화 <그녀의 버킷리스트>가 우리 회사에서 제작하는 작품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일정 조정할 여지가 있어서, 두 작품을 동시에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5주 만에 20회 분량의 드라마를 소화하면서 동시에 영화 촬영까지. 체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하루에 1시간 정도 자면서 촬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못 잔 날이 더 많다. 하루에 찍어야 하는 장면이 20개에서 많게는 40개까지 있었으니까. 아침부터 드라마 촬영을 하고 끝나자마자 <그녀의 버킷리스트> 촬영을 밤새 하고, 다시 아침에 드라마 촬영장으로 가고. 사람이 극한에 몰리면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더니 그 말이 맞더라. ‘대본을 외워야지’보다는 ‘어떻게든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했다. 그래서 애드리브도 많았다(웃음). 감독님이 내가 자유롭게 연기하는 걸 허락하셨다. 작가님은 ‘너무 잘해주고 있어서 고맙다’고 문자를 보내주시기도 했고. 그런 게 큰 힘이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 믿음으로 해나간 것 같다. 나도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고마움이 컸다.

촬영이 워낙 강행군이라 살이 7~8kg 빠졌다고. 실제로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야위어가는 게 보였다.

맞다. 옷이 점점 헐렁해지더라. 점점 안쪽 칸으로 벨트를 채웠다(웃음). 지금은 다시 4kg 정도 쪘다. 주변에서는 지금 정도가 딱 괜찮은 것 같다고 한다.

온달이라는 역사 속 인물을 표현하는 데 고려한 점이 있을까?

온달이 ‘바보 온달’이라고 알려졌는데 ‘사람들이 대체 왜 바보라고 불렀을까? 어떤 행동을 했길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순진무구하고 꾸밈이 없는, 자신만의 확고한 어떤 고집이 있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지 않나? 그런 식으로 접근했다.

오늘 아침엔 윤상호 감독이 연출할 드라마 <징크스의 연인>에 캐스팅됐다는 기사가 났다. 감독이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나 보다.

서로 극한의 상황에서 작업한 사이니 애틋한 감정이 있다. 감독님이 많이 배려해주신 데다 현장에서 200%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기도 했고. 이번에도 그렇게 좋은 작품을 재밌게 해보고 싶어서 두말하지 않고 하겠다고 했다.

순백의 꽃무늬 아플리케 셔츠와 검정 타이는 발렌티노 제품.

당신은 주로 가수들이 소속된 큐브엔터테인먼트의 배우 1호다. 1호라서 특별한 혜택이 있나?

큐브에서 벌써 9년 정도 보냈더니, 어느덧 내가 회사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 중 한 명이 됐다. 다른 건 모르겠고 어지간한 직원보다 오래됐으니 눈치 보지 않아도 돼서 편한 건 있다(웃음).

이번 드라마로 당신이 각인된 시청자도 많겠지만, 배우 생활을 한 지 꽤 됐다. 배우로서의 시작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2013년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로 연기를 시작했다. 내가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다. 첫 무대에서 공연 시작하며 커튼이 걷히는데 정말 죽을 맛이더라. 골수팬이 많은 작품이라 거의 만석이었다. 보는 눈이 많고 누군가가 지켜본다는 부담감 때문에 엄청 떨었다. 사실 요즘도 카메라 앞에서 긴장을 좀 한다. 연기를 하는 동안에는 결과물을 실시간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무섭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게 어려웠던 내가 이 직업을 해오고 있으니, 용케 잘 버티고 있다 싶기도 하고(웃음).

사람 나인우의 사사로운 것들이 궁금하다. 9살 부터 12살까지 캐나다에서 유학 생활을 했는데, 영어는 잘하나?

듣고 쓰고 읽는 건 어느 정도 괜찮게 한다. 학창 시절에 영어 성적은 늘 90점 이상이었다. 근데 회화에 약하다(웃음). 알고 있는 영어 단어들이 초등학생 시절에 배운 것들이라.

뮤지컬을 했으니 노래도 꽤 잘하는 거로 안다. 회사의 전문 분야를 살려 가수 활동을 해볼 생각은 안 해봤나?

기회를 안 준다(웃음). 회사에서 내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야 언제든 환영이지. 하지만 춤은 도저히 안 늘더라. 박치는 아닌데 팔다리가 길어서 어쩔 수 없는 어색함이 있다. 그러니까 만약 장르를 택한다면, 발라드로…

아티스틱한 프린트의 재킷과 검정 팬츠는 벨루티, 슈즈는 지방시 제품.

도시락처럼 1인당 양이 정해진 음식의 반찬은 남에게 양보 못한다고 언급한 인터뷰를 봐서 재밌었다. 대식가인가?

많이 먹었지. 옛날에는 라면 3개에 밥까지 말아서 먹었다. 피자는 혼자서 라지 한 판에 콜라까지 먹었고. 이제는 라면 2개에 밥을 말아 먹으면 배가 부르다. 비빔면이나 짜파게티는 2개 반 정도 먹으면 적당하다.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10042n00’이다. 과거 1004호에 살아서 그렇게 지었다고? 보통 SNS 아이디는 고심해서 짓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이름에 생일을 붙이는 방식이 더 단순하지 않나? 회사 숙소 생활을 할 때 1004호에 살았고 천사라는 단어가 좋아서 그렇게 지었다. 그게 단순하다면, 내가 게임할 때 쓰는 아이디는 더 단순하다(웃음).

대체로 진중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의외로 재밌고 유쾌한 구석이 있는 듯하다.

그렇지? 심지어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쿨한 면도 있다. 남들과 같이 있을 때는 배려하느라 우유부단하기도 하지만,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는 칼같다. 뒤끝도 없고.

쿨하다고? 돈 관계에서도 쿨할 수 있나?

그럼! 만약 수중에 100만원이 있다고 치자. 만약 평생 볼 사이라면 반은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 금액에 따라 조금 편차는 생기겠다. 수중에 3억이 있는데 1억5천을 내주긴 어렵지(웃음). 빌려주고 안 받을 생각으로 주는 거니까. 받을 생각을 한다면, 차용증 쓰고 2억도 가능하고.

마지막 질문은 진지한 걸 물어봐야겠다. 나인우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진심을 전하는 배우, 울림을 전하는 배우. 그러려면 결단력을 가지고 행동해야겠지.

촬영과 인터뷰가 다 끝났는데, 결단력 있게 무얼 해야 할까?

배고파서 뭘 좀 먹어야겠다. 오늘 긴장해서 한 끼도 못 먹었거든. 다음 주에는 소속사에서 내내 권한 화이트 태닝도 꼭 하는 거로!

패션 에디터
박연경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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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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