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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서가에서 고른 다음 세 권은 제각각의 소재를 취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색’이 보인다는 점과 ‘덕후’적 시선으로 완성됐다는 점.

365일 중에 300일을 무채색과 더불어 사는 이도 몸의 감각을 깨워줄 온갖 색들에 시선이 멈추는 계절이다. 단박에 눈길을 끄는 신간은 두툼한 하드북인 <우연히, 웨스 앤더슨>(웅진지식하우스). 저자가 전 세계에서 웨스 앤더슨의 영화 속에 ‘등장할 법한’ 장소들의 사진을 찾고 엮어서 만든 것이다. 오하이오의 초콜릿 공장, 우크라이나 국립미술관, 인도의 ‘비진잠’ 옛 포르투갈 교회, 이라크의 ‘나즘 알-이맘’ 종교학교, 인형의 집처럼 생긴 각 지방의 기차역과 빈티지한 세트장에 우뚝 서 있는 듯한 등대…. 여행책이자 사진집인 이 책의 모든 게 거짓말 같다. 유명 건축물을 제외하고도 세상에 색과 구도의 미학을 지닌 풍경이 이렇게나 많았는지 놀라울 뿐이다. 저자인 윌리 코발은 인기를 끈 인스타그램 계정(@AccidentallyWesAnderson)의 주인이다. 게시물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지만, 화면 속 작은 사진으로 볼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과 각 장소에 관한 흥미로운 서사가 책에 담겼다.

<빨강 머리 앤의 정원>(지금이책)은 싱그럽다. 앤은 여전히 뭇 여성들의 마음속에 간직된 소녀라 그에 관한 여러 책이 출판됐지만, 앤이 사랑한 식물에 대한 문장을 소개하고 그 문장에 등장한 식물을 하나씩 그려 모은 책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보랏빛 제비꽃과 싱그러운 고사리,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벚나무와 우아한 자작나무, 소설 속 넓은 과수원에 있었을 사과나무와 블루베리 등 박미나 작가의 물빛 가득한 수채화가 가득하다.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며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다소 당황스러운 증상을 겪을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빨강>(세미콜론)은 삽화나 사진 없이 글만으로도 강렬한 빨강의 이미지를 시종일관 연상시킨다. 그 ‘빨강’의 정체는 훠궈다. 저자인 <얼루어> 피처 디렉터 허윤선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마감이 끝난 새벽 4시 반경 ‘무사마감’을 자축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24시간 훠궈 식당’으로 향하는 사람이다. 훠궈 하나로 에세이 한 권을 쓸 수 있는 건 잦은 출장과 여행길에서도 각종 훠궈를 섭렵한 전력이 있는 덕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는 서울의 웬만한 훠궈 식당에 관한 이야기와 훠궈를 즐기는 저자의 스타일은 물론, 홍콩, 마카오, 중국에서 맛본 훠궈의 특색과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코펜하겐을 여행하면서도 마라와 홍탕을 기어이 먹고야 마는 집념을 비롯해, 수술 후 기력을 회복하자마자 훠궈 국물로 배를 채운 개인의 ‘훠궈 사’를 편안히 즐기는 게 좋겠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른거리는 빨강이 미각과 후각을 자극한다. 역시 훠궈 마니아인 배우 신세경은 ‘나름대로는 스스로를 마라 중독이라 여기며 살아왔는데, 크게 반성하며 새로운 도전을 마음먹게 되었다’고 추천사를 쓰며 마지막에 이렇게 외쳤다. ‘역시 훠선생이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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