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웃자 닮은 듯 다른 두 얼굴이 하나로 포개진다. 배우 공명과 NCT 도영이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섰다. 형제의 시간은 갈수록 깊어만 간다.
오늘 드디어 김형제가 생애 첫 화보를 촬영했다. 서로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을 텐데 어땠나?
도영 형제가 모두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것 자체가 특별하지 않나. 언젠가 화보로 우리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정말 뿌듯하다. 사실 오늘 엄마한테 구경 오라고 할까 한참 생각했다(웃음).
두 사람 고향이 경기도 구리다. 구리에서 김형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도영 어렸을 땐 잘 모르겠는데, 지금은 모르면 안 되지.
공명 응? 나는 잘 모르겠는데. 차라리 지금이 더….
도영 아, 오히려 어렸을 때가 더 유명했다?(웃음)
그때 꽤나 유명했을 듯한 게, 공명은 방송에서도 자주 얘기했지만 구리의 ‘F4’로 유명했고, 도영은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 보컬이자 전교 부회장이었다. 서로의 인기를 간증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도영 형은 어려서부터 키가 크고 잘생겼었다. 형 덕분에 나도 학교생활이 순탄했지. 형을 좋아하던 여자 선배들이 저마다 나를 본인들 동아리에 모시려고 했다(웃음). ‘쟤는 꼭 우리 동아리에 데려와야 해!’ 하면서 직접 반으로 찾아온 선배들도 있었다.
공명 그 정도는 아니었다. 구리가 워낙 좁다. 초중고를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한 다리 건너면 누구나 아는 사이다. 또 나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격이다 보니 친구가 많았다. 그래서 그렇게 비쳤을 거다.
솔직히 누가 더 인기가 많았나?
도영 형이 더 많았을 거다.
공명 맞다. 그건 어쩔 수 없다(웃음). 그런데 동생도 노래로 장기자랑에서 상을 타거나 하면서 한 인기 했다.
도영 나는 형의 동생으로 유명했지. 형은 달리기든 축구든 운동을 워낙 잘했다. 운동회 하는 날이면 늘 그날의 주인공이었다. 계주를 하더라도 꼭 마지막 주자로 달려 역전승을 거머쥐는 사람이 있지 않나? 그게 형이었다. 형에겐 매년 운동회라는 ‘스타’가 될 기회가 있었던 셈이지(웃음). 나는 사실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나서서 노래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조금씩 장기자랑에 나가 노래를 부르니까 사람들이 ‘동영이’(도영의 본명) 했던 거지, 형만큼의 인기는 없었다.
유년기를 돌이켰을 때 서로는 어떠한 형, 동생이었나?
도영 형은 본인이 피곤할 정도로 동생을 챙기는 사람이었다. 동갑내기 친구들과 놀 때 내가 같이 놀겠다며 쫓아가면 성격상 매몰차게 ‘저리 가’ 하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친구들이랑 노는 틈틈이 계속해서 나를 챙기고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살피느라 귀찮았을 텐데 말이다. 정작 나는 그러다 형이 더 이상 나를 데리고 다니지 않을까 봐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놀아!’ 말하는 애였고(웃음).
공명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형제애를 유난히 강조하셨다. 우리 둘의 호칭은 항상 ‘우리 형’, ‘내 동생’이었다. 학창 시절까진 내가 도영이를 늘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지금은 또 다르다. 성인이 돼서 혼자 숙소 생활을 하고 가수 활동도 씩씩하게 해내니까. 가끔 집에 와서 대화를 나눌 때면 동생의 달라진 말투나 생각을 확인하면서 ‘얘가 혼자서도 잘하고 있구나’ 생각한다. 지금은 동생이 자랑스럽고 고마운 마음뿐이지.
형제애가 남다르다. 보통 형제 사이가 이렇게 돈독하기 쉽지 않은데.
도영 나도 형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가끔씩 놀란다. 피를 보면서 싸운다고 하더라고(웃음).
어린 시절부터 서로 가수, 배우를 꿈꾸는 모습을 지켜봤을 텐데. 꿈을 향해 달려가고, 꿈을 이루는 모습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봤나?
도영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훗날 노래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확고한 마음이 있었다. 반면 형은 좋은 기회로 나보다 먼저 연예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런 모습에 선의의 경쟁심이 생겼던 것 같기도 하다. 형을 응원하는 마음이 드는 동시에, 나도 덩달아 열심히 해야겠다는 굉장히 좋은 에너지를 받았지.
연예계를 꿈꾸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공명 전혀.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가 원하는 꿈에 도전할 수 있게끔 옆에서 늘 응원해주셨다. 끊임없이 기회를 만들어주신 편이었지. 내가 데뷔하게 된 것도 엄마의 영향이 크다. 한참 진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엄마가 모델 학원을 알아봐주면서 배우의 길을 꿈꿀 수 있었으니까.
도영 게다가 헛된 꿈을 꾸게 한 게 아니었으니까. 언제나 우리가 ‘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게끔 하셨다. 단순히 ‘네가 원하니 해봐’가 아니라 ‘해봐, 하지만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꼭 보여줘야 해’에 가까웠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타협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셨지. 지금 생각해도 부모님이 굉장히 현명하셨다.
아버지가 역도, 어머니가 육상 선수 출신이지 않나? 예체능에 있어 꿈과 현실을 슬기롭게 꾸리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일러줬을 것 같다.
도영 오오, 정말 맞는 말 같다. 두 분은 과거 운동선수로서 노력의 한계를 느껴봤을 테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엄마가 마흔을 넘긴 나이에 갑자기 마라톤 대회에 나가겠다고 하신 때가 있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2시간씩 뛰었고 결국 대회에서 3등을 하셨다. 그걸 보면서 노력해서 안 되는 건 없구나 느꼈지. 저렇게 한계에 부딪치며 열심히 해야 비로소 노력이라고 부를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은 무엇인가?
공명 곧은 성격과 생각인 것 같다. 부모님이 상대방을 항상 배려하는 분들이라 자연스럽게 나도 그런 사람으로 성장했고, 무엇 하나를 해도 끈기와 집념을 놓지 않은 분들이니 나도 인생을 멀리 바라보고 오래달리기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을 거다.도 영 정말. 특히 연예인은 직업 특성상 남에게 항상 케어를 받는 입장이니까. 자아도취에 빠져 망가지기 십상인데 부모님 덕분에 그런 인생을 살지 않게 된 것 같다.
유독 두 사람은 시상식과 인연이 깊다. 2017년과 2020년 시상식 무대에서 각자 시상자와 수상자로 만났다. 서로에게 상을 건네고 받은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나?
도영 나는 그때를 도무지 잊을 수 없다. 특히 2017년 골든 디스크 시상식 당시엔 신인상을 수상했다. 내가 상을 받아도 되나 싶기도 했고, 동시에 지난 연습생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그런 상태로 무대에서 형을 봤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눈물이 나올 뻔했다. 원래 형을 보면서 우는 스타일이 아니거든.
공명 나도 그렇게 큰 무대에 시상자로 나선 건 처음이라 굉장히 떨렸다. 더구나 동생에게 상을 준다니 너무 기분 좋고 감동적이었지만 동시에 굉장히 아쉬웠지. 상을 건네는 과정이 순식간이다 보니 멀찍이 서서 동생을 아련하게 쳐다보며 슬프게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웃음). 그 순간 리더인 태용이에게 상을 건넸지만 마음으로는 동생에게 상을 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형제가 아닌 동료로서 서로는 어떤 가수, 배우 같다고 느껴지나?
도영 형은 나이가 들면 더 멋진 배우가 될 것 같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늘 본인이 나이가 들어서도 연기하는 삶을 살 거라 말하니까. 당장 눈앞의 작품이 잘되는 것보다 훗날을 내다보면서 성실히 연기하는 형의 마인드가 멋있는 것 같다. 보통은 당장 보이는 성공에 치중하면서 그것만 보고 달려가기 쉬우니까.
공명 도영이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을 늘 팬들에게 들려주려는 마음이 보인다. 그리고 최근 도영이가 단막극에 도전하지 않았나. 요즘 시대는 아이돌에게 ‘만능’의 미덕을 바란다고 생각하는데, 같이 대본 리딩을 하면서 느꼈지만 동생에게서 연기의 가능성도 엿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공명의 말처럼 올해 1월 도영은 웹드라마 <심야카페 시즌3: 산복산복 스토커>에 출연했다. 첫 연기 도전은 어떤 경험이었나?
도영 아무래도 첫 도전이었기 때문에 미숙한 점이 많았다. 촬영 전날 형과 대사를 맞춰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웃음). ‘배우들이 이래서 연기를 하는구나’ 느낀 건 있었다. 가끔 세상을 살다 보면 슬플 기회가, 기쁠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그런데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슬픔, 기쁨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가수로서 무대에 올라 팬들과 소통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하는데, 배우에게도 그와 비슷한 카타르시스가 있을지 늘 궁금했다. 그런데 직접 연기에 도전하며 감정을 맘껏 표출해보니,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또 다른 방향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겠구나 짐작되더라고.
도영은 작년 앨범 <NCT RESONANCE Pt. 1>의 활동도 무사히 마쳤다. NCT 멤버 23명 전원이 참여한 몸집 큰 활동을 마쳤을 무렵, 새로이 느낀 교훈이 있었나?
도영 23명이 다 함께 뭔가를 할 땐 상상 이상으로 난관이 많다. 사소하게는 대기실에 있는 단 두 개의 화장실을 나눠 쓰는 것부터 시작해서(웃음). 학교에서 단체로 현장 학습을 갔을 때를 떠올리면 좀 쉽게 상상될 거다. 하지만 활동을 전부 마치고 한가지 확실한 결론을 내렸다. 팬들이 NCT를 좋아하는 이유도 결국 이번 활동에서 그랬듯 늘 새로운 조합, 새로운 음악을 제시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치지 않고 달려야 한다는 것. 처음에는 나 또한 활동마다 새로운 조합을 제시하는 NCT 체제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이제는 NCT만이 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NCT의 일원으로서 어깨가 한껏 올라가게 됐고, 그런 만큼 책임감이 들어 더 열심히 한 것 같다.
NCT에서 보컬 포지션 하면 도영이 대번에 떠오른다. 노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나?
도영 매번 바뀐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노래에서 이야기가 잘 들려야 한다는 점이다. 충분히 주어진 것 안에서만 부를 수 있지만 이야기가 듣는 사람에게 더 잘 전달되려면 발성도 좋아야 하고, 고음도 깔끔하게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그림을 만들어가는 건 오롯이 내 몫이고. 그래서 지금도 계속해서 가창 수업을 듣는다. 일부러라도 선생님을 계속 바꿔가며 들으려고 한다.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모르는 것 같으니까. 더 잘 부르고 싶으니까.
도영이 훗날 부르고 싶은 도영만의 노래는 무엇인가?
도영 항상 자연스러운 음악을 하고 싶다. 그래서 그 노래를 언제 발표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노래를 발매하는 나이에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를 하고 싶거든. 마치 그때 생김새와 같은 음악을. 다만 욕심 좀 낸다면 ‘너희 못 따라 부르겠지?’ 같은 느낌으로 수록곡에 제대로 된 보컬리스트로서의 음악을 끼워 넣고 싶다(웃음).
공명은 올해 SBS 드라마 <홍천기(가제)>의 방영을 앞두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 <하이에나>를 연출한 장태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벌써부터 기대작으로 꼽히는 눈치더라.
공명 게다가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 소설을 쓴 정은궐 작가님의 소설을 각색해 드라마가 제작되다 보니 기대가 크다. 또 워낙 장태유 감독님의 팬이었다. 연기자로서 바라보기에 장태유 감독님은 한 신에서 사소하게 흘러갈 수 있는 요소도 놓치지 않고 디테일로 승화하는 분이다. 그 디테일한 연출력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니 그렇게 영광스러울 수 없었다. 물론 신마다 공들여 찍다 보니 가끔 녹초가 될 때도 있다. 그런데 감독님이 그 타이밍을 어찌나 잘 아시는지 적재적소에 당근을 잘 주셔서(웃음). 당근도 채찍도 달게 받으며 기분 좋게 촬영하고 있다.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 용의 출현>도 올해 개봉 시기를 엿보고 있다. 2014년 개봉한 영화 <명량>을 잇는 ‘이순신 3부작’의 두 번째 편이자 안성기, 박해일 등 연기파 배우가 대거 참여한 충무로 기대작이다. 촬영 당시를 어떻게 회상하나?
공명 어려서부터 사극 장르를 워낙 좋아했다. 그래서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는 대사의 톤을 쉽게 잡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지. 그런데 촬영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특히 안성기 선배님과 붙는 신이 많았는데 선배님의 연기를 보고 들으면서 내가 갖고 있던 연기에 대한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연기에 보다 진지한 태도로 임하게 됐고. 재미있게는 못 찍었지. 엄숙했다. 그래야만 했다. 시기상 <한산: 용의 출현>의 촬영을 마치고 <홍천기(가제)>를 찍게 됐다. 같은 사극 장르로서 영화를 미리 촬영하지 않았다면 지금 <홍천기(가제)>를 이렇게 수월하게 찍을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이따금 생각날 때면 꺼내 보는 공명 본인의 출연작이 있는가?
공명 처음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를 했던 영화 <얼음강>.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인권 영화 시리즈 <어떤 시선> 중의 한 편이다. 어쩌면 이 작품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연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그때 너무 즐겁고 행복하게 촬영한 기억 때문에. 내겐 재산이자 뿌리 같은 영화다.
시계를 과거로 돌려, 두 사람에게 특별한 돌파구가 됐던 순간이 있는가?
공명 영화 <극한직업>을 촬영할 때. 당시를 돌이키면 마치 내가 텅 비어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연기를 할 때 쓸 수 있는 경험치나 에너지를 전부 소진한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그때 만난 선배님들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연기뿐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지.
도영 가수는 2~3주의 짧은 활동을 위해 보이지 않은 곳에서 긴 시간 준비하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래서 활동이 끝나 공백기가 찾아오면 매번 난관에 부딪힌 것 같다. 뭘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고, 가만히 있자니 도태되는 것 같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시간을 똑같이 앓으며 나를, NCT를 기다려줄 팬을 생각하니 뭐라도 하게 되더라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고, 커버 곡을 올려 기다림을 달래고. 데뷔 초만 해도 무작정 인기가 많아지고 싶어 준비한 것들을, 이제는 우리를 기다려 주는 팬의 마음을 생각하며 하게 되는 것 같다.
오늘 촬영도 무사히 마쳤고 인터뷰도 끝나가겠다, 두 사람 오랜만에 회포를 풀어야 하지 않나?
공명 마치면 밥 한 끼 하려고 식당을 예약했다. 메뉴는 스테이크에 파스타로. 지금 밤 10시가 다 되어가 조금 초조하다(웃음).
정말 마지막 질문이다. 두 사람이 가진 비밀 한 가지를 알려달라.
도영 비밀을 말하면 비밀이 아니잖아?(웃음) 우리 둘이 함께 살 계획이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 패션 에디터
- 이예진
- 피처 에디터
- 전여울
- 포토그래퍼
- 김신애
- 스타일리스트
- 윤슬기(공명) 김영진(도영)
- 헤어
- 정호(공명) 한송희(도영)
- 메이크업
- 지영(공명) 안성은(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