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예쁜데 공부까지 잘하는 그런 애? 그게 바로 요즘의 K뷰티다.
1. Hotel Dawson Room No. 792 디퓨저 250ml, 6만3천원.
2. Kuoca 크림 블렌드 40ml, 12만원.
3. Likewise 수퍼차지 크림앤크림 50ml, 3만6천원.
4. Neker 베일레이어 섀도우 팔레트(무드브라운) 7.8g, 2만2천원.
5. Loivie 리얼 다마스크 로즈 하이드레이팅 토너 180ml, 4만9천원.
6. Ring Rang Rung 립밤 컨디셔너 3g, 1만8천원.
7. Onoma 라이츠 블라썸 에센스 35ml, 4만8천원.
8. Mixsoon 병풀 에센스 100ml, 3만2천원.
9. Glosome 글로썸 로즈쿼츠 괄사 75x100mm, 5만원.
10. Hinok 희녹 더 스프레이 450ml, 2만4천원.
“이건 직접 써봐야 해요.” 얼마 전 메이크업 아티스트 오가영 실장이 촬영이 끝나자마자 나를 자리에 앉히더니 믹순 ‘콩 에센스’를 손에 듬뿍 짜주었다. 사실 수많은 화장품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아무리 혜성처럼 나타난 브랜드라 할지라도 오늘의 저녁 메뉴보다 기대되지 않은 지 오래. 심드렁한 마음으로 그녀의 조언에 따라 열심히 마사지한 후 세안하며 피부를 만져보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 실장님 이거 대박!” 자극 없이 각질이 말끔히 제거된 피부의 맨들맨들함은 내가 아침에 세수할 때 만진 그 피부가 아니었다. 그러고 며칠 뒤 뷰티 에디터 후배가 나를 또 홀렸다. “선배 닥터베이스 세럼 써보셨어요? 그거 진짜 좋아요!” 자고로 뷰티인들이야말로 시큰둥과 호들갑을 냉탕과 온탕처럼 오가는 이들 아닌가. 반신반의하며 써봤는데 역시나 별 감동이 없었다. “응 뭐가 나진 않더라.”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처럼 깐깐한 평을 던져놓곤그래도 새 거라 의무감에 매일 쓰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전에 즐겨 쓰던 다른 세럼을 발라보고서야 퍼뜩 깨달았다. 후배가 추천한 세럼을 쓰는 동안 단 한 번도 건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평소에 뭐가 잘 나는 피부의 소유자라는 걸! 탈락의 아슬아슬한 위기를 극복하고 1등으로 금의환향한 오디션 스타처럼 그 세럼은 다시 화장대 1열에 올랐다. 아니, K뷰티가 이렇게나 좋았다고?
그렇다. 요즘 K뷰티는 정말 괜찮다. 앞서 말한 믹순과 닥터베이스는 물론이고 제조 후 30일 이내의 제품만 판매하는 ‘극신선주의’ 쿠오카, ‘수분직배송’ 보습 케어 전문 브랜드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라이크와이즈, 에센스로 시작해 에센스로 끝나는 독특한 루틴을 제안하는 오노마, 출시 1년 만에 대표 비건 스킨케어 브랜드로 성장한 허스텔러와 비브까지 콘셉트도 다채롭다. 놀라운 것은 최근 출시되는 많은 뷰티 브랜드들이 거의 완벽한 스펙의 신입사원처럼 MZ 세대의 소비자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조건에 제대로 부응한다는 것. 탄탄한 제품력과 확실한 브랜드 철학은 기본, 인체에 유해하거나 자극적인 성분은 배제하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으며, 친환경 패키지를 사용하는 등 윤리적 마인드까지 풀장착되어 있다. 비브 브랜드 매니저 이윤진은 론칭 당시 비건 브랜드로서의 진정성을 설득하는 게 쉽진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단순히 콘셉추얼한 비건 브랜드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무조건 공신력 있는 인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동물 유래 성분의 배제, 성분에 대한 동물 실험이 확실히 없었는지를 입증할 많은 서류를 제출해야 했어요. 한 제품당 보통 20~25가지 성분, 총 7개 제품을 출시했으니 1백50여 개의 인증을 받은 셈이에요.” 피부의 건강과 직결된 스킨케어 브랜드에 있어 이 ‘진정성’은 소비자의 마음에서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피부과 의사 윤지영이 출시한 닥터베이스는 피부 전문가다운 명쾌한 설명과 제품력으로 신뢰를 얻었다. “피부 재생에 핵심적인 HSP를 부스팅시켜주는 성분을 담았지만, 이건 표피에만 작용하는 거예요. 실제로 표피만 건강해져도 진피까지 개선되는데, 많은 브랜드에서 화장품 성분이 진피까지 침투한다는 듯 얘기하죠. 신경과 혈관이 분포한 진피까지 화장품을 투입하려면 표피와 진피 사이의 기저층을 일부러 뚫고 들어가야 하고 그러려면 피부에 좋지 않은 성분을 넣어야 하는데도 말이죠. 무엇보다 외부 물질을 방어해 몸을 보호하는 기저층을 굳이 무너뜨릴 필요가 있을까요?” ‘순수 단일 성분’ 브랜드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믹순 브랜드팀 김재경 팀장 역시 1%의 콘셉트 성분을 가지고 ‘00에센스’로 마케팅하기보다는 꼭 필요한 좋은 성분을 100% 원액으로 담아 정면 승부하는 것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믹순을 똑같이 카피하여 만들고 싶다는 문의가 제조 공장에 쇄도하고 있다는데, 원가를 알고 나서는 너무 비싸다며 포기한다고 해요. 요즘 소비자들에겐 진심이어야 통하죠.” 쿠오카의 전 제품 제조일자 표기에 먼저 호응을 보인 것도 소비자들이었다. “사실 ‘극신선’ 유통 원칙을 지키는 게 쉽진 않았어요. 30일에서 하루라도 지난 제품은 판매하지 않다 보니 재고 관리도 까다롭고, 유통업체에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해시키는 것 자체가 어려웠죠. 하지만 ‘배송일자 포함하면 방금 만들어진 제품이나 다름없네요’라며 신선함을 환영하는 후기가 많아지면서 유통업체들도 지지해주기 시작했답니다.”
브랜드마다 확고한 개성과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지점. 올해 1월 론칭한 런드리유는 ‘피부도 세탁이 필요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세탁-헹굼-유연의 과정을 클렌징과 보습 제품에 접목했다. 클렌저의 이름은 무려 ‘페이스 가글’! 이건 구강청결제야, 세제야 궁금해하다 클렌저라는 사실이 신기해서 기억하게 된달까? 예전 같으면 이런 독특한 콘셉트는 윗분들께 올라가기도 전에 ‘커트’ 당하는 비운의 아이디어였을 테지만 요즘처럼 캐릭터가 중요해진 세상에선 그 자체가 자산이다. R자 타투 비주얼만으로 강렬한 생명력을 불어넣은 메이크업 브랜드 링랭렁이나, 뉴트럴 톤의 컬러 큐레이션으로 시선을 사롭잡은 네케르도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브랜드. “제품력은 물론 감각적인 브랜딩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인플루언서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어요. 덕분에 자동 바이럴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죠.” 링랭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규태의 설명이다.
K뷰티는 럭셔리, 니치 향수부터 라이프 스타일 제품에 이르기까지 저변도 확대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브랜드 중 하나는 논픽션. 최고급 향료와 까다로운 조향으로 탄생한 향수와 보디 제품을 모던한 로고의 패키지에 담아 선보이는데, 국내 제품 중에 인테리어용으로 두어도 이렇게 예쁜 제품이 있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논픽션의 김효선 이사는 향수 라벨 작업 시 선택한 종이의 특성상 기계 작업이 어려워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붙여 완성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보디 제품의 보틀은 말랑한 질감의 신소재를 사용해서 욕실에서 발등 위로 떨어져도 다치지 않게 했는데, 디자인 도형이 워낙 까다로워서 조금만 실수해도 전부 불량품이 되고 말죠. 하지만 이런 디테일이 ‘가지고 싶은’ 레이블을 만든다고 믿어요.” 마치 유럽의 유서 깊은 호텔에 놓여 있을 듯한 클래식한 디퓨저를 선보이는 호텔 도슨, 천연 에센셜 오일로 고급스러운 향을 자랑하는 스킨케어와 향수 제품을 선보이는 로이비, 괄사와 인센스 등의 아이템을 동양적인 디자인으로 풀어내 이미 일본, 영국, 스웨덴 등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글로썸도 눈여겨봐야 할 브랜드. “‘친환경’과 ‘럭셔리’를 모두 만족시키려면 제한된 원료로 최상의 효능을 내야 하다 보니, 1년간 테스트만 한 적도 있죠. 하지만 그 결과로 ‘괄사계의 에르메스’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보람 있어요.” 글로썸 천영준 대표의 말이다. 라이프 에티켓 브랜드로 4월 새롭게 론칭하는 희녹 역시 여러모로 매력이 넘친다. 이니스프리, 키엘 등을 거치며 뷰티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박소희 대표는 “탈취, 소독이 되는 제품을 찾아 전 성분을 살펴보니 계면활성제나 락스 계열의 화학 성분이 많더라고요. 자연 원료라도 향료를 넣은 것이 대부분이고. 화장품은 좋은 성분의 제품이 많은 데 비해 생활화학 제품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고 내가 쓸 걸 제대로 만들어보자 싶었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제품이 100% 제주 편백 원액 탈취&정화수를 사용한 ‘더 스프레이’.
식약처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와 책임 판매업체의 규모는 2만여 개소에 달한다. 이 치열한 시장에서 모래알 속 진주처럼 눈에 띈 이들은 앞으로 K뷰티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다. 러브콜은 이미 시작됐다. 부디 초심을 지켜 우리를 계속 설레게 해주길 바랄 뿐!
- 뷰티 에디터
- 이현정
- 포토그래퍼
- 박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