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S/S 쿠튀르 컬렉션에 새롭게 등장한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Charles de Vilmorin 샤를 드 빌모랭
이브생로랑의 21세기 버전, 24세의 천재 디자이너, 수많은 닉네임을 보유한 파리의 핫한 디자이너 샤를 드 빌모랭(Charles de Vilmorin).
인터뷰하게 되어 반갑다. 첫 쿠튀르를 멋지게 치러낸 것을 축하한다.
샤를 드 빌모랭(Charles de Vilmorin) 고맙다. 많이 긴장했는데 지금은 편안하고 즐겁다.
당신에게 파리의 천재 디자이너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알고 있나?
하하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몇몇 기사에서 그렇게 닉네임을 붙여준 건 알고 있다.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앞으로 더 발전하고 더 노력하라는 격려 정도로 받아들인다.
2019년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직후 첫 컬렉션을 시작하고, 쿠튀르까지 펼쳤다. 패션계에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이 무척 궁금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00층으로 순간 이동한, 전무후무한 사건이라 해도 될 정도다.
나는 항상 예술을 동경해왔고, 그중에서도 패션에 정말 관심이 컸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내가 패션 일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모델로도 일해보았다. 그런데 패션은 내가 정말 하고 싶어한 것이다. 바칼로레아(프랑스 수능시험) 이후에 패션 학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4년 동안 재단부터 시작해서 옷을 만드는 모든 것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갈 길은 패션임을 재차 확신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내 첫 번째 컬렉션을 했다. 그게 지난해 초 프랑스에 봉쇄령이 내려졌을 즈음이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내가 만든 옷을 좋아해 주었다.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낯선 의상에 호감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 장 폴 고티에가 쿠튀르 연합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첫 쇼 이후 쿠튀르 쇼에 바로 데뷔한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장 폴 고티에가 당신의 쿠튀르 출연을 지원했고, 결과적으로 당신이 레디투웨어 대신 쿠튀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나에게 쿠튀르를 제안하고 연합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그냥 보내버릴 수는 없었다. 영광이었다. 물론 모든 면에서 더 성장해야 하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레디투웨어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쿠튀르는 레디투웨어보다 더 큰 부분의 창의성을 요하고, 아티스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옷에 접근하는 의도와 태도도 다르다. 물론 기다리는 결과도 다르다. 상업적으로는 덜 흥미롭지만, 만드는 과정과 결과가 더 아티스틱한 면이 나를 매료시켰다.
당신의 첫 컬렉션의 퍼프 시리즈는 한국에서는 씨엘이라는 케이팝 아티스트가 입어 입소문이 났다.
씨엘은 정말 너무 마음 따듯한 사람인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을 관심 있게 지켜봐준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에도 쿠튀르 쇼가 공개된 뒤 비디오 잘 봤다며 메시지를 보내줬다. 카스텔바작과 씨엘이 친한 사이라고 들었다.
씨엘뿐 아니라 당신의 옷은 팝스타들이 반할 만하다. 어떤 아티스트들이 당신의 옷을 입었고, 입었으면 하는 아티스트가 있는지 궁금하다.
레이디 가가. 내 꿈이다. 성덕이 성공하는 순간이랄까?
당신의 첫 컬렉션과 쿠튀르 컬렉션의 퍼프 시리즈, 그리고 쿠튀르 비디오에서 니키의 ‘사격 회화(Shooting Painting)’를 형상화한 퍼포먼스까지. 당신은 아티스트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의 작품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니키 드 생팔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나의 첫 컬렉션은 즐거운 색과 느낌이었고, 그것을 계속 가지고 가고 싶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내 컬렉션과 니키 드 생팔을 함께 언급했다. 니키 드 생팔은 사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였다. 사람들이 내 옷과 생팔의 작품을 함께 비교하니 나도 더 관심이 갔고, 영감에서 그친 게 아니라 내 옷으로 그녀를 오마주하게 되었다. 그녀의 모던함과 강렬함, 비전이 마음에 들었다.
혼자 일하는 것을 즐긴다고 했는데, 이번 쿠튀르 쇼는 몇명의 직원과 얼마의 기간 동안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맞다. 나는 혼자 일하는 걸 즐긴다. 일뿐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처음엔 혼자 일했고, 진도가 나가다 보니 좀 더 완벽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두 명의 모델리스트와 함께 일했다.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점점 일이 많아져서 이제는 좀 나눠서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창의적인 작업에 더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이번 쿠튀르 컬렉션의 주제는 무엇이었나?
이번 컬렉션은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다가왔다. 시작은 정말 혼자였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과 책임질 일이 많았다. 그런 고민 속에서 일하다 보니 옷이 하나씩 완성이 되어갔고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디자인에서 비디오까지 내가 이 모든 것들의 감독이었고, 여러 형태의 자유로움을 말하려 하는 것 같았다.
당신의 옷을 보면 제작 과정이 더 궁금해진다. 당신의 작업 방식을 알려줄 수 있는지?
이번 쿠튀르 컬렉션의 모든 것은 스케치에서 시작되었다. 그중에서 스케치부터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남다른, 정말 잘 하고 싶은 옷들의 스케치를 모델리스트에게 보낸다. 그들이 옷감을 고르고 난 후에 다시 함께 작업을 한다. 옷감이나 볼륨이 내가 생각한 것에 가장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천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고 모델리스트들은 옷을 제작한다. 물론 스케치부터 제작까지 혼자서 하는 옷도 있다. 그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가 혼자 한다고 해도 처음 스케치했던 것과, 의도했던 것의 결과물은 조금씩 달라지더라.
이번 쿠튀르 쇼피스 중 가장 만들기 까다로웠던 룩은 무엇이었나?
음… 일하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니키 드 생팔을 오마주한 옷이었다. 볼륨이나 실루엣 등등 테크닉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팬데믹 덕분인지 디자이너들은 그저 옷을 만드는 것 대신,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그 포장하는 기법에 공을 들여야 했다. 준비한 옷을 쇼로 한 번에 보여주면 되던 과거와는 다르게 그런 과정을 스트레스로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 당신은 어떤가? 영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데 익숙한 세대라서 그런 고민은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이미 내 첫 번째 컬렉션을 팬데믹 한가운데서 발표했다. 리얼 런웨이를 아직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영상으로 작업하는 것과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쇼를 비교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팬데믹이 아니어도 항상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함의 역할과 목적은 맞춰가는 것이니까. 선택이 아닌 강제된 상황이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 속에서 성장할 거라 본다.
첫 컬렉션은 어땠나?
앞서 말했듯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첫 번째 컬렉션을 디지털로 소개했다. 처음에 디지털을 생각했을 때는 솔직히 약간 실망했다. 쇼장에서 느끼는 매직, 아드레날린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전에 모델로 런웨이에 선 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강렬한 느낌이 있다. 쇼에 흠뻑 젖는 느낌이랄까? 그 전율을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리얼 런웨이를 꼭 하고 싶다.
비디오라는 매체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비디오라는 매체는 리얼 쇼와는 정말 다르지만 영상이기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성이 있다. 촬영장에서의 느낌이란 것도 있고. 비디오를 찍으면서 옷을 대하는 태도도 좀 달랐다. 게다가 쿠튀르였기 때문에 모든 룩이 이미지를 위해 만들어졌다. 비디오라는 매체는 보이는 이미지를 다루기에 썩 괜찮은 도구라 생각한다. 앞으로 리얼 런웨이를 하는 날이 온다면 영상 작업을 병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의 쿠튀르 영상을 이야기해보자. 일단 너무나 기발하고, 경쾌한 상상력이 버무려진 영상에 무척 놀랐다. 다양한 문화와 풍부한 인문학적인 감수성이 느껴졌다. 비디오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찾은 건지 궁금하다.
시작은 장식이 거의 없는 그런 느낌의 영상이 되길 원했다. 옷과 메이크업이 두드러질 수 있는 영상 말이다. 메이크업은 맥에서 후원해줬는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메이크업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사라 문의 사진 같은 느낌도 주고 싶었다. 흐르는 듯한 이미지 말이다. 영상 감독과 많은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일했다.
모델로도 일했다고 했는데, 어떤 쇼에 섰나?
발렌티노, 구찌, 사카이, 언더커버, 아크네 등등. 그리고 화보도 몇 번 찍었다. 학생 때 용돈 벌려고 한 아르바이트였다.
그래서인지 당신은 지난 룩북이나 다른 매체의 화보에 등장했고, 이번 영상에서도 그렇고, 자신의 결과물에 참여하는 과정을 즐기는 듯하다. 패션계에는 은둔형 디자이너가 많은데 당신은 그렇지 않아서 무척 흥미롭다. 자신감 넘치고 자기 표현을 즐기는 새로운 세대의 시작이랄까? 함께 참여하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내가 사진 찍히고 영상에 등장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런웨이를 마치고 인사하러 나가는 건 어떨지 아직 모르겠다. 나에게 그 두 가지는 정말 다른데, 나의 이미지를 비디오나 화보를 통해 보여주는 것과 나라는 사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말이다. 역할을 가지고 일하는 게 더 편하다. 얼마 전 구찌 페스토 영상에도 나를 드러냈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원래 소심하고 부끄럼을 타는 성격인데, 신기하게 카메라 앞에서는 부끄럽지가 않다.
당신은 이브 생 로랑의 21세기 버전이라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닮았다.
몇 년 동안 나를 따라다닌 이야기다. 너무 영광이다. 안 좋은 데 비유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브 생 로랑에 비유해주다니 기쁠 따름이다.
당신이 창작하는 옷을 보면,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좋아하는 디자이너, 아티스트, 멋진 취향, 취미 활동 등등. 디자이너로서가 아니라 또래 친구처럼 말해주면 좋을 것 같다.
나는 극과 극을 달리는 사람이다. 올인하든지 아무것도 안 하든지. 어느 때는 진지하고 심각하고, 오로지 집중력만 발휘되는데, 어떤 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중간에 걸쳐지는 걸 안 좋아한다. 예를 들어 어떤 노래가 좋으면 일주일 내내 그 노래만 듣는다. 모든 일에 그렇다.
코로나가 종식된 뒤 당신의 쇼를 직관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관객을 초청해 쇼를 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 쇼를 해보고 싶은지, 아직 해보지 않은 런웨이 쇼에 대한 로망이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마음에 드는 곳이 많지만, 그건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곳들이고, 장소는 다음 디자인을 하면서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거친 느낌, 차가운 느낌의 완성되지 않은 장소를 선호한다. 쇼를 위한 장소로 휘황찬란한 아름다운 장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내 옷과 대비되는 장소이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당신은 왠지 아주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만 같다.
오 물론이다. 지금 말할 수는 없지만 즐겁고 아주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이 인터뷰를 하고 며칠 뒤 그는 로샤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 패션 에디터
- 김신
- 사진
- Courtesy of Charles de Vilmor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