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패션 마켓은 ‘지속 가능한 가치’를 좇아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나의 신념 어린 소비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시대. 이른바 ‘미닝아웃(Meaning Out)’을 외치는 MZ 세대와 럭셔리 패션이 공존하는 법에 대하여.
‘당신은 왜 패션을 소비하나요’라는 질문에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 패션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이유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 이유 중 하나가 윤리적이고도 사회적인 이슈가 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장인 정신과 어우러진 친환경 소재와 브랜드의 사회적 공헌, 그 제품에 드러난 의미 있는 목소리를 지지하는 나의 신념을 보여주기가 ‘쇼핑’의 이유가 된다면? 자신의 소비에 ‘가치’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렇다. 우린 이미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MZ 세대, 이른바 밀레니얼(Millennials)과 Z 세대로 일컬어지는 젊은 소비자들은 단순히 가성비와 편의성에 연연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터전인 지구 환경과 나의 건강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가치를 소비하는 세대가 그들이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소비하려는 가치 소비 트렌드, 즉 ‘미닝아웃(Meaning Out)’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소비 행위를 통해 사회적 신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이 세대는 많은 브랜드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얼마 전, 알렉산더 맥퀸은 프리미엄 패션 리세일 플랫폼 ‘베스티에르 컬렉티브(Vestiaire Collective)’와 협업하기로 발표했다. 오래되거나 사용하지 않는 옷을 재매입하고, 이를 다시 판매하면서 순환 경제에 힘을 실어주는 일에 동참하는 것. 맥퀸의 CEO 엠마누엘 긴츠버거는 “맥퀸은 베스티에르 컬렉시브의 ‘Brand Approved’ 프로그램에 함께하는 세계 최초의 패션 하우스로 아름다운 제품들에 새로운 이야기와 생명을 부여할 수 있게 되어 기뻐요. 우리의 고객들도 미래를 위해 지속 가능한 표준을 세우는 활동에 기꺼이 동참하리라 믿으며, 앞으로 더 많은 패션 하우스가 동참해주기를 바랍니다. 의미 있는 영향력을 미치려면 여럿이 하나가 되어 행동해야 하니까요”라고 전했다. 나아가 이번 시즌, 맥퀸은 지속 가능한 패션의 일환으로 ‘업사이클링(Upcycling)’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전 컬렉션에서 활용하고 남은 원단을 재가공해 2021 S/S 시즌뿐 아니라 프리폴 시즌의 남녀 컬렉션 룩을 완성한 것. 매년 폐원단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재고 원단을 업사이클링해 자원을 선순환시킨 결과물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만약 당신이 ‘그린슈머’라고 자부한다면 익숙할 프라다의 리나일론 프로젝트. 프라다는 2021년 말까지 기존의 나일론 소재가 사용된 모든 제품을 친환경적인 에코닐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해양의 플라스틱 폐기물과 그물 등의 매립 쓰레기가 모두 에코 나일론, 즉 에코닐로 재생될 수 있는데 이렇게 에코닐이 사용된 제품에는 리나일론(Re-Nylon) 로고가 더해진다. 최근 프라다가 유네스코와 함께하는 환경 보호 프로젝트이자 교육 프로그램인 ‘Sea Beyond’의 마지막 여정도 공개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 중고등 학생들의 해양 보존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인식 향상을 위해 시작된 것으로, 학생들의 시선을 통해 직접 인식 향상 캠페인을 만들 수 있도록 독려했다. 3월 26일, 버추얼 이벤트를 통해 캠페인 결과물이 모습을 드러내며 강렬한 메시지를 전파할 예정이다.
S/S 시즌, 스텔라 매카트니는 론칭 20주년을 맞이해 ‘책임감 있는(Accountable)’부터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에 이르기까지 지속 가능한 패션의 가치와 신념을 대변하는 ‘A to Z 성명서’를 발표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우선 ‘Accountable’은 최근 더욱 중요한 가치로 주목받고 있죠. 지구를 보호하는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서 환경 보호를 잘 이행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여러 시즌이 끝나고 남은 각각의 소재로 패치워크 코트를 만들기로 했답니다. 그렇게 탄생한 ‘퍼-프리-퍼(Fur Free Fur)’ 의 흥미로운 점은 이 소재가 바닥이 나는 순간, 제품 생산도 중지된다는 점이죠. 쓰고 남은 원단을 재활용해 이처럼 한정판의 특별하고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낸다는 사실이 정말 흥분되네요”라고 밝혔다.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이해 세계 곳곳에서는 신념과 가치를 담은 다양한 캠페인과 퍼포먼스가 펼쳐질 예정이다. SNS를 가득 채울 초록 물결이 기대되는 시점에 페라가모는 서스테이너빌러티 버전의 ‘어스(Earth) 톱 핸들 백’을 론칭했다. 패션과 환경의 공존을 고민하며, 소재 개발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모색해온 페라가모가 전 세계 5백 개 한정 수량으로 출시한 이 백은 FSC 인증을 받은 코르크 마개와 완전 재활용이 가능한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실로 만들어졌다. 또 안감은 자연에서 추출한 순수한 리넨으로 제작해 사용 후 흙에서 다시 생분해된다. 까르띠에 역시 미래 세대를 위한 자연 유산과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고자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노력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지난해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한 참여 활동을 돕는 ‘까르띠에 포 네이처(Cartier For Nature)’라는 펀드를 설립했다. 또 브랜드 광고 캠페인에 동물이 등장할 때마다 미디어 비용의 일정 퍼센트를 후원하는 방식으로 향후 5년간 1억 달러 이상을 모금하는 것을 목표로 한 ‘더 라이언스 셰어 펀드’에도 참여하고 있다.
과연 지속 가능성의 가치가 환경에만 국한될까. LVMH, 알렉산더 맥퀸, 토즈, 버버리, 폴 스미스, 스텔라 매카트니, 멀버리, H&M 등 많은 브랜드들이 ‘뉴 제너레이션’이 지닌 재능과 열정을 후원하는 일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중 폴 스미스는 50주년을 맞아 ‘폴 스미스 재단’을 설립하고 패션 기업가를 꿈꾸는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조언해준다. “ 나는 특히 성장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을 지원하고 싶어요. 지금의 패션 산업은 점점 더 진입하기 어렵고, 젊은이에게 너무 큰 비용과 도전을 요구하죠. 그래서 다음 세대가 높은 장벽에 좌절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고 영감을 주는 선배이자 멘토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50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배운 것을 토대로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 채널에 다양한 소스를 제공할 계획이에요.”
한편 알렉산더 맥퀸은 패션과 섬유를 공부하는 영국 전역의 학생들에게 원단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 맥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라 버튼은 컬렉션을 마치고 남은 여성복 태피터와 남성복 테일러링 옷감을 학생들에게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팬데믹을 겪은 지난해부터 이 프로그램을 확장해 그들의 졸업 작품과 워크숍 준비를 위해 옷감을 지원할 뿐 아니라 맥퀸 하우스의 전문가들이 재단과 드레이핑, 자수와 컬렉션 연구에 이르는 방대한 지식을 전수한다. 그런가 하면 토즈는 창조적인 크리에이터 양성을 도모하는 토즈 아카데미(Tod’s Academy)를 통해 영국의 유명 디자인 스쿨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과 협업을 진행했다. 토즈 아카데미는 학생들이 장인과 함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식과 테크닉을 전수하는 공간. 지난해 7월 협업 발표 이후 이 과정을 넓은 시각과 새로운 견해로 토즈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젊은 35인 디자이너와 함께했다. 런던 패션위크 기간인 지난 2월 19일, 디지털 필름을 통해 ‘Tod’s Legacy’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선보였으며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각각의 크리에이터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기도. 이것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후원하는 동시에 새롭고 혁신적인 관점과 신선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협업’이 아니었을까.
지난해, 매치스패션에서 ‘책임 있는 컬렉션’을 론칭했을 때 여기엔 소재뿐 아니라 장인 정신과 인권, 자선 활동에 대한 브랜드의 지속 가능한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나와 우리, 나아가 지구와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감 있는 행동을 되새기며 당신의 신념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이고도 쉬운 길. 그 실천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가오는 식목일에 내게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난 퇴근 후에 아이와 함께 텀블러를 든 채 잠시 산책을 한 뒤, 작은 화분을 하나 준비해 씨앗을 심고, 아프리카에 3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왕가리 마타이의 책을 읽으며 잠이 들 것이다. 참, 다가오는 아이의 생일을 위해 지속 가능한 소재로 제작된 스텔라 매카트니의 티셔츠 주문도 잊지 않은 채.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필요로 하며, 어떤 제품을 구매할까 하는 숱한 선택의 순간에 이 모든 ‘가치’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의식 있는 패션을 촉구하는 MZ 세대, 그들의 선하고도 강인한 영향력으로 럭셔리 업계가 진화하는 모습에서 우린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당신의 쇼핑 리스트를 채운 이름들은 신념과 가치를 지닌 지속 가능한 행보가 그 기준이 되며, 모두의 지속 가능한 소비는 우리의 미래를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 패션 에디터
- 박연경
- 사진
- COURTESY OF ALEXANDER McQUEEN, TOD’S, PRADA, CARTIER, SALVATORE FERRAGAMO, CHRIS MOORE/CATWALKING.COM(알렉산더 맥퀸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