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 속을 유영하는 E–Girl, E–Boy들이 패션계를 전복하고 있다.
패션은 종종 동시대가 반사된 외형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팬데믹 상황을 맞아 사람들이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을 때, 라운지웨어, 원마일웨어, 스웨트셔츠 같은 편안함에 초점을 맞춘 의복이 뜨겁게 부상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패션이 주는 흥미와 즐거움을 잊지 않았고, 라운지웨어에 굴복하지 않았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2020년을 결산한 구글 검색어의 순위는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구글은 처음으로 하이패션의 세계를 기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나 디자이너 대신, 셀레브리티의 스타일 순위, 의상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구글의 최고 데이터에 의해 그려진 패션 세계는 거의 전적으로 인터넷 중심이며, 밈, 앱, 소셜 미디어에서 태어난 트렌드가 모든 차트를 장악했다. 틱톡, 인스타그램 및 기타 소셜 플랫폼에서 거론된 패션은 빌리 아일리시, E-Girl, Vsco Girl(사진 편집 앱의 스타일로 건강하고 햇볕을 받는 캘리포니아 걸), Y2k Style(2000년대식 지스티링과 미드리프 톱 등 벨라 하디드, 켄들 제너가 입는 방식) 등으로 인터넷 미학이 당대 주요 미학으로 자리 잡았음을 입증한다.
사람들이 집에 갇혀 있는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었나를 생각해보면 이게 어떤 현상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인터넷에 중독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패션을 찾았고, 그 안에서 사회적 연결 고리를, 오락거리를 찾았으며, 무엇보다 틱톡이라는 아주 적합한 플랫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앱에서 파생한 하위문화는 고유의 해시태그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해시태그는 강한 개인적 미학에 의해 정의되는 신선한 콘텐츠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8억 명의 유저를 보유한 틱톡은 단순한 댄스 비디오 배열에서 정치적 표현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까지 발전했다. 온라인 세상의 바이럴 성공을 위한 매력적인 플랫폼. 그리고 그 세계를 장악한 것은 E-Boy, E-Girl이다. 아직 한국에선 생소한 이 용어는 인터넷과의 연관성 때문에 ‘Electronic’과 결합한 속어로 온라인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스케이트 문화, 고스, K팝, 코스프레, 애니메이션, 이모지 등 여러 서브컬처의 영향을 받은 특정 스타일을 즐기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주요 아이템은 오버사이즈 티셔츠, 크롭트 톱, 플랫폼 슈즈, 줄무늬 티셔츠, 초커, 지갑 체인, 싱글 이어링 등으로 그 시즌 인스타그램을 장악하는 ‘킬러 의상’에 의존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E-Girl은 안티 인플루언서 경향도 띠는데, 전형적인 미의 기준에 부응하는 인스타그램용 인플루언서에 대응하면서, SNS 인플루언서의 해독제로 떠올랐다. 인스타그램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완벽한 복장을 준비하기 위해 몇 시간을 허비하는 방식을 거부하며 콘텐츠와 제작 방식이 전혀 다름을 얘기한다.
또 다른 특징은 성별에 관계없이 진한 메이크업과 액세서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들은 지독하게 많은 메이크업 튜토리얼 비디오를 보고 자란 세대 아닌가). E-Boy는 성별 유동성을 자랑하며, 눈 밑에 하트 스탬프, 검은 매니큐어, 아이라이너를 그리는 데 전혀 거부감이 없다. 이는 K팝의 영향도 큰데, 2010년대 후반부터 방탄소년단, 엑소, 갓세븐 등 K팝 그룹에 대한 서구 주류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 영향을 받아들인 10대들의 힘도 크다는 평가다(마초성이 덜한 남자들을 두고 Soft Boy라고도 하는데, 여성의 감수성에 공감할 수 있는 유약하고 지적인 외모의 남자이며, 방탄소년단, 티모시 샬라메, 프랭크 오션, 해리 스타일스, 제이든 스미스 등 최정상 패션 아이콘들이 그렇다. 이는 남성의 내성적인 면모, 수줍음, 감정적 취약함을 포용하도록 바뀐 사회적 분위기 덕분이기도 하다). 틱톡에서 해시태그 #Eboy는 1억 뷰를 넘었고, 인스타그램은 이 용어를 태그한 1백35만 개 이상의 게시물을 갖고 있다. 지금 신인상을 휩쓸고 있는 미국 가수 Doja Cat은 E-Girl 메이크업을 논하는 가사를 발표했고, 소셜 미디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카일리 제너, 두아 리파 등의 셀레브리티가 E-Girl과 관련된 형형색색의 탈색 줄무늬 헤어스타일을 선택했으며, 미국 HBO의 인기 드라마 <유포리아>에서도 각 캐릭터가 E-Girl식의 화려한 아이 메이크업을 하는 등 이 새로운 흐름은 주류 문화를 거세게 흔들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패션 커뮤니티는 패션 하우스로 하여금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수백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틱톡 크리에이터들은 새로운 인플루언서로 경력을 쌓았고, 소셜 미디어는 개인의 스타일을 변화무쌍하면서도 상품화하고 체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많은 틱톡 크리에이터가 주요 브랜드와 거래를 시작했으며, 셀린느 옴므 캠페인에 출현한 노엔 유뱅크스(@noeneubanks)가 대표적인 예이다. E-Boy는 셀린느 옴므 2021 S/S 컬렉션 ‘더 댄싱 키즈’의 주요 영감의 원천으로 알려졌는데, 체이스 허드슨이나 노엔 유뱅크스 같은 크리에이터들의 실험적인 색상과 스타일링, 체인, 스케이트화 등 그들의 스타일에서 추출한 아이템을 슬리먼의 필터로 재구성해냈다. 2020 F/W시즌 돌체&가바나 쇼를 틱톡 스토리로 라이브 중계한 체이스 허드슨(@lilhuddy)은 프라다 쇼에 참석해 화제가 된 찰리 더밀리오(팔로어 1억 명으로 전 세계 1위 틱톡커)와 연인 사이였으며, 그를 중심으로 한 틱톡커들이 등장하는 <The Hype Life>라는 TV쇼 제작은 물론 최근 <21st Century Vampire>라는 싱글 앨범까지 발표해 인기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E-Boy의 영향은 얼마 전 공개된 셀린느 옴므의 두 번째 비디오 컬렉션 ‘Teen Knight Poem’, 돌체 &가바나 2021 F/W 쇼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게임에 특화된 동 영상 방송 플랫폼 서비스 ‘트위치(Twitch)’ 또한 E-Boy들의 주요 활동 영역인데, 루이 비통, 발렌시아가가 컬렉션에서 게임 모티프를 가져가고, 버버리가 게임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에서 쇼를 중계한 이유이기도 하다. 틱톡이 성숙해졌고, 패션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하위문화는 패션계에도 점차 중요해졌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실물 쇼에 참석하지 못하는 바이어, 프레스, 스타일리스트들이 대거 몰리면서 가상 취재에 주력하고 있는 이번 패션쇼가 이런 플랫폼을 채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네모난 스크린 안에서만 존재하던 이미지, 하위문화의 계급은 이제 메인스트림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미지에 사로잡힌 시대, 검색의 시대에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하고, 이미지가 더 충격적이고 더 바이럴이 될수록, 더 성공적일 것임을 시사한다. 온라인 편집숍의 분기별 보고서도 비슷한 양상을 얘기하는데, 이는 명품 쇼핑객들의 습관이 인터넷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티모시 샬라메, 리조, 빌리 아일리시 같은 이들의 바이럴 스타일은 패션 팬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데이터의 최상층에 군림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공존 시대는 이제 끝인가? 아닐 수도 있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새로운 시대로 향할수록, 다음에 일어날 패션의 위대한 순간은 온라인에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지
- 사진
- COURTESY OF CELINE HOMME, INSTAGRAM OF BILLIE EILISH, NOEN EUBANKS, CHASE HUDSON, TIMOTHEE CHALAM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