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곳곳에 ‘마이크로바이옴’ 딱지가 붙기 시작했다. 피부를 건강하게 되돌릴 ‘구원템’이 될 수 있을지, 진화한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봤다.
요즘 드럭스토어부터 백화점까지 화장품 매대는 마이크로 바이옴 제품으로 가득하다. 클렌저부터 안티에이징 세럼, 보디로션, 샴푸에 이르기까지 전부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단어를 붙인 채 절찬리 판매 중이다. ‘피부 장벽 개선’ ‘피부 자생력 향상’ ‘피부 저항력 강화’ 등등 건강한 피부로 회복시켜준다는 달콤한 문구에 혹할 수밖에. 더욱이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참석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 빌 게이츠도 치매 치료제, 면역 항암제와 더불어 세계를 바꿀 세 가지로 마이크로바이옴을 꼽지 않았나! 이토록 핫한 마이크로바이옴 제품은 건강하고 안전한 화장품을 찾는 민감성 피부 소유자에게는 희망이 되었고, 새로운 것에 발 빠르게 반응하는 뷰티 얼리어답터들에게는 신상템이 됐다.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의 인기에는 코로나19도 한몫했다. 면역 상태에 관심이 높아지고 마스크로 인한 피부 마찰로 고통받는 이들이 늘어난 건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으로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도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은 뷰티 트렌드의 핵으로 떠올랐다. 다수의 화장품 브랜드가 2020년 녹차 유산균 연구센터를 오픈한 아모레퍼시픽처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위한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거나 독일, 미국, 프랑스 등의 제약회사와 협업해 다양한 마이크로바이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먹는 유산균 관련 기술을 보유한 제약회사 역시 이를 토대로 한 ‘바르는 유산균’ 화장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피부에 좋은 건 알겠는데, 과연 피부 타입과 고민에 상관없이 무조건 좋은 걸까? 쏟아져 나오는 제품 중 무엇을 살펴보고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까?
1. AHC 프리미엄 EX 하이드라 B5 바이옴 캡슐 컨센트레이트 22억5천만 개의 프로바이오틱스와 10가지 프리바이오틱스가 피부 본연의 힘을 길러준다. ‘마이크로 리포솜’ 특허 기술로 침투력을 높인 것이 장점. 30ml, 6만8천원.
2. Lancome 어드밴스드 제니피끄 15년간의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끝에 업그레이드된 3세대 제품. 발효, 분열, 정화 과정을 통해 추출된 프로바이오틱스와 이의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가 어린 피부로 가꿔준다. 50ml, 15만5천원대.
3. Centelian24 텐션-업 마이크로바이옴 앰플 젊고 건강한 20대 피부에서 유래한 ‘탄력바이옴™’ 유효 성분이 담겼다. 사용 직전에 흔들어 오렌지색 바이옴 볼을 터뜨려 사용할 것. 7ml×5개입, 6만8천원.
4. Dr.Jart+ 바이옴 에센스 & 바이옴 블루 샷 건강한 피부 바탕을 만드는 바이옴 에센스와 양배추를 발효한 브라이트닝 효과의 바이옴 블루 샷을 섞어 쓰는 방식. 피부 장벽 강화와 동시에 칙칙한 피부를 화사하게 만들어준다. 45ml+1.2ml, 4만2천원.
5. LABO·H 프로바이오틱스 탈모증상완화 샴푸 두피강화 녹차에서 찾은 유산균 발효 용해물이 두피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해 ‘두피 마이크로바이옴’ 기술에 적용했다. 보습, 진정, 모근 강화 효과를 원한다면 추천. 400ml, 2만4천원대.
6. O Hui 더 퍼스트 제너츄어 심-마이크로 에센스 3종의 프로바이오틱스와 4종의 프리바이오틱스로 구성된 ‘젠-바이오틱스™’가 피부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한다. 마이크로바이옴 성분을 액체 패치로 구현해 밀착력을 높인 것이 특징. 50ml, 17만원.
7. Hera 셀 에센스 바이옴 플러스™ 생체수 모사 기술에 프리&프로바이오틱스 성분을 보강해 탄생한 3세대 에센스. 피부 자생력을 키워 건강하게 빛나는 광채 피부를 완성해준다. 150ml, 6만5천원대.
가장 뜨거운 그 이름, 스킨 마이크로바이옴
먼저 마이크로바이옴이 어렵고 생소한 이들을 위해 용어부터 파악하자.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미생물(Microbe)’과 ‘생태계(Biome)’를 합친 말로 사람의 몸은 물론 동 · 식물, 토양, 바다 등 모든 환경에 서식하는 미생물과 그 유전 정보를 뜻한다. 사람은 마치 DNA나 지문처럼 저마다 다른 마이크로바이옴을 갖고 태어나고, 이는 흐르는 세월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화장품 업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스킨 마이크로바이옴’이다. 신체 기관이자 가장 바깥쪽에 자리한 피부는 외부 환경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며, 피부 표면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미생물은 외부 유해 환경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한다. 하지만 자외선, 미세먼지, 호르몬, 섭취하는 음식이나 약 등과 같은 환경 요인과 생활 습관은 스킨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건조, 여드름, 노화와 같은 피부 문제를 야기한다. 다양한 피부 문제는 모두 불균형에서 비롯되기 마련. 스킨 마이크로바이옴의 밸런스가 잘 유지되면 피부 장벽이 탄탄해지고 본연의 피부 보호 기능도 극대화돼 건강한 피부로 거듭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 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 브랜드는 랑콤이다. 홍콩의 패트릭 리(Patrick Lee) 교수와의 연구를 통해 환경 오염이 심한 곳에 거주하는 여성의 마이크로바이옴이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여성의 마이크로바이옴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나이가 들수록 박테리아 개수가 줄어들고,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이 무너지는 서글픈 현실. 이를 보충, 유지하기 위해서는 프로바이오틱스와 이의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 모두가 피부에 적절히 공급돼야 한다. 최근에는 프로바이오틱스가 활동하며 만들어내는 대사산물(유산균배양건조물)을 일컫는 포스트바이오틱스가 프로바이오틱스나 프리바이오틱스 자체보다 더 좋은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유산균으로 스킨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이 올바로 유지되면 외부 자극에 대한 저항력이 커져 건강한 피부로 회복할 수 있음은 이미 입증됐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세균 번식 등의 이유로 아직까지 살아 있는 생균을 화장품에 담을 수 없다. 현행법상 열처리, 발효, 여과 등의 가공 과정을 거친 죽어있는 균(사균)이나 세포 파쇄물만 활용되고 있는 것. 생균 보다 효능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의심도 잠시. 다양한 임상 시험과 논문을 통해 사균을 바른 부위가 개선됨이 검증돼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와인피부과 김홍석 원장을 포함한 전문가의 공통 의견이다.
진화한 마이크로바이옴, 피부 고민을 부탁해
그렇다면 지금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화장품은 얼마만큼 진화했을까? “법적 규제를 떠나 환경 변화에 예민한 생균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물며 여러 가공 단계를 거치며 생균이 온전히 생존할 확률은 현저히 낮아지죠. 이를 위해 사균을 마이크로 리포솜 캡슐 안에 삽입, 효능을 극대화했습니다.” AHC 프리미엄 EX 하이드라 B5 바이옴 캡슐 컨센트레이트 핵심 성분을 개발한 카버코리아 상품개발본부 상품기획1팀 안지혜 차장이 자신감 있게 말한다. 닥터그루트 마이크로바이옴 제네시크7 두피 강화 캡슐 샴푸 역시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녹색의 생분해 두피 강화 캡슐에 특허받은 7가지 프리&프로바이오틱스를 넣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피부에 흡수되지 않은 채 피부 표면에서 다른 미생물과 공존하며 건강한 환경을 구축한다. 피부 흡수가 아닌 피부 표면에 닿기 전까지의 모든 공정에서 파괴를 최소화고자 캡슐화를 택한 것이다. 닥터자르트의 바이옴 라인 속 ‘수분바이옴™’은 독자 성분인 ‘자르트바이옴™’에 프리바이오틱스, 포스트바이오틱스를 결합했다. 이는 피부 각질층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성화해 ‘수분 체질’을 개선한다. 녹차, 쌀 등의 식물 유래 유산균이 아닌 실제 피부에서 유래한 마이크로바이옴도 주목할 만하다. 센텔리안24의 텐션-업 마이크로바이옴 앰플은 20대의 피부에서 채취한 771억 탄력 마이크로바이옴 유효성분을 담았다. 그리고 이는 단 1회 사용으로 피부 탄성 회복력을, 1주 사용으로 피부 눌림 자국과 피부 비틀림 탄력을 개선한다. 기존 제품들이 피부 환경을 구축하는 마이크로바이옴에 주름 개선, 미백 등 기능성 성분을 더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 탄력에 관여하는 특정 마이크로바이옴이 나이가 들수록 사라지는 것을 확인, 그 유래 성분을 담은 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많이 들어 있으면 좋은 걸까?
마이크로바이옴이 손상된 피부 장벽을 개선해 다양한 피부 고민을 해결하는 중추이자 멀티플레이어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더 이상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여서는 안 된다. “인체의 마이크로바이옴은 장기, 손, 얼굴, 두피 등 부위별로 보유하고 있는 마이크로바이옴이 다릅니다. 피부에 정말 효과가 있는 마이크로바이옴 유효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지, 또 실질적인 효능이 임상으로 증명됐는지를 꼼꼼히 살펴보세요.” 단순한 피부 장벽 케어가 아니라 특정 고민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된 만큼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동국제약 화장품사업부문 상품기획팀 박송희 과장의 설명이다. “한 스포이드에 몇천만 개, 한 병에 몇십억 개. 솔깃한 숫자이지만 결국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 몇십억 개가 내 피부에서 실제로 효능을 발휘하는지 말이에요.” 뷰티 칼럼니스트 백지수도 이에 동의하기는 마찬가지. 피부 고민에 특화된 마이크로바이옴이 아닌 이상 고민되는 문제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수도 있고, 마이크로바이옴만 넣은 단일 성분 화장품이 아닌 다양한 성분이 함께 담긴 만큼 피부가 좋아진 원인이 마이크로바이옴 때문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토록 신중하게 고른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이 피부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게 하려면? 과도한 세안이나 각질 제거는 금물. 특히 항균 성분의 클렌저는 애써 구축한 피부 표면의 균총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건강한 피부 밸런스를 일시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유지하고 싶다면 최소 3개월 이상, 매일 꾸준히 사용하기를 권장한다. “모든 균은 독성이 있을 수 있으므로 사용 전 테스트는 필수. 인스턴트 음식, 밀가루 등을 멀리하는 식습관으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밸런스를 맞춰주면 더욱 좋겠죠?” 윤지영클리닉 윤지영 대표원장의 진심 어린 귀띔이다.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의 잠재력
마이크로바이옴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다만 무분별한 남용보다는 연구 결과가 확보된 성분으로 적법 절차에 맞춘 제품의 개발과 소비자들이 어려운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마케팅에 이미 지나치게 많이 이용되고 있어요. 관련 데이터 수집과 공유 주체가 국가가 아닌 개별 업체이다 보니 표준화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죠. 우리나라 현행법상 생균을 직접 사용할 수 없는 만큼 제품 또는 원료 내의 표시 균수를 정량화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돼야 합니다.” 더엘클리닉 서수진 원장의 일침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살아 있는 생균을 활용한 혁신적인 화장품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연구는 말할 것도 없고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된 발효 식문화인 김치의 나라 한국에서도 관련 규정이 개정돼 생균을 이용한 화장품을 만들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LG생활건강 강형미 책임연구원도 바람을 내비친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무궁무진한 그 개수만큼이나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들로 가득하다. 건강이 위협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한 놀라운 효능의 제품이 개발되기를, 반짝하고 끝나는 단기적인 인기가 아닌 롱런 화장품으로 탄탄히 자리매김하기를 소망해본다.
- 뷰티 에디터
- 천나리
- 포토그래퍼
- 박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