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 1월호 커버를 장식한 송혜교 화보 풀 스토리.
지루하게 기품 있기보다 그만의 방식으로 우아한 여자의 초상이 여기 있다. 송혜교에게서 발견한 그 새로운 얼굴, 그리고 송혜교가 들려주는 반가운 목소리.
어쩐지 당신을 만나면 당신의 강아지에 대해 먼저 묻고 싶었다(웃음). 동그란 두상에 동그란 눈과 코를 가진 비숑 프리제가 당신에게 안겨 있는 사진을 봤다.
송혜교 루비. 내 태몽에서 따온 이름이다. 숲속에서 물을 먹고 있던 꽃사슴이 엄마를 쳐다봤는데, 루비로 된 뿔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3월부터 나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지난 9개월간 루비가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였겠다. 덕분에 내가 더 건강하게 살게 된 면이 있다. 강아지 때문에라도 매일 해야 하는 작은 일들이 생긴다. 혼자서는 산책 좀 나가야지 하다가도 귀찮아서 미루기 쉬운데 이 아이는 매일 데리고 나가줘야 하니까. 공원에서 산책하며 예쁜 풍경도 감상하고, 걷고, 그런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지니 내 기분도 상쾌해지더라. 주로 집 안에 머물면서 유산소운동을 하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어느새 밥 챙겨줄 시간(웃음). 참, 얘가 아침 7시면 눈을 뜬다. 나도 일찍 눈뜨게 됐다. 하루가 금방 간다.
하루가 금방 가게끔 만드는 그 일상을 제외하면 요즘 어떻게 보내고 있나? 2020년 한 해는 예상보다는 좀 더 여유 있게 보냈다. 광고 브랜드들 행사 참석할 일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거의 취소됐다. 그래도 촬영할 일은 꾸준히 생긴다. 바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 달 내내 쉬면서 보낸 적은 없다.
드라마 <남자친구>가 2019년 1월 말에 종방했으니 마지막 작품 후 시간이 좀 흘렀다. 그사이 ‘송혜교 작품 검토 중’이라는 기사를 몇 차례 봤다. 아직 결정된 작품은 없고, 물론 들어오는 대본은 계속 살펴보고 있다. 그런데 그냥 받아보기만 해도 기사가 나더라. 심지어 대본을 받지도 않았는데 차기작 검토 중이라고 기사 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송혜교의 다음이 궁금하면서도 당신이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어서 우리의 화보를 추진하고 싶은 맘이 들었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일과 기회들에 만족하나, 혹은 좀 아쉬움을 느끼나? 만족스러운 편이다. 다만 다작을 하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되는 점은 있다. 팬들에게 ‘다작할게요’ 하고선 작품 사이의 텀이 생각보다 길곤 했다.
송혜교라는 이름의 무게와 값이 있는데 어떻게 다작을 하지? 최대한 텀을 줄여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별 마음이 가지 않는 작품을 하는 것도 팬들이 원하는 건 아닐 테고. 시간이란 지나버리면 너무 아쉽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2021년에는 꼭 작품을 해야겠다고 다짐 중이다.
한 해를 여는 1월호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반갑다. 우리는 배우가 택한 결과물만 보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스쳐 지나간 여러 대본을 포함해 그 흐름 속에서 제작자와 창작자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게 뭔지 느끼곤 한다. 최근 당신에게 들어오는 것들을 보면 어떤가? 플랫폼과 채널이 많아지면서 예전보다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보인다. 갈수록 장르적으로 다양하고 흥미로운 작품이 늘고 있고, 나에게도 비교적 다채로운 장르의 대본이 들어오는 분위기여서 좋다. 이제는 멜로물도 미스터리한 요소가 있는 식이거나 스릴러물 같은 작품을 접하기도 한다.
스릴러라고 하니까 당신이 뉴욕에서 찍은 독립영화 <페티쉬>가 생각난다. 흑발에 검붉은 입술로, 마녀적인 데가 있는 그 얼굴을 좋아한다. 당신이 20대보다는 더 시간이 흐른 후 그런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 작품이 좋다. 내가 좋아할 만한 장르라고 해서 시나리오를 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예산이 빠듯한 독립영화다 보니 출연료 없이 뉴욕에서 한 달간 지낼 곳만 마련해준다고 했는데, 읽자마자 바로 하겠다고 했다. 촬영하던 집 거실에 스태프들이 모두 드러누워 잠깐 낮잠 자는 시간도 있었고, 촬영 후엔 다 같이 밥 먹고… 그 한 달간의 기억이 참 즐거워서 아직도 잊지 못 한다.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는 다른 색깔인데, 발랄한 정서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당신을 본 지도 꽤 됐다. 로맨틱 코미디도 많이 끌린다. 웃기고 재밌는 것 다시 해보고 싶은데, 재밌는 작품을 아직 못 찾았다. <풀 하우스>를 할 무렵에는 어려서 파릇파릇했지만 쑥스러움이 좀 있었다. 오히려 그때보다 나이가 든 지금 더 자유롭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20년 이상 활동했어도 누군가 당신을 새롭게 발견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여전히 큰가? 물론이다. 적지 않은 작품을 했지만, 다양한 장르를 해보진 못했다. 밝은 여성, 우울감이 있는 여성, 도시적인 여성 등 조금씩 다른 성격을 연기한다 해도 장르가 비슷하다면 보이는 면모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작품의 장르가 달라지면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다른 상황에서, 다른 표정이 나올 수 있다. 내가 뭔가에 쫓긴다거나 소리를 지를 수도 있겠지. 배우라면 누구나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을 캐치해줄 감독을 원할 것이다.
망가짐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과는 좀 다른 이야기인가? 그런 것도 물론 괜찮다. 좋은 작품에서 좀 다른 걸 시도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건데 이것도 내 뜻대로만 되는 문제는 아니다. 사진 촬영을 할 때면 이번 화보처럼 전에 안 해본 걸 시도하려고 한다. 작품 고를 때도 그렇게 접근한 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공백이 길어진 면도 있다. 알맞은 타이밍에 인연이 닿아야 하고, 감독, 작가, 대본 등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 이제는 좀 더 유연하게 작품을 정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기존에 해온 색깔을 무조건 배제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최근 1~2년간 송혜교의 삶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나, 인생의 또 다른 챕터가 시작되는 기분이었나? 새롭게 시작한 느낌. 거기엔 루비의 몫도 크다. 내키는 대로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도 했다면, 이젠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고, 몸을 더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자연이 더 좋아진다. 예전에 여행 다닐 때면 ‘예쁘다’ 하면서 그 예쁜 풍경을 스치며 돌아다녔다. 이젠 한 곳에 가만히 앉아 하나하나 느끼고 눈에 담는 쪽이 끌린다. 욕심도 좀 사라졌고.
어떤 욕심? 삶에서 여러 가지 욕심이 확 빠졌다는 걸 느낀다. 존경하는 노희경 선생님과 매일 하루에 있었던 일들에 감사하는 내용의 문자를 주고받은 지 2년 가까이 됐다. 그 영향이 크다. 스스로, 또 저절로 감사함을 자주 되뇌다 보니 신기하게 물욕도 사라진다. 충동적인 면이 좀 없어졌달까? 그런 변화도 꽤 마음에 든다.
감사하는 마음과 물욕의 상관관계, 적어둔다(웃음). 당신과 노희경 작가의 그 교류가 궁금하다. ‘고도원의 아침 편지’ 같은 건가! 그냥 평범한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는 거다. 오늘 하루는 특별한 게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떤 일에 감사해야 하지? 막상 정리하려니까 처음엔 아무 생각이 안 났다. 꾸준히 하다 보니 인생에서 감사할 일이 많더라. 루비가 건강해서, 엄마가 친구들과 즐겁게 잘 어울려서, 나의 아끼는 사람들이 아프지 않아서, 오늘 하루 내 컨디션이 좋아서… 그래서 감사하다. 선생님께 좋은 기운을 받았다. 몸도 마음도 생각하는 바도 훨씬 건강하게 바뀐 느낌이다.
사랑에 대한 생각도 좀 바뀌었나? 글쎄. 그런 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 자체를 그리 안 하고도 일상을 잘 영위했다. 그렇기 때문에 변한 것도 없다.
사랑을 받을 때와 사랑을 줄 때. 어느 쪽에 더 행복감을 느끼나? 줄 때 더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이성 간의 사랑, 동성 간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존경하는 이와의 사랑 등 사랑에는 종류가 많다. 사랑하는 주변인들에게 뭔가를 받을 때보다 내가 주고 나서 그들의 모습을 볼 때 행복하다.
당신을 오래 봐온 사람 말로는, 내 사람이다 싶으면 정을 듬뿍 준다고 하더라. 지금껏 인터뷰들에서 자주 언급한, 충분한 사랑을 베풀어준 당신의 엄마 덕에 당신도 베풀 줄 아는 인간이 되었나 보다. 맞아, 그럴 것이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면이 있다면 뭔가? 미모? 엄마 친구들은 나에게 엄마 젊었을 적 미모에는 못 미친다고들 했다. 나는 좀 동글동글하잖아. 엄마는 선이 가늘고 샤프하다.
기질 면에서는 어떤 점을 물려받았나? 엄마는 워낙 외향적이다. 나도 장군 같은 기질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좀 소심한 편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우리 하는 행동 보면 똑같다고 한다. 내가 약속 시간에 늦는 걸 싫어한다. 몇 시에 누가 온다고 하면 그 시각 전에 준비를 마치고 문 앞에서 기다린다.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엄마 모시러 집으로 간 적이 있다. 주택이라 대문까지 나오는 데 최소한의 시간이 걸리거든. 그런데 전화로 “엄마, 나 왔어” 하자마자 바로 대문이 열렸다… 그때는 친구들이 기절할 만했다(웃음).
세상의 엄마들은 자식한테 자주 강조하는 말이 있다. 엄마에게서 어떤 말을 듣곤 했나? 내가 어린 나이부터 사람들에 둘러싸여 산 데다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랐다. ‘달콤한 말을 해주는 사람보다 너의 안 좋은 점도 지적해주는 사람을 더 가까이해라’라는 이야길 자주 하셨다.
사람 좋아하는 당신에게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유형은 뭔가? 음… 비열한 사람. 비열하고 비겁한 건 모두가 싫어하나?(웃음)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 떠올려보면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은 어째서 왜곡을 할까? 남의 일이라서? 내 앞에서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다 이해한다는 것처럼 행동했는데, 뒤에서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경우. 나도 누군가 내 마음을 다 알아주기만 바라는 건 아니다. 타인이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앞과 뒤가 다른 건 언젠가 드러난다.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뿐이다.
이 화려하고 복잡한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20년 넘게 관통하는 동안, 송혜교에게 심지처럼 남은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뭔가? 내가 생각하는 건강하고 좋은 길이 있으면 그 믿음으로 열심히 살면 된다는 것. 어릴 땐 악의적인 댓글에 곧잘 휘둘렸다. 그런 거 하나로 하루의 기분이 크게 좌우되고. 어느 순간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댓글 같은 거 보지 말자고, 어떤 이야기가 보이고 들려도 휘둘리지 말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나는 대중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넘치는 사랑을 받는 만큼 황당한 루머가 생길 때도 내가 감당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젠 욕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화가 날 만할 때도 화가 안 난다.
맷집이 생긴 건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무감해진 건지. 어느 날은 이렇게 화가 안 나도 괜찮은 건가 싶었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서 아무렇지 않은 게 조금 슬프다는 생각도 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건 나에 관한 루머가 생겨서 나에게 해명을 바라는 시선이 있을 때다. 해명이란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자가 해야지, 이야기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나는 당연히 할 말도 없는 거다.
익명의 존재들은 입과 손가락으로 배설하고 싶은 것을 배설하는데, 스타라는 존재는 어떤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까? 다행히 내 곁에는 좋은 어른들과 좋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흔들리려고 할 때 잡아주고 힘이 되는 존재들, 어떤 길에 있을 때 방향을 조언해주기도 하는 존재들. 그런 점에서 나는 행운아다.
잘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선 생각해보나? 어릴 적부터 자주 생각했다. 선배들, 어른들에게서 ‘네가 생각하는 바와 사는 바가 얼굴에 다 배어나게 된다’는 말씀을 들었다. 가끔 나이 든 분들을 보면 어떤 얼굴에서는 좀 화가 느껴지고, 또 어떤 얼굴에서는 놀라울 만큼 천진함이 보이기도 한다. 어른들 말씀처럼 관리 같은 거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의 인상이라는 게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잘 살자는 생각을 자주 한다.
2020년의 송혜교는 잘 살았나? 흔들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보자고 했던 마음가짐을 비교적 잘 지켰다. 많은 것에 감사하면서 마음이 풍요로워진 기분도 든다. 슈퍼에 가서 말 한마디를 해도 좀 더 따뜻하게 하게 되더라. 그렇게 하고 싶어진다. 감사할 줄 알았던 나에게 또 감사한 한 해였다.
연말연시는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 일단 12월 26일이 루비 생일인데….
2020년의 공로상을 루비에게 주는 건 어떨까? 우리 엄마도 루비한테 고마워한다. 함께 집에서 조용히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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