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최초로 감행되고 있는 디지털 패션위크의 쇼를 연출한 이미지 메이커 닉 나이트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아트 스튜디오 플레이랩을 인터뷰했다. 그들은 전통적인 패션쇼를 그리워하는 대신 패션의 진보적인 미래와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닉 나이트의 선구적 혜안
전화기 속 낮고 중후한 목소리는 예상 그대로였지만, 예상치 못한 대답은 1시간이 넘게 전파를 타고 흘러들었다. 당대 가장 중요한 비주얼 크리에이터 중 한 명인 닉 나이트(Nick Knight)는 오랜 관습을 답습해온 패션계에 아주 냉소적인 어조로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시즌 중요한 쿠튀르 쇼 두 편을 연출한 그는 이전의 패션쇼 형 식으로 돌아가서도 돌아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2021 S/S 시즌 패션위크를 앞두고, 바쁠 텐데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어 감사하다. 생각보다 길어진 팬데믹 상황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Nick Knight 여태 일한 것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하루가 훨씬 빨리 시작되고 오래 일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쇼 스튜디오에서 밖에 할 수 없는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있다. 지난 7개월여 동안 집에 갇혀서 스튜디오에 몇 차례밖에 갈 수 없었다. 그나마 난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집에서 지내고, 집 뒤편으로 인적이 드문 들판이 연결되어 마음대로 산책을 즐길 수 있었지. 그런 면에서 운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락다운은 분명 힘든 과정이었다.
다행이다. 본격적인 질문으로 넘어가서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도 처음 겪는 디지털 패션위크다. 모두가 진심으로 디지털에 대해 고민했을 거라 생각한다. 당신이 본 긍정적인 측면은 무엇인가? 지난 20년 동안 패션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해왔다. 지속 가능성 때문만이 아니다. 나는 패션이 세상을 오염시키는 최악의 산업 중 하나이며, 더 솔직히 말하자면 많은 자원 낭비, 공해, 정신 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사회적으로 올바른 산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패션의 어려운 측면이다. 이미 확인된 다양한 이슈 탓에 패션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70년 전부터 사용한 패션쇼 방식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다. 이는 미래보다 당장 내일, 다음 시즌만 고려하는 매체에게 아주 안정적인 방식이다. 만약 당신이 1950년대에 패션쇼를 보러 가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간다면 무엇을 보겠나? 캣워크를 오가는 아름답고 젊은 모델들? 살롱에서 번호표를 들고 워킹을 선보이던 과거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말이다. 또 지금 한국의 날씨는 런던, 텍사스, 모스크바의 날씨와는 전혀 딴판일 테지만, 우리는 모두 봄/여름 시즌이라고 정해진 패션쇼를 봐야 한다. 말이 안 된다. 이는 분명 정치적으로도, 창조적으로도 좋지 않은 관점이다. 그런 점에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고,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상호 연결된 세계를 살고 있다. 난 지금 집에서 다른 대륙에 있는 당신과 얘기하고 있지 않나. 청중은 세계 각지에 있지만, 내가 생산하는 작품을 동시에 본다. 우리는 많은 것을 고쳐야 한다. 우리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내가 패션계에서 만난 창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수많은 사람은 이런 일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자격을 갖춘 이들이라 할 수 있다. 패션은 미래의 예측 매체다. 그림은 화가가 보는 것에 영향을 받지만, 패션은 입는 사람의 상상에 반응하며 독특하게 매치된다. 미래의 비전. 난 당신이 입고 싶지 않은 옷을 입게 할 이미지를 만들 거다. 그게 내 일이고, 마크 제이콥스, 존 갈리아노, 미우치아 프라다와 같은 이들이 하는 일이다. 그들은 당신에게 없는 욕망을 촉발할 것이고,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예측할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미래적 예측을 하는 사람들이 패션 산업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디지털 패션위크는 비록 초기 단계에 불과할지라도 패션의 미래적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어떻게 보았나?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을 모색하려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시도 자체가 흥미진진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산업을 넘나들며 횡단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기다려왔던 그런 느낌이다. 모두를 속박해온 족쇄에서 벗어나는 것. 물론 거대하고 공격적인 멀티-메가 패션 브랜드들이 그 시스템을 예전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팬데믹 이전의 시스템이 더 많은 돈을 벌어주기 때문이다. 난 모든 것이 돈으로 치환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우리는 돈과 물건을 초월해 훨씬 더 나은 곳을 바라보고 지향해야 한다. 1980년대 비즈니스가 패션에 개입했고, 1990년대 더 큰 브랜드가 패션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돈을 가지려는 욕망은 창조성과 예술에 매우 위험하다. 마크 제이콥스나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같은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그렇게 많은 컬렉션을 만들도록 압박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는 자본주의적 관점을 제쳐두고 볼 필요가 있다. 난 브랜드가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면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우리의 시스템에 무척 회의적이다. 절대 만족하지 않는 백만장자들은 문제다. 그건 성공이 아니라 탐욕이고 지구를 파괴한다. 내 말이 너무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달리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또 어떻게 하면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죽을 것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패션계는 이를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단순히 계절과 시즌의 괘를 맞추어 돌아오려고 하면 안 된다. 이것은 ‘패션 팬데믹’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장 기존 시스템에서 내려와야 한다.
한 온라인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6~7월 디지털 패션위크는 코로나 이전의 오프라인 쇼보다 디지털 몰입적 측면에서 현저히 낮은 디지털 수치를 보였다고 한다. 디지털 패션쇼가 실패했다는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패션쇼에 초대받는 300명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인을 생각한다면 아이러니한 평가다. 이제 패션쇼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접근 장벽이 무척 높지 않나. 프런트로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하루에 10개 쇼에 참석하고 피곤해한다. 그건 몰입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이 단지 그들의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시스템을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쇼에서 옷을 더 잘 볼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지 않나. 왜 집에서 쇼를 볼 수 없나? 왜 다운로드를 하지 못하나? 맥퀸의 ‘플라톤의 아틀란티스’를 중계할 때, 우리는 레이디 가가의 신보 <Bad Romance>를 발매했다. 그 결과 6백만명의 사람들이 로그인했고, 서버는 다운됐다. 이는 우리가 원했던 첫 번째 비전이었다. 인터넷의 패션. 그것이 훨씬 더 진정한 몰입적 경험이다. 패션쇼는 대중에게 실제로 말을 걸지 않는다. 트레이드 쇼로 마련되는 패션쇼는 바이어와 기자들과만 소통하기 위한 용도다. 패션쇼는 패션이 더 매력적이기 위한 좋은 방식이 아니며 옷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도 아니다. 이미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옷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데 훨씬 더 관심이 있다.
당신이 준비한 쿠튀르 비디오를 보면서 오랜만에 패션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피에르파올로 피촐리, 존 갈리아노와 쇼를 준비하면서 나눈 가장 기억에 남은 대화는 무엇인가? 두 개의 쿠튀르 쇼에 참여했다. 존 갈리아노의 메종 마르지엘라, 피에르파올로 피촐리의 발렌티노 쇼. 둘 다 매우 중요한 쿠튀르 쇼였고, 둘 다 완전히 새로운 쇼로 표현됐다. 존과 피에르파올로는 지난 2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난 더 이상 캣워크를 하고 싶지 않아. 캣워크에서 벗어나고 싶어” 같은 메시지가 리카르도 티시로부터도 왔다.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꽤 많이. 단순히 유행병을 헤쳐 나갈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패션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영원히 바꾸고자 하는 근원적인 욕구가 있었다.
이런 욕구는 주로 디자이너들로부터 나온다. 존은 컬렉션을 만드는 전체 과정을 폭로하고 싶어 했다. 그의 옷을 만드는 과정을 미화시켜서 말이다. 그는 “사람들은 결코 내 아틀리에를 볼 수 없어. 그들은 내가 하는 일을 절대 알 수 없고, 내가 남자든 여자든 드레스를 입혀 커팅하는 방식을 알지 못해. 그들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말하는 방식, 우리가 만든 캐릭터들을 결코 보지 못하지. 런웨이에 오르는 옷은 스토리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잖아. 모든 과정에서 내가 선택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 중요한데 말이지. 나의 레퍼런스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사람들이 봐주고 이해해주길 바래.” 그것은 마치 그림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사람과 함께 현대 미술관에 가는 것과 같다. 그들은 그림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고, 그 정보 덕에 여러분 앞에 무엇이 있는지 훨씬 더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존은 넷플릭스 시리즈물처럼 호러 스토리(이번 패션 필름을 위해 기용된 호러 스토리 작가 키아 조네스가 내러티브를 구상했다)를 보여주고 싶어 했기 때문에 패션 필름 형식을 원했다. 사람들은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항상 다음 에피소드를 기다리지 않나. 그래서 사람들이 다음 회를 기다릴 수 있는 패션 필름 시리즈를 만들기로 했다. 다음 회는 ‘기성복’이 될 것이다.
그리고 피에르파올로는 “닉,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아. 난 15피트, 20피트 길이의 드레스를 만들 거야. 그리고 그것을 공중에 띄우고 싶어. 캣워크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형식이지. 보다 더 창조적이고 자유로워지고 싶어”라고 말했다. 우리는 코로나19의 제약 때문에 패션 필름을 감독하기 위해 함께 있을 수 없었고, 런던에서 줌을 통해 연출을 지시했다. 로마에 있는 그의 드레스를 카메라맨 몇 명이 찍고, 추후에 그것을 편집해서 패션 필름을 만든 것이다.
쿠튀르에서 시작된 이런 시도들은 무척 중요하다. 그 전에 리카르도 티시와 버버리를 위해 캠페인 작업을 진행했는데, 켄들 제너를 CGI로 재현했다. 이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창의력으로 해야 할 일이지. CGI로 만들어진 켄들 제너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한 번에 많은 장소에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종족과 문화를 위해 무척 흥미진진하고 근본적으로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다.
줌 포토슛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들었다. ‘뉴노멀’이 된 포토슛의 매력은 무엇인가? 쉬운 사진이나 영화는 없다. 찬란한 것을 만들려면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놀라운 일에는 고난이 따르는 법. 줌 촬영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늘 하는 사진 촬영보다 훨씬 더 확장된 면이 있었다. 지금까지 3~4개의 큰 줌 촬영을 진행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모델 들은 단지 내 카메라 앞에 서 있지 않고, 카메라의 조명이나 각도를 인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만의 카메라를 들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잡는지, 어디에 놓을지, 혹은 누구와 함께 진행하는지 나와 상의하면서 피사체가 창조적인 과정에 훨씬 더 많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꽤 사랑스러웠다.
팬데믹 시대의 닉 나이트는 새로운 숙제를 부여받은 기분일까 상상했다. 모든 것이 리셋된 상황에서 현실과 디지털을 연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점이 있을까? 이젠 현실과 디지털 세계 사이의 빈틈은 없는 것 같다. 그 둘은 같은 것이다. 난 인류와 진화 그리고 미래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사물은 진화했고, 우리는 기술과 정보를 통해 더 많은 곳에 연결되는 완전히 다른 종으로 진화했다. 그게 날 계속 버티게 하는 거다. 여전히 새로운 사물의 출현과 이해의 방식을 탐색하는 것은 매우 흥분된다. 나의 유일한 문제는 하루 24시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많은 탐험을 원한다.
개인적으로 팬데믹 기간 동안 전염병의 위협 앞에서 패션의 무기력함, 소용없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쇼는 계속되고 있지 않나. 멈추지 않는 크리에이티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나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건강하고 하나는 건강하지 못한 것. 그건 바로 매출을 올리려는 브랜드의 돈과 창조적 행위다. 창조의 행위는 건전하다. 예전과 달라진 시스템에서 표현하고 싶은 욕구. 하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모든 패션위크는 창조의 원천이다. 열정만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을 거다. 부정과 슬픔만 느낀다면, 점점 더 작아질 뿐이다. 나는 전염병이 많은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얼마나 해롭고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 알기에 더욱 감사한다. 난 아직 코로나 블루를 겪지 않았다. 인류는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찾을 거다.
버질 아블로가 말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나이트클럽에 가거나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 옷을 빼입지 않는다. 나는 소비 관점이 완전히 바뀐 지금 사람들의 시선으로 디자인을 한다”고 말이다. 환상과 드라마가 없는 패션을 상상하기 싫지만,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버질과 같은 누군가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아바타는 디지털 공간으로 나갈 것이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바타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신경 쓸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자신을 규정하는 완전히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외출을 위해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과시하려는 생각, 옷 입는 생각, 아름답고 독특하고 화려하다는 생각, 이 모든 것이 그냥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드레스를 원하는 이유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은 여전히 작용할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자신이 만든 자신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그들의 과시 방식이다. 나는 자신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스스로에게 필터를 씌우고, 창조하고, 재구상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는 지적이며 창의적인 종으로 창조와 사물을 바꾸는 것을 즐긴다. 그게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보고 매번 흥분된다. 아마도 버질은 그들을 위해 옷을 만들거나 옷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가 3D 패턴을 만들면 사람들은 그것을 다운로드할 것이 분명할 텐데.
곧 2021 S/S 패션쇼가 시작된다. 지난 디지털 패션위크를 보고 나니 9월 쇼가 어떻게 펼쳐질지 더 궁금하다. 그리고 이번 9월 쇼의 어떤 프로젝트에 당신이 연루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어떤 발전적인 측면이 있나? 지금 해야 할 일은 낡은 제도를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스템이 성장하고 안착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번 시즌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진정으로 미래를 지향할 것인가, 과거를 활용하려고 하지 않을 것인가이다.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이 캣워크를 모방하는 브랜드를 본다면, 그건 미래가 아니다. 구식이고, 유행이 지났다. 만약 당신이 브랜드가 다른 방식으로 유통되 는 것을 본다면, 그것이 미래다. 그래서 나는 어떤 브랜드가 실제로 미래에 관여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돈을 벌려고 하는지를 보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나는 쇼 스튜디오를 통해 패션을 전공한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 나와 함께 일했던 거의 모든 학생이 그들의 컬렉션을 제안할 때 첫 번째 줄에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그들은 지구의 상태에 대해 엄청나게 신경을 쓴다. 정말 중요한 시간이 아닐까. 62세인 나의 삶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겸허함을 느끼고, 그들은 앞날 창창한 20대니. 그들은 내 나이에 도달했을 즈음 세상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실제로 갖고있다. 지속 가능성이 그들의 최우선 의제인 이유다. 빅 브랜드들이 수백 명의 기자들을 불러다 놓고 남미, 중국 같은 곳에서 쇼를 여는 등 지속 가능성에 역행하는 일을 봐왔다. 이는 유행도 지났을뿐더러 천박한 형식이다. 어떤 브랜드가 지금의 위기에 귀를 기울이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개척해가는지 잘 보아야 한다. 이번 시즌에 꼭 바뀌었으면 좋겠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또 뉴노멀 시대의 핵심은 속도와 적응력이라고도 한다. 이런 면에서 패션 이미지 메이커를 꿈꾸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나? 내 충고는 자신의 본능을 믿으라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믿어라. 그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라. 그것이 미래라는 것을 알아라. 그들은 도전해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들을 믿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솔직해져라. 명성과 부만을 쫓지 마라. 절대 돈에 의해 움직이지 마라. 그것들은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다.
플레이 랩의 무한 증식
2009년 설립된 플레이랩(PlayLab, Inc.)은 LA 기반의 전방위적 창작 스튜디오다. 버질 아블로와는 2013년부터 작업을 함께하고 있으며,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대기업부터 LACMA,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굵직한 미술계를 클 라이언트로 두고 있고, 그 리스트는 지금도 추가되고 있다. 창의적인 핵심 멤버 5명으로 구성된 이 스튜디오는 다 양한 멀티플레이어들과 협업을 펼치며, 무한한 문화적 포용력과 강력한 실행력이 강점이다. 멤버 중 아치 리 코테 스 4세(Archie Lee Coates IV), 제프 프랭클린(Jeff Franklin), 애나 세실리아 톰슨 모타(Ana Cecilia Thompson Motta)가 이번 인터뷰에 서면으로 응해주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를 목도하는 중이다. 패션 피플들은 수년 동안 ‘실험적’, ‘디지털 몰입적’, ‘멀티 플랫폼’, ‘디지털’과 같은 용어를 들먹여왔지만, 이제야, 유행병의 끔찍한 위기 속에서 세계 곳곳의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 그 난도 높은 전문 용어의 벽을 사력을 다해 뚫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시작 당시 어떤 각오로 임하였나?
PlayLab, Inc. 지금 우리는 겪어보지도 상상조차도 하지 못한,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특히 우리같은 스튜디오에게는 더더욱. 하지만 모두의 출발선은 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스튜디오를 재정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디지털로 개최되는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무엇인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는 쇼의 중요성은 여전하지만, 결국 그 경험은 제한된 소수의 관객에게만 허락된다는 한계가 있다. 패션쇼장에 입장할 수 있는 관객이 1000명이라면, 온라인에서는 동시에 1억 명이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버질과 리즈 모두 “어떻게 하면 쇼 영상을 온라인으로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버질 아블로, 리즈 쿠퍼와 작업했다. 그들과 작업하는 과정은 어떤가? 루이 비통과 리즈 쿠퍼 쇼의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 함께 협업한 사람들이다. 이번 작업은 패션은 물론 그 어느 분야에서도 보기 힘든 강한 신뢰와 서로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덕분에 팀의 사기도 매우 높다. 패션 업계는 팬데믹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디지털 전환의 흐름을 타고 있었고, 이러한 변화의 첫 단계로 영화적인 요소를 가미한 쇼가 늘어나고 있었는데, 이번 팬데믹이 그 모든 과정을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했다고 본다. 특히 루이 비통 도쿄 라이브 스트리밍을 위해 협력해준 영화감독 미이케 다카시와 시인이자 감독인 칼렙 페미의 예를 꼭 언급하고 싶다. 우리가 소통하는 관객들의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시네마틱하게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었다.
작업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루이 비통 쇼의 경우, 상하이와 도쿄 두 곳에서 열릴 쇼였으니 아주 글로벌한 쇼를 기획하는 데 주목했다. 해외여행 없이 스크린을 통해 전 세계와 소통한다는 건 멋졌지만, 재미있게도 작업 과정에서 시차 부적응까지 겪었다. 이 쇼의 가장 멋진 점은 정말 실제 현장에 가지 않고 루이 비통처럼 스케일이 큰 쇼를 지휘했다는 거다. 쿨한 아이디어를 기획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기획한 바를 완벽히 실행하는 것은 바늘에 실을 하나하나 꿰는 것처럼 복잡 미묘했다.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현지 프로덕션 팀과 긴밀히 커뮤니케이션하고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일 자체도 보통이 아니었다. 우리도 집에서 쇼를 보는 관객들과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에 늘 관객의 입장을 고려하려고 했다.
리즈 쿠퍼 쇼의 원래 계획은 파리의 학교 바닥을 비닐로 덮어서 모델들이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가짜 하천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하던데, 로스앤젤레스로 간 얘기를 해달라. 패션쇼란 결국 우리가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를 보여주는 연장선이다. 라이징 디자이너인 리즈 쿠퍼와의 첫 번째 쇼 때는 우리 팀이 파리로 출장을 가서 쇼를 연출했지만, 올해에는 리즈의 홈타운인 캘리포니아에서 쇼를 촬영했고, 창조적인 심성을 가진 디자이너 리즈 쿠퍼 그 자체를 더욱 진실하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웃도어 풍인 리즈의 패션을 실제 자연 속에서 라이브 스트리밍해 그의 세계관을 더욱 리얼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이번 디지털 패션위크를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인가? 세계 곳곳에 있는 사람들과 협업한 경험은 뉴노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삶을 그대로 반영한 셈이다. 현장에 가지 않더라도 어떤 아이디어든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쇼를 통해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앞으로 이런 협업 과정에 점점 익숙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전에 보지 못한 혁신적인 협업을 꾸준히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지
- 뉴욕 통신원
- 윤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