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괴로운 날에는 이파리를 닦자
식물 애호가 임이랑이 보내온 식물과 함께하는 나날들. 힘겨운 시기를 이겨내도록 하는 것은 어쩌면, 식물일지도 모른다.
‘식물이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을지 모르겠어.’ 코로나가 세계를 휩쓴 후, 가드너들과 나눈 대화의 절반은 반려 식물이 있어서 다행인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3월로 예정되어 있던 지인들과의 모임은 미루고 미루어 더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채로 관계는 김이 새버렸고, 여름휴가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되었다. 쓸쓸한 마음에 외장하드 안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폴더를 열어본다. 2019년 밀라노, 2018년 괌, 2017년 홋카이도… 아름다운 도시에서 리넨 원피스를 입은 채로 활짝 웃고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일까. 그렇게 코로나 이전 시대의 내가 외장하드 안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지난겨울 이후 모든 것이 변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나의 하루의 루틴 속에는 기댈 곳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매일 아침 확진자 수를 확인하며 한숨이 나오지만 얼른 털어내고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그간 열과 성을 다해 가꿔온 내 정원의 식물들만은 여전히 매일 아침 물을 달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저녁이면 내 몸에 쌓인 하루치 독을 걷어내 흙 속 깊은 곳에 숨겨준다. 미국의 저명한 뇌신경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저서 <모든 것은 그 자리에>에서 “나는 40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만성 신경병 환자에게 매우 중요한 비약물 치료법을 두 가지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하나는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정원이었다”고 말했다. 색스의 문장을 읽고 그간 내가 고민해온 퍼즐의 한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마음이 바닥까지 떨어져 무기력한 날을 보낼 때,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음악과 가드닝이었다. 마음이 특히 괴로운 날에는 이파리를 닦았다. 커다란 관엽식물의 이파리에 있는 숨구멍을 조심조심 닦아가며 달라붙은 작은 벌레들을 치우고, 반짝반짝 닦아낸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 관엽식물은 전에 없던 속도로 더 열심히 새순을 올리고, 꽃을 피우는 데 박차를 가하며 나의 마음을 위로한다. 한참 세상이 패닉에 빠질 초봄 무렵 심어둔 꽃씨들은 무럭무럭 자라 보리지꽃을 피우고, 테라스의 숙근들은 자라나 큼지막하게 아름다운 작약꽃이 피어났다. 내 테라스에 온갖 꽃의 냄새를 맡고 날아든 벌과 나비를 구경하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어떤 걱정 근심도 나를 공격하지 못한다. 언제나 적당량의 불안감을 안고 사는 일상이지만 나 스스로를 달래는 방법을 찾아 정말 다행이라고, 어두운 감정에 잠식당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을 유지하자고 다시 굳게 마음먹는다.
아름다운 것들을 곁에 두고서 보고, 듣고, 느끼며 밝은 곳으로 나아가고 싶다. 멀리 떠나는 휴가는 무리겠지만, 동그란 씨앗으로 시작해 어느덧 내 키보다 크게 자란 테라스의 아보카도 나무가 계절의 힘으로 얼마나 풍성하게 몸집을 키울지 기대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와 함께 지내는 식물 친구들의 내일을 기대하고, 다음 주를 기대하고 살아가다 보면 이 복잡한 시기도 어느새 스르륵 지나갔으면 좋겠다. 인적이 드문 들판의 꽃들은 여전히 피고 질 것이다. 어떤 것들은 완전히 변해버렸지만, 여전한 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에 기운을 빼앗기며 살기보다는 식물들 곁에서 마음의 평화에 집중하며 살고 싶다. – 임이랑(디어클라우드 베이시스트, 작가)
- 피처 에디터
- 전여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