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메이크업 & 컬러 디자이너 루치아 피카 인터뷰.
최근 몇 년간, 샤넬의 메이크업 컬렉션은 출시하면 곧바로 품절 현상을 드러냈다. 그 중심에 샤넬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메이크업 & 컬러 디자이너 루치아 피카(Lucia Pica)가 있다.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지금, 샤넬의 2020 F/W 메이크업 컬렉션 출시를 기념해 <더블유 코리아>가 단독으로 그녀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더블유 코리아> 독자들에게 당신을 소개해달라.
루치아 피카 내 직함이 좀 긴데 괜찮나(웃음). 샤넬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메이크업 & 컬러 디자이너 루치아 피카다. ‘감사합니다.’(한국말)
‘감사합니다’라니! 너무 다정하다. 당신이 샤넬에 합류한 이후, 샤넬 메이크업 제품의 텍스처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한국의 뷰티 에디터들 사이에서도 샤넬 화장품은 화장대뿐 아니라 휴대하는 파우치에도 1~2개씩은 반드시 들어 있다. 이렇게 특별한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점에 가장 신경 쓰는지? 텍스처에 관한 질문을 하다니, 굉장히 흥미롭다. 나는 질감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 텍스처는 사용하기 편하면서도 컬러를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여성이 사용하기 편해야 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면 어떤 질감도 표현할 수 있지만, 소비자는 그렇지 않으니까. 또한 피부에 실제 발랐을 때 편안하게 느껴지는 게 중요하다. 매트한 텍스처를 예로 들자면, 80년대의 두껍고 분필처럼 날리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모던하면서도 투명하고, 피부에 부드럽게 발색돼야 한다. 어떤 텍스처든 사용하기 편해야 하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참여해 만든 텍스처를 통해 많은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질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다.
앞서 얘기했듯, 화장품은 ‘실용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여성들이 실제로 바를 수 있어야 하니까. 제품의 기저에 있는 가브리엘 샤넬의 철학에 당신의 스토리와 현실성을 더해 탄생한 샤넬의 메이크업 컬렉션은 그저 ‘예쁘다’가 아니라 ‘멋지다’, ‘감동적이야’와 같은 감탄사를 끌어낸다. 1년에 약 9개 정도의 컬렉션을 제작하는데, 매번 샤넬, 그리고 루치아 피카답게 만드는 원동력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궁금하다. 다양한 소스에서 영감을 받는다. 익숙하거나, 혹은 생경한 장소로 여행을 떠나 색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새로운 스토리나 감정을 느끼고 제품을 개발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스튜디오로 돌아와 촬영한 것들을 보며 화장품에 어떤 방식으로 접목할지 숙고한다. 여행하면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색을 메인으로 컬렉션을 만든 뒤,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구상하고, 제품 컬렉션과 스토리를 결합한다. 내가 샤넬에 합류한 뒤 만든 메이크업 컬렉션에는 개성과 감정, 그리고 깊이가 있다. 항상 화장품에 담긴 색을 통해 여성들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어떤 반응을 할지 상상하며 컬렉션을 구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샤넬의 메이크업 컬렉션에는 영감이 숨어 있을 수밖에 없다. 가령, 샤넬에 합류한 뒤 가장 처음 만든 ‘르 루쥬 컬렉션 N°1’엔 컬러와 여성, 여성성, 그리고 색이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마침 그 이야기를 하려 했다. ‘핑크’라는 ‘색’을 중심으로 한 이번 컬렉션은 레드의 변주를 다룬 2016년 가을 ‘르 루쥬 컬렉션 N°1’을 연상시킨다. 다만, 레드는 가브리엘 샤넬의 ‘립스틱을 바르고 공격하라’는 말처럼 샤넬 하우스를 대표하는 컬러이지만, 핑크는 좀 생경하다. 루치아 피카가 다루는 핑크라는 점에서 더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당신에게 핑크란 어떤 의미가 담긴 컬러인가? 샤넬의 2020 F/W 메이크업 컬렉션으로 선보이는 ‘깡되르 에 엑스뻬리앙스 : 액트 II’는 여성의 순수함과 성숙함의 이중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르 루쥬 컬렉션 N°1’의 연장선에 있다. 삶 속에서 늘 마주치는 여성의 이중성을 핑크 컬러를 통해 표현했다. 알다시피 나는 도전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핑크색을 사용하길 꺼려왔던 만큼,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핑크에 애정을 갖고 변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번 컬렉션을 통해 핑크는 단순히 예쁜 컬러에서 벗어나 대담하고 파격적인 컬러로 변화한다.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는 격정적이고 관능적인 컬러라 보면 된다. 이번 컬렉션은 연한 베이지색 핑크와 플럼, 버건디, 그리고 라즈베리색과 같은 핑크 컬러의 넓은 스펙트럼을 이용해 여성의 이중성과 같은 감정을 다룬다.
이번 컬렉션을 정의하는 키 아이템과 활용 방법도 궁금하다. 비토리아와 작업한 광고 캠페인에선 반항적이고 강렬한 펑크 걸을 표현하기 위해 ‘레 꺄트르 옹브르(364 깡되르 에 세뒥씨옹)’와 내가 너무 좋아하는 다크 버건디 컬러의 ‘스틸로 이으 워터프루프(955 로망스)’를 주로 사용했다. 그녀에게는 색을 강하게 사용했지만, 내가 직접 바를 땐 속눈썹 라인에 아이 펜슬을 살짝 터치한 뒤 손가락으로 블렌딩하고 아이 팔레트 색상을 아주 옅게 덧바른다. 때론 샤넬 화장품 중 가장 좋아하는 제품 중 하나인 ‘바움 에쌍씨엘(로제)’을 발라 마무리한다. 직접 보여주길 원하나?
물론이다. (손등에 바르기 시작) ‘스틸로 이으 워터프루프(955 로망스)’로 아이라인을 그리고 브러시로 블렌딩한 뒤 ‘레 꺄트르 옹브르(364 깡되르 에 세뒥씨옹)’의 매트 플럼 브라운 컬러를 그 위에 펼치듯 바른다. 거기에 살짝 더 밝은 매트 더스티 라즈베리 컬러를 덧바르고 반짝이는 새틴 로즈 플래티넘 색으로 마무리한다. 아, 내가 했지만 너무 예쁘다(웃음). 어두운 색부터 밝은 색으로 그러데이션하는 거다. 마치 꽃잎처럼! (입술에 바르기 시작) 입술엔 초콜릿을 연상시키는 ‘루쥬 코코(494 어트랙션)’를 전체적으로 바르고 살짝 더 밝은 컬러인 ‘루쥬 알뤼르 잉크 퓨전(836 이딜리끄)’을 입술 중앙 위주로 덧발라 볼륨감을 연출한다. 이 제품은 입술에 놀랍도록 부드럽게 녹아드는데, 발색도 강하고 지속력도 좋아서 요즘처럼 마스크를 써야 하는 때 바르기 딱 좋다. ‘레 꺄트르 옹브르(362 깡되르 에 프로보카씨옹)’도 빼놓을 수없다. 2016년에 선보인 ‘레 꺄트르 옹브르(268 깡되르 에 엑스뻬리앙스)’의 부드러운 버전이라 생각하면 된다. 소프트 피치 컬러와 레드 플럼 컬러를 브러시로 믹스해 눈가에 넓게 바르고, 매트 브라운 컬러를 눈 안쪽에 덧발라 음영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펄이 들어 있는 인텐스 핑크 컬러를 눈두덩 중앙에 톡톡 발라 마무리하면 눈가에 빛이 나는 듯 보인다.
지금 보여준 룩도 그렇고, 당신의 메이크업은 항상 신선하고 모던하다. 도쿄에서 만났을 때도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움 에쌍씨엘’을 사용하는 걸 보고 놀랐다. 이번 컬렉션에서 제일 좋아하는 제품과 재미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까? ‘바움 에쌍씨엘(로제)’이다. 참고로 작년에 출시된 ‘바움 에쌍씨엘(트렌스페어런트)’을 개발할 때 한국 여성을 염두에 뒀다. 한국에 갔을 때 모든 여성의 피부가 아름답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걸 봤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촉촉하고 영양감이 가득한 텍스처로 보통은 볼과 하이라이트 부위에 사용하는데, ‘바움 에쌍씨엘(로제)’이나 올해 S/S 컬렉션에서 선보인 ‘바움 에쌍씨엘(골든 라이트)’은 당신이 원하는 부위 어디든 바를 수 있다. 볼과 하이라이트 부위는 물론 눈가와 입술 등에 발라 메이크업 룩을 완성할 수 있다. 오직 이 제품 하나만으로 말이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매 시즌 샤넬 패션쇼의 뷰티 룩을 진두지휘한다. 뷰티 광고 캠페인과 달리, 패션쇼의 뷰티 룩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일 것 같다. 패션쇼 백스테이지의 경우, 과거엔 칼 라거펠트, 그리고 지금은 버지니 비아르가 지향하는 컬렉션의 비전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이다. 다른 어떤 작업보다 협동심이 중요하다. 쇼 오픈 1~2주 전에 관계자들과 모여 컬렉션과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여성상을 논의하고, 버지니 비아르에게 몇 가지 레퍼런스나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그녀가 가장 맘에 드는 것을 고른다. 그러면 모델에게 몇 가지 메이크업 시연을 하고, 최종적으로 쇼에 올릴 메이크업 룩을 완성하는 식이다. 결론적으로 샤넬이 패션쇼로 펼치는 꿈을 메이크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보여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일정이 굉장히 타이트하고, 패션쇼를 지원하는 일이기에, 내가 평소에 메이크업 캠페인을 만드는 과정과는 매우 차이가 있지만, 정말 흥분되는 작업이다. 이렇게 창조적이고 아이코닉한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만으로 짜릿하다.
샤넬 메이크업 컬렉션을 통틀어 당신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제품은? (얼굴에 직접 바르기 시작) ‘팔레트 에쌍씨엘’과 ‘레 베쥬 워터-프레시 틴트’다. 아침에 일어나 스킨케어를 마무리한 뒤 레 베쥬 틴트를 바른다. 지금껏 이처럼 피부를 투명하게 연출해주는 베이스 제품은 본 적이 없다. 파운데이션을 바른 티가 나는 걸 싫어하는데, 이 제품은 마치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듯 가벼우면서 피부 톤을 균일하게 만들고, 아름다운 피부로 연출해준다. 그 위에 ‘팔레트 에쌍씨엘’을 사용한다. 이 제품엔 ‘노메이크업 메이크업 룩’을 위한 모든 요소가 갖춰져 있다. 나는 ‘레 베쥬 워터-프레시 틴트’를 바르고, 피부 위에 남아 있는붉은 기나 주근깨, 피부 결점 등을 커버하기 위해 ‘팔레트 에쌍씨엘’의 컨실러를 사용한다. 텍스처가 굉장히 가볍고,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세한 반짝임이 들어 있어 눈 아래 사용해도 부담스럽지 않고 예쁘다. 광대뼈 위나 눈꺼풀에 하이라이터처럼 사용해도 된다. 그다음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블러셔다. 애플존의 윗부분에 터치하고 삼각형을 그리듯 아래로 블렌딩한다. 너무 많이 발랐다 싶으면, 컨실러로 가장자리를 펼쳐 색을 중화시키면 된다. 이 제품은 수정 화장용으로도 더없이 적합하다.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점심 후 미팅이나 저녁에 퇴근하고 나서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사용하면, 마치 갓 메이크업한 듯 산뜻한 피부를 표현할 수 있다. 반짝임을 극대화하고 싶다면, 밤을 톡톡 덧바르면 된다.
그저 손으로 몇 번 터치한 것 같은데, 정말 피부가 산뜻해 보인다. 아, 이 얘기를 안 할 수 없겠다. 한국 여성들은 코로나 이후 마스크로 가려지는 입술엔 화장을 거의 하지 않고 아이 메이크업에 집중하는 추세다. 마스크에 어울리는 아이 메이크업 팁을 알려준다면? 요즘처럼 얼굴 전체를 보여줄 수 없을 땐 아이 메이크업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깡되르 에 엑스뻬리앙스 : 액트 II’ 컬렉션의 모든 컬러를 추천한다. 눈가를 환 하게 밝혀주는 것은 물론 매력적인 감정을 끌어내니까. 이번 컬렉션으로 메이크업을 하면, 사람들은 당신의 눈을 보며 호기심을 가질 것이다. 아까 얘기했듯 아이라이너를 블렌딩해 눈가를 선명하게 하고 아이섀도의 다양한 컬러를 활용해 눈가에 빛을 더해라. 당신의 눈에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아이라이너로 눈가를 선명하게 연출하고, 다양한 아이섀도 색상으로 재미와 신선함을 더하는 거다.
마지막 질문이다. <더블유 코리아> 오디언스를 위해 지금 준비 중인 샤넬 뷰티의 새로운 컬렉션에 대해 살짝 귀띔해준다면? 오, 이런. 이번 홀리데이에 뭐가 나오더라?
아주 조금의 힌트도 좋다. 홀리데이 컬렉션은 샤넬 하우스의 상징과 관련이 있을 거다. 매우 아이코닉한 무언가다. 더 얘기해도 되나(웃음)? 더 이상 얘기는 못하지만, 아주 상징적이고 멋진 컬렉션이 될 거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오늘 함께해줘서 고맙다. 아무쪼록 무탈하길. 당신도!
샤넬의 ‘깡되르 에 엑스뻬리앙스 : 액트 II’는 여성의 순수함과 성숙함의 이중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르 루쥬 컬렉션 N°1’의 연장선에 있다. 삶 속에서 늘 마주치는 여성의 이중성을 핑크 컬러를 통해 표현했다. 이번 컬렉션을 통해 핑크는 단순히 예쁜 컬러에서 벗어나 대담하고 파격적인 컬러로 변화한다.
- 뷰티 에디터
- 김선영
- 사진
- COURTESY OF CHA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