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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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Virginie Viard)가 그리는 궁극의 로맨티시즘은 무엇일까. 디지털을 통해 공개된 20/21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그 해답이 담겨 있었다. 칼 라거펠트가 즐겨 찾던 ‘르 팔라스’를 드나들던 여인의 모습. 풍성하고 화려한 아름다움, 낭만적인 장식성이 가득한 현대판 펑크 프린세스가 환생한 순간이다.

전 세계를 마비시킨 현대판 역병으로 패션계 역시 거대하고 근원적인 변화를 맞닥뜨렸다.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이 도처에서 펼쳐지고 있다. 오프라인 패션위크가 취소되고, 시즌제가 무의미하다는 선언이 이어지고 대부분의 플랫폼이 디지털로 전환되었다. 패션 종사자와 특수한 몇 명에게 한정되었던 쇼장이라는 공간의 의미가 희미해진 시대가 출현한 것이다. 패션 브랜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독창적인 아이디어, 시각과 청각을 자유자재로 활용한 스토리텔링을 접목하며 하우스의 헤리티지와 철학을 어떻게 결합시킬지 몰두했다. 더 많은 새로운 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전환될 것이다.

오트 쿠튀르의 화려함을 더하는 반짝이는 주얼 장식.

포토그래퍼 미카엘 얀손 (Mikael Jansson)의 시선으로 담은 오트 쿠튀르 영상과 컬렉션 이미지에 등장한 모델 리아너 판 롬파이.

포토그래퍼 미카엘 얀손 (Mikael Jansson)의 시선으로 담은 오트 쿠튀르 영상과 컬렉션 이미지에 등장한 모델 리아너 판 롬파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오트 쿠튀르 드레스를 만드는 과정. 4,5. 컬렉션 준비로 분주한 캉봉가 31번지 아틀리에 풍경.

지난 2월에 열린 2020 F/W 컬렉션을 끝으로 물리적인 패션쇼가 멈춰버린 이 시점에 샤넬 역시 5월 열릴 예정이었던 크루즈 쇼 ‘지중해에서의 산책’을 오프라인 런웨이 쇼가 아닌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지중해의 섬 카프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크루즈 쇼가 록다운으로 무산되면서 조정된 결과다. 공개 후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려는 이들의 손놀림이 바빠졌고, 부지런히 올라온 피드 덕분에 이전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샤넬은 20/21 쿠튀르 컬렉션 역시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컬렉션 전날 올라온 30초짜리 티저 영상 3개는 파리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칼의 패션 필름을 찍은 루익 프리장(Loic Prigent)이 연출한 것으로, 다음 날 공개될 컬렉션의 기대감을 높였다. 캉봉가 31번지의 공방에서의 긴장된 호흡과 정교한 손놀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1mm만 어긋나도 완전히 달라져요. 그게 바로 오트 쿠튀르죠.”

샤넬 컬렉션의 자수를 담당하는 르사주와 몽텍스, 르마리에와 구센스 공방의 섬세한 자수와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인다.

샤넬 컬렉션의 자수를 담당하는 르사주와 몽텍스, 르마리에와 구센스 공방의 섬세한 자수와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인다.

샤넬 컬렉션의 자수를 담당하는 르사주와 몽텍스, 르마리에와 구센스 공방의 섬세한 자수와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인다.

샤넬 컬렉션의 자수를 담당하는 르사주와 몽텍스, 르마리에와 구센스 공방의 섬세한 자수와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인다.

샤넬 컬렉션의 자수를 담당하는 르사주와 몽텍스, 르마리에와 구센스 공방의 섬세한 자수와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인다.

샤넬 컬렉션의 자수를 담당하는 르사주와 몽텍스, 르마리에와 구센스 공방의 섬세한 자수와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인다.

그리고 지난 7월 7일 샤넬의 소셜 미디어와 홈페이지, 유튜브 등 모든 플랫폼을 통해 2020/21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공개됐다. 가브리엘 샤넬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오바진 수녀원의 단정함과 엄격함에서 영감을 얻은 지난 2020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과는 대조된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그 당시 오바진 수녀원의 정원을 재현한 그랑팔레의 디스플레이와 날씨, 현장이 주는 특별한 경험이 그리워진 순간이었다. “지난번과는 대비되는 식으로 풀어냈어요. 그런 방식의 접근을 좋아해요. 복잡함과 정교함을 원했습니다.” 버지니는 이번 시즌을 구성하는 30여 개 룩을 통해 샤넬의 유산과 함께 대담함, 섬세한 화려함이 교차하는 쿠튀르 세계를 펼쳤다. 포토그래퍼 미카엘 얀손(Mikael Jansson)이 사진과 영상을 책임지고, 아두트 아케치와 리아너 판 롬파이는 그의 프레임 안에서 현대적이면서 상반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새벽에 ‘르 팔라스(Le Palace)’에서 나오는 펑크 프린세스를 떠올렸어요. 태피터 드레스, 부풀린 머리, 깃털 장식에 주얼리까지 잔뜩 치장한 모습이죠. 이번 컬렉션은 가브리엘 샤넬보다 칼 라거펠트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칼 라거펠트가 자주 찾은 르 팔라스를 드나들던 펑크 프린세스의 현대적인 모습.

칼 라거펠트가 자주 찾은 르 팔라스를 드나들던 펑크 프린세스의 현대적인 모습.

칼 라거펠트가 자주 찾은 르 팔라스를 드나들던 펑크 프린세스의 현대적인 모습.

칼은 ‘르 팔라스’를 자주 찾곤 했는데, 굉장히 특별하면서도, 세련되게 차려입은 여성들과 동행했어요.” 버지니아는 말한다. 자수와 장식은 샤넬의 모든 작업을 담당하는 르사주와 몽텍스 공방을 비롯해 르마리에와 구센스(goossense)가 힘을 합쳐 시퀸, 스트라스, 스톤, 비즈, 그리고 트위드를 만들었다. 허리를 잘록하게 강조한 쇼트 드레스와 코롤라 스커트는 17세기 그랑 시에클 (Grand Siecle)의 매력과 19세기 풍경에서 빠져나온 듯한 여주인공의 숭고한 권위를 간직한 롱 드레스로 거듭난다. 잉크 블랙 트라우저 슈트를 수놓은 장식, 검정과 회색에 더해진 핑크 색조, 그림을 그려 넣은 레이스와 은사 리본 트위드는 볼레로 재킷에 풍성함을 더한다. 핑크색 트위드 슈트에 매치한 볼드한 다이아몬드 링과 티아라, 엠파이어 라인의 이브닝드레스에 떨어진 Y자 형태의 드롭 네크리스 등 존재감을 더하는 하이 주얼리는 쿠튀르가 표현하는 궁극의 화려함에 고급스러운 기품을 더한다. 테일러링 이 완벽한 스모크드 웨이스트 재킷은 검정 스웨이드 테이퍼드 부츠 트라우저와 함께 록적인 로맨티시즘을 완성하기도 한다. “제게 오트 쿠튀르의 본질은 로맨틱입니다. 이 실루엣에는 사랑이 묻어나죠.”

모델 리아너 판 롬파이와 아두트 아케치의 상반된 아름다움을 담은 캠페인 이미지. 쿠튀르 룩과 하이 주얼리가 만나 궁극의 로맨티시즘을 표현한다.

모델 리아너 판 롬파이와 아두트 아케치의 상반된 아름다움을 담은 캠페인 이미지. 쿠튀르 룩과 하이 주얼리가 만나 궁극의 로맨티시즘을 표현한다.

모델 리아너 판 롬파이와 아두트 아케치의 상반된 아름다움을 담은 캠페인 이미지. 쿠튀르 룩과 하이 주얼리가 만나 궁극의 로맨티시즘을 표현한다.

모델 리아너 판 롬파이와 아두트 아케치의 상반된 아름다움을 담은 캠페인 이미지. 쿠튀르 룩과 하이 주얼리가 만나 궁극의 로맨티시즘을 표현한다.

간결한 실루엣, 우아한 소재로 숭고함이 느껴지는 재킷.

샤넬 아틀리에의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오트 쿠튀르 작업 현장.

샤넬 아틀리에의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오트 쿠튀르 작업 현장.

샤넬 아틀리에의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오트 쿠튀르 작업 현장.

트위드를 장식하는 재봉사의 고난도 손놀림.

트위드를 장식하는 재봉사의 고난도 손놀림.

트위드를 장식하는 재봉사의 고난도 손놀림.

영상은 ‘한계가 없는 창조성과 세련미’, ‘트위드의 재발명’, ‘오트 쿠튀르의 거친 면’, ‘태피터의 바스락거림’, ‘정교한 디테일’ 등 다섯 개 테마로 구성된 영상과 풀 버전 영상으로 나뉜다. 영상을 통해 하우스의 유산과 정신, 오트 쿠튀르와 만난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풀 버전과 서로 다른 다섯 개 테마로 구성된 오트 쿠튀르 영상의 한 장면.

풀 버전과 서로 다른 다섯 개 테마로 구성된 오트 쿠튀르 영상의 한 장면.

풀 버전과 서로 다른 다섯 개 테마로 구성된 오트 쿠튀르 영상의 한 장면.

풀 버전과 서로 다른 다섯 개 테마로 구성된 오트 쿠튀르 영상의 한 장면.

쇼가 공개된 다음 날에는 티저 영상을 맡은 루익 프리장의 세 편의 흑백 영상을 차례로 공개됐다. ‘오트 쿠튀르 아틀리에 시리즈-에피소드 1,2,3’ 제목의 2분여 영상 안에는 프리미에르 공방과 오트 쿠튀르 아틀리에의 장인 정신이 버니지 비아르의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 담겼다. 각 영상은 컬렉션 프레젠테이션의 분위기를 다큐멘터리 시선으로 담는다. 디자인이 생성되는 타이외르와 플루 공방의 활기찬 모습부터 샤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의 심장부에서 마법과 같은 피팅이 이루어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감독 의 카메라는 프라이빗한 프리미에르 공방을 직접 들여다보는 느낌을 준다. 재봉사들의 날렵한 손놀림, 중간중간 등장하는 코멘트는 쿠튀르를 향한 열정과 타협하지 않는 의지, 테일러링 비법을 전한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루익 프리장의 시선은 작품처럼 보이는 고난도의 자수, 레이스, 트위드, 주얼 장식 버튼, 섬세한 장식으로 향한다.

쇼를 예고하는 티저 영상부터 오트 쿠튀르 컬렉션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컬렉션을 완성하는 아틀리에의 비하인드 신까지.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도 패션에 대한 환상 동화와 하우스의 고귀한 유산, 아름다움을 향해 가는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유하지 않아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얘기다.

패션 에디터
이예진
사진
COURTESY OF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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