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현 더블유 7월호 화보 & 인터뷰

W

이제야 안 보현

<이태원 클라쓰>의 그 비열한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마주 앉아 바라본 그의 눈은 선했다. 작품을 통해 안 보현과 대화를 나누며 서서히 알게 된 그는 꽤 다르다.

점프슈트는 이자벨 마랑, 목걸이는 크롬하츠, 스니커즈는 디올맨 제품.

190cm에 가까운 장신인 건 알았지만, 직접 보니 생각보다 키가 더 큰 것 같다. 생각보다?(웃음)

인터뷰할 때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묘한 기 싸움이 있는데 당신 기운이 더 센 느낌이어서. 아, 나는 그런 게 전혀 없 다. 가끔 눈빛이 매섭다는 말을 듣긴 하지만, 많이 유해졌다. 생각보다 선한 사람이다(웃음).

<이태원 클라쓰> 이후 MBC <카이로스> 출연을 확정하고, 각종 광고 촬영에 앰배서더 활동까지,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들었다. 드라마가 잘된 덕분인지 의외의 제안이 많았다. 아몬드브리즈, 굽네 닭가슴살, 트리플 블랙 면도기, 정관장 에너지 드링크, 보건복지부 등.

갑자기 찾아온 인기를 실감하나? 피트니스센터 외에는 주로 집에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밖에 돌아다닐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마스크를 쓰고 운동할 때 알아보는 사람이 한두 명 정도 있어서 신기했는데, 그 외에는 실감할 길이 없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늘어나고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늘어난 걸 보며 놀라긴 했다.

얼마나 늘었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원래 25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135만 명이나 된다. 유튜브 구독자는 4천 명에서 26만 명까지 늘었다.

스리 피스 슈트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

보현 인생의 전환점은 언제였을까? <이태원 클라쓰>에서 닭 목을 비틀었을 때? 아니면 <나혼자 산다>에서 세훈과 달고나 커피를 400번 휘저었을 때? <이태원 클라쓰>에서 몇 장면을 꼽아보자면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장면, 감옥에서 금발이 아닌 검정 머리로 처음 등장하는 장면. 나름의 준비를 했다. 극 초반 고등학생으로 나올 때는 일부러 살을 찌웠고, 점점 살을 빼면서 감정 변화를 보여주었다. 물론 <나혼자 산다>에서 96년식 올드카 ‘크롱이’를 공개한 것이나 <아는 형님>에서 버즈의 노래를 부른 것까지, 모든 게 운이 좋았지.

요즘 가장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뭔가?  “너 TV 틀면 나오더라.”(웃음)

“안보현, 뜨더니 변했네” 같은 말은 안 듣나? 그 반대다. “이 자식은 몇 달 만에 봐도 똑같네”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근데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좀 변하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체 변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고 있나? 아니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면서 살고 있나? 조심스러운 건 코로나19 때문인지 잘 지켜지고 있고(웃음). 선배들이 “공든 탑이다. 무너지지 않게 조심해라”라고 조언해주셔서 신중하게 행동하려고 한다. ‘이게 혹시 거품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거품이라면 꺼지지 않도록 더 열심히 저어야겠다’고 마음 고쳐먹기로 했다.

회색 더블 슈트는 던힐 제품.

그동안을 돌아보면 어떤가? 순탄한 인생이었나? 순탄하지 않았다. 법대 나왔다고 다 판사 되는 거 아니고 연극영화과 나왔다고 다 배우 되는 게 아니더라. 예전에 같이 모델 일을 하던 친구들은 모두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사는 거겠지. 나는 속된 말로 ‘존버’했다. 금전적,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그걸 버티다 보니 운이 따라 준 것 같다.

‘이렇게까지 힘들었다’ 싶은 시절이 있나? 예전에는 2+1 행사 상품, 다이소에서 1000원짜리 생필품을 샀다. 그렇다고 라면 하나로 세 끼를 먹을 정도로 힘든 건 아니었고(웃음). 지금 내 나이 서른셋. 맏아들인데 집에 용돈을 드릴 수 없었던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아는 형님>에서 <태양의 후예>가 끝나고도 건설 현장 등에서 계속 아르바이트했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다. 돈이 없어서 일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촬영 없이 쉬는 날에는 운동을 해야 하는데, 일하는 걸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월세 50만원, 통신비 10만원, 그 외의 생활비 20만원. 한 달에 80만~100만원 정도의 고정 비용이 필요했다. 배우라는 직업으로 한 달 내내 아르바이트할 수는 없기에 일용직을 택했다.

일용직 현장의 노하우가 있나? 큰 섀시 같은 건 보통 두 사람이 드는데, 난 팔이 길어서 그걸 혼자 옮겼다. 어르신 두 분이 하는 일을 혼자서 했지. 이삿짐센터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다들 내가 열심히 하는 걸 좋아하시더라(웃음).

베이지 컬러의 민소매 니트는 CMMN SWDN by 분더샵
제품.

베이지 컬러의 민소매 니트는 CMMN SWDN by 분더샵
제품.

<이태원 클라쓰>의 장근원 역할이 워낙 강렬해서 다음 캐릭터를 정할 때 고심했을 듯한데, <카이로스>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 <이태원 클라쓰>가 끝날 무렵, ‘미팅을 하고 싶다’는 연락과 함께 대본이 몇 개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카이로스>였다. 누군가는 연이어 악역을 하면 안 된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이제 멜로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크게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내가 언제부터 작품을 고르는 배우였나’ 싶었으니까. ‘나를 원하는 사람’과 작업하고 싶어서 <카이로스>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시놉시스도 물론 재미있었고, 박승우 감독님을 만나보니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이 남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포털 사이트에 <카이로스>를 검색해도 ‘타임 크로싱 판타지 스릴러’라는 설명 외에 다른 정보가 없다. 어떤 역할인지, 조금 힌트를 줄 수 없을까? 뭐라고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맡은 역할이 건설회사 과장이 라는 정도?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나 역시 아직 알고 있는 정보가 없다(웃음).

<이태원 클라쓰>에서 악에 받쳐서 연기를 할 때 눈에 핏줄까지 서더라. 특히 경찰서 앞에서 박새로이를 조롱하던 그 비열한 장면. 얼마나 연습해야 동공까지 떨릴 수 있나? 그냥 죽기 살기로 하는 거지. 배역을 맡은 순간부터는 그냥 그 사람이 된다. 나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장근원 그 자체인 거다. 장근원은 죄책감이 없는 인물이다. 그 입장이 되어보니 오히려 이 친구가 안타깝더라. 평생 한 여자만 좋아했고, 아버지에게 인정도 못 받고, 결국 박새로이에게 이길 수 없는 존재. 그만큼 몰입하니까 연민까지 느껴지는 악역이 된 것 아닐까?

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임한 <태양의 후예>와 <이태원 클라쓰>를 생각하면,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있는 듯하다. 작품이 나를 선택한 거지, 내가 작품을 보고 선택한 적은 없다.

구미가 당기는 역할 정도는 있겠지? 지금까지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 키가 큰 배우는 많다. 그 안에서 돋보이기 위해 내 몸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대역 없이 액션을 소화할 수 있도록 운동했다. 학창 시절 복싱을 했기에 운동 선수 역할, 액션 장면이 있는 배역을 주로 맡았다.

비즈 장식의 셔츠와 로브는 드리스반 노튼, 데님 팬츠는 발렌티노 by Boon The Shop 제품.

복싱 선수로 활약할 때는 부산광역시 대표에 전국 대회 금메달까지 획득할 정도로 유망주였다. 계속했다면 세계 적인 선수가 됐을까?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복싱은 정말 힘든 운동이다. 그때는 체육고등학교의 혜택 때문에 운동을 했다. 기숙사 생활에, 입상하면 상금까지 나오니까 집에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었거든.

그때의 훈련, 끈기와 깡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 데 큰 도움이 됐겠다. 물론이다. 액션 장면의 경우 ‘편집점’이라는 걸 살리기 위해서는 대역을 쓰기보다 직접 연기하는 게 제일 좋다. 촬영 현장에서도 육체적으로 힘들어본 적이 없다.

정두홍 무술 감독은 무술 지도로 활약하다 영화 <짝패>에서 주연으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안보현이 그런 인물의 계보를 잇는 차세대 액션 배우로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TV와 스크린에서나 뵙던 분이다(웃음). 요즘은 액션 배우라는 경계가 모호하다. 드라마 <The K2>의 지창욱 이나 <배가본드>의 이승기의 액션을 봐도 그렇고.

유튜브 채널 ‘브라보현’의 애청자다. 예전에는 직접 촬영하고 편집해서 서툴고 날것의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완성도가 높아 한 편의 예능을 보는 기분이다. 하지만 예전 느낌의 영상을 그리워하는 팬도 상당하던데. 영상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더라. 원래는 기획, 촬영, 편집 등 모든 걸 다 했는데 그렇게 하면 한 달에 한 개 업로드하기도 힘들다. 지금은 내가 기획하고, 촬영과 편집은 잘하는 친구들이 도와 주고 있다. 전문가에게 맡기니 퀄리티가 다르다. 시국이 나아지면 해보고 싶은 게 머릿속에 가득하다. 셀렙이나 비셀렙이 등장하는 콘텐츠도 생각 중이다.

‘브라보현’에서 남자 팬이 급증했다고 말한 걸 들었다. 이 유가 뭘까? 남자들이 좋아하는 걸 많이 하니까. 올드 카와 바이크를 타고, 드론을 날리고, 술도 좋아하니까. 이게 다 어린 나이에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나씩 이룬 거거든. 다이렉트 메시지가 온 걸 보면 “저도 올드 카 살 거예요”, “형처럼 오토바이로 전국 일주하고 싶어요” 같은 이야기가 많다.

누군가에게 롤모델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안보현은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오래 일하고 싶다. 나는 일할 때가 제일 좋다. 그동안 신세 진 사람들에게 보답하며 살아야지.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에서만 공개하는 안보현의 TMI는 없을까? 아주 사소한 것들. 커피를 못 마신다. 몸 관리 때문에 닭가슴살을 먹고 있지만 실제로는 별로 안 좋아한다. 미더덕을 먹을 때 뱉지 않고 삼킨다, 원래 먹어도 되는 거니까 (웃음). 담배 냄새를 싫어하고, 매운 거랑 뜨거운 걸 먹으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래서 비빔면도 잘 못 먹는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최진우
포토그래퍼
박종하
박한빛누리
스타일리스트
윤슬기
헤어
이일중
메이크업
안성희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