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게, 우즈 어느 노래에서 발견된 우즈는 ‘길 잃어, 매일 잃어’라고 말했다. 그런 우즈는 자주 웃고, 금세 울곤 한다. 너와 나는 파란 사랑을 한다고 속삭이는 우즈의 노래가 한여름에 나올 참이다. 파랗게, 우즈는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촬영장으로 오는 길에 브라질의 한여름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당신이 어린 시절을 브라질에서 보냈다고 들어서. 서울의 여름처럼 후텁지근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웃음)?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짐을 싸서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났다. 상파울루 남동쪽의 항구 도시 산투스에서 1년, 북서부 지역의 작은 촌마을 페나폴리스에서 1년을 보냈다. 산투스는 미국 LA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바다가 지척이고, 해 질 무렵엔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온다. 저녁 운동이 끝나면 친구들과 해변을 끼고 조깅하며 놀곤 했다.
뜨거운 도시에서의 주말은 주로 어떻게 흘렀나? 축구 센터에 널찍한 수영장이 3개나 있었다. 날이 좋으면 수영장에 떠 있는 나뭇잎과 벌레를 뜰채로 대충 걷어내고 해가 질 때까지 수영하며 하루를 보냈다. 망고나무에서 망고를 모조리 따와 헤엄치다 갈증이 나면 망고로 목을 축이고. 수영장 가장자리에 망고를 무덤처럼 쌓아놓고선, 덜 익은 망고가 있으면 소금을 듬뿍 쳐서 먹었다. 이건 진짜 먹어본 사람만 안다. 신 망고에 소금을 치면 놀랍도록 달아진다는 사실을!
브라질에서는 어떤 이름으로 불렸나? 유독 당신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다. 2016년 <쇼미더머니> 시즌 5에 출연했을 때엔 루이지, 작년 <프로듀스 X 101>에 참가했을 당시엔 본명인 조승연으로 불리다,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펼치는 지금은 우즈로 통한다. 하나 빠졌다. 영어 이름 에반도 있다(웃음). 막 브라질에 도착했을 땐 에반으로 불렸는데 어딘가 멋이 없어 보였다. 당시 브라질 친구들에게 현지 이름을 묻다가 우연찮게 지은 이름이 루이지뉴였다. 처음 이름을 듣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에반에서 루이지뉴로 바로 갈아탔다.
공을 기가 막히게 찰 것만 같은 이름이네. 그렇지(웃음). 이름 선정에 그 이유도 한몫했다.
평일엔 종일 훈련을 뛰고 주말엔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루를 보내고, 외로운 틈이 없었겠다. 그래도 향수병은 늘 달고 지냈던 것 같다. 매일 부모님이 그립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당시 한국을 추억할 만한 게 한국 가요밖에 없었는데, 현지 인터넷이 워낙 느려서 노래 한 곡 다운받으려면 꼬박 하루 동안 컴퓨터를 켜놓고 기다려야만 했다. 그때 매일같이 들은 노래가 신성우 선배님의 ‘서시’와 이승기 선배님의 ‘여행을 떠나요’다.
낯선 타국에서 ‘여행을 떠나요’를 선곡한 사실은 좀 의외다. 처음 ‘여행을 떠나요’를 들은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운동을 마치고 노을이 질 무렵이었는데 이어폰에서 노래가 흐르는 순간 왜 그렇게 설렜는지 모르겠다. 그때 처음으로 가수가 되겠다고 어렴풋이 마음먹은 것 같다. ‘지금 내가 느끼는 설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했지. 브라질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다시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는데, 그때부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틈틈이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필리핀 현지에서 전화 오디션을 치르고, 1차로 합격하면 부모님께 거짓말을 해서라도 한국에 들어와 오디션을 보는 식으로. 그렇게 오디션만 40~50번 봤을 거다.
오랜 유학 생활이 당신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무엇 하나라도 열린 마음을 갖고 바라보는 넓은 시야.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 비교적 어린 나이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춘기가 뚜렷하게 온 기억이 없다. 보통 사춘기는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면서 시작되는 거니까.
그렇게 들여다본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글쎄. 그때만 해도 굉장히 뚜렷했는데 지금은 또 잘 모르겠다. 3년 전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그때를 기점으로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다. <쇼미더머니>에 출연 했을 무렵이고,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컸다. 늘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내 앞에, 그리고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이기도 하다. 워낙 강박증에 시달리다 보니 오히려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성격을 기르게 된 것 같다. 자연스럽게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구태여 나를 무엇 하나로 정의 내리지 않게 된 것 같고. 이전에는 생각이 꼬리를 물다 뜬눈으로 하얗게 지새운 밤이 참 많았는데 이 무렵부터 잡생각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그런 당신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낸 곡이 있었나? ‘아무의미’가 그랬다. 그 무렵 일기에 쓴 내용을 음악적으로 풀어봤는데 이런 가사가 등장한다.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나를 괴롭히던 것들과 안녕한 채 따뜻하게 있고파.’ 힘들 때 꼭 힘을 내지 않아도 되고, 우울하고 싶은 날엔 우울하게 지내도 좋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우울하다는 사실 자체보다 ‘힘내’라는 말을 보태며 우울함을 극복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때로는 어떤 상태 그대로일 필요가 있지 않나.
힘내라는 말이 마치 나를 때리는 것처럼 다가오는 때가 있지. 그렇다. 돌이켜보면 ‘아무의미’를 발매하고 들은 피드백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 같다. 우연찮게 노래를 들었는데 위로를 받았다는 말, 자신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아 니어서 안심했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내가 위로를 얻은 기억이 있다. 내가 표현하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였다는 반응은 나에게 가장 큰 칭찬이자 음악을 하는 이유 같다.
한여름에 미니 앨범이 발매된다고 들었다. 앨범을 작업하며 가장 몰두한 고민은 뭔가? <프로듀스 X 101>에 참가했을 당시 팬들에게 많이 들은 말이 있다. 노래든 춤이든 프로듀싱이든 다양한 것을 두루두루 소화하는 모습이 너무 좋게 느껴졌다고. 이번 앨범에도 그런 모습을 잘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도 했다.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 팬, 가족, 스태프에겐 내가 그들의 자존심이자 얼굴이라는 것을.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부끄럽지 않은 앨범으로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엔 정말 몽땅 담았다. ‘저를 알아주세요’로 시작해서 ‘사실 저 이런 것도 할 줄 아는데?’로 흐르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요’까지(웃음).
개인적으로 ‘저를 알아주세요’를 말하는 곡이 가장 궁금하다. ‘noid’라는 곡이 있다. 제목 그대로 내가 가진 편집증을 말하는 곡인데, 이런 얘기를 한다. 나는 내가 편집증인 것을 안다고, 그러니 사람들이 내게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지금의 상태가 좋다고. 리드미컬하게 풀어낸 곡이다. 작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하고 올 초 팀이 해체되면서 느낀 감정을 푼 노래도 있다. 거기선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위로 올라가기 위해 포기하고,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많아진다고. 그럼에도 등 뒤에서 총이 날아오든 칼이 날아오든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가겠다고.
앞으로 가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때로 앞으로 가고자 하는 곳의 빛이 너무 밝아서 보고 싶지 않은 것마저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빛에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그래서 지금껏 내가 누려온 자유에 한계를 지워놓기로 했다. 술도 줄이고, 친구들도 웬만하면 집에서 만나고. 평범한 일상이랄 게 거의 없는 셈이지. 대신 한계 안에서는 마음껏 자유를 누리려고 한다. 이를테면 녹음실에 갈 때 굳이 운동화를 갖춰 신지 않고 슬리퍼를 끌고 나가는 것 정도? (웃음)
과거 발표한 곡을 살피면 유독 사랑을 말하는 노래가 많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 중에서도 음악을 통해 당신이 말하려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Pool’을 통해 사랑에 빠지는 순간 누구나 느끼는 아기자기한 감정을 말하다가도 ‘Different’에선 이별 후의 속 쓰린 감정을 내뱉으면서 사랑엔 이토록 많은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말했던 것 같다. 최근엔 연인이 본인들의 사랑을 가장 특별한 사랑이라고 믿는다는 것에 시선을 두고 곡을 쓰기도 했다. ‘파랗게’란 곡인데 이번 앨범에 수록됐다. 대부분의 사랑은 빨간빛으로 통하지만 특별한 우리는 어딘가 오묘하고 시크한 파란빛 사랑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가사에서 말하지. 우린 빨간 사랑이 아니라 파란 사랑을 한다고.
왠지 당신은 금방 웃고, 금방 우는 사람일 것 같다. 맞는 편이다. 감정적으로 쉽게 동요된다. ‘이렇게 슬픈데?’, ‘이게 안 슬프다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편이지(웃음). 내 음악에서도 이런 면이 느껴지지 않나? 천천히 들어보면 ‘어떤 것 같아?’, ‘슬프지 않아?’라는 말을 넌지시 건넨다. 이런 식의 감정 교류를 좋아한다. 친한 친구 중에 연기를 준비하는 친구가 있는데, 술자리를 가지면 백이면 백 감정에 대한 토론을 펼친다. 예를 들어 ‘슬픔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 같아?’라는 질문으로 토론을 시작하면 으레 슬픔은 어느 지점에서 시작하지만 가끔 변이가 있다는 진지한 맞장구로 토론을 깊게 틔우기도 하고….
인생을 살며 자주 다짐하곤 하지 않나. ‘올해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그런 결심에도 절대 바뀌지 않는 당신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려놓는 게 잘 안 된다. 사람마다 정해진 그릇이 있고, 뭔가를 채우려면 가지고 있던 것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가진 것을 지키면서 얻으려고만 하는 것 같다. 욕심이 많은 거지. 인간관계도 똑같이 느껴진다. 제주도 바닷가에서 모래를 손에 쥐고 놀다 문득 든 생각이 있다. 한순간 손에 쥐어졌다가 흩어지는 모래가 마치 인간관계와도 같다고. 삶에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마주치지만 누가 나를 아는지, 내가 누구를 안다고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살아가지 않나. 그래서 어느 날부턴가는 모래보다 돌멩이를 쥐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큼직한 돌멩이처럼 정말 나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을 잘 챙기면서 살아야겠다고. 반대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힘겹게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겠다고 한시름 놓으면서.
반대로 지금의 나이를 통과하며 달라진 것도 있을까? 좀 유연해진 것 같다. 원래는 덤프트럭 같은 성격이었다. 무슨 일이 닥치면 그대로 들이받는 패턴이었지. 내 생각이 거부당하면 그에 대한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포기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거부를 당하더라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납득하는 시간이 짧아진 것 같다.
아마 앞으론 더 짧아지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좀 슬프기도 하다. 슬픈데, 좀 멀리까지 내다봐서 이제는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실제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노력 중이다.
오래 준비한 앨범을 후련히 세상에 내놓을 즈음엔 한여름이 펼쳐져 있을 테다. 비로소 그때 어떤 시간을 보낼 것 같나? 제주 바다를 보고 크게 한숨을 내뱉고 싶다. 결코 안 비워지겠지만 마음의 그릇을 좀 비워놓고, 다시 돌아와선 가득 채우고 싶다. 참, 자주 가는 기사식당이 있다. 거기서 물회 한 사발도 들이켤 거다(웃음).
- 패션 에디터
- 김민지
- 피처 에디터
- 전여울
- 포토그래퍼
- 김희준
- 스타일리스트
- 김협
- 헤어
- 황승진
- 메이크업
- 이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