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xt big thing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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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말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Vol. 1)

머지않아 우리는 어떤 문화적 환경에 둘러싸여 있을까? 지금의 고민은 어떤 이야기를 향해 나아갈까? 음악과 공연, 영화, 방송, OTTIT, 아트와 디자인, 출판, 음식, 여행 등 다양한 업계에 몸담은 60명이 가까운 미래를 염두에 둔 각자의 화두를 꼽았다.

평범한 시민들의 세계에 전염병이라는 낯선 언어가 침입한 지 약 3개월이 흘렀다. 봉준호 감독이 몇 번이나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르는 비현실적 장면과 마스크를 손에 넣기 위해 아침부터 긴 줄을 서는 비현실적 장면이 같은 달에 시간차를 두고 벌어졌다. 생애 처음 겪는 이 낙차 속에서, ‘문화’를 예의주시하며 사는 잡지인은 관련 산업이 맞이한 갖가지 사정과 직간접적으로 운명을 나눴다. 외국에 본사를 둔 패션 브랜드, 멋지고 즐거운 일을 함께 도모하는 엔터테인먼트, 때마다 감상과 해석의 여운을 안기는 아트 페어, 이제는 잡지라는 지면과 공동운명체인 디지털에 이르기까지, 잡지가 매달 얽히지 않은 분야란 찾기 힘들었다. 문화계 각 분야의 베테랑에게 지금의 관심사를 반영한 ‘가까운 미래’에 대해 물은 이 기획은 불안과 비관이 세상을 잠식해버릴 듯한 기분이 들 즈음 출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같은 태도를 유지하며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과 보다 희망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날카롭게 트렌드를 예측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사로잡힌 사적인 화두를 꺼내놓았다. 최근 강력한 키워드가 된 ‘온라인 콘서트’나 ‘OTT’(넷플릭스, 왓챠처럼 인터넷을 통해 영상을 보는 서비스)를 두고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든 그 바탕에는 그들이 하는 ‘일’이 있다. <더블유>가 찾은 60개의 주제는 가까운 미래 이곳의 문화적 지형도와 상당히 긴밀할 것이다.

Music & Stage

레코드라는 희망

지난해 11월 문화역 서울 284에서 열린 제9회 ‘서울레코드페어’는 페어 시작 이래 처음으로 순이익이 발생했다. 물론 그 자체보다는 이틀간 3만 명 가까운 방문객이 찾아왔기에 가능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참가자 중에는 레코드 검색과 판매로 유명한 디스콕스를 비롯해 해외 레코드 관계자도 여럿 있었다. 그들이 깜짝 놀란 점은 페어를 찾은 남녀노소의 다양한 구색과 화기애애한 풍경이다. 해외 레코드 행사에서는 대개 중년의 남성 방문객과 한정반 LP 가격을 두고 거칠게 흥정하는 모습 등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바이닐 레코드의 부활을 아날로그 트렌드나 향수 어린 시선으로 다루던 시절의 이야기는 잊어도 좋을 것 같다. 바이닐은 더 이상 과거를 추억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에겐 신선한 물리적 음반으로, 꼭 마니아라고 할 수 없는 감상자에겐 머천다이즈와 같은 친숙한 대상으로도 자리한다. 설사 오프라인 행사가 불가능한 상황이 오더라도 이제 판매자와 구매자 간에 어느 정도 형성된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할 것 같다. 이 모든 일이 국내 음악계에서는 드물게 희망적인 팩트다. – 김영혁(김밥레코즈 대표)

새로운 공연 엔터테인먼트의 탄생

몇 해 전, 아이돌 그룹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서 홀로그램을 이용해 동시에 콘서트를 연다는 발상을 이야기하면 허황하다고들 했다. 특수 촬영된 콘서트를 극장에 모여서 영상으로 관람한다고 하면 우스꽝스럽다고들 했다. 현장에서 아티스트와 관중이 직접 호흡하지 않는다면 DVD를 보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는 다르다. 콘서트는 물론 팬 사인회까지 온라인으로 하니 가상화되지 않는 현장이란 게 있나 싶을 정도다. 물론 일시적인 특수다. 원거리 연애의 궁상과 로맨틱 사이에 걸친 듯한 구석도 분명 있다. 그러나 ‘현장’은 과대평가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의외로, ‘덜 라이브스러운’ 공연이라도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방탄소년단 정도 되면 투어 영상을 극장에서 개봉해버리지 않았나. 단지 코로나19가 온라인 라이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됐을 뿐이다. 쌍방향 소통성이나 사전 촬영과 라이브를 뒤섞는 새로운 스펙터클 등 온라인 라이브만의 강점도 추가되기 시작했다. 대중은 공연을 즐기는 새로운 경험을 일단 맛보았다. 기술도, 수요도, 수익성도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 전염병이 지나가고 나면 ‘가상’의 콘서트에서 어떤 점을 버리고 어떤 점을 챙길지 결론이 날 것이다. 그때, 현장 공연과 DVD 정도로 대변되던 공연 콘텐츠 시장의 얼굴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 미묘(<아이돌로지> 편집장)

진격의 음악 구독 시장

음악 콘텐츠 시장은 국내 여러 콘텐츠 산업 중 유료화 및 정기구독 모델이 가장 빠르게 정착한 시장이다. 멜론, 벅스, 지니뮤직, 네이버뮤직, 애플뮤직, 플로, 그리고 유튜브와 유튜브 뮤직까지. 감상자가 정기구독 요금을 내고 음악을 스트리밍하는 문화가 국내에 이미 자리 잡고 있지만, 이 구독 현상은 앞으로 더욱 성장세를 이어가지 않을까 싶다. 디지털 음원은 세상에 전염병이 창궐해도 어디서든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구독을 제공하는 업체가 나름의 변화와 진화를 꾀하며 상품을 내놓기 때문이다. KTSeezn이나 유튜브처럼 오디오와 비디오가 결합한 형태, 그리고 스마트폰 기기와 통신사에 따라 제공되는 음악 플랫폼 이용권 등이 그 예다. 아마존이 연회비를 내면 배송비 혜택과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라임 서비스 토탈 패키지를 만든 것처럼, 구독 시장의 프리미엄 패키지가 늘어날 수도 있다. 여기에 스포티파이도 결국 한국에 진출하지 않을까? – 김효섭(유니버설 뮤직 미디어 마케팅 디렉터)

케이팝 팬덤의 진화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케이팝이 모은 가장 큰 자산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언어, 인종, 국경도 초월한 불특정 다수로 구성된 ‘팬덤’은 케이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런 이들이 세분화, 개별화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홍익인간 정신으로 케이팝 전반을 두루두루 사랑하던 해외 팬덤은, ‘Stan’이라는 단어로 자신들의 명확한 ‘최애’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확고해진 취향의 연대는 그들이 지지하는 가수에게 보다 많은 도전과 기회를 제공했다. 코로나19 강타로 대면 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진 세상에서 팬덤과 콘텐츠가 만든 막강한 시너지는 온라인 유료 콘서트와 영상 통화 팬 사인회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내며 맷집을 과시했다. 이 커다란 수혜의 우산 아래 걸 그룹이 자리한 건 무척 고무적이다. 일반적으로 보이 그룹에 비해 팬덤 형성이 어려운 것으로 평가받으며 기획다운 기획 하나 받아보기 힘들었던 이들은 아이즈원(화제성), (여자)아이들(프로듀싱 능력), 이달의 소녀(강력한 세계관) 등 자신만의 매력으로 해외 팬층을 확실히 공략하며 약진하기 시작했다. 든든한 팬덤을 등에 업은 이들은 그동안 보이 그룹에만 허락된다 여겨진 거대한 세계관과 틀을 깬 콘셉트에 과감히 도전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 김윤하(음악 칼럼니스트)

AI가 음악 창작자와 만난다면

AI는 많은 곳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로봇이 만든 음악이나 미술 같은 창작물을 예술로 분류할 수 있는지는 논쟁거리다. 그 창작물이 당장에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건 AI 기술이 많은 예술가의 창작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장르 구분까지 할 수 있게 된 AI가 장르에 맞는 특정 질감의 소스와 이펙터를 창작자에게 추천한다면 어떨까? 혹은 AI가 사용자의 패턴과 취향을 분석해서 그 사람에게 맞는 새로운 장르까지 추천해준다면? 창작자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데도 도움 되고, 감상자는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큰 규모로 성장한 음악 샘플 시장 역시 AI를 활용하면 창작자에게 최적화된 새로운 방식의 샘플 팩을 개발할 수 있겠다. 그러면 상황에 따라 필요한 리듬과 소스를 만드는 과정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미 각종 음악 감상 플랫폼에 큐레이션을 위한 AI 기술이 적용되고 있으니 그리 먼 미래의 일은 아닐 것 같다 – FRNK (DJ, 프로듀서)

명상과 영성 탐구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폰을 들어 밤사이 업데이트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피드를 확인한다. 하루에수십 번씩, 무의식적으로 피드를 스크롤한다. 매일 이렇게 정보와 콘텐츠에 정신이 이끌려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원인인지, 언젠가부터 머릿속이 온갖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로는 조여오는 듯한 기분이 반복되며 스트레스가 쌓였다.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갔고, 좋은 작업물이 나올 리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명상에 도움이 되는 1시간짜리 사운드 영상을 접했다. 그걸 틀어놓고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해도 마음이 진정되는 경험을 한 이후, 정신과 마음의 안정에 이로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콘텐츠마저 잡다한 정보가 넘쳐나는 유튜브에서 찾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만. 많은 사람이 온갖 인풋이 넘쳐나는 일상에서 정신적으로 지쳐있다고 생각한다. 그 그로기 상태를 정화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나는 명성과 영성 수련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내가 처한 상황의 한계를 넘어 어떤 개념을 넓히는 정신적 운동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덕분에 작업을 할 때에도 더욱 자유로운 관점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 김현지(BANA 아트 디렉터

자생 가능한 한국 힙합 신

힙합 오디션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수많은 논쟁을 야기한 <쇼미더머니>는, 비록 9번째 시즌이 예정돼 있다고는 하나 전에 비해 기대치가 낮아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신을 확장시키고 실력 있는 신인을 발굴해냈다지만, 방송은 그 이후를 책임져주지 않았다. 그에 따라 생겨난 워너비들을 위한 무대는 좁아졌고, 관심은 축소되었다. 이들을 위해 신의 본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모습이 고무적이다. AOMG는 새 멤버 영입을 위해 주체적으로 오디션을 진행했고(<사인히어>), 수퍼비도 ‘수퍼비의 랩학원’ 이라는 유튜브 콘텐츠로 신인을 발굴하고 지도했다. 꼭 신인 영입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VMC의 ‘Boiling Point’, 하이라이트의 팔로알토와 허클베리피의 ‘P2P’ 등 좋은 예들은 꽤 있다. 아직 이런 움직임이 가시적인 결과물을 많이 만들어낸 건 아니지만, 힙합 신에 의한 힙합 신의 성장, 자생적인 환경을 위한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더 콰이엇은 ‘우리는 결국 모두 홍대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금의환향을 위해서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 다른 말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전통이 생겨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한국 힙합 신의 미래이고, 조금 낙관적으로는 미래 그 자체이다. – 댄스디(<힙합 LE> 필진)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연 기획사의 정체성

3월에 잡혔던 미카를 시작으로 내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다. 진정세를 바라며 준비하던 5월 ‘서울재즈페스티벌’도 결국 하반기로 옮겼다. 국내 아티스트의 경우 공연을 위해 움직이는 자신들만의 팀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공연 기획사가 국내 아티스트까지 보유한 경우에는 네이버 V 라이브 유료 결제나 실시간 라이브 공연을 꾀하기에 용이하다. 그러나 국내에서 해외 아티스트의 공연을 기획하는 회사는 아티스트의 물리적 이동이 전제된 시스템을 기본으로 돌아간다. 그게 힘들어진 상황에서는 온라인 콘서트도 마냥 탁월한 대안만은 아니다. 아티스트가 ‘방구석’이나 작은 스튜디오에서 어쿠스틱한 소규모 공연을 한다면, 무대의 전문적인 설비와 세팅을 책임지던 기획사는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아티스트의 몸값은 그대로라면? 설사 아티스트를 국내로 데려올 수 있게 되어도, 2주 자가 격리 후 공연장에 서야 하나? 공연 시장에서 변화에 대응한다는 건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서로가 맞물려 있는 구조적인 문제다. 직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도전할까, 코딩을 배울까 하는 이야길 한다. 그 속에서 근미래를 논하자니, 현재로선 하반기로 연기한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예의 소문난 축제답게, 그리고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지 못하는 한, 짜이지 않은 각본에서 나오는 순간과 에너지를 즐기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관객들이 무대를 향해 단체로 종이 비행기를 날리는 순간의 전율, 공연 후 아티스트와 관객 모두에게 여진처럼 남는 흥분감 같은 건 온라인과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해외 아티스트들이 그토록 애정하는 한국인의 ‘떼창’과 에너지를 즐길 날이 곧 올까?

– 김지예(프라이빗 커브 제너럴 매니저)

지속 가능한 ‘덕질’을 위한 디지털 스킨십

‘직접 대면’ 중심으로 돌아가던 기존의 음악 산업에서 ‘디지털 스킨십’은 하나의 보조제에 불과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쓴 현재, 음악 산업은 디지털 스킨십 그 자체만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규모 월드 투어의 개최가 가로막힌 지금 SM엔터테인먼트는 ‘비욘드 라이브’를 통해 온라인 전용 유료 콘서트를 선보였으며, 1회 공연을 통해 약 25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새로운 수익 모델을 모색했다. 애플의 화상 채팅 서비스 ‘페이스타임’을 통해 얼굴을 보며 진행하는 ‘랜선 팬 사인회’도 이미 적지 않게 열리고 있다. 래퍼 트래비스 스캇은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를 통해 가상 콘서트를 기획했고, 일본에서는 이미 입장료를 지불해야 볼 수 있는 스트리밍 라이브 서비스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본래 ‘덕질’은 끝이 없는 법이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잠잠해지더라도 새로 열린 디지털 스킨십의 세계는 계속해서 우리 곁을 간질일 것이다. – 하박국(영기획 대표)

비대면 뮤지컬 공연이 쏘아 올린 선순환

코로나19 이전부터, 공연계에선 비대면 공연에 대한 담론이 꽤 풍성했다. 영국 국립 극장은 2009년부터 생방송으로 제작한 연극을 위성을 통해 전 세계에 송출하는 ‘내셔널 시어터 라이브’를 운영했고, 이의 바통을 이어받아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CGV는 국내 우수 창작 초연작을 영상화하는 ‘아르코 라이브’를 기획했다. 동시에 여러 지역에서 공연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뮤지컬 역시 언택트 라이브로 진행되는 추세다.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가볍고, 다양한 루트로 마케팅이 가능한 언택트 라이브 특성상 스타 배우가 출연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뮤지컬을 관람한 신규 진입 관객이 역으로 라이브 시어터로 편입되는 선순환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Z세대로 통칭되는 새로운 세대를 관객으로 맞이한 뮤지컬은 그들의 기호에 부응해 ‘대서사’보다는 ‘미시서사’에 초점을 맞춘 콘텐츠를 제공하는 등 뮤지컬 래퍼토리의 확장과 변화도 기대할 수 있겠다. – 송한샘(쇼노트 부사장)

래퍼라는 직업의 기대 수명에 관하여

나이 들어서도 현역 타이틀을 유지하기란 어느 직업이든 쉬운 일이 아니지만, 래퍼는 더더욱 그렇다. 특정 연령대의 래퍼를 ‘1세대’, ‘아재’ 등의 수식 속에 한쪽으로 몰아버리는 현상은 예전부터 있었다. 이제는 등장하는 래퍼의 나이가 갈수록 어려지고, 그들을 추앙하는 팬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래퍼는 몇 살까지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을까? 최근 2002년생 래퍼 유시온이 수퍼비의 레이블 영앤리치 레코즈에 합류했다. 하온은 2000년생이다. 이 가운데 30대 중반의 JJK와 베이식은 ‘알잖아’라는 곡에서 육아와 커리어 사이의 간극에 처한 상황을 얘기한다. 이를 보면 어림잡아 30대 초반까지, 대략 스포츠 선수의 수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 이상 나이가 들어도 현역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4월 종영한 Mnet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에 출연한 래퍼들의 평균 연령은 41.3세다. 유튜브를 비롯한 SNS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래퍼도 있지만, 좋은 정규 앨범을 통해서, 혹은 뛰어난 신인을 발굴하고 함께 호흡하며 동시성을 유지하는 래퍼도 있다. 나이가 들어도 좋은 어른, 좋은 래퍼가 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래퍼의 수명이 좀 짧게 느껴진다. – 블록(음악 칼럼니스트)

MEDIA CONTENT, OTT, IT 

‘심심함’의 종말 그 이후

공룡들은 뭘 먹고 살았는지 모르지만, 예능 종사자가 대중의 심심함을 먹이로 삼아왔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그 먹이는 급격히 자취를 감추고 있고, 막상 예능 종사자의 숫자는 늘어났다. 실로 지질학적 멸종의 풍경이다. ‘심심한데 뭐 없나?’라는 질문에 대한 고전적인 해답이 ‘예능’이었다. TV를 켜고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전후 맥락을 몰라도 곧 이해가 가능한, 적당히 궁금한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 평일 밤과 주말 오후의 평범한 휴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스스로를 돌이켜봐도 ‘심심하다’는 생각을 언제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제 우리가 심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순간은, 화장실에서 급히 변기에 앉고 보니 스마트폰 배터리가 나갔을 때 정도일 것이다. 사람들은 더는 불특정하고 보편적인 재미에 이끌리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사람에겐 ‘검색과 그 결과’처럼 자신으로부터 유래한 콘텐츠가 훨씬 재밌다. 명확한 팬덤, 장르적 취향, 계속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스토리 라인. 어떤 것이든 분명한 시청 동기가 필요하다. 방송 예능, 특히 대규모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는 범용 예능의 앞길은 매우 험난해 보인다. – 유호진(CJ ENM 피디)

한국 텐트폴 영화의 귀환

영화 관객 2억 명 시대를 열고 호황을 누리던 한국 영화계가 위기에 봉착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수익은 1/10 수준으로 떨어졌다. 관객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서비스를 즐기고 있지만, 영화관(영화 산업 전체 매출의 80%)이 무너지면 영화 산업이 붕괴되는 도미노 현상을 막을 수 없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가 개봉 연기로 모두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한국 영화의 부활이다. 올여름 대규모 제작비를 들인 텐트폴 영화의 책무는 다름 아닌 한국 영화 산업을 구하는 것이다. <부산행>을 잇는 연상호 감독의 좀비 영화 <반도>, 윤제균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영웅>, 조성희 감독의 SF 영화 <승리호> 등이 출격 준비를 마친 상태다. 다양한 장르적 재미와 화젯거리를 지닌 영화들이 극장으로 관객을 불러모아야 영화계는 겨우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영화 산업의 중심인 극장이 살아야 다른 플랫폼의 동반 성장이 가능하다. – 전종혁(영화 평론가)

다층적 서사,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대중화가 이뤄질 것이다. 하나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OSMU(원 소스 멀티 유즈)와 달리,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통합적인 하 나의 이야기가 여러 매체와 포맷을 통해 독립적이며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을 말한다. 마블 코믹스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드라마 등으로 확장하며 다층적인 서사로 전 세계 팬들을 매혹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 영화, 드라마 업계에서도 최근 단순히 원작 소설이나 웹툰 등을 OSMU의 방식으로 영상화하는 데에서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시도하려는 노력이 보이고, 이러한 시도가 더욱 늘어날 거라고 예상한다. 제작비 200억원대의 대작 <승리호>는 개봉에 앞서 프리퀄 격의 웹툰을 공개한 뒤, 같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게임을 출시한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쓴 tvN 드라마 <방법>은 후속편을 영화로 제작할 계획이다. 이처럼 콘텐츠를 소비하는 플랫폼의 확장으로, 매체를 가로지르는 스토리텔링의 사례는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 장영엽(<씨네21> 편집장)

극장이라는 일상의 회복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가 큰 도전이 되어버린 현재, 영화업계 종사자들은 관객에게 극장에서 일상을 향유하던 그 시절을 어떻게 다시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단지 캠페인이나 광고 차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떠난 문제다. 안전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부터 극장에서 감상할 때 가치가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까지, 작품의 질과 작품을 향유하는 공간에 대한 고민을 모두 포함한 일이다. 혹자는 넷플릭스가 현 상황의 답안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서비스는 거대 자본의 인 앤 아웃에 대한 답안이 될지는 몰라도,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문화 향유의 지점에서는 적절한 답이 아닐 것이다. 4DX나 스크린X, IMAX 등 엔터테이닝한 스크린 체험을 포기할 수 있는가? 모두가 훌쩍거리며 눈물을 참거나 긴장감을 느끼는 순간의 묘한 기류를 포기할 수 있는가? 모든 영화감독과 영화 관계자는 자신의 작품을 수백 명의 관객이 함께 스크린을 통해 감상하고, 울고 웃고 감동하
기를 고대한다. 전 세계의 마켓 테스트 국가인 한국 영화계를 국내외 모두가 지켜볼 것이다. – 이나리(영화 홍보 마케팅사 호호호비치 대표)

영화제의 페스티벌화

올해는 취소됐지만, 매년 3월 텍사스에서 열리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재밌는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 콘퍼런스이자 음악 페스티벌과 영화제가 혼합된 그곳은 1년에 한 번 관련 업계인들이 모여 트렌드를 정리하고, 네트워크를 다지며, 엔터테이닝한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는 자리다. ‘영화제의 미래’를 떠올리면 SXSW와 같은 맥락의 축제적인 시공간으로 향하는 게 내실과 재미를 두루 갖추는 길이라고 본다. 포럼, 아카데미, 마켓을 통해 업계 종사자 간의 교류를 다지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과 지역 사회 모두의 즐거움을 충족하는 영화제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018년부터 관객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한 ‘커뮤니티 비프(BIFF)’를 만들었다. ‘국민 프로그래머’라는 개념으로 상영작 선정 단계에서부터 관객의 참여를 권장하고, 영화 상영 후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GV 대신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올 10월이면 25주년을 맞는다. 5월의 칸영화제는 불발됐고, 아직 변수가 많이 남았지만, 영화제가 관객이라는 개개인과 맞물리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조원희(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 BIFF 공동운영위원장/예술감독)

드라마 속 여성상 업데이트

‘아쉬운 대로 주말에 선본 남자와 잘해보려 했는데. 슬슬 무너진 바디라인의 각을 세울 때가 된 것일까?’ 이 구태의연한 구절은 국정원에서 전설의 블랙요원으로 불리던 백찬미(최강희)가 현장에 복귀하는 SBS 드라마 <굿 캐스팅> 홈페이지에서 따왔다. 임예은(유인영)은 걸 그룹 못지않은 동안 외모를 가진 미혼모, 황미순(김지영)은 핫바디가 ‘헉바디’가 된 생계형 아줌마 요원이란다. 여성 캐릭터의 활약에 앞서 우선 외모 평가부터 시작하는 드라마의 표본 같다. 하지만 실제 방영분에서는 한물간 여성 요원들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전개 대신, 극의 초반부터 세 명 각자의 우수한 능력치를 각인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밟는다. 애초 ‘미스 캐스팅’이었던 제목이 제작 과정에서 바뀌었다더니, 제목만 뒤집은 게 아니었다. 그간 수많은 여성 주인공이 ‘다른 여자들과 다름’을 증명해야 했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 제목처럼 천 번을 ‘아줌마’로 불려야 간신히 능력을 보일 기회를 얻는 드라마를 견뎌줄 인내심도 바닥났다. MBC <하이에나>, SBS <아무도 모른다> 등 여성 주연 드라마가 좋은 반응을 얻는 즈음이다. 앞으로 1~2년. 여성 주인공의 활약을 ‘민폐’와 ‘개념’으로 가른 오랜 사회적 편견과 그 위에서 작동해온 낡은 틀을 부수는 시기라고 본다. – 유선주(드라마 칼럼니스트)

달라진 공간의 콘텐츠 경험

최근 2년간 몰아친 OTT 열풍으로 미디어 산업은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 전쟁이 한창이다.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디지털과 글로벌 키워드는 더욱 강력해졌고, 여기에 ‘커넥티드’ 경험을 유지하기 위한 테크놀로지 열풍이 가세했다. 과거로의 회복을 기대하기보다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집’은 회사, 트레이닝 센터, 극장 등으로 무한 변신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자 플랫폼으로 등극했다. 모바일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한물갔다고 취급받던 TV는 새로운 가치를 확보할 것이다. 사람들은 멀티플렉스 공간에서 먹던 팝콘을 집에서 먹으며, 극장에서는 널찍한 의자와 칸막이를 찾게 될지 모른다. 철저하게 ‘부가’ 시장이었던 디지털 배급 시장은 극장 이상의 위상을 갖게 됐다. 북미에서는 부가 시장만으로 1억 달러 이상의 손익분기점을 달성한 영화 <트롤>이 등장했다. 줄어든 극장 소비 이상으로 부가 시장을 키울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고도 볼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즐기던 콘텐츠를 ‘집에서 안전하게’ 즐기면서 생겨난 새로운 가치,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콘텐츠 가치를 높여줄 플랫폼과 포맷과 기술. 지금 가장 큰 관심사이자 전력 질주할 방향이다. – 박준경(NEW 브랜드사업부 & NEW ID 대표)

변화한 현재를 품을 미래의 드라마

드라마 기획 및 제작 전문 스튜디오에 몸담은 이상, 늘 함께 가는 고민을 심플하게 말하면 이렇다. ‘어떤 기획을 생산할 것인가.’ 그 고민은 요즘처럼 겪어본 적 없는 비상 상황에서 더욱 짙어진다. 드라마는 우리 생활과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경제, 문화, 사회상 등이 주제와 소재는 물론 지나가는 대사 하나에도 반영되는 게 드라마다. 이미 시장에서는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드라마 기획이 나오고 있고, 기이한 현상을 담은 sf들도 기획 중이다. 영화에서나 보던 외계인과 ufo가 출연한다거나, 한국이라는 나라가 망했거나 지구가 멸망한 이후를 배경 삼은 작품이 될지 모르겠다. ‘집콕’하며 편안히 볼 수 있는 성격의 드라마, 반대로 가뜩이나 힘들고 답답한 상황이니 좀 더 자극적이고 빠른 속도를 원하는 심리에 맞춘 드라마가 늘어날 수 있다. 드라마는 시장 구조의 ‘현재’에도 긴밀하게 반응한다. OTT와 같은 다양한 플랫폼이 성장하면 그 형식에 맞춘 드라마가 생산될 수밖에 없고, Tv를 많이 보지 않는 10대와 20대의 성향이 시장에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예전에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진 ‘모바일 드라마’가 여러 형태로 재등장할 수 있다. 너무나 많은 드라마가 기획 개발되어 ‘소재 고갈’을 토로 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생활도, 시장 환경도 급격히 변화한 요즘이라면 머지않아 조금은 달라진 드라마를 자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 이혜영(스튜디오 드래곤 CP)

‘움직이는 스크린’의 힘찬 퍼레이드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지금까지 엔터테인먼트 용 콘텐츠는 극장과 TV, PC라는 ‘고정된 스크린’을 중심으로 포맷과 장르, 내용이 만들어졌다. 각 산업을 유지한 주요 수익 모델은 티켓과 광고였 다. 하지만 월 구독료를 내는 대신 콘텐츠를 무제한 감상하고, 광고 또한 시청할 필요가 없는 OTT 의 등장은 기존 시장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움직이는 스크린’이 ‘고정된 스크린’을 대체 한 것이다. OTT는 이종 콘텐츠 간의 융합, 결합까지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사람들의 여가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이종 콘텐츠 간의 수평 결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영화로 시작한 할리우드가 자금력과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TV로 영역을 확장한 것처럼, 이제는 극장과 TV를 넘어 OTT를 아우르는 콘텐츠 제작이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스트리밍을 통한 게임 서비스가 상용화되면서 기술적 기반은 갖춰졌다. 한편 과거 TV의 등장으로 극장과 라디오가 사라질 거라는 우려가 무색해졌듯이, 매체 특성에 맞는 콘텐츠는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갖는다. OTT 시대에는 경쟁력 있는 스토리나 매력적인 세계관을 공유하는 다층적인 콘텐츠가 영상, 게임, 만화, 도서 등 각각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유형으로 생산될 것이다. – 김요한(왓챠 콘텐츠 개발 이사)

머신 러닝과 예술 관람의 새 패러다임

20세기 사진과 영상의 등장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에 근원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00여 년이 흐른 지금은 AI의 한 분야인 머신 러닝 기술이 예술 관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구글 아트 앤 컬처’는 전 세계 박물관 소장품과 전시를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더 나아가 문화 예술과 AI를 결합하는 여러 실험을 하는 중이다. 예를 들어 구글 아트 앤 컬처에 접속해 특정 색깔을 검색하면 수많은 미술관 소장품 중 해당 색감이 포함된 작품을 찾아주는 ‘아트 팔레트’ 기능이 있는데, 이 툴을 통해서 반 고흐의 작품과 17세기 한국 초상화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것도 가능하다. 방대한 양의 작품 아카이브와 전시 전경을 인터랙티브하게 시각화, 체계화하는 머신 러닝 기술을 통해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면, 앞으로는 전 세계 박물관과 소장품을 비교하며 의외의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지몬 라인(Simon Rein, 구글 아트 앤 컬처 프로그램 매니저)

AI가 배우를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의 게스트로 이세돌 9단을 모신 적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인간과 알파고의 대결은 이미 끝난 이야기다. 인간이 몇 점 얻고 게임을 시작하면 모를까, 바둑으로는 AI를 이길 수 없다는 것. 바둑은 수와 논리의 영역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감정의 영역은? 전 세계 수많은 인구의 감정 표현을 학습한 AI는 인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딥러닝에 바둑의 기본 원리만 알려주면 훌륭한 기사들의 기보나 레퍼런스 없이도 자가 학습을 한다니, 어쩌면 AI는 레퍼런스 삼을 인간마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사람의 미세한 표정, 근육의 쓰임, 눈빛, 목소리 같은 바탕이 굳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기까지는 물론 시간과 비용 문제가 있겠지만, 그때가 되면 배우의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BBC 드라마 <이어즈&이어즈>를 보면서도 조금 무서움을 느꼈다. 정말 그런 날이 올 것 같아서다. 창작은 인간의 영역이고 배우라는 직업은 대체될 수 없다고 여겼는데, 문득 ‘대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이동욱(배우)

인간다운 기술을 위한 디지털 윤리

IT 기술은 숨 가쁘게 발전해왔다. 반도체는 18개 월마다 회로 집적도가 두 배로 늘어나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메시지, 영상 통화로 모두가 24시간 하나로 연결된다. 하지만 세상을 모두 담아내는 이 기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성을 해치고 있다. 세상을 들썩이게 한 N번방 사건을 비롯해 사이버 불링, 몰카 등 새로운 범죄는 온라인, 클라우드,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최신 기술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세상은 기술을 올바르게 쓰는 방법 대신 어두운 부분을 감추기에 바빴고, 기성세대가 몰라서 방치하는 사이에 디지털 세상은 원치 않는 진화를 해왔다. 보안과 포렌식 등 기술적인 장치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성에 기반한 올바른 기술 이용을 담은 디지털 윤리는 모든 기술의 주춧돌이다. 특히 데이터와 AI 기술 중심의 디지털 시대에는 더 ‘인간다운 기술’이 주목받을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목표는 사람을 도와 더 나은 세상을 만드 는 데에 있지만, 사람들의 대화에서 배워 차별과 욕설을 내뱉는 챗봇처럼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악의를 품고 사람을 괴롭히는 AI 기술이 개발될 수도 있다. 이를 기술과 법 만으로 막아낼 수는 없다. 기술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기본적인 윤리와 이를 바탕으로 개발된 기술만이 뿌리내려야 한다. 내로라하는 기술 기업들이 인공지능 윤리 강령을 세우고 전문가를 키우는 이유다. – 최호섭(IT 칼럼니스트)

바이러스가 앞당긴 파생 산업

코로나19 이후 더 막강한 바이러스가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출현할 수 있다는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학습 효과로 인해 허둥대지 않고 대처하기 위한 온갖 산업이 발달하지 않을까? 우선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 바이러스에 대처할 수 있는 온갖 백신, 검사 키트, 마스크 등의 의료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리라 짐작한다. 바이러스에 걸린 환자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병원으로 옮길 수 있는 시스템부터, 시끄럽지 않고 거주성이 좋은 음압병실, 감염병 양성반응자를 수용하기 좋은 새로운 형태의 숙소 및 시설 등 수많은 관련 산업도 번창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더 유용하게 다룰 새로운 시스템도 출현할 것이다. 아니, 나와야 한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컴퓨터 산업에 해가 되기는커녕 보안 산업을 키웠다. 그런 것처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의학 산업을 비롯해 각종 파생 산업을 키우는 역할을 할 것이다. – 이영준(기계 비평가)

가상 대면 기술의 상용화 여부

5월 중순,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트위터가 ‘원하는 직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무기한 재택근무를 이어갈 수 있다’고 발표했다. 비슷한 시기,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지방 정부의 셧다운 명령 지속에 불만을 품고 본사를 다른 도시로 옮기겠다고 밝힌 일과 대조적이다. 소위 ‘언택트’라 불리는 가상 대면 기술은 팬데믹을 계기로 중요한 화두가 됐다. 이 기술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은 이것이 ‘단순한 최적화’를 위한 길일 뿐이라고 말한다. 긍정적인 입장 측은, 몸은 떨어져 있어도 화상 등으로 얼굴을 보며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기 상황시 ‘적시 공급’이 가능한 기술이라고 한다. 그 어느 쪽 입장에 서있든 분명한 건 코로나19가 일으킨 사태가 앞으로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는 점이다. 기업들의 재난 대책 매뉴얼은 바로 이런 위기 상황에서 가동된다. 재택 근무가 일상인 나날이 지속되거나 반복되면, ‘언택트’한 상태로도 업무를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가 판가름 날 것이다. 평상시 위기 관리에 투자할 수 있는 회사는 그만큼 살아남을 수 있다. 영화에서처럼 백신을 투약한 사람에게만 표식이 주어지는 사회가 오면, 사람들은 점점 만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건 농담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한 미래 상황이다. 가상 대면 기술의 상용화가 얼마나 이른 시간 내 될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이요훈(IT 칼럼니스트)

클라우드 플랫폼이 쏘아 올린 공

모뎀을 사용하던 초창기 온라인은 텍스트 중심으로 구동됐다. 당시만 해도 웹상에 보기 드문 고급 정보가 존재했지만, 현재는 저작권이나 소유권 문제로 메모장 수준의 눈요기 기사로 포장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MSN 메신저에서 시작된 양방향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는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라이브 영상 콘텐츠로까지 진화했다. 콘텐츠와 정보를 미끼로 계층을 분리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회원이나 멤버가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많아졌고, 지식인들의 콘텐츠는 일반 공유가 되지 않는 ‘클라우드’라는 개인 금고에 숨겨놓게 되었다. 사라진 인간 계급 대신 아바타 계급이 온라인상에 출몰하고, 지식인들의 콘텐츠 공유라는 명목으로 사용자들의 줄을 세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 유명한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에서 말하는 안드로이드가 생각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열망은 클라우드 플랫폼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좋은 콘텐츠일수록 더 높은 벽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벽을 넘어가는 방법은 결국 정보와 돈이다. – 구병준(피피에스 코퍼레이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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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xt big thing Vol.2

피처 에디터
권은경, 전여울
사진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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