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재킷에 청바지를 입는 게 어색하지 않은 시대. 이번 시즌 트렌드 중 하나인 데님을 위아래로 입고 봄을 맞이해볼까.
이번 시즌 더블 데님 트렌드를 들여다보니 라프 시몬스의 2017 F/W 캘빈 클라인 데뷔 쇼가 떠올랐다. 당시 라프의 복귀로 한동안 잠잠했던 캘빈 클라인이 다시 회자되는 것 자체가 이슈였지만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해석한 데님의 등장이 큰 역할을 차지하기도 했다. 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듯한 인디고 데님 셔츠와 팬츠, 거기에 새하얀 목폴라의 매치는 이 시대의 더블 데님을 입는 표본처럼 박제되어 있다. 데님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 기억을 소환해보니 당시 ‘캐나디안 턱시도’에 대해서 청청 패션을 다룬 기억이 있다. 알다시피 이후 데님은 한 번도 트렌드를 벗어난 적이 없다. 일상적인 데님에 쿠튀르를 접목하는 방식이 지배적인 가운데 손으로 한땀 한땀 수놓는 장인 정신을 발휘하거나 조형적인 형태감을 더하고, 헴라인 올이 풀린 기법마저 치밀하게 계산된 고급 공정의 방식으로 대두했다. 가죽이나 모피, 니트에 지불하는 고가의 금액을 기꺼이 지불할 만큼 데님이 신분 상승한 지는 아주 오래라는 얘기. 그러고 보면 쿠튀르와 하이패션, 스트리트를 모두 포용하는 아이템으로 ‘데님’만 한 게 있을까.
그 시절 라프가 닦아놓은 데님 트렌드를 보테가 베네타의 대니얼 리가 바통을 넘겨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포멀한 이브닝 웨어로도 가능할 법한(주얼리만 있다면) 인디고 데님 재킷과 팬츠 룩을 S/S는 물론 버튼만 변형한 채 프리폴 컬렉션에 그대로 올렸으니 말이다. 지금 스타일링과 아이템 모두 트렌드의 정점을 달리는 그가 이 더블 데님 룩에 빠졌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밀라노를 둘러보면 알베르타 페레티는 패치워크한 데님 룩을 선보이고, 필로소피 디 로렌초는 웨스턴 부츠와 로맨틱 한 장식성을 결합한 더블 데님 룩을 런웨이에 올렸다. 트롱프뢰유 기법을 채용한 턱시도 라펠의 데님 재킷과 트레이닝 팬츠의 테이핑 디테일을 더한 데님 팬츠를 내보낸 MM6도 더블 데님 룩에 합류했다. 일상성의 데님이 활개를 치는 파리도 같은 상 황이다. 지난 시즌에 이어 에디 슬리먼이 해석한 부르주아 룩은 70년대식 부츠컷 데님으로 피어났다. 골반은 타이트하게. 무릎 아래로 퍼지는 플레어 진은 옷장에 누구나 하나쯤 있을 법한 아이템. 데님에 벨트만 두르고 단추 세개는 풀어헤친 셔츠만 입으면 어렵지 않게 에디식 더블 데님 룩을 완성할 수 있다. 무릎길이에서 잘리는 버뮤다 데님에 줄무늬 티셔츠, 데님 재킷을 걸치면 버지니 비아르가 창조한 샤넬 룩이 탄생하고, 데님 팬츠와 같은 톤의 셔츠를 매치하는 것으로 더블 데님 룩을 입은 것 같은 착시 효과를 일으킨 지방시와 스텔라 매카트니 방식도 있다. 이번 시즌을 설명 할 때 빠질 수 없는 지속 가능성 역시 데님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 워싱이 다른 자투리 천을 결합한 듯한 지방시의 데님 코트와 스커트, 마크 제이콥스의 패치워크 진을 활용해보는 것도 데님을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더블 데님 룩이 더 이상 90년대의 잔재로만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현대적 해석을 거듭한 디자이너들이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데님 역시 실루엣 플레이에서 스타일링의 열쇠가 나온다. 상의는 크게, 하의는 좁은 방식으로 대비를 주거나, 벨트와 높은 힐을 장착해 긴장감을 주는 식으로 말이다. 더블 데님 룩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도 대안은 널려 있다. 더는 입지 않는 청바지를 무릎길이로 자르거나 업사이클링 진이나 장식성이 강조된 패치워크 데님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스타일이 열린다. 결국 매일 입어도 질리지 않는 옷, 오늘 입어도 다음 날 옷장을 열면 제일 먼저 손이 가는 옷이 데님이라면 이번 시즌 더블 데님 효과를 쉽게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진
- 포토그래퍼
- 김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