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를 뚫고 취재한 뉴욕, 런던, 밀란, 파리 4대 도시 컬렉션. 우리는 그 와중에 많은 것을 보고 느꼈고, 컬렉션 다이어리에 고스란히 그 현장을 담았다.
NEW YORK 2020.02.09~02.13
티비의 발자취
“전형적인 런웨이 쇼보다 제 브랜드의 시작부터 다시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그 여정을 공유하고 싶었어요”라고 전한 티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이미 스밀로빅. 그녀는 소호의 매장에서 브랜드가 시작한 1997년부터 선보인 컬렉션의 일부와 함께 새 컬렉션을 소개했다. 여기에 편의점처럼 꾸민 섹션을 구성해 프레젠테이션의 재미를 더했다.
축하해요, 민주킴
공식적인 패션위크가 시작되기 전날 밤, 뉴욕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넷플릭스와 네타포르테가 제작한 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 ‘넥스트 인 패션’의 우승자 민주킴의 디자이너 김민주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린 것.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던 알렉사 청, 탠 프랜스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행사장을 찾아 그녀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제 이름을 기억하세요
이번 시즌 또 한 명의 한국 모델이 세계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모델 김민정이 이번 뉴욕 컬렉션을 통해 해외 데뷔를 한 것. 몬스, 울라 존슨, 아딤, 마리나 모스코네 총 4개 쇼에 얼굴을 비추며 성공적인 신고식을 마쳤다.
조각 예술에 빠졌어요
뉴욕의 디자이너들은 이번 시즌 조각 예술에 심취했다. 토리 버치는 여성성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꾼 아티스트 프란체스카 디마티오의 작품을 런웨이 곳곳에 세웠고, 디마티오가 디자인한 프린트를 옷에 담았다. 한편 올슨 자매의 더로우 런웨이에는 돌, 코르텐 강 같은 소재를 사용하는 작가 비벌리 페퍼의 작품이 자리해 동시대적인 슈트 룩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걸즈 인 뉴욕
뉴욕 패션위크를 찾은 걸그룹 출신의 한국 셀렙들! 토리 버치 쇼를 찾은 원조 걸그룹 핑클의 이진부터, 쇼장 입구가 마비될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실감하게 한 마이클 코어스의 레드벨벳 조이, 그리고 AOA 설현은 코치 쇼에 참석해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에코, 에코, 에코!
친환경 메시지가 강하게 울려 퍼진 뉴욕. 콜리나 스트라다는 뉴욕의 나이트클럽에 미니 정원 런웨이를 꾸미고, 쇼 시작 전 환경 오염에 대한 스피치 시간을 가졌다. 가브리엘라 허스트 쇼장에는 이면지로 만든 가벽이 세워지고, 관객들의 자리에는 업사이클링 캐시미어로 만든 안대가 선물로 놓여 있었다.
마크의 서프라이즈
매 시즌 뉴욕 패션위크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크 제이콥스. 이번에는 깜짝 셀레브리티의 등장으로 관객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바로 마일리 사이러스가 쇼에 모델로 선 것. 둘은 2013년 협업 제품을 발표하고, 2014년에는 마일리가 캠페인 모델로 참여했을 만큼 절친이다. 안무가 캐롤 아미테이지가 이끈 댄스 퍼포먼스와 함께 이번에도 대미를 책임졌다.
스카이라인을 배경 삼아
활발한 재개발 사업으로 고층 빌딩이 들어선 허드슨 야드. 이제 막 완공되어 사무실이 입주하지 않은 데다, 맨해튼 스카이라인은 물론이고 허드슨강까지 훤히 보여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가장 많이 택한 장소였다. 그중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렘 콜하스의 전시 <Countryside, The Future>에서 영감을 받은 시즈 마잔의 컬렉션은 쇼 테마와 통창 너머의 풍경이 더없이 잘 어울린 쇼였다.
이 구역의 신스틸러
차분하고 실용적인 룩이 주를 이루는 뉴욕에서 반전의 존재감을 보여준 아레아! 거대한 하트 모양 드레스는 물론이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MYREALITY와 협업해 만든 의자 모형의 귀고리, 백은 쉴 새 없이 핸드폰 들어 촬영하기 바쁘게 만들었다. 협업 액세서리의 판매 수익금은 쇼 장소인 아프리카 센터에 기부될 예정이다.
작고 소중해
다른 도시와 달리 뉴욕은 메일로 디지털 초대장을 보내는 쇼가 대부분이다. 환경 보호 차원에서 효율적이긴 하지만 하드 카피 인비테이션이 주는 손맛과 신박한 재미가 아쉬운 것도 사실. 그만큼 인비테이션이 귀한 뉴욕에서 받은 팜 엔젤스의 초대장은 피식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중앙에 펜이 하나 꽂혀 있고, 그 주위로 작게 숫자 점이 찍혀 있었는데, 이는 추억의 점 잇기 놀이를 하며 지루함을 달래라는 센스!
에디터 | 진정아
LONDON 2020.02.14~02.18
런던 히어로 빌리 포터
비가 지겹게 내리는 날씨에도 완벽하게 스타일링한 룩으로 J.W.앤더슨, 에르뎀, 리처드 퀸, 타미 힐피거, 록산다, 할펀, 매티 보반 등 쇼장마다 열심히 출석한 빌리 포터. 눈에 띌 때마다 간단한 영상 인터뷰를 부탁했는데, 슈스다운 유쾌한 애티튜드로 응해줘 고된 취재 일정에도 긍정 에너지를 얻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크리스토퍼 케인 프런트로에서는 사진을 함께 찍자고 이야기할 용기까지 냈을 정도다(하하).
러브 인 런던
런더너들에게 패션위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밸런타인데이! 런던에 도착한 첫날부터 저녁 식사 한 번 하는 데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하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때가 되면 모든 식당이 연인들의 예약으로 꽉 찬다고. 밸런타인데이 당일에도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택시를 탔는데, 행운의 남자가 누구냐는 기사의 질문에 데이트한 거 아니라고 대답하며 눈물을 머금었다는 후문.
몽글 폭신
작은 바람에도 낙하산처럼 부풀어 오르는 토가의 셔츠와 포근한 패딩 아이템, J.W.앤더슨의 큼직한 오버사이즈 코트, 세서미 스트리트의 빅버드를 연상케 한 리처드 퀸의 깃털 옷까지. 런던 컬렉션은 피곤한 몸을 던지고 싶을 만큼 폭신한 아이템으로 가득했다.
라이브 위를 걷다
워킹하는 모델들의 룩을 훑느라 바쁜 눈과 함께 귀마저도 황홀하게 한 쇼들이 있었다. 그냥 리듬을 타는 것만으로 그칠 수 없게끔 생생한 라이브 공연을 준비한 버버리와 타미 힐피거, 리처드 퀸 이야기다. 버버리는 리카르도 티시가 런던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던 시절 즐겨 들은 음악을 유명 피아니스트 카티아와 마리엘 라베크 자매의 피아노 연주로 재현했고, 타미 힐피거는 런던의 라이브 보컬 팀과 함께 웅장한 공연을, 리처드 퀸은 피날레에 싱어가 직접 ‘댄싱 퀸’을 불러 환상적인 쇼장에 낭만을 선물했다.
폭풍의 언덕
패션위크 내내 비바람이 그치지 않은 런던. 알고 보니 영국을 덮친 태풍 데니스 때문에 뉴스에서는 연신 침수 피해를 보도할 정도였다. 하지만 런던의 패션 피플은 이 정도 비는 비도 아니라는 듯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쇼장을 동분서주했는데, 이들을 따라 우산 없이 다니다가 결국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돼서야 우산을 사고 말았다.
런던에 핀 글로시에
운 좋게도 호텔 근처에 있는 글로시에 팝업을 발견, 뉴욕이나 LA와는 달리 온통 영국식 플라워 패턴으로 꾸민 매장을 잠시 구경할 수 있었다. 글로시에답게 셀피를 남기기 좋은 스폿도 많았고, 런던이라 더 반가운 플라워 패턴 우산도 볼 수 있었다. 우산이 없어 계속 비를 맞고 다니던 중이었는데 왜 빈손으로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미러 밀어
디자이너들이 이번 시즌 은박과 반짝이에 꽂힌 게 분명하다. 에르뎀과 시몬 로샤의 백스테이지에서 포착된 은박과 금박 메이크업부터, ‘The Age of Silver’ 테마에 맞춰 런웨이 역시 은박 길을 낸 에르뎀과 미러 카펫을 놓은 빅토리아 베컴, 켄징턴 올림피아의 내셔널 홀에 거울을 깐 버버리 등 무대 장치에 반영한 경우도 많았다. 물론 포슬포슬 바람에 날리는 메탈릭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한 J.W.앤더슨, 섬세한 비딩으로 판타지를 보여준 리처드 퀸 등 컬렉션 룩에도 반짝이는 빠지지 않았다.
런웨이 없는 런웨이
런웨이 없는 런웨이는 생각지 않고 있다가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모델들이 옆으로 지나가기 시작해 당황했던 MM6 메종 마르지엘라 쇼. 동선을 따라가다 보니 안개와 어둠 속에서 또 한 번 모델과 겹쳐 걷게 되었는데, 조금 더 가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든 공간에 모델들이 전시 작품처럼 서 있다가 차례로 워킹하며 사라졌다. 여기서 걸음을 옮겨 이동하니 이번에는 새하얀 백스테이지가 나왔다. 런웨이처럼 걷던 모델들은 갑자기 멈춰서 물도 마시고 메이크업도 손봤다. 입장할 때의 당황도 잠시, 가까이서 쇼의 이면을 보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로열 패밀리
영국의 왕족 문화는 런던 패션위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귀한 맛’이다. 에르뎀, 슈림프, 몰리 고다드, 시몬 로샤는 국립 초상화 박물관, 바로크풍의 이벤트 홀, 교회, 관공서 등 영국 특유의 고풍스럽고 귀족적인 무드가 한껏 묻어나는 쇼장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화려한 드레스 룩을 선보였다. 특히, 영국패션협회에서 주최하는 ‘QEⅡ(Queen Elizabeth Ⅱ)’ 시상식에서 진짜 왕족, 앤 공주가 알리기에리의 디자이너 로시 마타니에게 상을 주던 장면은 그야말로 로열 바이브의 ‘엑기스’와도 같았다.
자, 이제 시작이야
버버리 쇼가 시작하기 직전, 모델 김도현에게서 버버리 쇼로 데뷔하게 되어 곧 런웨이에 설 거라는 메시지가 왔다. 너무 떨려서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본인의 후기와는 다르게, 레오퍼드 셔츠를 입은 김도현은 은빛 런웨이를 무척 여유롭고 근사한 태도로 워킹했다. 데뷔 쇼가 버버리라니, 첫 시작이 좋다.
에디터 | 금다미, 장진영
MILAN 2020.02.19~02.24
발테르의 새로운 시대
토즈의 새로운 수장, 발테르 키아포니(Walter Chiapponi)의 첫 쇼가 열린 밀란의 아침. 흥분 어린 모습으로 쇼를 기다린 이들에게 그는 완전히 새로운 무드의 토즈 컬렉션을 선사했다. 지금 젊은 디자이너들이 가장 뜨겁게 지향하고 있는 절제된 쿨함, 즉 하우스의 코어 아이덴티티는 유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각으로 모더니즘을 풀어낸 것. 추후 리씨 현장에서 살펴본 그의 데뷔 컬렉션엔 가죽 명가다운 브랜드의 특징을 살린 다채로운 시도도 엿보였다. 빈티지풍 가죽 패치워크 코트를 비롯해 가죽 뷔스티에, 고미노 슈즈의 패턴을 확대한 백, 상징적인 백 모티프의 미니 펜던트 목걸이 등 눈여겨볼 아이템이 가득했으니, 앞으로 그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볼 듯.
달콤한 초대
호텔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하는 일과 중 하나는 바로 인비테이션 정리. 그리고 이때 만끽할 수 있는 기쁨은 각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개성 넘치는 초대장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번 시즌 가장 눈길을 끈 초대장은 단연 모스키노. 지난 시즌의 물감 팔레트에 이어 이번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탐했을 사랑스러운 파스텔 톤 케이크를 초대장과 함께 보내왔다. 차마 먹을 수가 없어서 다 함께 감상하며, 어떤 쇼가 펼쳐질지 예측해보았다. 그리고 역시나! 제러미 스콧의 직관적인 미학은 18세기 마리 앙투아네트가 되살아난 두려움 없는 코스튬을 비롯해 그 케이크와 똑 닮은 드레스로 이어졌다.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쇼맨십과 위트 어린 도전에 박수를 보내며 밀란에 왔음을 실감했다.
한국인 줄
이번 시즌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셀렙들의 밀란 쇼 참석이 많았다. 몽클레르의 앰배서더로 참석한 황민현, 프라다 쇼장 앞을 콘서트장으로 만들어버린 리사,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난 보테가 베네타 송혜교, 토즈의 새로운 뮤즈 배우 박민영, 화려한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펜디의 한예슬, 커다란 나비 목걸이와 오간자 투피스를 입고 등장한 구찌 쇼의 아이유까지. 한류의 위엄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미켈레는 특별해
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이번 시즌, 그는 우선 쇼 인비테이션을 왓츠앱 형태의 친근한 메시지로 건네며, 마치 그와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초대받은 듯한 설레는 경험을 안겨주었다. 지난 시즌, 한국 매체 중 유일하게 구찌 백스테이지를 취재한 더블유. 이번 시즌에도 그 기회를 기대했는데, 홍보 담당은 이번에는 힘들 것 같다고 답했다. 쇼 당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다름 아닌 회전목마 형태의 환상적인 ‘백스테이지’ 현장이 그대로 무대가 된 것. 이처럼 백스테이지를 전면에 내세운 미켈레의 메시지는 숨은 조력자들에 대한 헌사이기도 했다. 쇼 내내 분주했던 전 팀원들의 피날레 인사로 훈훈한 드라마를 완성했으니 말이다. 이 과정이야말로 그가 내세운 #GucciTheRitual에 부합하지 않을까.
볼 게 너무 많아
밀란 패션위크 기간엔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수많은 브랜드가 쇼를 대신해 맨투맨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쇼를 마친 브랜드들의 컬렉션을 눈앞에서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는 리씨(Resee)에 각종 이벤트와 전시까지 즐비하다. 사실 하루에 쇼는 보통 여덟아홉 개, 하지만 이런 ‘볼거리’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스케줄은 확장된다. 더블유의 컨트리뷰팅 에디터 우리 실장이 직접 스타일링을 맡은 시모네타 라비짜, 루신다 체임버가 자리한 막스마라 위켄드 Re–Find 캡슐 컬렉션, 테크 패션으로 눈길을 끈 펜디, 세븐 웨이즈 백을 새롭게 선사한 불가리 프레젠테이션 등등. 더불어 밀란 패션위크의 시작을 알리는 프라다는 높은 감도의기획 전시도 선보였다.
보테가는 사랑이죠
이탤리언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보테가 베네타의 대니얼 리 열풍은 세 시즌째 건재했다. 이번 쇼는 그를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반짝이는 소재, 스팽글로 만든 맥시 드레스와 투박하고 뭉툭한 슈즈의 조합, 프린지 소재를 변주해 백과 드레스, 재킷에 적용한 모습까지. 자신감이 한껏 차오른 느낌이다. 그런 그를 지지하듯 거리에는 온통 그의 만두 클러치가 등장했고 말이다. 내년 거리에는 프린지 클러치를 든 멋쟁이들이 가득할 듯.
지속 가능한 패션을 외치다
전 인류의 화두인 ‘지속 가능성’에 대한 담화가 패션위크 기간에도 뜨겁게 이어졌다. 거의 모든 브랜드가 숙제처럼 풀어내고 있는 지속 가능 방안을 적용한 이슈들을 가는 곳마다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이 주로 집중한 것은 다름 아닌 자연 친화적이며 윤리적인 방식의 신소재 개발. 우선 로로피아나는 캐시미어를 활용한 퍼 소재로 아우터를, 미스터앤미세스는 패딩의 충전재로 거위 깃털 대신 리사이클 캐시미어를 사용해 애니멀 프렌들리에 한발짝 다가갔다. 막스마라 역시 패딩 안감에 캐시미어 코트의 작은 원단 조각을 충전재로 재활용했으며, 보테가 베네타는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지속 가능한 고무 부츠를 선보이기도. 나아가 디젤은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하여’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업사이클링 55DSL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다.
코로나 공포
밀란 패션위크의 막바지,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밀란 쇼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아르마니 쇼가 전면 취소되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진행했다. 밀란 쇼 중 심각성을 빠르게 인지하고 대처한 브랜드로는 아르마니가 유일했다. 그들의 결정으로 인해 많은 패션 피플들이 안도했고, 빠르게 일정을 정리하고, 모두가 돌아갈 채비를 조금 서두를 수 있었다.
릭의 투어버스
릭 오웬스는 몽클레르와의 특별한 협업으로 투어버스를 제작해, 아내 미셸 라미와 함께 미국 로드트립을 다녔다. 그 투어 버스는 2월 19일 밀란 쇼 기간에 몽클레르 이벤트를 통해 전시되었고, 버스 안 두 개의 침실 위에는 포근한 몽클레르 패딩 이불이 덮여 있었다. 전시하는 공간에서는 릭 오웬스를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데, 아수라장 사이에서 딱 그를 마주쳤다. 이건 거의 운명이야!
고인 물은 가라
이번 시즌, 클래식하고 고전적이라는 이미지의 밀란은 새로운 피를 수열하는 데 열을 올렸다. 플랜 C, 아서 아베서, 쎄네이 등 밀란의 핫한 신예들과 협업한 발렉스트라, 코셰와 협업한 푸치, 라프 시몬스를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 프라다까지. 새로운 세대와 교류하고자 하는 기운은 도시 전반에 흐르고 있었다.
에디터 | 박연경, 김신
PARIS 2020.02.24~03.03
라두앙 청결 세트
<더블유> 팀에게는 든든하고 막역한 파리 지원군이 있는데, 그중 빼놓을 수 없는 한 명이 드라이버 ‘라두앙’이다. 더블유팀이 파리에 막 도착했을 때는 전 세계적 이슈인 코로나- 19의 위험성이 유럽까지 뻗치고 있었다. 불안한 에디터의 마음을 아는지, 라두앙은 차에 손 세정제, 소독용 물티슈, 한국에서는 품절 대란이 일어난 마스크, 그리고 간식을 구비해 바구니에 담아놓았다(이를 라두앙 청결 세트라고 칭하고 싶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조금은 뒤숭숭했던 파리 패션위크, 센스 넘치는 라두앙 덕분에 웃음 지을 여유가 생겼다.
너는 내 운명
이제 어느 도시, 어느 쇼에서건 한국 모델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중 특히나 활발히 활동하는 두 명의 ‘태민’이 있는데, 하이더 애커만 쇼에 나란히 등장해서 미소를 자아냈다. 그것도 청학동을 연상시키는 댕기 머리를 똑같이 한 채 말이다. 두 태민이 앞으로도 글로벌 무대를 종횡무진으로 누비길 바란다.
동물 친구들과 함께
친환경 원료와 지속 가능한 디자인으로 꾸준히 윤리적 패션을 선도해온 스텔라 매카트니. 런웨이로 가는 길에는 동물 탈을 쓴 친구들이 나무를 나눠주고 있었다. 피날레에서도 동물 친구들이 함께 등장하며 밝은 에너지를 뿜었다. 환경 사랑을 직접 실천하고 싶게 만드는 귀여운 쇼 연출!
사랑해 파리
에펠탑은 강력한 힘이 있다. 질리고 질리도록 보고, 다시 보고 또 봐도 좋다. 여행과 출장을 통틀어 파리는 네 번째 방문이지만, 지나가는 길에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에펠탑은 피로를 순식간에 풀어주었다. 마지막 밤에는 반짝반짝 불빛 쇼를 하는 시간에 에펠탑을 마주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증샷을 남겼다. 사진은 파리 일정을 함께한 이혜주 편집장으로부터!
다이어트 자극 패션
이번 생로랑 컬렉션의 키워드인 ‘라텍스’ 패션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올가을엔 꼭 저런 하이웨이스트 라텍스 팬츠를 입겠노라고. 길고 가는 다리를 뽐내며 걸어 나오는 모델들을 보면 늘 다이어트 결심을 한다. 길게 태어나진 못했으니, 가늘기라도 해야지! 이 결심이 얼마나 갈지는 미지수다.
아트인가 패션인가
옷만이 아닌 브랜드를 디자인한다고 말하는 꼼데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를 좋아한다. 그는 너무나도 중요한 자신의 핵심 동기인 자유를 늘 잊지 않는 듯하다. 컬렉션은 종이 패턴처럼 보이기도, 큰 덩어리 범벅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매번 극도의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이번 시즌에는 한 벌당 한 곡의 음악이 흘러나와, 한 편의 아트피스 같은 그의 옷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었다.
나는 나를 말한다
디올을 통해 꾸준히 여성에 대한 경의와 애정을 표해온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이번 2020 F/W 컬렉션을 통해 한층 더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다. 가장 눈에 띈 것은 페미니스트 아티스트인 클레르 퐁텐과 공동 작업한 쇼장의 세트였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은 페미니스트 슬로건에서 영감을 받은 문구라고. 치우리의 첫 컬렉션부터 함께한 모델 루스 벨이 검정 슈트를 입고 가장 먼저 등장했고, 뒤이어 ‘I Say I’라는 문구가 적힌 주체적 디올 레이디들이 걸어 나왔다. 현대의 디올 여성이 말하고자 하는 아이덴티티를 강력히 지지하는 바다.
나란히
샤넬 컬렉션, 동양인 최초로 한국 모델 신현지가 클로징을 장식했다. 이미 유수 하우스의 사랑을 받는 아이코닉 모델이지만, 이번 컬렉션은 감회가 남달랐을 터. 미국 모델 지지 하디드, 덴마크 모델 모나 투고르와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걸어 나오는 신현지를 보며, 한국 프레스들은 모두 엄마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흥부자 버질 아블로
가끔은 완벽한 런웨이보다 무대 뒤 풍경이 흥미로울 때가 있다. 적당한 긴장감과 생기가 동시에 공기 중에 감돈다. 오프화이트의 백스테이지는 다른 쇼보다 분방한 편인데, 수장인 버질 아블로의 영향이 큰 듯하다. 끈끈한 우정을 자랑하는 지지 하디드, 벨라 하디드 자매와 그들의 엄마인 욜란다 하디드까지 합세한 이번 쇼는 특히나 밝은 에너지가 가득했다. 건강 악화로 지난 시즌 자리를 비운 버질 아블로는 쇼 직전, 동료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며 완벽한 귀환을 알렸다.
시원섭섭
매 시즌 마지막 날의 마지막 쇼를 루브르 박물관에서 장식하는 루이 비통 컬렉션. 보러 가는 길도 보고 나오는 길도 마음이 저릿하다. 이것은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인데, 마치 저 뾰족한 루브르의 조형물이 나를 콕콕 찌르는 것 같달까? 컬렉션 일정이 끝나서 시원한 마음과 섭섭한 마음이 한데 뒤섞이며 꼭 사진을 남기게 된다.
에디터 | 김민지
- 패션 에디터
- 박연경, 김신, 김민지, 장진영
- 디지털 에디터
- 금다미, 진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