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S/S 시즌 트렌드의 진원지를 다녀온 에디터들이 거리 곳곳을 휩쓸 새롭고 신선한 바람을 전한다.
NEW YORK 2019.9.6-9.11
editor YEJI LEE
| 오드 투 조이 |
뉴욕 패션위크가 실용적인 옷만 선보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준 디자이너들의 반가운 등판. 이번 시즌 뉴욕에는 이상하지만 아름다운 패션을 지향 하고, 여전히 판타지를 꿈꾸는 디자이너들의 상상력이 한껏 펼쳐졌다. 토모 코이즈미의 트레이드마크인 솜사탕 같은 캔디 컬러 러플 드레스, 꽃의 덩어리감을 극대화한 마크 제이콥스의 요정 옷 같은 드레스, 강력한 신예 카이트의 우아한 벌룬 실루 엣, 업타운을 대표하는 제이슨 우와 캐롤리나 헤레라의 섬세한 깃털과 튤 장식, 브루클린 출신 크 리스토퍼 존 로저스의 재기발랄한 볼륨 드레스 등 패션위크를 화려하게 수놓은 디자이너들의 경연은 더없이 환상적이었다. 단순히 드레스라고 정의 하기에는 인색한, 하나의 아트피스를 위한 디자이너들의 조형 실험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 란제리의 외출 |
란제리적인 디자인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 은 아니지만 좀 더 대담하고, 맘껏 활용된 것에 의의를 둘 법한 이번 시즌. 특히 리한나의 새비지x펜티 쇼 덕분에 뉴 욕에서 란제리는 더욱 화제였다. 우선 레디투웨어 디자이너들의 옷부터 짚어보면, 센슈얼하고 감각적인 패턴으로 유명한 디온 리와 베라 왕은 코르셋과 가터벨트를 차용한 룩을 대거 선보였고, 프로엔자 스쿨러는 브라 톱에 천을 덧댄 아주 모던한 이너웨어를 제시했 다. 톰 포드의 짙은 보라색, 핫 핑크색을 사용 한 브라톱은 실리콘 소재로 가슴 모양을 사용해 과감하고 매혹적인 나이트 룩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번 뉴욕 패션위크의 방점을 찍은 새비지x펜티 쇼. 레디투웨어는 아니지만 다양한 인종의 모델 기용은 물론 훨씬 폭넓은 사이즈의 란제리를 제시해 편견을 부순 쇼로 호평받았다.
| 아메리카나 |
미국에서 만난 가장 미국다운 패션. 뉴욕의 런웨이에서는 미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패션을 곳곳 에서 목격할 수 있다. 코치의 파란 데님, 라 쿠안 스미스의 카우보이, 마이클 코어스의 체리파이, 알렉산더 왕의 자유의 여신상은 가벼운 언급에 불과 하다. 뉴욕의 마천루를 프린트로 사용한 릴라 로즈, 성조기를 재킷으로 바꾸어 말 그대로 미국의 정체성을 탐구한 R13이 있는가 하면, 브루클린의 파이어 모스는 로큰롤의 대모로 여겨지지만 크게 이름을 알리지 못한 미국의 영웅 시스터 로제타 타프를 연상시킨 프린트로 시선을 모았고, 이들의 미국에 대한 애정어린 헌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LONDON 2019.9.13~9.17
editor YEJIN LEE
| 뉴 트렌치 드레싱 |
봄, 여름 시즌을 위한 트렌치코트의 유행은 이제는 놀랄 일이 아니다. 매 시즌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하는 트렌치코 트를 보는 재미도 큰데, 트렌치코트의 기원지인 런던은 특히나 이 클래식 아이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디자이너 들은 기본적인 디자인은 이미 옷장 속에 들어 있다고 판단 했는지 지극히 여성스럽거나 실루엣을 크게 만드는 식으로 스타일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버버리는 허리선 아래부터 아티스틱한 프린트 스카프를 덧붙여 실루엣의 변화를 주었고, 후이산 장은 드레스로 입어도 좋을 만큼 몸을 타고 흐르는 실키한 트렌치코트를, 시몬 로샤는 진주와 러플 장식으로 로맨틱한 요소를 강조한 트렌치코트를 선보였다. 마르타 자쿠보우스키는 톤온톤 색을 패치워크한 스타일을 내보냈다. 특히 J.W.앤더슨은 소매 전체에 슬릿을 넣거나 꽃무늬 패브릭에 스톤을 수놓고, 크롭트 소매에 메탈릭 소재를 적용하는 등 가장 다채로운 트렌치코트 드레싱을 제안한다.
| 더하고, 붙이고 |
독창적인 실험정신과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숨 쉬는 런던의 패션 월드는 멋의 다양성에 무척 관대한 편이다. 영국의 정원과 벽지, 패브릭을 주요 모티프로 사용해온 단조로운 프린트는 이번 시즌에 다양한 프린트를 덧대는 방법으로 신선한 미감을 제시했다. 패턴이 있는 상의와 하의를 겹쳐 입는 게 아닌, 하나의 옷에 여러 개의 프린트가 있는 식이다. 에르뎀은 품종이 다른 꽃무늬가 그려진 여러 장의 스카프를 덧댄 드레스를 선보였고, 포츠 1961은 격자무늬와 일러스트, 수채화 느낌의 꽃무늬 스케치와 그래픽적인 꽃을 하나의 드레스에 담아놓았다. 남은 자투리 천을 패치워크한 듯 서로 다른 프린트를 믹스한 프린, 여러 개의 식탁보를 하나의 옷으로 표현한 매티 보반, 모로코 스타일의 이국적인 자수 패브릭을 엮어 표현한 아시시, 페이즐리 무늬 반다나를 이어 붙인 나타샤 진코에서 여러 개가 믹스된 프린트의 색 다른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
| 살랑살랑 |
봄의 낭만과 환상을 극대화하는 장식 중 하나인 깃털과 프린지. 걸음만으로도 나풀거리며 리듬감 넘치는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매 력에 한 번쯤 빠져봐도 좋겠다. 이번 시즌엔 온 몸을 뒤덮는 드레시한 형태보다는 헴라인과 소매 등 밑단에 부분적으로 장식해 부담 없이 즐 길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것. 런웨이에서 발견 했다시피, 버버리의 리카르도 티시는 프린지를 활용한 대표적인 디자이너로, 슈트 재킷과 블루종, 셔츠의 밑단에 찰랑거리는 프린지를 장식해 클래식한 룩을 반전시키는 요소로 활용했다. 활동적인 티셔츠로 상반되는 매력을 조합한 크리스토퍼 케인과 데이비드 코마, 마크 패스트의 스타일링을 참고한다면 과하다고 여겨졌던 깃털 스커드도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을 것. J.W.앤더슨이나 마르키스 알메이다처럼 수공예 느낌이 강조된 프린지 가방과 신발로 변화구를 줘도 좋겠다.
MILAN 2019.9.17~9.23
editor YOUNKYUNG PARK
| 가죽 스펙트럼 |
얇고 가벼우며 화사한 색감까지 장착한 가죽 소재를 활용한 룩은 S/S 시즌의 머스트해브 아이템. 윤기가 흐르는 텍스처와 유연한 실루엣을 지닌 매력적인 가죽에 러브콜을 보낸 브랜드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보테가 베네타, 프라다, 토즈, 막스마라, 마르니, 보스 등 수없이 많다. 우선 토즈는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섬세하고도 정교한 손길로 셔츠, 스커트, 블루종 등 전방위로 가죽을 활용했다. 한편 젊은 수장이 이끄는 보테가 베네타와 페라가모는 보다 쿨한 방식으로 가죽을 해석했다. 두 번째 쇼로 다시금 패션 기린아임을 입증한 보테가의 대니얼 리는 캐주얼한 스트링 장식을 더하거나 혹은 클래식한 가죽 트렌치에 모던 레트로 무드를 주입하며 추종자들의 동공을 확장시켰다. 페라가모의 폴 앤드루 역시 감미로운 파스텔 톤 가죽을 사용한 점프슈트와 셔츠, 캡 모자 등으로 젊은 고객의 마음을 흔들기도. 한편 마르니의 프란체스코 리소는 복원된 가죽 소재로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건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 젠더 플루이드 슈트 |
오늘날 성별의 구분을 넘어 자신의 취향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젠더 플루이드를 비롯해 성별에 의한 제약을 최소화하자는 젠더 블라인드까지 논의되는 시점. 이러한 이들을 위한 의상으로 단순히 매니시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매혹적인 테일러드 슈트가 눈길을 끈다. 지난 시즌, 클래식의 귀환으로 옷장 속의 재킷과 팬츠를 꺼낸 여성들을 위해 S/S 시즌을 맞이한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 것. 우선 보스가 순백의 턱시도 슈트를 선보인 반면 막스마라, 토즈, 페라가모 등은 테일러드 재킷을 쇼츠 혹은 버뮤다 팬츠와 캐주얼하게 연출해 동시대적 감각을 더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자신의 심미적 비전을 보다 정제된 ‘테일러링’에 집중시켰다. 코트와 재킷, 베스트, 타이 등 클래식한 요소를 모두 갖추고, 여기에 젠더를 넘어서는 액세서리를 더해 개성 넘치는 본질을 잃지 않은 것. 또 90년대 무드를 주입한 슈트의 소매에는 세빌로를 연상시키는 라벨을 부착했다. 한편 50년대와 70년대를 두루 오간 프라다는 큼직한 단추가 달린 레트로 재킷을 선사했으며 넘버21, 베르사체, 에트로 등은 아방가르드한 슬릿을 넣거나 화려한 프린트를 주입한 채 새로운 슈트의 방정식을 제안했다.
| 쿨한 레트로 바이브 |
전 세계 패션계를 관통한 뉴트로 무드는 90년대생에겐 신선함을, 그 이전 세대에겐 아련한 향수를 안겨준다. 특히 이번 시즌 펜디를 비롯해 살바토레 페라가모, 마르니, 미쏘니 등이 집중한, 할머니의 손뜨개질이 떠오르는 정겨운 ‘크로셰’ 장식이 그렇다. 특히 성긴 짜임의 피시넷 형태 크로셰는 보다 쿨해졌고, 때론 장인의 손맛을 더해 아티스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크로셰를 ‘밀레니얼 세대’의 쿨한 애티튜드로 돌려놓은 이들 중 하나인 페라가모의 폴 앤드루. 그는 엄마의 벽난로에 놓인 옛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1980년 대 이탈리아에서 보낸 여름휴가 사진 속 룩을 참조해 모던한 요소와 건축적인 실루엣을 새롭게 가미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대니얼 리 역시 가죽 버뮤다 팬츠에 크로셰 톱을 매치하거나 컷아웃과 비즈 장식을 더한 크로셰 드레스로 밀레니얼 세대의 요구에 부합하기도. 나아가 보다 사랑스러운 무드를 향해 간 펜디는 휴양지에 어울리는 레트로 룩의 정석을 보여주었고, 마르니는 ‘어디까지 가봤니, 크로셰’를 외치듯 마치 예술 작품 같은 뜨개질 솜씨를 발휘했다.
| 짧을수록 좋아 |
파리 패션위크의 백미 중 하나로 에펠탑을 배경으로 생로랑의 여인들이 걸어 나오는 장면을 꼽고 싶다. 강렬한 레이저 쇼 아래 가느다랗고 긴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해줄 핫 팬츠 차림의 그녀들 말이다. 지난 시즌 강력한 트렌드였던 사이클링 쇼츠의 자리를 핫 팬츠가 대신한 걸까? 파격적으로 짧은 마이크로 쇼츠는 생로랑 쇼에만 등장한 것은 아니 다. 각진 테일러드 재킷, 실크 블라우스, 슈트 베스트 등 다양한 스타일링의 조합을 제안한 생로랑을 시작으로 니트 소재를 사용해 여유로운 리조트 룩을 그려낸 에르메스, 데님 쇼츠를 보헤미안 무드로 해석한 이자벨 마랑, 섬세한 레이스 쇼츠를 선보인 디올, 크레이프 드 신 소재의 쇼츠를 곳곳에 매치한 샤넬까지, 마이크로 쇼츠의 전방위적 활약은 파리 컬렉션 내내 이어졌다. 이번 시즌 이토록 많은 디자이너들이 ‘더 짧게’를 외치고 있으니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겠다.
PARIS 2019.9.24~10.1
editor MINJI KIM
| 퍼프 파워 |
런던 패션위크의 바톤을 이어받아 파리의 런웨이에서도 급진적으로 부푼 퍼프 소매가 트렌드로 떠올랐다. 그만큼 다양한 변주도 눈에 띈다. 과하다 싶을 만큼 크게 부풀려 빅토리아 시대 여왕의 모습을 연상시킨 알렉산더 매퀸의 드레스, 전형적인 퍼프 소매로 로맨틱한 룩을 선보인 샤넬, 일상에서 부담 없이 착용 할 수 있는 미니멀한 디자인의 블라우스를 선보인 르메르 등이 있다. 아름다운 드레스 행렬이 이어진 발렌티노 쇼에는 겹겹이 쌓은 러플 퍼프 소매 드레스가 등장해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퍼프 소매 트렌드는 지난해부터 패션계에 등장한 신조어 ‘BDE(BIG DRESS ENERGY)’와 일맥상통한다. 풍성한 실루엣의 거대한 볼륨이 주는 에너지에서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자기 표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정복할 힘이 솟아날 것만 같은 퍼프 소매 파워로 당당한 여성상을 드러내보는 것은 어떨까.
| 크레이지 컬러 팔레트 |
봄/여름 시즌에 화사한 컬러 의상이 많아지는 것은 특별할 일은 아니지만 매 시즌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은 건 한결 가벼워진 날씨와 옷차림에서 오는 명랑하고 밝은 기운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네온 컬러의 질주는 이번 시즌에도 계속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평소 차분한 컬러 팔레트를 사용하던 브랜드에서 변신을 꾀했다는 것. 발렌티노는 룩뿐만 아니라 새하얀 런웨이와 대조를 이룬 형광색 쇼장 인테리어로 하우스의 미묘한 변화를 드러냈다. 컬렉션 또한 새하얗고 우아한 룩 사이사이 눈부신 형광빛 옷이 연이어 등장하며 시선을 압도했다. 오프화이트는 눈이 시릴 듯한 네온 컬러 핑크 드레스를 클로징 룩으로 낙점했다. 이제 파리 컬렉션의 빅 쇼로 자리 잡은 조너선 앤더슨의 로에베는 솜사탕 같은 파스텔 컬러를 선보이며 눈을 포근하 게 어루만져줬다. 힙스터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1017 알릭스 역시 시그너처인 블랙 컬러 외에 파스텔 컬러를 사용해 생기를 주었다.
- 패션 에디터
- 박연경, 이예지, 이예진, 김민지
- 사진
- COURTESY OF JAMES COCHR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