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Q>전 편집장 이충걸의 신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에는 18년의 시간이, 그리고 그 세월만큼 방대한 이야기가 있다.
‘월간지의 생명은 타이밍, 잡지가 화려하게 유효한 기간은 한 달’ 같은 소리를 자주 입에 달고 살지만, 그 말을 할 때면 시무룩하거나 슬프기까지 하다. 먼지 쌓인 지난 잡지를 꺼내 보다가 우연히 값진 글을 발견하면, 누군가의 소중한 문장을 매장해두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우리가 흔히 보는 패션지에는 그달에만 소용 있는 논의 말고 언제 들추어도 유의미한 글 역시 적지 않다. 이충걸은 그런 글을 썼다. 남성지 <GQ> 창간호부터 18년 동안, 잡지에 실리는 글의 맨 첫 꼭지에 있는 ‘에디터스 레터’가 그의 정기적인 무대였다. 에디터스 레터 페이지는 말하자면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로만 가득 채워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편집장의 독무대인데, 눈길 사로잡는 화보 페이지보다 조용하고 지속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페이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은행나무)은 <GQ> 전 편집장 이충걸의 에디터스 레터 모음이자 하나의 독립된 산문집이다.
목차를 장식한 제목들을 훑어보면 세월만큼 그 수가 적지 않아 읽기도 전부터 손에 쥔 게 많은 기분이다. ‘내가 알던 친구는 모두 떠나갔네’ ‘불면증의 장르’ ‘당신이 그렇게 똑똑해?’ 등 먼저 골라 읽고 싶은 제목들 가운데 ‘잡지란 무엇인가’ ‘편집장이란 무엇인가’ ‘마감이란 무엇인가’로 이어지는 일련의 주제도 눈에 띈다. 이충걸은 단편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과 어머니에 관한 산문집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등 몇 권의 책을 물론 낸 적이 있고, 최근에는 예술의전당에 오른 배우 박정자의 연극 <노래처럼 말해줘>의 대본을 썼다. ‘이충걸의 에디터스 레터는 두세 번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해줬다고 한다. “두세 번 읽어도 어렵다면 네 번 읽어.” 패션, 인물, 건축, 스포츠, 정서, 우정 등등을 망라하며 펼쳐진 그의 탐닉을 호사롭게 읽는 데 정해진 횟수는 없겠다.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포토그래퍼
- 장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