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라는 말은 왠지 막막하고 먹먹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피터 린드버그 (Peter Lindbergh)라는 전설적인 사진가를 위해 디올이 완성한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디올/린드버그’라는 한 마디만으로도, 패션 사진을 사랑한 이들에게는 묵직한 큰 울림이 전해질 것이다. 지난 9월에 타계한 패션 사진가 피터 린드버그. 그는 오랫동안 디올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레이디 디올(Lady Dior) 백과 자도르(J’Adore) 향수 캠페인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숨결을 불어 넣었다. 오늘날 디올을 대표하는 매혹적인 뮤즈인 마리옹 코티야르와 샤를리즈 테론을 동시에 카메라에 담은 그. 이처럼 서로 마음을 나누고 다양한 작업을 함께해온 예술가에게 디올은 특별한 애도로 그를 기리고자 했다. 다름 아닌 피터 린드버그의 마지막 디올 프로젝트를 책으로 펴낸 것.
크리스찬 디올이 ‘잠들지 않는 도시’라고 명명한 뉴욕. 그 뉴욕의 중심인 타임스 스퀘어에서 2018년 10월, 피터 린드버그와 디올이 함께한 작업이 ‘Dior/Lindbergh’라는 두 거장의 이름을 새긴 두 권의 책에 오롯이 담겼다. 이를 위해 디올 하우스는 80피스가 넘는 아카이브 컬렉션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뉴욕 거리에 선 톱모델 알렉 웩이 1947 년에 제작된 바 슈트를 착용한 채 더없이 강렬한 이미지를 완성했으며, 캐롤린 머피를 비롯해 앰버 발레타, 카렌 엘슨, 사스키아 드 브라우, 사샤 피보바로바 등 피터 린드 버그와 수많은 작업을 해온 그의 ‘뮤즈들’이 함께 그 순간을 완성했다. 아이코닉한 디올 룩을 입은 채 바삐 지나가는 거리의 군중 사이를 활보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린드버그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무슨 이야기를 건넸을까.
피터 린드버그 특유의 매혹적인 흑백 사진, 손을 대면 그 질감이 살아 움직일 듯한 이미지로 채워진 책은 디올의 건축적인 실루엣과 쿠튀르 터치의 소재를 더욱 강조한다. 분주한 뉴욕의 풍광과 대조되는 격조와 우아함을 지닌 쿠튀르 룩은 각각 디올 아카이브와 피터 린드버그의 유산에 헌정하는 두 권의 책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첫 번째 시리즈는 뉴욕의 촬영 현장에서 그가 포착한 70년간의 역사가 담긴 디올 하우스의 창작물을 담았다. 그리고 두 번째 시리즈에는 지난 30여 년 동안 유수의 패션 매거진을 통해 선보인, 디올 오트 쿠튀르와 레디투웨어 룩을 조망한 피터 린드버그의 사진 1백여 점이 망라되었다. ‘디올 by 린드버그(Dior by Lindbergh)’라고 불리는 진정한 협업의 찰나!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매혹적인 그의 흑백 사진 안에서 피사체는 영원한 생명력을 갖는다. 패션과 여인과 사진가, 그 모든 것들이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을 황홀한 매력을 지닌 채.
- 패션 에디터
- 박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