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방문한 릭 오웬스와 더블유의 두 번째 만남.
릭 오웬스가 두 권의 북 사인회 이벤트를 위해 서울에 왔다. 그의 방문은 공식적으로는 첫 번째지만, 더블유와는 정확히 두 번째 만남이다. 더블유는 릭 오웬스가 서울에 올 때마다 추억을 선물한다. 이번에는 2019년 서울에 온 그의 모습을 기록하는 의미에서 3D 프린터로 얼굴을 본떠 특수분장 가면을 제작했다. 사진에는 진짜 릭오웬스와 가면을 쓴 가짜 릭오웬스가 있다.
두 번째 서울 방문을 환영한다. 지난번 방문 때 전통 모자 ‘갓’을 선물했는데, 기억하나? 물론 잘 가지고 있다. 파리에 있는 우리 집 5층 서재에 걸어뒀다.
이번에도 시간을 내어 서울을 둘러볼 계획인가? 이번 스케줄은 여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지금 프리 컬렉션이 진행 중이라 이메일 답장할 게 많아서 서울을 둘러보진 못하고, 조용한 하루를 보낼 것 같다.
들었겠지만, 오늘 당신을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당신 얼굴을 본뜬 가면을 만들 예정이다. 가면이 완성되면, 다시 모델에게 씌워 화보 촬영도 할 것이다. 이 흥미로운 기획의 비주얼이 어떻게 완성되었으면 좋겠나? 촬영 이야기라면 이번에 내가 사인회를 진행하는 대니얼 레빗(Danielle Levitt)의 사진집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대니얼은 지난 5년간 나의 컬렉션을 찍어왔는데 내가 그녀의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굉장히 명확하고 깨끗하면서 밝은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내가 어둡고 모호한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겠지만 대니얼의 사진은 색이 굉장히 선명하고 모든 게 정확하다. 그게 내가 대니얼의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지점일 거다. 대니얼의 사진은 내 생활 방식과도 일맥상통하는데, 나는 사무실에서 위협적일 정도로 굉장히 밝은 조명을 사용한다. 사무실에 들어오면 너무 밝아서 깜짝 놀라는 사람도 있다. 모든 걸 최대한 명확하게 보고 싶기 때문이다. 제안하자면 화보 역시 밝은 빛을 이용해서 촬영하면 좋을 것 같다.
이번 방문은 두 권의 책 론칭을 축하하는 자리다. 팬들을 직접 만나 대면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책 사인회는 여타 행사와는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더 많은 걸 나누고, 상상 이상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프로모션을 위한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은 아닌데, 북 투어는 다른 것 같다. 내 책이 특별히 문학적인 건 아니지만 일단 문학을 널리 알리는 걸 좋아하고, 책이라는 매체를 홍보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흥미로운 일이라서 공을 들이고 싶었다.
당신은 어떤 사진을 아름답다고 여기는가? 좋아하는 사진이 굉장히 많은데, 최근에 발견한 작가로는 아돌프 아피아(Adolphe Appia)가 있다. 그 중에서도 1930년대 오페라 스테이지 세트 사진집을 언급하고 싶다. 또 1930년대에 활동한 에드워드 스타이컨(Edward Steichen)의 사진도 좋다. 그 시기의 분위기와 그 당시의 흑백 사진을 정말 좋아하는데, 1930년대의 사진과 영화 예술이 내 인생 전반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디자인에는 굉장히 명확하고 깨끗하며 풍부한 색채를 담아내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주로 흑백 사진들이다. 아돌프 아피아, 에드워드 스타이컨, 헬무트 뉴튼. 이 셋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리처드 애버던, 호르스트 P. 호르스트의 흑백 사진도 좋아한다. 사실 대니얼의 책에는 컬러 사진이 많은데 1년 전에 진행한 회고전에서 대니얼의 사진을 모아 전부 흑백으로 특별한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너무 아름다웠고 즐거운 작업이었다. 흑백이지만 모호하거나 흐릿하지 않고 굉장히 깨끗한 흑백이었다. 그래서 내가 대니얼의 사진을 좋아하는 것 같다.
대니얼 레빗 사진집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페이지가 있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최근 작품을 더 좋아한다. 나의 회고전 포스터에 사용한 사진은 특히 맘에 드는데, 원시적이면서도 종교 의식 같은 데 사용될 듯한 의상을 찍었다. 불길하면서도 급조한 듯한 분위기도 있다. 스웨트셔츠를 활용해 그 어두운 분위기를 좀 더 가볍게 만들어 균형을 잡았다. 약간 오싹한 구석이 있어서 좋다(웃음). 동시에 묘하게 화려하면서 우아한 느낌도 있다. 스페인의 늙은 귀신(el fantasma viejo) 같기도 하고 사형 집행인의 복면 같기도, 교황 같은 느낌도 있다. 역사 속 권위 있는 중요한 인물 같다. 이 급조한 듯한 느낌이 이걸 내 작품으로 만든 것 같다. 스웨트셔츠로 만들었다는 즉흥성이 주는, 그리고 그 건축적인 심플함.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컬렉션 중 하나다.
다른 이야기지만, 흥미로운 점은 사회가 정말 많이 민감해졌다는 거다. 이 사진도 그렇고 내가 5년 전 대니얼과 만든 이미지들 중에서, 미국에서 데려온 쇼의 스태프들을 찍은 사진이 있다. 만약에 이걸 지금 하려고하면 문화적으로 부적절하고 무지하다고 비난받을 것이다. 불과 5년 만에 사회가 얼마나 민감해졌는지 조금이라도 의심받을 만한 일에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는 게 참 신기하다. 사실 저 패션쇼의 의도 자체가 다양성을 수용하고 적절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불편함을 일깨우려는 거였다. 과도하게 섬세한 사회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에 대한 창의성이 많이 억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행사에 댄서들이 있었는데 홍보 부서랑 노출 정도에 대해서 협상해야 했다. 댄서들한테 노출이 많은 걸 입혔는데, 홍보팀에서는 그게 한국 문화에는 부적절하다고 하더라. 믿기 힘들었다. 지금 시대에, 이렇게 인터넷이 발달한 사회에, 모든 것에 익숙한 사회 아닌가. 또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관습에 대한 도전과 억압적인 성적 요소의 해체를 일관되게 추구했다. 그래서 댄서들의 노출 정도에 대해 협의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물론 다른 나라에 가면 그곳의 법칙을 따르는 게 예의 바른 일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 온 이상 한국 문화를 배려하려고 하지만 여기에 크리에이터로 초대받은 입장으로서 검열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마 오늘 밤에 다시 원래 의상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가 하라는 대로만 할 생각은 없다. 갈등을 일으키고 싶진 않지만 시키는 대로만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나는 이 모든 상황이 흥미롭다.
유감이다. 아니다. 정말 흥미로운 부분이다. 57세에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으로서 사실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꽤 많은 편이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서 내 입장을 고수해야 할지 아니면 예의를 지켜야 할지 애매할 때가 있다. 그래도 예술가로서 초대된 이상 나는 내 방식대로 할 생각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레가스피>라는 책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을 집필할 때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영향을 준 아티스트에 대한 내 인식을 담은 책이다. 내가 어릴 때 키스(Kiss)라는 밴드가 나왔다. 당시 열세 살이었던 나는 보수적인 도시에 살면서 상당히 억눌린 상태였는데 이 밴드를 보고는 전율을 느꼈다. 작고 보수적인 동네였기 때문에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부분이 있던 나를 향한 부정적 시선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에 응어리가 있었지만 너무 억압되어 있는 상태라 표출하지 못했다. 그러다 키스가 데뷔했고 내가 바라던 모든 게 그 밴드에 있었다. 대담하면서도 섹시한 남성적인 분위기에 격렬하고 어두운 느낌도 있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 코믹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 위협적이고 사악한 이미지였다. 로큰롤신에서 본 적 없는 대담한 그룹. 위협적인 동시에 매혹적이었다. 그들이 모든 걸 바꿔놨다고 할 수 있다.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출구가 된 셈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밴드와 그 시절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또 라벨(Labelle)도 나한테 매우 중요한데 음악에 있어서 흑인 솔의 강렬함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밴드다. 이 밴드도 키스와 같은 대범함이 있었다. 그러다 두 밴드 의상 모두 같은 디자이너가 담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왠일인지 그 디자이너에 대해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더라. 내가 알고 있는 건 두 밴드를 연결하는 디자이너의 이름 딱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계속 찾아보고 인터뷰에서도 래리 레가스피라는 디자이너에 대해 계속 언급했는데, 그걸 보고 래리의 부인이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아카이브를 볼 수 있도록 초대해주셨다. 부인은 내가 래리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 대해 매우 기뻐고, 나는 그녀에게 이 책을 만들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사실 나에 대한 책이 될 텐데 괜찮겠냐고 여쭤봤는데 내가 그간 쓴 책을 보시고선 기꺼이 허락해주셨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래리에 대한 책이라기보다 나에 대한 책이다. 래리가 실제로 한 작업은 이 책에 언급된 것보다 훨씬 많다. 나는 그저 내가 원하는 부분을 선정하고 편집해서 1930년대 흑백 버전으로 나의 미적 필터를 통해 그를 묘사한 거다. 더 정확하게 말해 나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디자이너로서의 그를 투영한 거다. 그래서 이 책은 자서전인 동시에 전기이고, 판타지이다. 동시에 70년대에 굉장히 창의적이고 천진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던 세대가 에이즈로 인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래리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고. 그러던 어느 날 집필 중에 래리의 남매가 존재하는지 모른 원고를 보내줬다. 그가 병원에서 투병하던 중에 적은 거라고 했다. 래리의 사적인 삶이 충격적일 정도로 날것 그대로 담긴 원고여서 본래 그저 대범한 판타지를 의도했던 내 책에 진지한 면을 더해준 것 같다. 래리의 사생활과 개인적인 감정에 대한 그의 목소리를 담게 되면서 본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책이 되었는데, 너무 아름답게 완성돼서 정말 기쁘다. 래리의 말과 그가 공유하고 싶었던 것을 내 책에 담은 건 정말 멋진 일이었다. 또 이 책을 통해 래리 레가스피 위키피디아를 소개하는 페이지가 생겼다는 게 가장 기쁘다. 역사에서 누군가를 발굴해서 조명할 수 있어서 정말 고무적이었고 그게 이 책에서 가장 설레는 부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내 입으로 얘기하긴 그렇지만 잘 쓴 책이다(웃음).
젊었을 때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나? 지금과 같이 SNS도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어떻게 호기심과 끼를 방출하며 당신, 릭 오웬스라는 사람을 드러냈는지 궁금하다.
나도 우리가 어떻게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조사하고 연구하고 찾아보고 그랬던 것 같은데 정말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본인과 비슷한 사람을 찾으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으면 뭐든지 하게 되는 것 같다. 계속 찾아보고 뛰어들어보는 거다. 사실 요즘이랑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그럴 만한 도구가 더 많을 뿐. 예나 지금이나 같은 갈망을 가지고 서로 모였던 거다. 어떻게든 방법은 찾게 되더라.
<레가스피> 책에서 직접 설명해주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이 책을 만들면서 후안 페르난데스 드 알라르콘(Juan Fernandez de Alarcon)과 팻 클리블랜드(Pat Cleveland)를 인터뷰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특히 팻 클리블랜드는 1970년대의 전설적인 모델이고 그녀의 친구이자 당시에 함께 모델 활동을 한 후안과도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측근으로서의 삶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해줬고, 70년대를 장식한 찰스 제임스(Charles James) 같은 인물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책에 다양한 인물이 많이 나오고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부분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달리도 있고 디자이너 찰스 제임스도 나오고 티에리 뮈글러도 등장한다. 책에서 티에리 뮈글러랑 래리 레가스피 중에 누가 먼저 실버 라메 스페이스라는 콘셉트를 고안해냈나라는 논의도 다뤄지고 있다. 내가 항상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시대의 이면을 타임캡슐에 담은 것 같은 책이다. 또 그 시대의 일부였던 팻과 후안의 목소리를 담은 일은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다. 많은 사람이 살아남지 못했던 시대에서 살아남은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사람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도 멋진 일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굉장히 흥겨운 책이면서도 그 시대에 대한 애도의 의미도 담고 있고, 이런 책을 만들고 홍보할 수 있다는 게 진심으로 기쁘다. 그래서 꼭 사람들을 만나서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옷뿐만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나를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 내 작품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건 좋은 경험이다.
요즘처럼 이미지가 쉽게 소비되는 시대에 사람들은 책을 더 이상 읽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잘 만들어진 책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종이 잡지가 하나둘 사라지는 이런 시대에 비주얼을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내가 감히 어떻게 남한테 조언을 하겠나. 이런 발전이 그저 흥미롭다. 심지어 나는 비트모지(bitmoji)도 있다. 친구가 만들어줬다. 바보 같은 게, 예전에는 독서를 정말 많이 했지만 이제는 그만큼 읽지를 못한다. 물론 현재는 정보를 흡수하는 것보다 내 자신을 표현하는 데 더 집중하는 시기라 그런 거긴 하지만. 이런 발전이 나와 같은 세대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나는 일이지 않나. 불평하는 건 의미가 없다. 발전을 막으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신세대와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흡수할 수 없을 거다. 새로운 세대는 단일 프레임 안에서 더 많은 정보를 흡수할 방법을 배우면서 자랐으니까. 난 그러지 못하지만 괜찮다. 신세대가 새로운 걸 배우고 바꿔나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정말 더 흥미로운 점은 요즘 이런 비트모지를 보면 사람들이 기호를 통해 무척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거의 이집트 상형문자 때로 돌아가는 것 같다. 뜻을 가진 기호만 있었던 때로. 이제 또 어떤 발전이 이루어질까? 전혀 알 수 없지만 나중에는 아예 기호도 필요 없는 텔레파시까지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저 생각이 공기 중을 떠다니고 그를 통해 소통하는거다. 정신 감응 같은 게 가능할 수도 있겠고. 현재 발전을 보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나? 정말 흥미진진하고, 멋지고, 미래적이고, 가능할 것 같으면서도 비정상적이다. 역사를 되짚어보고 어떤 방식으로 발전했는지 돌이켜보면 확실히 그런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즐겁고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북 사인회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나? 책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모두에게 주고 싶어요! 돈 벌어야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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