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걷는 향기

W

성별과 시대를 초월하는 구찌의 첫 번째 유니섹스 향수, ‘구찌 메모아 뒨 오더’를 로마에서 만났다.

해리 스타일스가 모델로 참여한 ‘구찌 메모아 뒨 오더’ 캠페인. 이번 캠페인 비주얼은 완전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신화적인’ 세상과 그곳에 사는 자유분방한 공동체의 모습을 담았다.

모델과 아티스트 등 21명과 함께 로마에서 촬영된 캠페인의 비하인드 신.

미켈레가 부린 향의 마법

동그랗고 네모난 병에 담겨 세상에 나온 뒤, 어떤 이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게 향수의 숙명이자 매력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것이 된 향수는 불시에 자신 혹은 타인의 잊고 있던 기억의 저편을 소환해주는 신비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매 시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이미지로 패션사의 한 챕터를 쓰고 있는 구찌의 수장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기억 대부분도 후각을 통해 형성된다. “나에게 향수란 눈을 감고 상상한 시공간으로 데려다주는 매개체입니다.” 베일에 싸여 있던 완전히 새로운 구찌의 향수 ‘구찌 메모아 뒨 오더’는 이렇게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향기에 대한 기억과 집념에서 탄생했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향기의 기억’을 상상하며 그 기억을 닮은 공감각적인 향을 구현해낸 것이다. 추억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구찌 메모아 뒨 오더’. 성별이나 시대를 초월해 우주를 포용하는 이 유니섹스 향수는 소소한 기쁨과 강렬한 사랑, 깊은 슬픔 등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에 색채를 불어넣기 위해 태어났다.

이 향수를 통해 대체 어떤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 기대와 호기심을 품고 도착한 로마. 구찌 플레이스 프로젝트의 특별 장소로 선정된 이탈리아 최초의 공공 도서관, 안젤리카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의 나무 테이블 위에서 처음 마주한 ‘구찌 메모아 뒨 오더’의 향기는 어디선가 맡아본 향도, 비슷한 향수가 떠오르는 향조도 아니었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물이나 식물의 냄새, 혹은 예상 가능하고 익숙한 구석이 있는 내음이라기보다는 이름 모를 향이 어떤 이의 피부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형성된 신비한 체취처럼 느껴졌다. 왜 향수를 처음 공개하는 공간으로 1604년부터 숭고한 세월을 보내온 도서관을 선택했는지 알 듯도 했다.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빼곡히 꽂힌 이곳에서 향수에 대한 영감을 얻었을 거다.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구찌 메모아 뒨 오더’의 향은 마스터 조향사 알베르토 모릴라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예측 가능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16~17세기부터 로마의 테라스 정원에서 키우던 식물인 로만 캐머마일은 캐머마일 향수의 재료로는 사용된 적이 없는데, 알레산드로는 이 꽃에 주목했다고. 알베르토 모릴라스는 도서관 가운데에 앉아 이야기했다. “알레산드로가 왜 로만 캐머마일을 선택했는지 깊게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조향을 시작한 순간 곧 그 이유를 깨달았죠. 이건 이전에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에요. 꿈과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로만 캐머마일의 유니크한 아로마틱 향에 구찌 하우스가 보유한 인디안 코럴 재스민 꽃잎, 머스크, 샌들우드, 시더우드, 노블우드 등의 향을 더해 ‘미네랄 아로마틱’이라는 새로운 향조를 완성했습니다.” ‘미네랄’은 가볍고도 투명하고 머스키한 향취로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주는 새로운 향수 카테고리다. 한 번 뿌리고 나서도 계속 다시 맡아보고 싶은, 오묘하게 좋은 향의 비밀이 바로 머스키 미네랄이었다. ‘구찌 메모아 뒨 오더’를 보자마자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보틀의 자태다. 1990년대 초반의 빈티지 구찌 향수에서 영감을 받아 고대 로마의 기둥 형태를 모티프로 디자인했다. 영롱한 초록색 유리 보틀과 우아한 골드 캡, 라벨까지 어우러져 남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모양이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 연상되는 박스 패키지는 안젤리카 도서관 어딘가에 있을 책의 표지 같기도 했다.

Gucci Beauty 구찌 메모아 뒨 오더 구찌의 첫 번째 유니섹스 향수. 독특한 원료인 로만 캐머마일 노트를 통해 완성된 ‘미네랄 아로마틱’ 향조를 담았다. 기억의 힘을 탐구하는 모험가가 되어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주는 향기를 느낄 수 있다. 40ml, 10만원.

21세기 신화적 모멘트

상상과 영감을 시각화하는 데 거침이 없는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구찌 메 모아 뒨 오 더’의 글로벌 캠페인을 위해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한 편의 짧은 영화를 만들었다. 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인 해리 스타일스, 주미 로소를 비롯한 21명의 모델과 아티스트들을 통해 각자의 역할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완전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신화적인’ 세상과 그곳에 사는 자유분방한 공동체의 모습을 그렸다. 로마 변두리의 어딘가 에서 그들은 함께 춤을 추고, 태양이 내리쬐는 카날레 몬테라노를 거닐며, 신비로운 프레스코화가 안팎으로 자리한 중세 시대의 몬테칼벨로 성 안 분수에서 시간을 즐기는 장면이 영상과 이미지로 담겼다. 아티스트이자 배우, 뮤지션이자 구찌의 뮤즈인 주미 로소의 자유로운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는데, 그녀와 ‘구찌 메모아 뒨 오 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주미 로소와 로마에서 나눈 향수 이야기

‘구찌 메모아 뒨 오더’ 캠페인 을 촬영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나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나? 주미 로소 차를 타고 시골 변두리를 달리며, 음악을 듣는 그 장면이 있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그 순간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여러 카페도 지나쳤는데 거기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잘 차려입은 이탤리언들이 손 키스를 날렸다. 물론 우리도 손 키스로 응대했다! 정말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모닥불 주위를 돌며 자유롭게 춤추던 장면도 잊을 수 없다. 모델들 모두 멋진 구찌 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너무 정신을 놓고 춤을 추다가 옷을 태워버릴까봐 신경이 곤두섰다. 그게 유일하게 힘들었던 기억이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와는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다. 해가 아름답게 내리쬐며 반짝이던 넓은 코트야드(courtyard) 촬영장에서 알레산드로를 처음 만났다. 그 모습이 마법 같고 멋있었다. 그는 겸손하고 다정하며 친절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일 거라고 특별히 기대하거나 상상하지 못했는데, 마치 왕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정말 떨렸다. 환하게 비추는 해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내가 큰 박쥐(과일을 먹고 사는 박쥐의 한 종류)를 좋아해서 ‘박쥐’에 대해서 신나게 얘기했는데 그가 이탈리아어로 박쥐가 ‘피피스트렐로(Pipistrello)’라는 걸 알려준 게 기억에 남는다.

그와 대화를 나눌 때 잘 통하는 부분은 무엇이던가? 설명하기 힘든데, 그가 창조하는 세계는 나의 상상 속 판타지와 여러모로 닮았다. 다양한 요소가 상호 작용하겠지만, 그 안에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영감을 많이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역사, 자연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함께 영감을 얻고 그와는 어떤 것이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구찌 메모아 뒨 오더’의 향을 맡았을 때 어떤 생각 혹은 어떤 장면, 어떤 기억, 어떤 감정이 떠올랐나?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가 생각났다. 뉴욕에서 LA로 이사했을 때인데,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신선한 나무와 대자연의 상쾌한 향이 온몸을 휘감던 기억. 그 순간이 떠올랐다. 사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향기의 첫 추억이자 가장 좋아하는 향기다.

‘구찌 메모아 뒨 오더’를 좋아하는 음악에 비유한다면? 브레니노 음악이 떠오른다. 이 음악을 들을 때처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영원한 느낌을 주는 향이다. 과거나 현재를 탐험하는 기분 말이다.

이 향수를 뿌리면 뭘 하고 싶어질까? 오페라를 보러 가고 싶다. 구체적으로 어떤 극을 고를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주 좋은 오페라!

당신은 보석 디자인도 한다고 들었다. 디자이너로서 향수의 밝은 그린색 유리 보틀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주얼리 디자인을 할 때 오래된 물건에서 영감을 얻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더욱 메모아의 디자인은 완벽한 콘셉트이자 아이디어로 다가왔다. 메모아의 보틀을 보면 바다에 빠진 글라스코가 생각난 다. 어렸을 때 바다를 거닐면서 수집하곤 했던 아름다운 유리 조각(Sea glass)도 떠오른다. 바다에서 찾을 수 있는 보물 같은 느낌이랄까?

‘주미 백’과 이번 메모아 캠페인까지, 당신은 구찌와 잘 어울리는 예술가인 것 같다. 혹시 계획 중인 프로젝트가 더 있나?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흥미롭고 아름다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기대해도 좋다.

로마 밤하늘에 뜬 별의 노래

파티에 참석한 해리 스타일스와 알레산드로 미켈레.

디제잉을 즐기는 주미 로소.

21세기의 신화 속 주인공처럼 차려입은 주미 로소와 아티스트들.

21세기의 신화 속 주인공처럼 차려입은 주미 로소와 아티스트들.

21세기의 신화 속 주인공처럼 차려입은 주미 로소와 아티스트들.

지난 528일, 로마에서는 ‘메모아 뒨 오더’의 향수 광고 캠페인과 모델을 공개하는 파티가 진행되었다. 파티 현장에서는 글렌 러치퍼드 감독이 촬영한 광고 캠페인을 최초로 볼 수 있었으며, 이 자리에는 주미 로소, 해리 스타일스, 아리아나 파파데메트로폴로스, 스타니스라스 클로소우스키 데 롤라, 올림피아 디올, 레즐리 위너 등이 참석해 공연과 파티를 즐겼다

디지털 에디터
금다미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