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장의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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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마라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

막스마라가 매일 440장의 코트와 재킷을 만들어온 사실은 브랜드의 근면함과 헤리티지 그 자체다. 그리고 60년 넘게 쌓아온 그들의 아카이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차곡차곡 늘어나고 있다.

막스마라는 베를린 신 박물관(Neues Museum)에서 2020 리조트 쇼를 갓 마친 참이었다. 이번 쇼 는 보컬의 여왕이라 칭송받는 독일의 가수이자 배우인 우테 렘퍼(Ute Lemper)를 뮤즈로 삼아 마를레네 디트리히, 데이비드 보위 같은 전설적 아이콘의 스타일을 섞고 패러디했다. 쇼를 준비하는 동안 막스마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안 그리피스(Ian Griffiths)와 우테 렘퍼는 무려 3시간에 걸쳐 전화 통화를 했는데, 이안은 그 속에서 보석 같은 영감의 원천을 발견했다. “마를레네는 누구도 두려워하는 법이 없었죠. 많은 이들이 그녀를 강렬한 캐리커처로 기억하지만 그녀는 그 이상이었어요.” 천을 거칠게 드레이핑하고, 매머드색과 붉디 붉은 핏빛을 사용한 의상은 간결했지만 대담했고, 지골로스럽기까지 했다. 원초적이지만 단순한 형태를 중시한 원시주의적 사조를 전면에 내세운 브랜드의 기원에는 무엇이 있을까. 막스마라는 우아한 중산층 여성을 겨냥해 탄생한 브랜드지만, 현대로 올수록 가치관이 분명한 독립적인 여성을 위한 브랜드로 위상이 변모했다. 이런 이안의 시도를 뒷받침하는 건 강력한 헤리티지와 이탤리언 특유의 탁월한 기술력이리라 짐작하며, 브랜드 기원을 확인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 레조 에밀리아 (Reggio Emilia)로 향했다.

원단 커팅 단계에서부터 엄격한 퀄리티 테스트를 거치는 코트 생산 과정. 한 벌의 코트 제작에 3시간가량 소요되며, 하루에 5가지 모델을 생산한다.

모던 아트 컬렉션 갤러리 콜레치오네 마라모티의 외관.

콜레치오네 마라모티는 창립자 아킬레 마라모티의 영구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 전시를 선보인다.

BAI에 전시된 막스마라의 상징 캐멀 코트들.

90년대 포토그래퍼 스티븐 마이젤이 촬영한 슈퍼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모습.

밀라노에서 차로 1시간 반가량, 막스마라의 창립자 아킬레 마라모티가 브랜드를 설립한 레조 에밀리아는 도시 이름을 딴 유아 교육법으로도 잘 알려진 곳. 이 교육법은 ‘기록화’를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에 걸맞게 막스마라의 모든 기록이 보관된 아카이브관 BAI(Biblioteca e Archivio di Impresa)를 비롯해 브랜드의 사유 공장 마니파투레 디 산 마우리치오(Manifatture di San Maurizio), 창립자 아킬레 마라모티의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대형 미술관 콜레치오네 마라모티(Collezione Maramotti)가 자리한 브랜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특히 직접 생산부터 검품까지 가능한 인하우스 시스템을 갖춘 산 마우리치오 공장은 브랜드의 자부심이 응축된 곳이다. 브랜드의 베스트셀러인 코트와 재킷을 매일 440장을 만들며, 아카이빙된 디자인을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세계를 향한 이안의 글로벌 비전을 실현하느라 분주한 이곳은 가히 브랜드의 심장이라 할 만했다. 80년대 후반 급격한 성장을 이룬 상당한 규모의 내부는 역동적이었고, 곳곳에서 이뤄지는 엄정한 퀄리티 테스트는 브랜드 DNA를 보전하는 혈관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음 장소인 BAI에서는 패션 디렉터를 맡고 있는 라우라 루수아르디가 프레스 일행을 맞아주었 다(그녀는 2017년 서울에서 열린 막스마라의 아카이브 전시 <코트! 서울>의 총감독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더블유 코리아와 인터뷰도 나눈 적 있는 서울과 친숙한 인물). 2개 타워와 3개 층으로 이뤄진, 총 4천 제곱미터에 달하는 이곳은 컬렉션 피스뿐만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들의 빈티지 컬렉션, 매거진과 컨템퍼러리 비주얼 등의 아카이브를 보관하는, 패션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볼 수 있는 보물 창고 같은 공간. 행어 가득한 캐멀 코트 사이에서 나타난 라우라는 차분하게 아카이브를 설명해주었는데, 소장품 중에는 카린 로이펠트 같은 유명인사가 증정한 빈티지 컬렉션뿐 아니라 한국 전통 의상도 있어 그 깊이와 방대한 규모를 짐작하게 했다. 창립자 아킬레 마라모티의 영구 컬렉션을 기반으로 조성한 콜레치오네 마라모티 (Collezione Maramotti)는 구 본사 건물을 개조한 것으로 아킬레의 오랜 꿈이었던 모던 아트 컬렉션 갤러리라는 구상이 실현된 곳이다(아주 현대적으로 완성된 이곳에서 지난해 리조트 컬렉션이 열리기도 했다). 이안은 이 공간을 거닐며 컬렉션에 대한 구체적인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밝혔다. 공간 자체가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와도 같은 셈. 공간이 각자의 역할을 하고, 순환이 이뤄지는 구조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최상급 이탈리아 패션의 정수를 온몸으로 체험한 충만한 일정을 마무리하며 든 생각. 그렇다면 세련되고 우아한 서울의 여성들이 막스마라를 경험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안이 희소식을 전했다. “서울의 패션에 대한 사랑과 건축, 아트가 어우러진 라이프스타일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오는 9월 서울에 단독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합니다. 이를 기념해 막스마라의 모든 스토리가 담긴 캡슐 컬렉션도 선보일 예정이에요. 이탈리아 패션은 여성을 아름답게 하고, 여성 스스로 그것을 느끼게 하죠. 곧 당신도 근사한 이탈리아 패션을 오롯이 경험하게 될 겁니다.”

패션 에디터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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