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VS. 2019. 20년을 넘나드는 패션 트렌드 평행이론.
1999년으로 돌아가고 싶어. 내 오랜 친구들을 데리고. 그저 돌아가고 싶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를 들으며. 돌아가고 싶어. 가고 싶어.” 1992년생 찰리 엑스씨엑스(Charli XCX)와 1995년 생 트로이 시반(Troye Sivan)이 함께 발표한 신곡 ‘1999’의 가사다. 뮤직비디오에서는 <타이타닉>의 명장면을 흉내 내기도, <아메리칸 뷰티>를 오마주하기도 하며 밀레니엄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어딘가 촌스러운 구석이 있는 스타일을 놀림 섞인 속칭으로 이르던 ‘세기말’이라는 단어가 트렌드로 부상한 것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 유행은 없다는 패션계의 진리를 떠올리게 한다. 뉴밀레니엄이라 불리는 2000년대를 앞두고 사회 문화적 과잉과 기묘한 불안을 겪던 90년대 후반, 전 세계 사람들은 21세기를 향한 호기심과 기대로 열병을 앓았다.
패션 월드에서는 20세기 말의 과도한 감성을 촌스럽다고 여기지만 이번 시즌에는 재발견의 대상이 된 듯하다. 2019년 트렌드의 키워드를 살펴보면 20년 전과 똑 닮았으니 말이다. 얼룩덜룩하게 워싱된 ‘돌청’ 스타일부터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카고 팬츠, 치골이 아찔하게 드러나는 로라이즈 팬츠 등 그 시절 팝스타나 할리우드 셀렙들이 즐겨 입던 스타일이 부활의 신호탄을 알린 것이다. 시스 마 을 비롯해 프라발 구룽, 몬세 그리고 펜디 쇼에서는 카고 팬츠의 행렬이 이어졌고, 베르사체, 사카 이, 마르타 야쿠보프스키 등의 런웨이에서는 허리선을 아래로 잡아 배꼽이 드러나는 길이의 팬츠와 스커트가 등장했다. 그중 90년대풍 블리치 데님은 이번 시즌 빼놓을 수 없는 메가 트렌드가 되었다.
런웨이와 리얼웨이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셀레브리티들 역시 유행에 힘을 보탰다. 리한나와 지지 하디드, 벨라 하디드 등 트렌드를 선도하는 이들의 스타일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오간 패션 아이콘들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벨라 하디드는 허리 라인을 강조한 아슬아슬한 룩으로 섹슈얼한 90년대 무드를 소환해 화제가 되었고, 켄들 제너, 헤일리 볼드윈, 사샤 레인의 힙한 카고 팬츠 스타일링은 당장 따라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세기말 패션의 상징이라 불리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패리스 힐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돌아 온다 해도 어색함이 없다.
찰리 엑스씨엑스와 트로이 시반이 부르는 ‘1999’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1999년을 제대로 겪지 않은 세대가 그 시절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1999년도로 날 데려다달라고 외치는 그들은 그때가 훨씬 좋았다고 노래한다. 밀레니엄 시대의 유산에는 어떤 특별한 힘이 있을까? 90년대를 만끽한 세대에게는 젊은 시절의 회상을,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새로운 자극을 전하는 걸까. 이번 시즌 힙해지려면 촌스럽다고 여기던 것을 다시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기가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 그 시절만의 독특한 문화의 힘을 한 번쯤 소환해보는 건 어떨까?
- 패션 에디터
- 김민지
- 아트워크
- 허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