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이색 페스티벌 모음집 Vol.1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상 ‘힙’이 아닌 독특하고 요상한 페스티벌을 탐험하고 돌아온 이들의 후일담을 모아봤다. 알아두면 언젠가는 유용할 전 세계 이색 페스티벌 모음집.
홍콩 시푸미즈 페스티벌
자연 속에 살어리랏다
홍콩을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이 화려하고 번잡한 상업적인 이미지 때문에 도시를 둘러싼 빼어난 경치와 자연경관을 놓치곤 한다. 홍콩은 4월경부터 여름이 시작되는데, 서너 달 짧은 겨울을 지나 다시 산과 바다로 나서는 홍콩 사람들에게 청차우 (Cheung Chau)섬에서 열리는 ‘시푸미즈(Shi Fu Miz) 페스티벌’은 여름을 여는 반가운 축제다. 이 페스티벌은 홍콩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인 푸푸(Fufu)와 음악을 담당하는 프랑스 출신의 라마미(La Mamie)가 의기투합하여 2016년부터 음악, 예술, 스포츠, 웰빙 등을 주제로 시작했다.
홍콩의 크레이지한 빌딩숲을 뒤로하고 홍콩섬 센트럴에서 1시간 정도 페리를 타고 청차우섬 사이윤(Sai Yuen) 농장에 도착하면 놀라운 장면을 볼 수 있다. 그곳에 가면 자연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해변에서 수영하고, 요가를 하며, 일렉트로닉, 펑크, 솔 음악을 배경으로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어 노닐고 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시푸미즈는 홍콩 최초 ‘제로-웨이스트(Zero–Waste)’ 페스티벌을 추구하며 생태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플라스틱 물병을 엄격하게 금지해서 캠핑장 곳곳에 직접 가져온 물병에 물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식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자 제공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 또한 흥미롭다. 해변 청소(참가자에게 무료 맥주 제공!), 생태계 및 도시 농업에 관한 워크숍 등 친환경 프로그램뿐 아니라 명상, 다양한 요가 세션, 그리고 스포츠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자연에서 일차적으로 깨끗해진 몸과 마음까지 정화되는 기분이랄까. 올해 라인업으로는 해외 및 홍콩 DJ들이 고루 섞였는데 페스티벌 주최자인 라마미를 비롯해, 레본 빈센트, 오키노 슈야 및 한국에서 온 Seoul Community Radio(SCR)등의 DJ들이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축제 열기를 뜨겁게 유지시켰다. 글 | 플레어 지안칼리(카피라이터)
핀란드 플로 페스티벌
음악 힙스터가 북유럽으로 간 까닭은
첫 문장은 짧게 쓰고 싶었다. ‘플로는 북유럽의 코첼라다’라고. 그 유혹을 접었다. 저 간편한 비유로 이 축제를 덮어쓰기엔 역부족이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매년 8월 열리는 ‘플로 페스티벌(Flow Festival)’ 이야기다. 3일간 연인원 9만 명이 다녀간 규모하며, 지난해 간판 출연진은 사실 꽤나 ‘코첼라’스러웠다. 켄드릭 라마, 세인트 빈센트, 악틱 몽키즈, 샤를로트 갱스부르, 플릿 폭시스…. 그러나 플로는 뜯어볼수록 기특한 축제다.
헬싱키 시내 북동부의 버려진 옛 발전소 터, ‘수빌라티’에서 열린다. 도심에서 도보로 20~30분이면 닿는 거리다. 친환경, 재생, 지속 가능성이 모토다. 대단히 핀란드스럽다. 폐발전소의 굴뚝, 창고, 철제 구조물이 축제 기간에 디자인 천국 특유의 조명과 미술로 치장된다. 10개나 되는 무대는 제각각 아기자기하게 도사린다. 부지 곳곳을 폐타이어나 폐컨테이너를 활용한 설치 미술이 미로처럼 휘감는데, 탐험하다 귀를 믿고 따라가면 무대가 나온다. 이를테면 혼잡한 메인 무대 뒤편에 은밀히 자리한 ‘디 아더 사운드 스테이지’는 진주 같다. 설치 미술 작품과 바(bar)가 혼재된 독특한 공간. 여기서 83세 고령의 미니멀리즘 음악 거장 테리 라일리는 아들 기언 라일리와 함께 공연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지속 음악(Continuous Music) 창시자, 70세 피아니스트 루보미르 멜닉의 20분짜리 연주곡은 큰 음량과 인파에 지친 나를 명상의 황홀경으로 안내했다.
3일간 144개 팀에 이르는 방대한 출연진에는 이렇듯 다른 데서 보기 힘든 ‘플로 초이스’가 돋보인다. 1967년 결성한 독일 전자음악 그룹 ‘탠저린 드림’의 심야 무대를 어떻게 잊을까. 풍부한 북유럽 특화 라인업도 장점. 노르웨이의 ‘안나 오브 더 노스’와 ‘시그리드’, 스웨덴의 ‘리케 리’와 ‘피버 레이’, 핀란드의 ‘알마’를 비롯해 다채로운 장르의 스칸디나비아 아티스트를 여러 무대에서 볼 수 있었다. 무대 위 구체가 오로라 같은 빛의 쇼를 펼치는 사랑스러운 원형극장도 있다. ‘벌룬 360°’ 스테이지. 지난해엔 모지스 섬니와 카마시 워싱턴의 음악이 이곳의 동화를 완성했다. 그런가 하면 작은 야외 정원 무대들은 요즘 뜨거운 세계 DJ들의 격전장이다. 지난해엔 페기 구와 예지의 디제잉을 여기서 봤다.
올해 플로는 8월 9일부터 11일까지 열린다. 카디 비와 에리카 바두를 필두로 테임 임팔라, 로빈, 파더 존 미스티, 토베 로, 스테레오랩, 컵케이크, 파로아 샌더스 쿼텟 등이 출연을 확정했다. 라인업은 추가될 예정이다. 글 | 임희윤(동아일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퀴어 페스티벌
나를 울린 퀴어 페스티벌
몇 해 전, 후배 녀석과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나 목적지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열흘간의 여행을 한 터라 약간 지쳐 있었는데, 우버 기사가 이런 말을 했다. “내일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행사인 퀴어 페스티벌이 열리니, 꼭 가보라”고. 미인들이 많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다음 날, 유부남인 나는 관심이 없었기에 늦잠을 즐기고 있었는데, 총각이자 여전히 국제 결혼에 환상을 품고 있는 후배 녀석은 아침부터 서둘렀다. 녀석이 재촉하는 바람에 슬렁슬렁 따라갔는데, 맙소사. 태어나서 그렇게 거대하고, 평화로운 퍼레이드는 처음 보았다. 광화문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촛불 행렬처럼, 온 시민들이 코스튬한 채 걷거나, 차와 자전거, 마차, 말 등의 탈것을 타고 행진하는데, 모두 온화한 미소를 잠시도 잃지 않았다.
행렬 제일 앞에는 ‘사랑한 지 51년 됐어요’라는 팻말을 건 할아버지 부부가 섰다. 그 뒤로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 커플, 배불뚝이 할아버지 커플, 가죽 부츠를 신은 대머리 할아버지 부부, 그리고 젊은 커플이 줄지어 갔다. 개인 행렬이 끝나자, 단체 행렬이 시작됐다. 실리콘 밸리의 도시답게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사 직원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잠깐 상상해봤다. 우리 사회는 ‘현대 자동차’, ‘삼성전자’의 이름을 건 게이, 레즈비언 직원들이 연대해서 함께 웃으며 걷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두 명도 아닌, 한 회사당 수십 명의 직원들이 노조처럼 연대하는 것을 허락할까. 주변을 둘러보니 언론사 건물에도, 맥도날드 매장에도, 갭(GAP) 매장에도, 아니 거리의 건물 전체에 LGBT를 응원하는 대형 무지개 깃발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방관 게이들이 행진했다. 그 뒤로는 레즈비언 경찰 커플들…. 이들이 제복을 입고 함께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웃음 짓고, 시민들은 환호했다. 나는 부끄럽게 이때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서울시청 앞에서 열리는 우리 행사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서, 내 안에서 끝없는 부끄러움과 반성의 눈물이 흘렀다. 자유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억압과 저항의 경계가 없었고, 이들은 그저 하나였다. 그 부러움에 내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아, 그나저나 후배는 어떻게 됐냐고. 우버 기사의 말은 맞았다. 후배는 많은 미인을 목격했다. 그리고 모두 레즈비언이라는 사실 역시 깨달았다. 녀석 역시 이날 많이 울었다. 글 | 최민석(소설가)
프랑스 아를국제사진축제
한여름의 근사한 사진 축제
고흐가 입원해 있던 아름다운 정신병동에서의 남미 사진전, 높은 리브볼트가 곡선미를 뽐내는 고딕 성당에서의 마이클 울프 전시, 아름다운 패턴의 기둥 양식을 볼 수 있는 로마네스크 건축물 생트로핌 수도원에서 열린 여러 사진전들…. 사진을 보며 건축물을 감상하고, 한 전시장에서 다른 전시장으로 이동하면서 로마 시대 고대 유적지 사이를 활보한다. 매해 여름이면 열리는 ‘아를국제사진 축제(Les Rencontres d‘Arles)’의 한 단면이다. 1970년부터 시작된 축제인 만큼 명성도 높고, 규모도 크며, 다루는 주제도 굵직하고 방대하다. 게다가 열리는 곳이 프랑스에서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프로방스의 아를이다. 순전히 축제 때문에 인구수 5만 명이 조금 넘는 이곳을 찾은 때가 2017년 여름 8월이었다. 축제에 대한 호기심에 비례하는 만큼 감수해야 할 것이 40도 넘는 고온과 모기 떼, 허술한 냉방 시설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에어컨이 구비된 숙소만 확보한다면 충분히 견디고, 즐길 만한 여름 휴양지이자 근사한 축제가 펼쳐지는 곳이다. 단, 현대 사진에 대한 조금은 예리한 감각을 지닌 이에게는 아를국제사진축제는 보수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2017년 방문했을 때도 많은 전시가 전통적인 ‘보도사진’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시 내용 또한 소위 말하는 ‘대가’에 초점을 두는 모양새였다. 그게 아쉬운 이들에겐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f/stop 라이프치히사진축제’를 제안한다. 2007 년 라이프치히현대사진센터의 주최로 첫발을 내디딘 f/stop 라이프치히사진축제는 매해 진행되다가 2012년을 기점으로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독일 내 주요 사진 축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16년도부터 라이프치히 기반 아트북 출판사 스펙터북스 (Spector Books)의 편집자들인 안네 쾨니히(Anne König)와 얀 벤젤(Jan Wenzel)이 큐레이터로 가담한 이후 축제는 매체로서의 사진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며 현대 사진의 최전선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휴양과 관광, 그리고 사진 예술이라는 두 가지 노선을 모두 즐기고 싶다면 아를국제사진축제를, 현대 사진 예술의 촉을 느끼고 싶다면 라이프치히사진축제를 추천한다. 후자의 경우, 밀도 있는 멋진 도록으로 축제에 대한 간접 체험이 가능하다. 그러니 이 축제는 굳이 못 간다고 애통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내용과 편집 그리고 디자인 등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축제 도록은 말한다, 가능하면 한 번쯤 현장에 오라고. 2020년을 기대해본다. 글 | 전가경(사월의 눈 대표, 디자인 저술가)
- 피처 에디터
- 김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