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땀 한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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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으로 구현하는 패션의 판타지를 되찾아 전승하려 노력하는 그들.

디자이너들은 이번 시즌, 옷에 판타지를 더하는 수단으로 ‘수공예’를 선택했다. 음식은 ‘손맛’이라고 하지 않던가? 극도로 정교하고 고도로 섬세한 의상을 보면 패션도 역시 ‘손맛’임을 알 수 있다.

자수 장식의 서로 다른 천을 패치워크해 만든 거대한 드레스는 톰 브라운 제품.

패션 안에 판타지가 지금보다 더 많이 담기던 시절, 레디투웨어 디자이너들은 옷을 만들 때 마치 쿠튀르 컬렉션을 제작하듯 공을 들였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옷을 짓는 수공예 작업. 시대가 돌고 돌아 그 시절로 회귀한 걸까?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장인에 헌사와 경외를 표하며, 옷에 수공예적 오라를 담았다. 자신들의 갈고닦은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요소는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패치워크를 활용해 평범한 드레스를 아트피스로 끌어올린 톰 브라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올해 초, 인터뷰에서 톰 브라운은 트렌드가 빨리 생겨났다 사라지고, 잘 만들어진 옷의 자치가 점점 사라지는 요즘 패션계의 현상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트렌드를 쫓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이 더 중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퀄리티 좋게, 아름답게 하는 것, 이것이 트렌드를 걱정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요소일 겁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듯 그는 몇 시즌째 본인의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쿠튀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만들고 있다. 최근 그가 자주 활용하는 방식은 천으로 연출하는 콜라주 기법인데, 과장되게 부풀리고, 재단한 뒤 재조립하는 그만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해 쿠튀르 레벨의 의상을 선보인다.

자수 장식의 서로 다른 천을 패치워크해 만든 거대한 드레스는 톰 브라운 제품.

한편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너선 앤더슨은 인스턴트 시대에 수공예의 중요성을 빠르게 간파하고 2017년 로에베 크래프트 파운데이션을 만들어 공예가를 발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나아가 그들의 기술력을 브랜드에 이식시키는 다양한 시도를 펼쳐왔는데, 최근에는 크래프트 어워즈에서 우승한 작가들과 협업해 의상을 만들기도 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앞서나간 덕에 장인의 기술과 재료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아트피스를 로에베의 이름을 달고 생산해낸 그의 영민함이라니! 특히 로에베의 컬렉션 중 라탄 바구니 백이나 깃털 액세서리 등 손맛 나는 아이템들은 그의 컬렉션에 완성도를 높여준 일등공신이다. 더불어 발렌티노 쇼에 등장한 거대한 라피아 모자도 이번 시즌 정교한 수작업으로 만들어 회자되었고, 하나하나 섬세하게 엮은 라피아 모자는 모던한 드레스에 쿠튀르적 터치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수작업의 꽃이라 불리는 자수 장식 기법은 알렉산더 매퀸과 랄프 로렌, 드리스 반 노튼 쇼에서 만개했다. 갑옷을 연상시키는 딱딱한 가죽 드레스에 들어간 우아하고 섬세한 자수는 강인함과 여림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요소로 활용되었고, 꽃 자수 조각이 패치워크된 랄프 로렌의 이브닝드레스 역시 향수 어린 손작업 덕분에 낭만적인 아름다움이 극대화될 수 있었다. 그 밖에 캔버스 원단에 추상화를 그려 넣어 새로운 원단을 만든 다음 그것으로 본 적 없는 드레스를 창조한 요지 야마모토와 이세이 미야케, 네트 드레스에 조개 장식을 달아 정교한 수공예의 미학을 보여준 알투자라까지,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만의 수공예 기법으로 차별화를 꾀한 점도 이번 시즌 두드러진 특징이다.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 독자적이고 고유한 수공예 기법을 개발해 자기화하려는 시도일 터.

THOM BROWNE

ISSEY MIYAKE

YOHJI YAMAMOTO

한편에서는 “입을 수도 없는 것을 만들면 뭐 하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톰 브라운이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는 우리의 과도한 실용성 요구를 잠시 돌아보게 한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옷을 보고 퀄리티와 장인 정신 그리고 클래식에 대한 탐구를 발견해주었으면 좋겠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며, 다른 점을 보고 자신만의 해석을 하길 바란다.” 그가 고독하게 탐구해온 쿠튀르적 행보를 우리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 속단할 수 없는 심사숙고해야 할 이슈임이 분명하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오래된 손기술에 집착하는 그들이 있기에 패션의 미래는 밝다. 사람의 손으로 구현하는 패션의 판타지를 되찾아 전승하려 노력하는 그들. 너무 쉽고, 빠르며 서로가 서로를 쉽게 카피하는 다분히 상업적인 패션 패러다임 사이에서 멀어도 우직하게 나아갈 길을 찾은 그들이 있으므로.

패션 에디터
김신
포토그래퍼
김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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