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은 미래 사람들의 연애 방식은 어떻게 변화할까?
AI(인공지능),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그리고 이 모든 기술과 변화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5G 시대가 도래했다. 여기 네 명의 필자가 미래의 사랑과 연애법에 대한 짤막한 가상 시나리오를 보내왔다.
5G 시대의 사랑과 이별
Scene 9
미즈하라 키코 水原希子는 미즈하라 유카 水原佑果에게 아바나에서 문자 데이터 24kb로 작별을 건넨다. 미즈하라 키코는 새로운 계절을 위해 미즈하라 유카에게 새로운 헤어, 새로운 의복, 새로운 구두를 안내받지만, 이미 새로운 미래에 있는 미즈하라 키코는 그렇게 결정한다.
미즈하라 유카는 상하이에서 문자 데이터 24kb를 바라본다. 며칠을 생각한다. 그리고 구글 드라이브, 공유 폴더에서 홍콩 여행 사진들을 다운로드한다. 여러 번 살펴본다. 미즈하라 유카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상한 이별이라고 생각한다.
미즈하라 키코의 시간이 간다.
미즈하라 유카의 시간이 간다.
미즈하라 유카는 제주도에 있기로 한다.
새로운 기억을 위해, 바다 제비를, 아부오름을, 삼성혈을, 섭지코지를, 선흘곳을, 산방산을,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성당을, 알뜨르 비행장을, 서귀포 천문과학문화관을, 앤트러사이트를, 수월봉을, 모슬포항을, 강정 마을을, 모슬포 교회를, 가파도를 찾아간다. 그리고 해일을 기다린다. 미즈하라 유카는 서울 화상 회의에 약속대로 참석한다.
미즈하라 유카는 제주 미래 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새로운 미래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은 미즈하라 유카에게 새로운 언어, 새로운 비주얼, 새로운 오디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새로운 시뮬레이션, 새로운 매뉴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등을 제공한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을 언어, 사용하지 않을 비주얼, 사용하지 않을 오디오, 사용하지 않을 커뮤니케이션, 사용하지 않을 시뮬레이션, 사용하지 않을 매뉴얼, 사용하지 않을 라이프스타일 등을 폐기하도록 돕는다.
미즈하라 유카는 서울에 있기로 한다. 새로운 현대를 위해, 인간을, 언어를, 인사를, 도시를, 환경을, 희망을, 맛을, 가족을, 즐거움을, 사랑을, 그리움을, 연민을, 치유를, 꿈을, 글을, 황홀경을, 이타주의를, 만남을, 선물을, 공동체를, 연락을, 의미를, 우정을, 예술을, 약속을, 생사를, 아름다움을, 꽃을, 신뢰를, 위로를, 믿음을, 미래를 생각한다. 그리고 구글 드라이브에 접속을 한다.
미즈하라 키코는 아바나를 떠난다.
미즈하라 키코는 서울에 있기로 한다. 새로운 현대인을 위해, 알고리즘을, 커뮤니케이션을, “Hello, World!”를, 도시를, 인터페이스를, 데이터를, 식량을, 가구를, 엔터테인먼트를, 시뮬레이션을, 검색을, 신호를, 채널을, 스크립트를, 약물을, 서비스를, 로그인을, 오브제를, 네트워크를, 실행을, 솔루션을, 협회를, 테크놀로지를, 자본을, 커넥션을, 최고값을, 식물을, 신용을, 복지를, 표준을, 과거를 리서치한다. 그리고 구글 드라이브에 접속을 한다.
미즈하라 키코水原希子(1)는 서울에서 iOS를 동기화한다. 잠시 생각을 한다. 미즈하라 유카에게 안부를 전한다. 미즈하라 유카 水原佑果(2)는 서울에서 안드로이드를 동기화한다. 잠시 바라본다. 미즈하라 키코에게 안부를 전한다.
(1)미즈하라 키코 水原希子는 2029년 LG전자를 퇴사 후, 현대카드에 입사한 여인. 아름답고, 총명하다.
(2)미즈하라 유카 水原佑果는 2029년식 Google.AI. 인간적이고, 인류적이다. 글 | 양아치(작가)
나의 AVR 파트너
오늘은 유진과 함께 장을 보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는 집에서 일해서 시간이 자유롭지만 도시 외곽의 작은 상담소에서 일하는 유진은 점심 시간에만 짬이 난다. 2년 전에 유진이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 이사한 뒤부터 우리는 AVR(AR과 VR을 합친 반 가상 세계)로 만나는 시간이 많아졌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장거리 커플 신세가 됐을 때는 졸지에 견우와 직녀가 된 기분이었지만 AVR에 익숙해지고 나니 오히려 예전 보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AVR 여행 모드로 들어가 유진과 만나기로 한 장소의 좌표를 찍었다. 오늘 우리가 장을 보기로 한 곳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시장이다. 시장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니 유진이 나타났다. 시장은 오늘도 여느 날처럼 북적인다. 현실의 사람들(대개 현지 주민들) 과 AVR로 들어온 사람들이 뒤섞여서 장을 보는 풍경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우리는 바로 내가 좋아하는 시장에서 나와 걸어서 공원으로 갔다. 넓고 푸른 잔디밭에서 사람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멀리서 봐서는 현실 사람과 AVR로 접속한 사람이 구분이 안 된다. 맑은 하늘과 커다란 나무들. 유진과 나는 각자 준비한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유진은 언제나 가장 좋은 대화 파트너다. 매일 수다를 떠는 데도 할 말이 떨어지는 날이 없다.
1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잘 가, 하루 잘 보내.” 우리는 손을 흔들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금방 유진이 보고 싶다. 결국 유진의 홀로그램을 책상 위로 소환한다. 작은 유진이 내 책상 위를 돌아다닌다. 저녁에는 유진이 퇴근해서 다 시 접속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홀로그램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도 있다. 접속만 되어 있으면 작은 크기여도 함께 뭔가를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그치?” 낮에 데이트하다 헤어진 유진과 통화하며 내가 말한다. “그러게, 머지않아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한 30년 뒤쯤?” 나는 할머니가 되어 AVR로 매일 여러 도시를 쏘다니는 우리를 상상한다. “그렇게 될 거야. 아마도.” 글 | 이종산(소설가)
- 피처 에디터
- 김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