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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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아시아계 여성 코미디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웃음을 빙자해 편견을 꼬집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마침내 제 주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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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스러운 중국인 엄마에게 이 세상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코스트코 것과 코스트코 것이 아닌 것.” 중국-이탈리아계 미국인 코미디언 프란체스카 피오렌티니(Francesca Fiorentini)가 본격 조크를 향해 운을 뗀 첫 대목에서부터 엄마와 나는 빵 터졌다. 양재동 코스트코에 남부럽지 않은 애착을 가진 엄마도 함께 키득 웃었다. 지난 12월 함께 여행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리는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를 봤다. 알자지라의 온라인 뉴스쇼 <AJ+>의 프레젠터로 지성과 유머를 뽐내온 프란체스카가 스탠드업 코미디도 한다는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알았다. 그녀의 트위터 계정에서 자주 언급되는 제니 양(Jenny Yang)이나 아츠코 오카츠카(Atsuko Okatsuka) 같은 젊은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코미디언에게 푹 빠진 것도 근래 일이다.

제니 양은 버즈피드의 “아시아인이 백인이 하는 말을 그대로 한다면(If Asians Said The Stuff White People Say)” 시리즈로 익숙한 코미디언. 그는 2012년 아시아계 미국인 코미디언으로 구성된 콜렉티브 ‘디스오리엔티드 코미디’를 설립해 미국 엘에이를 돌며 코미디 순회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 활동가로 일하며 코미디를 즐기던 그녀는 어느 날 ‘더는 백인 남자가 마이크에 대고 떠들어대는 더러운 조크만 듣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뒤 ‘자위행위’와 ‘대마초’ 이야기 말고 다른 코미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딸에게 ‘살 좀 빼라’는 직설 화법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마주칠 때마다 습관적으로 ‘밥은 먹었니?’ 묻는 자신의 한국인 엄마 이야기로 조크를 하던, 오랜 기간 유일한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코미디언의 타이틀을 짊어진 마거릿 초(Margaret Cho)가 구사하던 그런 유머 말이다. “캘리포니아 남부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자기주장 강한 자그마한 대만 여자아이가 자라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겠어요, 정치인 아니면 코미디언이죠.” 웃음을 빙자한 노골적인 정치적 발언은 ‘그녀들’이기에 할 수 있는 유니크한 조크로 승화되곤 했다.

2015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무표정한 얼굴의 북한 장군을 연기한 마거릿 초는 (대부분) 백인 시청자들로부터 인물을 지나치게 희화화했다고 비난받았다. 이에 대해 그녀가 <레이트 나이트 쇼>에 나와 남긴 조크는 가히 명불허전이다. “백인들은 아시아인에게 ‘인종’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곧잘 충고하더군요. 왜 그러는가 봤더니, 뭐, 흑인들한테 충고하기에는 좀 두려웠을 것 같긴 해요.” 넷플릭스 <베이비 코브라>로 록스타급 코미디언 반열에 든 베트남-중국계 미국인 앨리 웡은 아시아인이 장수하고, 운전 실력이 좋지 않다는 고정관념에 이렇게 맞선다. “우리가 운전을 왜 그렇게 거지같이 하는 줄 알아요? 이렇게 하면 좀 죽을 수 있을까 싶어서라고요.”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훌루(Hulu)에 코미디 쇼 <They Call Me Stacey>를 선보이는 일본계 코미디언 아츠코 오카츠카(Atsuko Okatsuka)는 뉴욕에서 열린 핫도그 빨리 먹기 대회에서 우승한 일본인 소식을 듣고 ‘젠장, 또 한동안 사람들이 나만 보면 이 이야기만 해대겠군. 아, 물론 일본 포르노 얘기 다음 순서로’라며, 소수의 자극적인 사례로 전체의 이미지를 일반화해버리는 편협한 태도를 꼬집는다.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코미디언들은 더는 ‘수학은 잘하지만 방향 감각이 좋지 않으며 헬리콥터 맘의 지휘하에 바이올린 과외를 받으며 곱게 자란 수줍은 소녀’ 프레임 속에 머물지 않는다. 1994년 마거릿 초의 <올-아메리칸 걸>에 이어 21년 만에야 <프레시 오프 더 보트>를 타고 <김씨네 편의점>을 거쳐, 그리고 수많은 풀뿌리식 스탠드업 코미디를 통해 좀처럼 들을 수 없던 ‘그들의 이야기’가 생산되고 있다. ‘다름’을 이유로 놀림받던 유년 시절을 보낸 그들은 이제 복제한 듯 똑같은 사고방식을 못 떨치는 세상을 유쾌하게 비웃는다. 역시나 늘 왁자지껄한, ‘라우드 아시안’답게.

프리랜스 에디터
김은아
아트워크
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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