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emale Gaze

이 화보에 관여한 사진가와 디자이너는 모두 여성이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프로젝트의 보스로 가장 적합한 이는? 두말할 것 없이 케이트 블란쳇. 그녀는 여성 사진가 다섯 명과 지금껏 도전해본 적 없는 초유의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사진 너머에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섯 가지 시선이 펼쳐진다.

“사진은 매번 우리에게 양 갈래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똑같은 길만 택한다면, 늘 똑같은 답만 얻을 뿐이죠. 이번 화보 프로젝트는 바로 그 ‘다른 길’입니다. 여성 사진가, 여성의 비전, 여성의 창의적인 행동과 포부, 노력. 축복받아야 하고, 타협하지 않는 여성의 길! 저는 어떤 사명과 비전을 선언하는 것보다 ‘오프닝 갬빗’ (바둑에서 초반에 우세를 확보하기 위해 두는 수, 포석)을 선호하는 사람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오프닝 갬빗이라고 여기고 싶군요. <W> 팀과 브레인 스토밍을 하고, 훌륭한 여성들이 모여 작업하면서 로켓 발사대와 같은 시작점을 쏘아 올린 셈이죠. 물론 이 결과물은 빙산의 일각이지만, 조금은 다른 렌즈로 삶을 관찰한 우리의 도발이 참신하고, 흥분되기를 바랍니다. 이 프로젝트를 만드는 데 들어간 모든 에너지가 페이지를 뚫고 나가 당신의 심장과 머릿속에 가닿기를. 저의 크리에이티브 즙은 확실히 흐르게 했으니. ”- 케이트 블란쳇

Maverick photographs by Sam Taylor-Johnson

“촬영을 시작하면서, 항상 그랬듯 영화적인 것을 떠올렸어요. 이번에 떠오른 것은 페데리코 펠리니가 만들어낸 여성 캐릭터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1980년대 영화 <마음의 저편>입니다. 다음과 같은 내러티브를 만들었죠. ‘새벽 5시에 머슬카 보닛에 올라탄 그녀, 맹렬하게 타이핑하면서 자신의 모든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중.’ 케이트와 저는 거친 캐릭터를 그려내려고 했어요.” -사진가 샘 테일러 존슨

슬리브리스 드레스는 Versace, 귀고리는 David Webb 제품.

분홍색 드레스는 Attico, 토끼 귀 모양의 헤드 피스는 Ellen Chtistine Couture 제품.

2018년 5월에 열린 제71회 칸 영화제에서의 장관을 기억하는가? 뤼미에르 대극장으로 이어지는 긴 레드카펫에서 82명의 여성이 함께 행진한 그 장면 말이다. 그들은 배우, 감독, 시나리오 작가 혹은 영화 산업 현장에 종사하는 여성 영화인이었고, 72년을 맞은 영화계 역사 속에서 성평등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중이었다. 배경도 출신도 각양각색인 그 여성들은 그저 부당한 대우를 서로 위로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 재능, 다양성, 창의성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그건 ‘연대’라는 적극적인 제스처다. 당시 칸 영화제 심사위원이었던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 역시 그 행진에 동참했다. “우리는 새롭고 신선한 방법으로 영화계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어요.” 여성들이 이끌어가는 케이퍼 무비 <오션스 8>에서 또 한 번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케이트 블란쳇은 시의적절한 발언을 꾸준히 하는 여성 영화인 중 하나다. 또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중 하나이며, 그에 걸맞은 다채로운 개인사를 누린다. <W>와 케이트 블란쳇은 오직 여성으로 구성된 사진가, 아티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타일리스트가 모여 여전히 지속되는 ‘MeToo’ 움직임과 같은 놀라운 여성 파워를 보여주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케이트 블란쳇이 그 세대 여배우를 대표하는 선봉에 서서 ‘여성의 시선’에 특별한 송가를 바치면 어떨까?

1972년 일간지 <우먼스 웨어 데일리(Women’s Wear Daily)>의 부록으로 론칭한 <W> 매 거진의 로고는 ‘여성’을 의미한다. 스타일의 세상에 사는 매혹적인 여성과 그 삶에 대한 기 록을 보여주는 것이 이 매거진의 시작이고, 여성은 언제나 우리의 주인공이었다. 그럼에도 주인공들 또한 때때로 대상화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현실은 이렇다. 오랫동 안 여성은 남자가 디자인한 의상을 위한 모델이었다. 그 모델을 촬영하는 사진가 또한 남 성이 많았다. 물론 초기 시절에 비해 이런 상황은 점차 달라져서 특히 지난 10년간 글로벌 패션업계의 성비 문제가 조금씩 개선되긴 했다. <W>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키려고 노력 하는 자들 중 늘 최선두에 서 있었다. 하지만 미디어 업계나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변화하 기까지는, 그러니까 진정한 평등을 성취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작업을 꾀하며 그중 하나로 케이트 블란쳇과의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케이트는 몇 개월에 걸쳐 바쁜 스케줄 사이사이 시간을 내어 여성 사진가들과 여성 디자이너들이 만든 의상으로만 화보와 영상을 촬영했다. 그녀는 칸 영화제 같은 굵직한 공식 행사에 설 때도 스스로 스타일을 결정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아주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화보를 기획할 필요가 있었다(이 화보 작업 외에도 케이트는 ‘여성이 디자 인과 건축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와 같은 주제를 제안해 관련 인터뷰를 기획하도록 했다. 또 영국 잡지 <더 젠틀우먼> 편집장의 진행 아래 미우치아 프라다와 만나 두 사람이 어떻게 여성으로서 전 세대에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었는지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 페 이지의 모든 컨트리뷰터는 여성이고, 최종 결과물은 여성이 할 수 있는 많은 역할을 내포 한 비주얼 다이어리다. 각각의 사진가는 서로 다른 모습과 콘셉트의 케이트 블란쳇을 담았 다. 일부 사진은 아주 영화적이라서, 어떤 스토리텔링으로 태어난 화보인지 사진가가 직접 소개하는 짧은 설명을 읽으면 재밌을 것이다.

대장정을 마친 케이트 블란쳇이 말했다. “성별에 대해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큰 의문이 들었죠. ‘나는 왜 이 놀라운 여성들과 더 많이 일하지 못했을까? 이들은 그동안 대체 어디에 있었나?’ 여러분, 그들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주목 하세요!”

She’s a natural photographs by Jackie Nickerson

“저는 촬영 전에 케이트를 만나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녀를 보면 시몬 드 보부아르나 조앤 디디온, 페기 구겐하임처럼 자신의 신체 언어에 대해 편안하면서도 당당한 여성이 떠오르곤 했죠. 우리는 영국 시골에 있는 케이트의 정원에서 즐겁게 촬영을 했어요. 그녀는 우리가 생각해낸 모든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위풍당당했고요.” -사진가 재키 니커슨

털 장식의 갈색 코트는 Sonia Rykiel, 흰색 티셔츠는 Vince 제품.

운동화는 Hi-Tec 제품, 청바지는 케이트 소장품.

Cate Blanchett, London, June 12, 2018 photographs by Rineke Dijkstra

“인간은 복잡한 존재예요. 단일한 게 아니에요.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기 위해서 꽤 오랜 기간을 두고 촬영합니다. 그래서 케이트가 메이크업을 받지 않은 채로 자기 옷을 입고 스튜디오에 막 들어섰을 때, 있는 그대로의 그 모습을 먼저 담았죠. 그다음 우리는 케이트가 마치 중요한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녀에게 드레스를 입혔어요. ‘둘 중 누가 진짜 케이트지?’라고 궁금해하는 게 흥미롭잖아요.” -사진가 리네커 데이크스트라

탱크톱은 Vince, 팬츠는 The Row 제품. 목걸이와 반지는 케이트 소장품.

분홍색 드레스는 Vera Wang, 귀고리는 De Beers 제품.

Uncanny Valley photographs by Alex Prager

“과학자, 그의 연인, 그리고 로봇에 얽힌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과학자는 연인의 모습과 닮은 로봇을 만들면서, 자신이 탄생시킨 로봇이 사회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결국 과학자는 로봇을 파괴하기로 결심하는데 로봇이 과학자와 그 연인을 죽이고 달아납니다…. 제목 ‘언캐니 밸리’는 인간을 닮은 기계에 이끌리는 불안한 심리를 뜻하죠. 상상으로 완성된 이 이야기가 정말 허황하기만 할까요?” -사진가 알렉스 프레이저

화려한 패턴의 톱과 펜던트 목걸이는 Chloé 제품. 

가죽 소재의 셔츠 드레스는 Hermès, 검정 롱부츠는 Sergio Rossi 제품.

가죽 소재의 셔츠 드레스는 Hermès, 검정 롱부츠는 Sergio Rossi 제품.

카멜색 코트는 Stella McCartney,

호피 무늬 코트는 Victoria Beckham 제품.

화려한 패턴의 톱과 팬츠, 팔찌와 반지, 부츠는 모두 Chloé 제품.

The Carnival is over photographs by Shirin Neshat

“오랫동안 저는 여성들이 사회의 억압과 규범에 저항하는 방식을 주목했어요. 그중에서도 여자 뮤지션이 대개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받는 일과 그 방식에 흥미가 있었죠. 이 화보를 작업하며 패션 필름도 찍었는데, 영상 초반에는 케이트가 아름다워 보이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자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죠. 관객석에서 야유가 들리고, 그녀는 거기에 맞서요. 다시 음악이 흐르면 그녀는 유혹적인 춤을 추지만, 얼굴은 사악합니다. 마지막 전복적인 행동으로 그녀는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화장을 지운 채 무대 밖으로 나가버려요. 그 부분은 케이트의 아이디어였어요. 미인이라니, 엿이나 먹으라는 거죠. ”-사진가 시린 네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