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리의 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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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라디오를 통해 한예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요즘. 배우, 무용수, 이제는 라디오 DJ로 사는 한예리의 다면적인 삶을 엿봤다.

초록색 샤 리본 블라우스는 프라다, 검은색 니트 톱과 시폰 주름 스커트는 폴로 랄프로렌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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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옐디? 요즘 반갑게도 나를 옐디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6월부터 MBC FM4U ‘FM영화음악 한예리입니다’의 DJ를 맡고 있다. 옐디는 DJ 한예리의 애칭이다.

배우가 라디오 DJ를 맡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그래서 더 옐디가 반갑다. 상반기에 라디오 DJ 섭외가 들어왔을 때, SBS <스위치-세상을 바꿔라>를 찍고 있어서 바로 승낙할 수가 없었다. 도전 정신이 있는 편이라 DJ를 하고 싶었는데도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잠시 쉬는 기간을 가진 후 ‘FM영화음악 한예리입니다’의 DJ가 되었다. 즐겁고 감사한 일이다.

새내기 DJ로서의 삶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을 것 같은데? 청취자와 수다 떠는 게 그렇게 즐겁다. 물론 처음에는 소통하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 청취자의 사연을 틀리지 않고 한 번에 다 읽는 일부터 녹록하지 않았으니까(웃음). 배우로서 연기할 때는 관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게 아니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다듬어진 결과물을 보여주는 셈이다. 근데 DJ로서는 연습이 없는 생방송으로 진행하니 청취자와 대화할 때 어색하고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이제는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DJ 자리가 꽤 편하고 좋다.

당신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들으면 배우 한예리뿐만 아니라 인간 한예리를 알아갈 수 있겠다. 그렇다. 라디오 스태프들과 잘 맞아서 대화를 자주한다. 특히 오프닝 멘트나 일요일의 코너 ‘한예리의 시퀀스’에 대해 많이 상의한다. DJ가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의 한 장면을 청취자와 얘기 나누는 코너다. <첨밀밀>, <파이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로마의 휴일> 등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자유롭게 수다를 떤다. 최근에는 라디오를 진행하는 1시간 동안 내가 사랑하는 배우 중 한 명인 케이트 블란쳇과 그녀가 나온 영화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다. 케이트 블란쳇을 향한 ‘팬심’을 고백했다고 할까?

10월 13일 막을 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아예 라디오 부스를 차렸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작년까지는 개막식에 참석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다양한 영화인과 만나고 소통했다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라디오 DJ로 활동했으니까. 영화제 둘째 날과 셋째 날, 영화의 전당 앞에 차린 이동식 스튜디오에서 ‘FM영화음악 한예리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특집 방송을 진행했다. 기회가 된다면 전주국제영화제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 다른 영화제에서도 라디오를 진행하고 싶다. 이번 특집 방송에서 게스트로 나온 배우 한지민과 영화 <미쓰백>을 두고 나눈 대화도 즐거웠다.

빨강 니트 카디건은 유돈 초이, 입체적인 재단의 체크 스커트는 푸시 버튼, 메리제인 슈즈는 율 리에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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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예리 하면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부터 떠오른다. 거기서 은희는 전에 만난 연인, 현재 만나는 연인, 오늘 처음 본 남자, 세 사람을 대하는 말투와 감정이 각각 다른데 그러면서 솔직하고 매력적이다. 당신에게 <최악의 하루>는 어떤 영화인가? 굉장히 즐겁게 촬영한 영화다. 촬영하는 내내 날씨가 좋았다. 스태프가 많지 않아 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작업했다. 덕분에 모든 상황에 충실할 수 있었다.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성격의 은희를 섬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 모두가 완벽했다. 얼마 전 MBC 예능 <토크 노마드- 아낌없이 주도록>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다른 출연진과 함께 <최악의 하루> 촬영 장소를 돌아보기도 했다.

영화를 위해 이런 것까지 해봤다’고 할 만한 일이 있나? 조선족 역할을 맡은 작품에서는 크랭크 인 4개월 전부터 연변에서 사투리를 배웠다던데. 첫 상업 영화 데뷔작이기도 한 <코리아>를 위해 탁구를 정말 열심히 쳤다. 현정화 감독님의 지도 아래 하루에 체력 트레이닝을 포함해서 6시간씩, 6개월 정도 연습했으니까. 당시 <코리아>에서 연기를 잘하는 방법은 영화 속 유순복처럼 탁구를 잘 치는 것뿐이라고 여겼다. 무용을 할 때도 어떤 동작을 셀 수 없이 연습하다 보면 그 동작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러워진다. 탁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빨강 니트 카디건은 유돈 초이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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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용을 전공한 당신은 몇몇 작품에서 춤을 춘다. 작품 속 춤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리고 한국 무용이 영화를 할 때 어떻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나? 작품 속에서 춤을 출 때는 춤추는 장면의 무드나 감독님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부분에 집중하는 편이다. 춤이라는 것이 말과는 다르게 아주 함축적인 부분이 있다. 영화 속에서 보여준 춤은 ‘흔드는’ ‘움직이는’ 정도의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의 흐름을 깨지 않는 것. 무용을 한 경험은 연기할 때 늘 도움이 되고, 난 여전히 무용을 하고있다. 그 덕분인지 촬영 시 나를 담는 앵글이 어떻든 그 안에서 행동하고 이동하는 게 어색하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든다.

무용 공연도 한다. 그럼 배우로서의 활동이 무용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나? 올해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공연을 못 했지만, 공연 제의가 들어오면 주변의 무용하는 친구나 무용 선생님과 함께 작업하기도 한다. 작년 12월에는 국립현대무용단의 레퍼토리 <댄서하우스> 무대에 올랐다. 배우로 활동한 이후 무용을 할 때 표현하는 방법이 보다 구체적으로 변한 것 같다. 예전에는 무용 주제를 표현할 때 막연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주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심플해졌다고 할까? 연기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길러져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배우 생활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좋은 것과 싫은 것에 대한 생각이 분명해지고 정리됐다. 그런 점이 무용에도 반영되는 듯 하다.

리본이 달린 튜브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님 팬츠는 빈스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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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봉한 작품으로 <챔피언>과 <인랑>이 있고, 상반기에 드라마 <스위치-세상을 바꿔라>에 출연했다. 배우, 무용가, DJ 등 직함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바쁘게 살려고 하는 편인가? 어떻게 보면 바쁘게 치여 살지 않으려고 라디오를 시작한 것이다. 영화의 경우 방금 얘기한 두 편 모두 작년에 뿌린 씨앗을 올해 거둔 셈이라 올해는 영화 때문에 그렇게 바쁘진 않았다. 요즘은 한 템포 숨을 고르기 위해 작품 활동은 안 하고 DJ에 집중하고 있다. 의외로 DJ를 하면서 영화를 보는 횟수가 굉장히 많아졌고, 그것 자체가 너무 즐거워졌다.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지점이 많이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좋아하는 영화가 궁금하다. 라디오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하는 것만 봐도 애니메이션, 로맨스, 스릴러 등 그 장르가 다양하다. 하드코어적인 영화도 잘 본다. 좋은 작품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는 것이 내 취향인가 보다 한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영화가 나오면 그 채널을 계속 보는 타입이다. 얼마 전에는 TV로 <왓 위민 원트>를 봤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이 영화가 남녀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의 마음에 공감하길 바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더라.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이래서 좋은 영화는 지속적으로 찾아 봐야 하는구나’ 싶었다. 영화는 그걸 누구와 보는지, 어떤 시점에서 보는지, 내가 어떤 상태에 있을 때 보는지에 따라 아주 다르게 추억되는 것 같다.

하늘색 터틀넥 톱은 살바토레 페레가모, 코듀로이 소재의 네이비 컬러 팬츠는 YMC, 페이턴트 메리제인 슈즈는 레페토 제품. 빨강 베레모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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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은 누군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의 밤’에서 유명한 감독님뿐만 아니라 이제 막 영화를 준비해 촬영에 들어가는 감독님까지 수많은 감독님을 만났다. 그들 중 한 분과 꼭 작업하고 싶다기보다는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여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주세요! 여성 캐릭터가 제대로 등장하는 시나리오가 적다 보니 나를 포함한 여배우들은 작품 선택의 여지가 적다. 어떨 때는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데뷔작부터 미쟝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연기부문에서 상을 받은 당신은 지금까지 연기력 논란을 조금이라도 일으킨 적이 없다. 연기 전공자도 아닌데 연기는 어떻게 배웠나? 경험을 쌓아 보니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
어떻게 연기를 배우는지, 배워야 하는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어찌 됐든 사람을 연기하는 일 아닌가. 내가 갑자기 다른 생명체를 연기하는 게 아니니까 일상생활을 잘 살다 보면 연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에는 우리 주변에서 살고 있는 어떤 인물을 확장해서 보여주는 일이다. 내가 잘 살다보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결론적으로 연기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배우에게 중요한 것은… 잘 사는 삶?(웃음)

잘 사는 삶. 그럼 일하지 않고 쉴 때는 주로 뭘 하며보내나? 요즘에는 쉴 때 잠을 푹 잔다.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잠이 더 온다. 또 원래 책을 좋아하거나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시간 여유가 생긴 요즘 책을 읽게 되더라. 선물로 책을 받기도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과 이경미 감독님의 책도 읽었고, 얼마 전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시사회에 참여했다가 선물로 받은 동명의 책도 읽었다(웃음). 아, <어른은 어떻게 돼?>라는 책은 재미있게 단숨에 읽었다.

거꾸로 입어 연출한 큼직한 리본 장식 재킷은 프라다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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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자 한예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뭔가? ‘나에게 맞는 삶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배우, 무용가, DJ 등을 통해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이런 삶들이 나라는 사람과 얼마나 잘 맞는 것인지 아직 잘 모른다. 때로는 내가 원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요즘 좀 생각이 많다.

30대 배우 한예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앞 질문보다는 훨씬 더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배우 한예리는 어떤 문장으로 표현되는 사람이고 싶은가? ‘그냥 좋다?’(웃음) 사람들은 어떤 말이 감정적으로, 생각으로 정리가 안 될 때 ‘그냥’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나? 누군가를 봤을 때 막연하게 좋은 사람이 있다.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고, 좋은 배우였으면 좋겠다. 누가 나를 떠올릴 때, 나에 대해 생각할 때 한예리는 ‘그냥 좋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춤추고 연기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 당분간은 라디오 DJ 옐디로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물론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작품이 눈에 띄면 다시 작업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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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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