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 속으로 (염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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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뜨겁고 치열한 가을을 보내고 있는 배우 염정아를 잔잔한 리듬 속으로 초대했다. 삶과 연기, 두 가지 회로 속에서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니트는 포츠 1961, 팬츠는 문 초이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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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처럼 가득 부풀어 오른 천 사이로 염정아가 걸어 들어간다. 무대 위에 오른 무용수처럼 팔을 한들한들 움직인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바람과 음악을 느끼는 그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봤다. 자유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수줍은 듯 장난스럽게 춤을 췄다. 촬영장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은 아니었다. 카메라 모니터 앞에서 그가 말했다. “아직 죽지 않았어(웃음).”

관록과 매혹이라는 상반된 단어를 붙일 수 있는 드문 배우이자 레드 컬러 립스틱 하나만으로도 극적인 무드를 만들어내는 사람. 1991년 데뷔 이래 형형색색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그려온 그녀. 그리고 2018년 11월, 뜨겁고 치열한 두 작품으로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친 그가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 염정아는 10월 31일 개봉하는 영화 <완벽한 타인>, 11월 방영을 앞둔 JTBC 드라마 <SKY 캐슬>을 준비하며 누구보다 분주한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블라우스는 질 샌더, 팬츠는 문 초이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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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를 처음 만난 건 영화 <완벽한 타인>의 제작 보고회 현장에서였다. 고운 캐멀 컬러로 드레스업한 그녀의 짧은 커트머리가 눈에 띄었다. 영화는 배우 유해진, 조진웅, 김지수, 이서진 등 베테랑 배우의 캐스팅으로 이미 화제를 모았다. 스토리는 다소 충격적이며 신선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한 테이블 위에 모인 각양각색의 커플. 그들이 자신의 핸드폰을 서로 공개하면서 시작되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되는 영화에 대해 염정아가 궁금증을 키운다. “우선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시종일관 사건이 계속 빵빵 터지거든요. 얼마 전 모니터 시사회를 가졌다는데, 거기서 평점이 4.4점이 나왔대요. 관객들이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는 뜻이죠. 영화 현장에서 오래 연기하다 보면 작품 찍으면서 대충 느낌이 오거든요. 촬영하면서도 그걸 약간은 직감했어요.” 염정아는 영화 속에서 유해진과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문학에 빠진 평범한 가정주부로 등장해요. 꼬장꼬장한 남편, 아이 셋,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여자로요. 일상에서 기도 제대로 못 펴고 사는 조금 가련한 그 여자에게 문학이 탈출구가 되어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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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TV 속에서 우리가 목격할 염정아는 그녀답달까, 제대로 힘이 있는 역할로 돌아온다. 우아하게 화보 촬영을 마친 그녀가 촉촉하게 넘긴 머리를 만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평소에 말을 좀 세게 하는 편이죠(웃음). 그렇지만 그 안에 유머가 있어요. 저 장난치는 것 되게 좋아하거든요.” 촬영장에서 심취한 표정으로 우아하게 춤추다가도, ‘에구구 허리야’라고 주저앉는 시늉을 하며 흐물흐물 풀어진 그녀였다. 염정아는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숨을 몇 초간 멈춰야 할 것 같은 카리스마를 장착했지만, 그녀 곁에서 오래도록 함께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털털하고 소탈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드라마 <SKY 캐슬>에서 맡은 한서진이라는 인물에 대해 염정아는 이렇게 소개했다. “말이 많지는 않은데 표정과 태도로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에요. 누군가에게 쏘아붙이는 신에서는 정말 어마어마할 겁니다. 제가 한 대사 중 정말 센 게 하나 있는데, 그거 따라 하는 분이 속출할지도 몰라요(웃음).” 대한민국 최상류층이 모여 사는 SKY 캐슬, 그 안에서 자녀를 최고로 만들고 싶은 명문가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과 갈등이 드라마의 큰 줄거리다. 일종의 리얼 코미디 풍자극인 이 드라마에는 이태란, 윤세아, 오나라 등 반가운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아시다시피 영화든 드라마든 최근 몇 년간 여자 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많지 않았죠. 특히 제 나이 또래 배우들이 신나게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다들 현장에서 정말 열심히 연기에 몰입해요. 저희끼리 너무 신나게 촬영해요. 어제도 촬영장에 있었고 내일도 찍어야 할 신이 있어요. 매일 촬영장에 있는 요즘 라이프 패턴이 너무 즐거워요.”

코트는 3.1 필립 림, 스커트는 NO˚21, 슈즈는 스튜어트 와이츠먼 제품,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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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해 “너무 좋아요, 너무 좋아요.”라고 되뇌었다. 그 좋은 에너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명랑하게 전염되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 정말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났어요.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었죠. 행복한 무드가 쭉 이어진 기분이에요.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2018년은 그 어느 때보다 염정아에게 의미 있는 해다. 그녀는 공백 기간에도 언제 어느 때든 작품을 만날 준비에 열심이었다. 그렇게 컸던 연기에 대한 갈증과 열망을 올해 많이 해소했으니. “소속사인 아티스트 컴퍼니 여배우들과 회식하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젊을 때 가능하면 많은 작품에 참여하라고요. 너무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경험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와 잘 맞는 것이 보이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알게 된다고요.” 염정아는 최근 두 편의 영화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카체이싱 액션 영화 <뺑반>에서 형사 역할로 등장할 예정이다. “지금처럼 짧은 헤어스타일을 한 건 <뺑반>의 형사 역할 때문이에요.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굉장히 카리스마 넘치는 멋진 여성으로 등장해요. 제가 아직도 충분히 멋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으로 도전했어요. 극 중 윤지현 과장은 부드럽게 말하지만 흡인력이 굉장하죠.” 그리고 배우 김윤석이 연출에 처음 도전한 영화 <미성년>에서 두 사람은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다음 날 바로 하고 싶다고 연락했어요. 좋은 작품을 발견하면 본능적으로 확 붙잡게 되는 것 같아요.”

드레스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슈즈는 지미 추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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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애정하는 작품에 대해 물었다. <장화, 홍련>, <범죄의 재구성>, <오래된 정원>, <카트>, 순차적으로 제목을 말했다. 신경이 예민하고 날카로운 새엄마, 엉뚱하고 매력 넘치는 구로동 샤론 스톤, 사랑이 전부였던 여자, 대형 마트에서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두고 해고를 당하며 권력에 저항하는 인물까지, 참으로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이미지를 전복시키며 나아가는 배우, 낯익은 세계를 뛰어넘어 언제나 낯선 세계로 돌진하는 배우였다. 염정아에겐 두 가지 회로가 존재한다. 배우로서의 인생,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 한 음 높아진 톤으로 그가 말을 이었다. “삶과 일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어요. 집에 들어가는 순간, 아이들이 내일의 책가방을 제대로 챙겼는지 체크하고 교복 상태를 확인하고 그런 후에야 편히 잠들 수 있어요. 그런 세세한 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펑크가 나더라고요. 작품을 하지 않던 시기에도 전 늘 바빴어요. 그 와중에 작품 하고 싶다는 뜨거운 마음이 늘 샘솟고 있었고요.” 염정아에게 삶이 드라마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살다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곤 하죠. 헤쳐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해결되어 있기도 하고요. 반대로 너무 기쁜 일이 일어났는데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해요. 삶이 사실은 드라마 아닐까요?”

“올해 정말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났어요. 행복한 무드가 쭉 이어진 기분이에요.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피처 에디터
김아름
포토그래퍼
박종하
스타일리스트
조운진
헤어
백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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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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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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