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가 기획하고,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추진하며, 일찍이 ‘불경하고 문제적인 아티스트’로 불린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큐레이팅한 전시가 열린다. 베끼는 정신으로 무장한 이 전시가 열리는 도시는? 복제의 천국, 중국 상하이.
두 아티스트가 있다. 먼저, 행위예술의 대모로 불리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그녀의 유명한 퍼포먼스 중 하나는 2010년 MoMA에서 진행된 <The Artist Is Present>다. 관객과 아브라모비치가 마주 앉아 약 1분간 시선을 마주친 채 정적인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특이한 형식이었다. 과연 통할까 싶었던 이 예술 현장에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시민은 물론 비요크와 제임스 프랭크를 비롯한 유명인도 줄을 섰다. 매일 하루 10시간가량(총 736시간) 가만히 앉아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수행’을 한 아티스트. 그녀는 행위예술가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신체를 통한 비언어적 소통을 시도했고, 퍼포먼스 전시 기간 내내 그 단순한 행위를 지속했다. 또 다른 아티스트는 이탈리아 출신의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이다. 1960년생인 카텔란은 풍자와 조롱, 유머를 담은 예술로 일찍이 이름을 알렸다. 밀라노 증권거래소 앞에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든 거대한 조각상을 세우고, 그의 작품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La Nona Ora’에서는 1999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운석에 맞아 쓰러진 모습의 조각 설치 작업을 했다. 극사실주의로 표현된 ‘La Nona Ora’ 를 보면 직관적으로 작가의 의도와 물음이 읽힌다. ‘신의 은총을 받은 교황은 운석도 피해 갈 수 있을까?(교황이라고 뭐 별수 있겠어?)’ 그의 유머는 종종 이렇게 도발적이고 극도로 불경하다.
10월 11일부터 12월 16일까지 상하이 유즈 미술관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발상’과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이미지’가 만난다. 전시명 <The Artist Is Present> 프로젝트의 출발지는 구찌다.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합을 맞춰 이 전시의 총괄 큐레이터로 나선 이가 바로 마우리치오 카텔란이다. 두 사람은 ‘아트’로 그들이 상상하는 것을 실현시키고 싶었다. 상상이란 현실에서 꾸는 꿈이고, 꿈은 현실과 닮은 데가 분명 있다. 어쩌면 꿈은 현실의 복제가 아닐까? 여기서 말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복제’ 하면 떠오르는 그곳. 대륙의 호방한 기운이 ‘복제품이 곧 원본’이라는 DNA로 응집된 듯한 바로 그 나라, 중국.
카텔란은 우선 ‘The Artist Is Present’, 즉 ‘아티스트는 존재한다’라는 의미의 유명한 기존 제목부터 복제했다. 이제 세계 각국에서 사진, 영상, 페인팅, 조각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상하이로 불러들일 예정이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창작물이 어떻게 일련의 반복 행위를 거쳐 배포되는지, 아티스트와 아트는 복제를 거듭하며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카텔란은 2016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18K 골드로 뒤덮은 황금 변기(작품명 ‘America’)를 선보인 적이 있다. 뒤상의 ‘샘’을 자기식으로 복제하면서 ‘부자든 가난뱅이든 여기 금칠한 변기에 앉아 똥을 누어라!’라고 한 거다. 구찌와 카텔란이 도모하는 전시 소문을 들은 후, 직접 볼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카텔란에게 메일을 띄웠다. 첫 질문은 물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The Artist Is Present>에 관한 것으로 시작했다.
10월 상하이에서 선보일 전시 <The Artist is Present>는 과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한 동명의 퍼포먼스 전시를 차용한다. 이미 존재했던 예술에서 착안한 정신은 뭔가? 근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자. 나는 퍼포먼스보다 이미지에 훨씬 관심이 많다. 마리나의 작품에서 내가 가장 감동적이고 강렬하다고 생각한 부분은 붉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무표정으로 앉아 있는 이미지의 힘이었다. 마치 금박을 입힌 고대 러시아 성상화(종교에 관한 것을 표현한 그림)의 현대판 같았다. 마리나가 그 퍼포먼스에서 했듯 어떤 행위를 아주 오랫동안 반복하는 것에는 물론 많은 의미가 있지만, 나는 이 반복 행위가 대중 매체 안에서 증식하는 모습이 가장 흥미로웠다. 두 전시의 유일한 공통점은 이거다. 그녀가 하는 행위의 성상화적 이미지를 끌어와 ‘도용’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를 알리고, 독창성의 개념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것.
전시에 참여하는 여러 작가들과 영감을 얻기 위해 한동안 상하이를 배회했다. 어떤 도시로 보이던가? 이번에 처음 가봤는데, 굉장히 독창적인 도시라고 단언한다! 모든 것이 놀랍고, 웅장하고, 의기양양하며, 신보다는 인간과 훨씬 긴밀하게 연결된 도시였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개미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주는 도시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복제이고, 복제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건 그간 예술 활동의 핵심적인 가치라고 간주된 독창성, 작품 의도, 표현력 등이 해체되는 현상도 긍정적으로 본다는 의미 같다. 나는 항상, 하나의 명료한 개념으로 추려낼 수 있는 대상은 예술적으로 죽은 목숨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예술에는 단도직입적이고 유일무이한 의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도가 있다면 이미 해결된 문제고, 흥미로운 구석이 없다. 예술은 보는 이가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때 가치 있다. 다만 ‘복제’라는 주제가 만국 공통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나 국제화되어 있어서 모든 문화권이 이 주제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겠다.
전시 작업의 키워드가 된 단 하나의 단어를 형용사나 동사로 꼽는다면? 좋아하는 걸 베끼는 것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베끼고, 베끼고, 베끼고, 베끼고. 결국 베낌의 끝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게 된다.
준비 기간 동안 예상치 못한 일에 맞닥뜨리거나 의외의 결과가 도출된 에피소드가 있나? 같이 일하는 플로리스트가 자신이 해바라기라고 생각하면서 잠에서 깬 적이 있다고 한다. 그날 이후 그는 자신이 다루는 꽃의 관점을 이해하게 됐다. 이를테면 햇빛 아래 있다가 뽑혀 나갈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나도 내가 나 자신의 복제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잠에서 깬 적이 있다. 똑같지만 다른 것. 이번 전시는 그 경험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를 통해 현실과 상상, 실재와 재현, 가상과 복제 등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당신은 상상하는 것을 다 실현해낼 수 있는 아티스트인가? 예술가는 뭐든 꿈꾸는 걸 실현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바에는 은행에 취직하는 게 낫다. 꿈꿀 용기가 있다면, 박차고 나가 그 꿈을 실현해야 한다. 꿈을 이루는 최고의 방법은 잠에서 깨는 것.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전시에 관해 나눈 대화 중 인상적인 내용을 들려주길. “어느 화창한 황금빛 오후에 / 우리는 여유롭게 물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네 / 작은 팔을 바삐 놀리며 / 서툰 솜씨로 노를 젓고 / 작은 손을 헛짚으며 / 우리의 방랑을 안내하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서문에 나오는 시 구절).
- 피쳐 에디터
- 권은경
- 포토그래퍼
- PIERPAOLO FERR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