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신예 패션 디자이너 다섯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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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런던 디자이너는 패션 안에서 패션을 말하지 않는다. 생물학적인 성과 사회적인 고정 관념, 인종과 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더없이 열린 태도로 옷을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은 대담하고 자유로우며 솔직하다. 기세가 무서운 런던의 신예 패션 디자이너 다섯 명은 시끄럽고 어수선한 당대의 패션 지형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여왕의 이름으로 Richard Quinn

맨 오른쪽에 있는 모델 진 캠벨과 나머지 모델들의 룩은 모두 리처드 퀸. 리처드 퀸이 입은 옷은 개인 소장품.

맨 오른쪽에 있는 모델 진 캠벨과 나머지 모델들의 룩은 모두 리처드 퀸. 리처드 퀸이 입은 옷은 개인 소장품.

지난 런던 패션위크의 빅 이슈를 꼽자면 단연 엘리자베스 여왕의 패션위크 등장일 것이다. 사실 개인 의상 담당자와 2천여 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왕관을 가진 사람에게 레디투웨어 트렌드가 안중에나 있을까. 하늘색 스커트 슈트를 입은 여왕님이 리처드 퀸의 2018 가을 프레젠테이션의 프런트로에 앉아 있는 것을 본(플라스틱 의자에 개인 방석을 설치해) 패션 관련자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어쩌다 90대 국왕께서 갑자기 프레타포르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도대체 리처드 퀸이 누구길래?
패션 추종자들조차 그 이유를 몰랐을 것이다. 리처드 퀸이 캣워크에 나와 여왕과 악수하기 전까지 구글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도 기사 10개를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셀 수 없는 헤드라인 기사들과 무수한 축하 전화가 왔던 2주가 지난 후에도 스물여덟 살 청년은 여전히 어쩔 줄 몰라 했다. “비현실적이지만 너무 좋은 경험이었죠. 아주 환상적인, 행복한 꿈을 꾼 듯했어요.”

퀸의 행복한 꿈은 쇼가 열리기 5주 전부터 시작되었다. 대단한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은 바로 영국 디자인 어워즈의 첫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어워드’ 였다. 쇼가 열리기 열흘 전쯤 자기가 우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쇼가 임박했을 때 여왕이 직접 상을 주기 위해 쇼에 참여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백스테이지에 있던 사람들이 난리법석을 떨기 전까지 여왕의 등장은 믿지 않았다. 그는 뛰어난 재능과 사회적 책임감을 가진 신진 디자이너에게 주는 영예로운 상을 받았다. 그는 충분히 받을 만했다. 2016년 세인트 마틴 대학 과정을 수료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런던 남쪽에 위치한 페캄에 방을 얻고 개인 스튜디오를 여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차를 빌려 돌아다니면서 쓰다 만 스크린 프린트 장비를 모으기 시작했다. 2017년 H&M 디자인 어워드를 통해 받은 5만 유로도 스튜디오를 여는 데 보탬이 됐다. 지금은 학생들과 소규모 디자이너들이 모여 버버리와 포츠1961 같은 큰 브랜드들의 텍스타일을 의뢰받아 제작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번 가을 리처드 퀸의 컬렉션은 금색과 보라색 꽃무늬로 장식한 드레스, 데이지 프린트로 뒤덮인 패딩 코트, 그리고 볼륨 넘치는 장미 무늬의 이브닝 가운부터 형형색색의 타이츠와 오버사이즈 오토바이 헬멧까지, 아주 화려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발모럴’ (스코틀랜드에 있는 영국 왕실의 별궁)이라고 명명한 룩이었다. 여왕의 스코틀랜드 별장을 생각하며 만든 이 옷은 여왕이 실크스카프를 머리에 두르는 데서 영감을 받았다. 화려한 문양의 스카프 여러 장으로 모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겁게 드레이핑한 옷은 마지막에 추가된 것이라고 퀸은 말했다. “여왕께서 직접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스카프 드레이핑을 추가했어요. 제 방식대로 말이에요.” 여왕의 시그너처 스타일을 재해석했지만 어떻게 보면 섹시한무슬림 부르카로도 보일 수 있는 피날레 룩을 만들면서 걱정은 없었을까. “여왕의 품은 꽤 넓으실 테니까요. 유머도 잘 아실 테고요. 제가 무엇을 보여줘도 특별히 놀라시거나 하실 분이 아니죠,” 신기할 정도로 현실적으로 흔들림 없이 말한다. “만약에 스카프 프린팅을 할 거라면, 영국 여왕님이 프런트로에 앉아 있을 때 해보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 싶었어요.”

글 | Jenny Comita

섹시한 라고스 스피릿 Mowalola Ogunlesi

모델 트레이 게스킨과 디자이너 모와로라 오건레시, 맨 오른쪽 사진가 리아 딜런의 옷과 액세서리 모두 모와로라 오건레시. 오건레시가 입은 보디슈트는 월포드, 딜런이 입은 탱크톱은 빈스 제품.

모델 트레이 게스킨과 디자이너 모와로라 오건레시, 맨 오른쪽 사진가 리아 딜런의 옷과 액세서리 모두 모와로라 오건레시. 오건레시가 입은 보디슈트는 월포드, 딜런이 입은 탱크톱은 빈스 제품.

“라고스에 있으면 저는 밖을 내다보며 이 도시의 역사를 떠올리죠.” 디자이너 모와로라 오건레시가 그녀의 고향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대해서 말했다. 지난 5월에 치른 오건레시의 세인트 마틴 학부 졸업 쇼 ‘사이키델릭 (Psychedelic)’ 컬렉션에 자신의 고향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그녀. 이제 스물넷인 그녀는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남성복을 만든다. 한마디로 ‘당당한 흑인 같으며, 범아프리카적’ 이라고 할까. 카니예 웨스트 같은 뮤지션의 열렬한 반응을 보고 그녀는 예상했다며 허리까지 내려오는 땋은 머리를 넘긴다. “물론 그런 사람이 제 옷에 열광한다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긴 하죠.”

185cm 정도의 키에 검은색 아디다스 바지와 나이키 에어맥스 97을 신고 센트럴 마틴의 대학원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그녀는 아주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다. 오건레시에게 패션이란 운명 같은 것이었다. 부모님 모두 패션 디자이너였으며, 스코틀랜드에 계시는 할머니는 결혼 후 나이지리아로 이주해 지역에서 만들어내는 섬유와 천을 쓰는 브랜드를 론칭했다. 열두 살 때부터 영국 교외에서 기숙학교를 다녔지만 자기 자신을 ‘분명한 나이지리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라고스에 갈 때마다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매드캡 시장이다. 그곳에서 전통 드레스를 만드는 현지인과 해변의 바다를 가르며 서핑하는 사람들, 직접튜닝한 차를 도시 사이로 몰고 다니는 에너지 넘치는 젊은 남자 레이서들, 일명 ‘휘발유 무리’를 눈여겨본다. 특히 이 집단은 그녀의 컬렉션에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자동차 로고로 된 체인 목걸이와 귀고리, 큰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든 모델을 볼 수 있다. 나이지리아의 오토바이와 버스 드라이버를 언급하며 길 상태가 엉망진창이라고 말하는 오건레시는 그들이 자신의 차, 오토바이, 혹은 버스에 어떤 낙서, 스티커, 그리고 메시지를 붙이고 꾸미는지에 흥미를 가졌다. 시적인 것부터 코믹한 것까지 분야는 경계가 없다.

오건레시의 작업실과 다락방은 미국 작가 디나 로슨의 사진과 오하이오 플레이어스의 앨범 커버들, 그리고 1970년대 미국 밴드 펑카델릭이 담긴 스크랩북으로 가득하다. 지난 1월, 실력 있는 드러머이기도 한 오건레시는 아트 사진 작가 루스 오사이와 라고스 현지 록밴드를 피처링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그녀는 밴드 멤버들에게 빨강, 주황, 그리고 노랑의 프린트 가죽과 가슴 바로 위까지 오는 길이의 섹시한 쇼트 재킷을 입혔다. 퍼포먼스에는 노출이 있고 타이트한 실루엣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니까. 밴드 멤버들이 처음 옷을 입었을 때 서로 낄낄거리며 웃었지만, 나중에는 셀피 찍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주 기뻐했다. 요즘 자신의 옷을 입는 여성이 늘어난다며 이번 룩북에 런던의 여가수 클라인을 포함시켰다. 그녀 또한 친구들과 테킬라를 마시러 가거나 PDA (동쪽 런던에 위치한 클럽)에 놀러 갈 때 자기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나간다. “여성과 남성 모두 옷을 입는 데에 성적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옷은 당당한 사람들이 좋아하죠.” ‘쾌락의 쾌락(Pleasure of Pleasure)’이라는 제목이 정해진 그녀의 다음 컬렉션에서도 그녀의 관능적인 유혹은 계속될 예정이다.

3대에 걸쳐 디자이너를 배출한 가계의 일원인 오건레시는 동시대의 다른 디자이너보다 모든 것이 조금은 수월했다고 말한다. 부모님의 지원이 많지 않은 대부분의 흑인 디자이너는 이런 창의적인 사업에 입성하기 사실 어려우니까. 더불어 패션계는 아직도 다양성에 대해 그다지 열린 곳은 아니라고 그녀는 말한다.
앞으로 계획 가운데는 카니예 웨스트와의 협업도 진행할 예정이라는 소문도 있다. “다양한 문화와 함께 호흡해야 패션은 평이한 안전지대를 벗어날 수 있어요. 항상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요.”

패션 종합 예술가 Grace Wales Bonner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는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

2016년도 LVMH 프라이즈 우승자로 선정된, 영국의 떠오르는 디자이너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 당시 우승으로 받은 상금 30만 유로보다 자신감이라는 더 큰 수확을 거둔 그는 3년 전 남성복으로 데뷔 쇼를 치른 스물일곱 살의 영국계 자메이카 디자이너로 런던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 덜위치에서 브릭스톤, 스트레섬, 투팅까지 매일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버스로 통학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스포츠웨어와 전통적인 옷을 믹스해서 입고 다 니는지 유심히 살펴보았죠. 그때의 시간이 지금의 디자인에 깊은 영향을 미쳤 을 겁니다.” 런던을 기반으로 아프리카와 탈식민지적 문화 이론, 현대 흑인 문학을 자신의 디자인에 반영하는 그녀는 옷을 하나의 문화 코드로 이해한다. 서펀타인 갤러리의 아트 디렉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 는 그레이스와의 첫만남부터 매료되었다고 말한다. 옷뿐만 아니라 패션을 통해 작가와 음악가, 시인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을 시도하는 그녀의 작업 방식에 말이다. 최근 프레젠테이션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책, 에메 세제르(Aimé Césaire) 작가가 1939년에 쓴 산문 시집 <귀향수첩(Notebook of a Return to the Native Land)>에서 영감을 받았다. 항구의 관능적인 느낌을 표현하고자 당시 항해사들의 옷과 유니폼을 찾아 살이 보이도록 옷을 잘랐다. 쇼의 세트 제작을 위해선 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미술 작가 에릭 맥에게 텍스타일 조각품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하고, 저녁에는 시인 제임스 메시아가 작가 데렉 월콧의 작품을 낭독하는 등 다양한 경계의 아티스트가 등장한다. 그리고 쇼 프로그램에는 컬렉션에 영감을 준 또 다른 서책 18개도 포함되었다. “저는 모든 것을 흑인의 문화적 시각으로 접해요. 어떤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은 개인적인 욕구가 있어요. 또한 옷은 매혹적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죠.” 가을 컬렉션에서 선보인 짧은 피코트와 부드럽게 퍼지는 팬츠가 좋은 예다.

처음에 웨일스 보너는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자질을 의심했다고 한다. 언니와 여동생, 변호사 아버지, 그리고 비즈니스 컨설턴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가정 환경은 역사, 미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했다. 긴 고민 끝에 세인트 마틴에 입학해 패션을 선택했고, 대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문화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넓혀갔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모색하는 패션은 현란하고 화려한 클리셰로 가득한 패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가 권한 세제르, 월콧, 그리고 마르티니크의 철학자이자 시인 에두아르 글리상 등의 작품, 프란츠 파농 같은 탈식민지 이론가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졸업 컬렉션에서 흑인의 리듬성에 대한 연구와 그것이 어떻게 미학적으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졸업 후 6개월 뒤 자신의 첫 맨즈웨어 컬렉션을 ‘패션 이스트’라는 젊은 런던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는 비영리단체 이벤트를 통해 선보였다. “남성을 위해 디자인하면 아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지죠, 판타지를 투영할 수 있거든요.” 벨벳 재킷과 팬츠는 크리스털과 옛날에 아프리카에서 화폐로 쓰던 조개껍데기를 장식했다. 설명에는 ‘할렘 르네상스의 무도회장에 울리는 이국적임의 반복이다’라고 적었고, 부록의 참고 목록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서적 중 가장 중요한 두 서적인 제임스 볼드윈의 <조반니의 방>과 랠프 엘리슨의 <보이지않는 인간>이 포함되었다. 자기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잘 알고 아주 편안하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부드럽고 우아한 남자가 그녀가 생각하는 남성성일 것이다. 비슷한 감성을 가진 음악가 FKA트위그스와 켈시 루 같은 여자들도
재빨리 웨일스 보너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최근 컬렉션에서 정교하게 재단한 하얀색 슈트 팬츠를 포함해 몇 개의 룩을 여성에게 맞게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또한 남자 옷으로 보여지길 원한다. 그녀 역시 자신이 디자인한 남성복을 입고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를 신고 머리는 질끈 묶어 올린다. “피비 파일로가 있던 셀린과 프라다를 아주 좋아해요, 프라다의 런웨이 컬렉션보다는 그들이 파는 대중적인 상품들 말이에요.” 디자인 과정은 가상의 세계와 그 세계에 사는 캐릭터들의 이미지와 소리를 떠올리며 시작한다. 그 후에 지난 컬렉션의 마르티니크 선원들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세계의 캐릭터가 무엇을 입을지를 탐색한다. 컬렉션의 콘셉트를 정한 후에는 자료에서 찾은 이미지들을 콜라주하고, 맥, 매시아, 그리고 2017년 가을 프로그램을 위해 시를 써준 화가 리넷 이아돔 보아케(Lynette Yiadom-Boakye) 처럼 같이 협업할 사람을 찾는다. 첫 샘플을 만든 후에는 모델과 친구들에게 피팅을 하면서 옷을 만들어간다. 메시지보다는 화려한 쇼에 중점을 두는 패션 시대에 그녀의 다양한 접근법은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 복잡한 아이디어와 콘셉
트를 이렇게 명확하고 열정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그레이스가 하는 모든 것은 아주 근사하게 실현돼요.” 오브리스트가 말한다. “콜라주는 멋진 아트 워크죠. 그녀의 작업 방식을 존중해요. 그녀의 작업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영어 단어는 없지만 독일에서는 이것을 ‘Gesamtkunstwerk(종합예술작품)’라고 하죠. 완벽한 예술 작품입니다.”

글 | Alice Rawsthorn

스토리텔링의 연금술사 Martine Rose

마틴 로즈와 아들 루벤, 그리고 모델 올리버 트루러브와 소수, 그리고 제스 콜이 입은 옷은 모두 마틴 로즈, 신발과 벨트는 모두 컨템포리 워드로브 컬렉션, 런던 제품.

마틴 로즈와 아들 루벤, 그리고 모델 올리버 트루러브와 소수, 그리고 제스콜이 입은 옷은 모두 마틴 로즈, 신발과 벨트는 모두 컨템포리  워드로브 컬렉션, 런던 제품.

“찾고, 찾고, 또 찾고. 제가 가장 잘하는 거예요.” 디즈니 스웨터에 남색 질샌더 바지, 그리고 90년대 클럽 키드의 필수템 패트릭 콕스 신발을 떠올리게 하는 하얀 크림색 브로그 신발을 신고 마틴 로즈가 등장했다. 중고로 산 옷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온갖 벼룩시장과 상인들의 보관함, 자선 단체 매장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진정한 패션 수집가다. 그리고 댄스 음악과 클러빙을 즐긴다. 90년대 그녀가 즐기던 열광적인 파티부터 오늘날의 다양한 젠더 클럽까지. 정해진 룰을 벗어나 자신만의 화려한 룩을 뽐내는 젊은 친구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저는 예전부터 옷을 성별을 넘어 옷 그 자체로만 보았죠. 유니섹스라는 단어는 이제 좀 진부한 것 같아요.”

로즈가 자신의 이름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한 건 벌써 11년 전이다. 전형적인 남성 슈트와 아노락, 데님 등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남성복에서 슬슬 자리매김 하기 시작했다. 리바이스 스타일의 오버사이즈 재킷, 화려한 투톤 라이크라 소재 레깅스, 80년대를 연상시키는 과감하게 자른 스톤 워싱 데님 등. 예사롭지 않은 그녀의 대담한 옷을 알아본 리한나와 드레이크 덕분에 패션계가 들썩였다. 유행과는 상관없는 런던 북쪽의 암벽 등반 체육관이나 실내 마켓처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쇼를 진행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 마켓 안에 있는 네일숍, 미용실, 식품 판매대 등을 모두 열어두라고 했어요. 패션계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를 느꼈으면 했으니까요.” 여기에 가발 같은 모자, 늘어지는 귀고리를 스타일링하는 방식도 무척 신선하고 유쾌하다. 이것만 봐도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가 브랜드 남성복 컨설팅을 위해 로즈를 영입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름답지만 스토 리가 없는 게 문제였어요.” 발렌시아가 남성복에 대해서 로즈가 말했다. 화제가 되고 싶어 하는 뎀나를 위해서였을까. 과장된 실루엣과 과한 스키니의 대비를 이용한 멋진 컬렉션을 선보였다. “모든 것이 쿨해요. 힙한 패션의 세계에서 온 듯해요.” 바잘리아는 그녀를 인정한다.

로즈는 런던 남쪽에서 영국계 자메이카인 가족 밑에서 자랐다. 항상 음악과 친척들로 가득했던 집은 조금은 불량한, 위험한 동네였다고 회상한다. 미들섹스 대학교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졸업 후 여성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동기들은 모두 자신의 레이블을 만들기 위해 밀란과 뉴욕으로 떠났지만 로즈는 런던에 남아서 스타일리스트 친구와 티셔츠를 만들고 리처드 니콜과 제시카 오그덴 같은 패션 레이블 밑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스타일링도 조금 해보았지만 광고주를 만족시키고 사진가를 위해 하는 일이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느 정도 성장을 이뤘지만 삶의 터전은 변한 게 없다. 스튜디오는 19세기 유제품 공장 빌딩이고, 다양한 인종이 사는 런던 북쪽에 위치한다. 여느 워킹맘과 다를 것도 없는데, 세 살짜리 아들 밸런타인을 놀이방에 보낸 후 갓난아기 아들 루벤과 차로 출근한다. “제 작업을 보면 제가 런던에서 왔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영국 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거맥주 로고가 박힌 판지 코스터를 그녀는 자신의 2013 가을 컬렉션 옷소매와 지퍼에 매달았고, 그다음 해 컬렉션에서는 클럽 광고물을 스크린 프린팅한 천을 바지에 덧댔다. “저는 확실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아요, 하지만 스토리를 만들고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는 자신 있어요.” 바잘리아는 스토리를 옷으로 구현하는 그녀의 능력을 칭찬한다. 올해 10주년을 기념하는 컬렉션에서 아카이브를 보고 라거맥주 로고와 클럽 광고물을 재해석했다. 쇼를 하는 대신에 세트장을 만들고, 3명의 여성 사진가에게 컬렉션을 촬영할 수 있도록 각자 하루의 시간을 주었다. “모델들의 포즈와 룩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런던의 국립 초상화 진열관에 갔죠. 그리고 모델로는 조금은 어린 친구들을 섭외했어요. 그들의 어색함과 앙상하고 하얀 피부색 때문에요. 성적인 것은 아니에요.” 이제야 로즈는 그녀에게 열광하는 세상 밖으로 나와 즐길 시간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글 | Caroline Roux

피리 부는 사나이 Charles Jeffrey Loverboy

찰스 제프리 (오른쪽)와 필름 제작자 젠킨 반 질이 입은 옷과 모자 모두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 질이 착용한 양말은 팔케, 벨트는 개인 소장품.

찰스 제프리 (오른쪽)와 필름 제작자 젠킨 반 질이 입은 옷과 모자 모두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 질이 착용한 양말은 팔케, 벨트는 개인 소장품.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의 디자이너 찰스 제프리는 어렸을 때 자신의 엄마가 마돈나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글래스고 집 벽은 액자로 프레임된 부모님 사진과 마돈나가 쓴 <Sex>라는 책에 나오는 사진으로 꾸며져 있다. 그의 아버지는 다섯 살 제프리에게 마돈나를 가리키며 “너희 엄마야”라고 농담하곤 했다. “엄마와 마돈나 둘 다 비슷한 과산화수소로 금발한 머리를 하고 있었어요.” 이런 마돈나의 글래머와 퍼포먼스에 일찍부터 노출된 제프리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습에 도전하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는 2013년에 보이 조지, 레이 보워리, 그리고 존 갈리아노 등이 자주 다니던 클럽 블리츠와 타부 같은 1980년대 전설적인 클럽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올해로 스물여덟인 청년은 2년 동안 주최해온 파티를 런던의 젊은 퀴어 커뮤니티, ‘규칙 없는 야밤의 실험실’로 설명하며, 무대가 진흙으로 뒤덮인 파티 덕분에 유명세를 탔다. 이런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무리가 가득한 곳에서 올해로 5번째 컬렉션을 선보였다. “클럽에서 옷을 만들었고, 그곳에 있으면서 퀴어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죠.” 수많은 광란의 밤이 그저 재미와 게임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파티를 주최하며 세인트 마틴에서 석사 과정 학비를 마련하고, 크리스찬 디올의 파리 오트 쿠튀르 아틀리에에서 3개월간 인턴도 했다. 잘록한 허리 라인, 아티스틱하고 화려한 니트, 그리고 페인팅된 데님 등에서 그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작년 브리티시 패션 어워즈에서는 자신의 우상인 갈리아노에게 ‘올해의 신진 맨즈웨어’ 디자이너 상을 받기도 했다.

갈리아노처럼 제프리는 일상적인 것과 고상한 것을 모두 참고해 작업으로 발전시킨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는 18세기-19세기 프랑스 유화로 유명한 월리스 컬렉션이다. “런던에서 공짜로 갈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예요.” 빈티지 슈트에 플랫폼 스니커즈를 신고 (마치 스파이스 걸스와 사이버펑크가 만났을 때를 연상시킨다), 벽에 걸린 게인즈버러 초상화 작품보다 더욱 발그레하게 화장한 제프리가 갤러리를 활보하며 말했다. <페인티드 레이디스>라는 멋진 다큐멘터리를 본 후 이어진 수많은 ‘러버 보이’(꾸미고 자신의 메이크업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남자들) 팬들을 만든 자신의 룩을 설명했다.

제프리의 최근 컬렉션, ‘탠트럼!(Tantrum!)’에서 그는 변형된 타탄 무늬, 오버사이즈 아가일 패턴, 그리고 칼로 자른 듯한 슈트를 선보였다. 이번 컬렉션은 미국 임상심리학자 앨런 다운스 (Alan Downs)가 추천한 책, <벨벳 분노: 이성애자들의 세상에서 게이로 살아가는 고통을 이기는 방법(The Velvet Rage: Overcoming the Pain of Growing Up Gay in a Straight Man’s World)>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빠른 시간 내에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그저 학생이었던 저는 한순간 퀴어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었죠”라며 스코틀랜드에서 보낸 우울하고 어두운 시간이 지금의 발판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릴 적 저는 생각했어요. 아주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어서 그들에게 보여주겠다고. 이런 태도는 오랫동안 남아요. 분노가 아주 큰 동기가 되었죠.”

월리스 컬렉션을 돌아보면서 타원의 드로잉 룸에 도착했을 때 제프리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프라고나르의 작품, <피에로 남자 아이(A Boy as Pierrot> 앞에 섰다. 커다란 옷을 입고 연극 스타일로 뺨을 그려놓은 아이가 그려진 그림이다. 특유의 형식적인 스타일과 장난스러운 매력의 18세기 로코코 초상화와 그 앞에 선 핑크색 머리 제프리의 조합은 흥미로웠다. “과거는 완전히 다른 세계죠.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요.” 신비한 마소를 띤 채 제프리가 말했다.

글 | Emma Elwick-Bates

패션 에디터
이예지
포토그래퍼
TIM WALKER
스타일리스트
SARA MOONVES
모델
JEAN CAMPBELL, JESS COLE, NIALL UNDERWOOD, ABLIE NJIE, AMARA SHERIFF, FLORA MILES, REBECCA O’DONOVAN, SONI, SHEIK SHERIFF, TREY GASKIN, MAXIMILIAN DAVIS, OLIVER TRUELOVE AND SO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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