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니, 리듬 속에 그 춤을

이채민

‘가수 겸 발레리나’라는 타이틀은 오랫동안 스테파니가 선망해온 꿈이다. 아이돌 시절부터 단련한 그녀의 퍼포먼스가 신중현의 음악을 녹인 창작 뮤지컬 <미인>과 만난다. 현대적 음율 속에서 고전 발레를 축으로 한 스테파니의 몸짓이 아른거린다.

파란색 재킷은 디-앤티도트 제품, 검정 브라톱과 브리프는 본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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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가 천상지희의 천무 스테파니이던 시절,그녀가 예능프로그램이나 무대에서 춤출 때면 ‘접신’의 굿판이 벌어지는 듯했다. 그녀 안에 춤이 있었다. 넘치는 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목구비와 휘날리는 머리카락에 다 배어 나왔다. 오죽했으면 이름 앞에 ‘하늘의(하늘에서 내린) 춤’이 붙었을까? 아이돌 팬들 가라사대, SES와 핑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데뷔 사이에 등장한 2000년대 중반의 걸그룹은1.5 세대에 속한다. 이름 앞에 한자를 붙이는 SM식 작명은 동공이 확장할 정도의 충격을 안겨줬지만, 이미 동방신기의 성공으로 면역이 생긴 상태에서 4인조 천상지희는 데뷔했다. 중국 활동에 이어 일본 투어를 도는 중 스테파니가 허리를 크게 다친 건 2009년의 일이다. “저는 몸을 사리지 않아요.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 애쓰지 말고 적당히 살라는 말을 듣곤 했죠. 하지만 춤은 출 수 있을 때 춰야 해요. 스태미나를 아꼈다가 나중에 알맞게 분배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가장 잘하는 일과 가장 좋아하는 일이 일치하는 사람은 그 한 가지에 올인하는 만큼 리스크도 크다. 이건 EXO의 춤꾼 카이 역시 했던 말이다. 스테파니는 한동안 자기다움을 찾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공연하는 국내 창작 뮤지컬 〈미인> 무대에 오르기까지, 스테파니에겐 많은 일이 벌어졌다. 2015년 첫 미니 앨범을 내고, 이듬해 여름에는 ‘프리즈너’라는 싱글을 내며 금발 단발머리에 수영복 차림으로 나타나 예의 비상함을 다시 보여줬다. 가장 놀란 건 뉴스에 소개된 그녀를 봤을 때다. 2016년 가을이었다. LG아트센터에서 하는 <한여름밤의 호두까기 인형>에서 주인공 클라라와 호두까기 인형 1인 2역을 맡은 스테파니의 영상엔 ‘가수 겸 발레리나’라는자막이떴다. 고전발레 <호두까기인형>의 배경을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꾸고, 호두까기 인형 캐릭터가 등장하는 판타지로 재해석한 창작 발레. 스테파니는 전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인 이원철과 공연했다. “발레리나 겸 가수. 그게 바로 어렸을 때부터 제가 꿈꿨던 거예요. 허황된 욕심이겠지 싶었어요.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해도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의 간극이란 분명 존재하니까요.” 그무렵, 예능에서 호쾌한 모습을 보여주던 스테파니는 무엇보다 ‘걸 크러시’ 트렌드와 어울려 보였다. ‘보기보다’ 내성적인 데다 발레라는 예술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녀를 기대만큼은 방송에서자주 볼 수 없었지만.

발레는 스테파니가 걸 그룹의 안무보다 더 먼저 익힌 춤이다. 오페라 가수로 활동한 엄마의 취향으로 스테파니가 사는 집에는 늘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피아노를 치든, 그림을 그리든, ‘끈기가 없어서’ 몇 개월 하다 관둔 어린이는 초등학생이 되자 부모에게 딜을 하는 배포를 갖추기 시작했다. “피아노 콩쿠르에 나갈 일이 있었어요. 제가 그랬죠, 콩쿠르에서 입상하면 피아노를 그만 배우고 싶다고.” 쿨하게 입상해버리고 피아노와 결별한 스테파니가 유독 발레에는 정을 보였다. 일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간 건 예술가의 DNA가 흐르는 부모님이 어린 그녀를 더 큰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해 결심한 일이다.

흰색 셔츠와 연노랑 팬츠는 코스, 발레 슈즈처럼 끈이 달린 슈즈는 반스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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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스테파니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연기까지 해내기 전, 부상으로 인한 우울을 털기 위해 다시 꺼내든 게 발레 슈즈다. “몸을 쓰지는 못하니 이론이라도 공부해보자 마음먹었죠.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을 땄어요. 제가 직접 춤추지 못하는 대신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었고, 그런 이력 덕분인지 발레단에 들어가서도 제 춤을 추며 프로 단원을 조금 가르쳤어요.” 7년 전, 스테파니는 설립 5년 정도 된 신생 발레단 LA 발레단과 한예종에 동시에 합격했다. 학교를 바로 휴학하고 유일한 아시안 여성으로 발레단에서 전문 무용수 활동을 했으니, ‘발레리나’라고 불릴 수 있는 떳떳한 명분이 생긴 것. 물론 끼와 흥이 많은 춤꾼이 소화할 수 있는 춤은 다양하다. <미인>에서 스테파니는 스윙을 기본으로 재즈, 발레 등 각종 춤을 선보인다. 뭔가를 잘하는 데다 열정까지 있는 사람에겐 늘 할 일이 많이 주어지는 법이다. <미인>의 안무가는 스테파니가 뮤지컬 무대에 맞춰 동작을 선보이면 더 기교 있고 과한 춤을 춰도 좋다고 주문했다. “그러기엔 의상이 좀 불편할텐데요?” “그럼 의상을 좀 바꿔보자” 하는 식.

신중현의 가요를 기반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 이제야 생긴 건 오히려이상하다. 2011년 <광화문연가>와2013년 <그날들>이 각각 작곡가고 이영훈이 만든 곡과 김광석이 부른 곡으로 ‘쥬크박스 뮤지컬’ 신화의 출발을 알린 후, <미인>은 제작 기간만 4년을 거쳤다. “모든 게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뮤지컬식으로 편곡해도 원곡이 지닌 오리지낼리티가 있다 보니 여간 골치 아픈게아니었죠. 김완선의 ‘리듬 속에 그 춤을’을 뮤지컬 창법으로 부른다고 생각해보세요(웃음). 그래서 우리는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뒀어요. 예를 들어 제가 충격을 받고 아편굴에 들어가 몽롱한 상태에서 ‘리듬 속에 그 춤을’을 부르는 식으로 설정하니까 드라마와 음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죠.”

신중현이 만든 음악은 ‘아날로그 정서’를 일으키는 이영훈이나 김광석의 음악과는 좀 다르다. 신중현과 엽전들이 부른 ‘미인’은 1974년발표됐다. 밴드ADD4가부른 ‘빗속의여인’(1964년), 이정화의 ‘꽃잎’(1967년),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1968년), 신중현과 뮤직파워의 ‘아름다운 강산’(1980년), 김완선의 ‘리듬 속에 그 춤을’(1987년)까지,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두루 걸친 그의 가요는 시대적으로 복고풍이다. 하지만 그 시절 노래라고 하기에는 극강의 세련미를 갖췄다. 발표 시대와 음악이 지닌 개성 및 무게를 생각하면 뮤지컬 관계자들 머리가 아플 만도 하다. 드라마를 위해 1930년대 경성과 무성 영화관을 배경으로 택한 건 적절한 솔루션 같다. 스테파니는 당시 모던 보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고혹적인 시인으로, 자신의 시와 노래가 시대에 얼마나 힘이 있을지 괴로워하는 신여성 역할을 맡는다. “김추자 선생님의 ‘알 수 없네’라는 곡이 있어요. 신중현 선생님이 우리 리허설을 참관한 후, 잘 알려지지 않은 그 노래를 해석한 방식이 새로웠다는 이야길 하셨대요. 그 한마디에 엄청나게 큰 힘을 얻었어요. 익숙한 곡이지만 낯선 버전이 많아서 옛날 느낌만 생각하고 오시는 분은 좀 당황할 수도 있어요. 우리 뮤지컬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담당했던 음악 감독님의 편곡과 분명한 드라마가 맞물려 있죠.”

<미인>은 대학로 소극장에 올랐던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이후 스테파니의 두 번째 뮤지컬 도전이다. 과거 천상지희의 곡을 노래방에서 부르다가 숨 넘어가는 사람이 속출했으니, 춤만큼 파워풀한 보컬은 뮤지컬 스타가 될 기본 요건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자기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퇴장 한 번 못한 채 1시간 반을 쭉 이어가야 했던 베르베르 소설 원작의 연극 <인간>에 겁도 없이 도전하고(절친 장근석은 아역 때부터 연기한 자기도 도전하지 못한 연극을 과연 소화할 수 있겠냐며 걱정했다), 동시에 tvN 드라마 <내성적인 보스>를 촬영하기도 했다. 처음 제대로 연기해보면서 연극 연기와 드라마 연기를 오가다니, 호기롭다고 해야할까? “심플해요. 기회가 왔는데 안 잡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저를 찾아주고 믿어주는 사람에게 확신을 주고픈 욕심도 있고요. 20대에는 그 모든 게 다 공부라고 생각하고 주어지는 일을 무조건 열심히 했어요. 30대에는 좀 더 똑똑해져야죠. 이젠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발전할 때예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최상급 지원을 받으며 단련하는 행운을 누린 이들은, 그만큼 홀로 섰을 때 면역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어릴 적 스테파니는 시스템이 철저한 회사에서도 솔로 파트를 알아서 짜도록 놔두는 소수 중 하나였다. 선택도, 창작도, 주체적으로 하며 살아온 스테파니에게 그 에너지를 발산하기만 하면 되는 무대가 기다린다. “저는 아티스트로서의 제 삶을 살기 위해 자연인 스테파니의 삶은 많은 부분 포기했어요. 무대를 밟고 싶기 때문에 그 아래서 보내는 시간은 대개 무대와 관련이 있죠.” 현대 음율의 리듬 속에서 고전 발레를 축으로 한 스테파니의 몸짓이 아른거린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패션 에디터
고선영
포토그래퍼
신선혜
헤어
윤성호
메이크업
권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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