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발생률 100%를 자랑(?)하는 화장품도 ‘재활용 쓰레기 대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난달 1일, 서울과 수도권 재활용 수거업체들이 폐비닐과 폐스티로폼 수거를 거부하며 일명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벌어졌다. 중국 정부가 2018년부터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전면 금지하면서 중국으로 수출되던 폐기물 물량이 국내에 쌓였고, 재활용 원료의 가격이 급락하면서 국내 재활용업자들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폐비닐과 폐스티로폼의 수거를 거부해 벌어진 일이다. 화장품 패키지는 비닐과 스티로폼이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까방권’ 영역에 있는 건 아니다. 화장품 포장에 사용되는 각종 비닐과 스티로폼 양이 상상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쓰다 만 영양 크림이나 토너 등의 내용물을 제대로 버리고 배출하지 않으면 재활용 마크를 달고 있는 용기라 하더라도 재활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 전 세계의 바다로 유입되는 640여만 톤의 쓰레기 중 60~80%가 플라스틱인데, 화장품 용기의 대다수가 플라스틱이라는 사실만으로 화장품이 이 대란에서 조역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다. 다행히 작년부터 미세 플라스틱을 함유한 화장품 수입과 제조가 전면 금지되었지만, 화장품 패키지 재활용 이슈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화장품을 잘 버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내용물을 모두 비우는 것이다. 화장품에 포함된 색소와 방부제, 인산, 형광 증백제 등의 화학 성분은 자연에 존재하는 좋은 박테리아를 파괴해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립스틱이든 크림이든 용기 안에 있는 내용물을 깨끗하게 걷어낸 뒤 유분기를 물이나 세제로 싹 닦아서 깔끔한 공병 상태로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유분이 가득한 영양 크림이나 아이섀도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서는 안 된다. 화장품을 똑똑하게 버리는 방법은 이렇다. 로션이나 크림, 파운데이션처럼 유분기가 있는 내용물은 키친타월을 이용해 기름기를 최소화한 뒤 휴지에 싸서 일반 쓰레기로 배출한다. 쿠션 파운데이션은 쿠션만 용기에서 분리해 일반 쓰레기로 버리고 케이스는 분리 배출한다. 오일이나 토너 등의 액체류는 큰 통에 신문지를 뭉쳐서 넣은 다음 내용물을 부어 신문지에 흡수시킨 뒤 신문지는 건조해서 일반 쓰레기에 버리고 공병은 분리 배출한다. 버리기 힘든 리퀴드 립스틱은 요구르트 빨대를 활용할 것. 중간에 고무 패킹을 제거한 뒤 요구르트 빨대를 브러시가 들어가는 작은 구멍에 넣고 숨을 살짝 들이마시면 내용물이 빨려 올라온다. 이렇게 내용물을 키친타월에 덜어낸 뒤 키친타월은 휴지통에 버리고 케이스만 배출하면 된다. 가루 제형의 화장품은 가루 날림을 방지하기 위해 못 쓰는 크림이나 물에 살짝 섞어서 일반 쓰레기에 버리자. 샴푸나 토너 등 본체와 뚜껑의 재질이 다른 경우 두 개를 분리해서 버려야 재활용 과정에서 번거로움이 줄어든다. 재활용 수거 업체에서 세제를 사용해 본체에 붙은 라벨 스티커를 떼어내기도 하지만, 가능하다면 스티커가 흔적 없이 똑 떼지는 제품을 사용할 것.
다 쓴 공병을 그냥 버리기 아깝다면 뷰티 브랜드의 공병 정책을 눈여겨봐도 좋다. 이니스프리는 다 쓴 자사 용기를 다양한 재활용 제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작년에는 이 캠페인을 통해 모은 공병을 자재화해 소격동에 업사이클링 매장 ‘공병공간(空甁空間)’을 열었는데, 내외부 공간의 70% 를 23만 개의 이니스프리 공병을 분쇄해 만든 마감재로 장식해 이목을 끌었다. 환경 이슈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러쉬는 자사의 플라스틱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진 패키지 5개를 가져오면 ‘프레쉬 마스크’ 정품을 증정하는 ‘블랙 팟의 환생’ 캠페인 외에 올해에는 화려한 패키지를 과감히 없앤 고체 형태의 네이키드(Naked) 제품을 출시했다. 샤워젤과 같은 액체류는 그것을 담을 용기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액상 제품에 원료 몇 가지를 배합해 고체로 굳혀 용기가 필요 없게 만든 것이다. 앤아더스토리즈는 뷰티 제품 용기를 매장으로 가져오면 10% 할인 바우처를 제공하며, 맥은 다 사용한 정품 용기 6개를 매장에 가지고 가면 가장 잘 팔리는 립스틱 20개 중 1개를 준다. 올리브영은 받아도 금세 찢어서 버리거나 가방 속 깊숙한 곳에 처박아두는 종이 영수증을 대체할 스마트 영수증 서비스를 적극 홍보 중이다. CJ ONE 앱을 다운받으면 구매 영수증이 자동 저장돼 환경 보호에 일조할 수 있을뿐더러, 교환이나 환불이 필요할 때 종이 영수증을 찾으려 외투 주머니와 가방을 뒤질 필요가 없다.
좀 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화장품 용기 소재를 단일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화장품 제조업체에 용기를 단일 소재로 만들도록 권장한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겪고 있는 한국도 이와 같은 움직임에 동조하는 추세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애경산업 등 내로라하는 화장품 기업들이 올해 6월부터 내년까지 용기에 브랜드명을 직접 인쇄하는 방식을 제한하고 용기와 뚜껑 혹은 라벨의 재질을 동일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같은 플라스틱이라 하더라도 폴리프로필렌과 폴리에틸렌, 폴리스티렌 등으로 재질이 다르면 재질별로 녹는 점이 달라 재활용하기가 어려웠는데, 단일 소재로 만들면 재활용이 훨씬 더 수월해진다. 매일 화장품을 소비하는 개인으로서 똑똑한 분리수거 외에 환경 보호에 일조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 시작은 과대 포장을 최소화하는 데서 시작된다. “고객님, 선물 포장해드릴까요?”라는 점원의 말에 ‘내게 주는 선물이니까’라는 마음으 로 포장을 요청했거나 혹은 “포장할 때 화장품 안 흔들리게 포장재 듬뿍 넣어주세요”라는 말을 했다면 이제는 “그냥 주세요”라는 한마디와 함께 가방에 쏙 넣어 가져가는 무심함을 발휘해보길.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나비 효과처럼, 당신의 작은 실천이 지구의 환경 보호에 큰 역할을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 뷰티 에디터
- 김선영
- 포토그래퍼
- 엄삼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