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넘나들며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해온 세르주 루텐.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선이 오롯이 담긴 메이크업 라인 ‘네세세르 드 보떼’가 찾아왔다.
포토그래퍼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아트 디렉터, 조향사…. 남다른 심미안을 가진 세르주 루텐에 대한 이야기다. 1942년 프랑스 북부 지방 릴에서 태어난 그는 14세에 고향의 뷰티 살롱에서 일하면서 불과 2년 만에 아름다움을 대하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했는데, 가벼우면서 빛이 나는 피부와 선명한 아이섀도, 두상에 착 달라붙는 짧은 머리와 블랙 컬러가 그것이다. 그만의 미감을 바탕으로 16세에 파리에 진출한 그는 보그를 시작으로 매체의 사진가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이름을 떨쳤다. 1968년 메이크업 라인을 준비 중이던 크리스찬 디올이 이 아름다운 몽상가의 재능을 알아보고 크리스찬 디올의 메이크업 크리에이터라는 중책을 맡긴 것을 시작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그의 천재적인 능력은 찬란하게 꽃피었다. 시세이도 그룹의 인터내셔널 비주얼을 총괄하는 아트 디렉터로서 시세이도의 강력한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확립했고, 향수에도 그 영향력을 발휘했다.
시세이도의 퍼퓸 살롱을 시작으로 세르즈 루텐은 2000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퍼퓸 브랜드 ‘세르주 루텐’을 선보였다. 그의 재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4년에는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수가 담긴 메이크업 라인, ‘네세세르 드 보떼(Necessaire de Beaute)’를 론칭한 것. “필요한 것만 심플하게 구성하되, 지금까지 표현되지 않은 아름다움의 정수를 담아내고자 했다”라는 그의 말 그대로 그의 메이크업 라인은 간결하지만 에지가 넘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블랙인 듯 보이지만 버건디와 퍼플이 어스름하게 비치는 패키지는 브랜드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요소마저 배제해 과장하거나 과시하지 않지만 최고의 원료와 꼭 필요한 제품만을 담아 온전한 아름다움과 진정한 럭셔리를 보여주는 표식이 되었다. 트렌드와 자신은 어떤 상관도 없다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긴다면 불행히도 고통스러워질 것이라며 여유가 있다는 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진정한 창조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세르주 루텐을 만났다.
‘세르주 루텐’ 메이크업 라인의 시작이 궁금하다.
‘네세세르 드 뽀떼’는 말 그대로 메이크업 제품을 화물차로 실어 나르듯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하던 때에 탄생했습니다. 그 시기는 저에게도 선택의 순간이었는데, 전 ‘이 시점이야말로 본질적으로 여성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 아름다움에 유용한 것으로 돌아와야 하는 때’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이원적인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했어요. 하나는 보들레르의 시와도 같은 극단적인 아름다움이지요. 숯을 칠한 듯 스모키한 눈매, 극적일 만큼 창백한 안색, 여성성이 도드라진 입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점잖은’ 메이크업, 즉 사회적으로 무난하며 얌전한 메이크업이지요. 이 두 가지가 세르주 루텐의 메이크업 라인 ‘네세세르 드 보떼’가 추구하는 철학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담고 싶었는가?
여자들이 핸드백 속에 늘 지니고 다니는 뷰티 제품의 업데이트 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브랜드 이니셜을 과감히 제거해 순수한 상태 그대로 제품의 패키지를 환원시켜 제품을 꺼내 화장할 때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했어요. 과장된 제품 패키지는 자칫 가벼워 보이거나 지나치게 대중적으로 보여 때로는 수치심이나 불편함을 야기하니까요. 우아함과 침착함을 살렸어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은 스타일이지, 다른 것을 철저히 배제하거나 거스르는 이니셜 혹은 브랜드가 아니니까요.
여자에게 메이크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성이 간직한 예상외로 거대한 유약함을 밖으로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 우리의 유약함을 덜어주는 보험이자 안전 장치, 일종의 무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메이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피부 톤입니다. 피부 톤은 충격 효과 또는 기대한 신중함이 만들어지는 표면층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가장 공들인 제품도 베이스 제품인가?
그렇죠. 반박의 여지 없이 ‘스펙트랄 파운데이션(No.1)’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가벼움과 무광의 피부 톤의 절정을 형상화했지요. 피부에서 우러나오는 달빛을 닮은 얼굴 톤은 제가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에요. 목과 따로 노는 터무니없는 느낌보다 훨씬 낫지요!
제품을 만들 때 트렌드보다 자신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대중과 어떻게 소통하는가? 대중에게 당신의 스타일을 어떻게 어필하고자 하는지 궁금하다.
저는 트렌드에 앞서가려 하지 그것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때로 저의 향수 라인에 안 좋은 평가를 내리는 분도 있지요(물론 루텐이 창조한 향수들은 FIFI 어워드를 비롯한 다수의 권위 있는 상을 받았고, 그의 작업들은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으로 인정받았다). 저는 디올과 시세이도 등을 거치며 쌓은 반세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메이크업 세계의 문을 열었습니다. 누구나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진리임을 받아들여야죠.
- 뷰티 에디터
- 송시은
- 포토그래퍼
- 박종원(제품)
- 사진
- Courtesy of SERGE LUT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