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것이 두렵지 않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소녀가 입기로 한 것. 아웃도어 패션이 제안하는 태도에 관해.
아웃도어 패션이 인기인 것은 현실의 여러 가지를 떠오르게 한다. 번아웃증후군, 워라벨, 퇴준생 같은 온·오프라인을 떠도는 머리 아픈 단어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취미 생활, 누군가에게는 도피일 수도 있는 트레킹, 캠핑, 서핑 같은 아웃도어 라이프의 부흥. 티비는 <숲속의 작은 집> 같은 예능 표방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시청자에게 ASMR로 물소리, 장작 타는 소리를 들려주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라는 메시지를 건넨다. 그래서 고프코어(그래놀라 Granola, 귀리 Oat, 건포도 Raisin, 땅콩 Peanut의 첫머리를 딴 약자)라는 패션 트렌드가 반갑다.
일상 속으로 침투한 아웃도어 패션. 역사상 가장 현실적이며 언제 어디로 떠나도 번거롭지 않을 옷차림의 유행. 못생겼다고 종종 놀림받아온 이 패션에는 파타고니아나 유니클로의 후리스 재킷, 노스페이스의 양봉 모자, 살로몬의 트레킹화, 비브람 파이브핑거스의 발가락 슈즈 등의 아이템군이 속해 있다.
발렌시아가, 베트멍은 기능성 아웃도어와 하이패션을 믹스했고, 라프 시몬스는 한국 약수터 어머니들에게서 영감 받았을 법한 햇볕 차단 모자와 상주 곶감이 떡하니 써 있는 충격의(?) 스니커즈를 선보이기도. 협업도 인기다. 베트멍X캐나다 구스, 마틴 로즈X나파 피리, 노스페이스X사카이 등은 출시 상품이 전부 매진 행렬을 기록했고, 스트리트 브랜드 키스(Kith)는 아예 컬럼비아, 아디다스, 지샥, 투미 같은 여행, 아웃도어 라이프와 연관 깊은 브랜드를 한데 묶어 대자연 속 모험을 종용하는 패션 필름을 공개했다.
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단체 관광을 떠난 부모님 세대를 부끄러워하는 대신 그 옷을 입기로 한 것은 남들과 아예 차별화된 패션을 입고자 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태도에 기반한다. 반항적인 태도의 아이러니다. 스트리트 패션을 평준화한 SNS 홍수 속에서 튀기 위한 힙스터의 전략이 등산가와 캠퍼의 옷에 이르렀달까. 덕분에 도심에서도 허용된 이런 옷들은 산으로, 바다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실용성을 부여했다. 사실 백팩을 메는 것만 해도 분위기의 환기가 이뤄지지 않나. 지친 마음을 달래줄 위로 말이다. 어찌 보면 글을 쓰는 내내 영화 〈Shame〉속 러닝 신이 머릿속에서 맴돈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지
- 포토그래퍼
- 김희준
- 모델
- 오송화
- 헤어
- 조미연
- 메이크업
- 유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