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정규앨범 <Upset>으로 돌아온 쿠기
UFC 경기에서 언더독이 기어코 링 위에서 상위 랭커를 쓰러트리고 말았을 때, 사람들은 ‘Upset’이라 말한다. 계속해서 아래에서 위로 향하겠다는 박동은 어쩌면 쿠기를 움직이는 힘, 그래서 쿠기는 두 번째 정규앨범의 이름을 <Upset>이라 지었다. 이제 쿠기는 다시 위를 본다.

<W Korea>올해 생일인 1월 23일 싱글 ‘1,2,3,4,5’를 발표했죠. 오래 묵혀둔 곡이었다고 들었어요.
쿠기 맞아요. 만들고 2년 만에 빛을 본 곡이에요. 원래는 발매를 안 하려고 했어요. 가끔 ‘이건 나만 들어야지’ 하는 곡들이 있거든요. 아직 대중이 모르는 제 취향이 담긴 것 같을 때 대개 만들고 혼자서만 들어요. 그런데 제가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마침 그맘때 릴 테카를 비롯해 뉴재즈 장르의 뮤지션들이 인기가 좋았고요. ‘이거 잘하면 통하겠는데?’ 싶은 마음에 가볍게 툭 내놓은 곡이에요. 새 장르도 보여드리고 저의 새로운 톤도 보여드릴 겸.
모처럼의 러브송이었죠. 곡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뭐든지 퍼다 줄 수 있지.” 이건 평소 연애 스타일이에요?
맞습니다. 상대에 다 맞춰주고 다 퍼주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웹 예능 <미노이의 요리조리>에서는 경제관념 있는 여자가 이상형이라 말한 기억이 분명히 있는데…
경제관념이 있으면 다 퍼줄 수 있어요(웃음).
하하, 곧 정규 2집 이 나오죠. 지금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요?
믹스로 넘어가는 단계예요. 가장 예민한 때인데, 또 이 맛에 앨범을 내는 것 같아요.
그럼 요즘 하루는 보통 어떤 식으로 흘러요?
새벽 3~4시에 자는데 어떻게든 11시에는 일어나려고 해요. 해가 떠 있을 때 일어나야 회사 직원분들과 소통할 수 있더라고요. 퇴근한 후에 연락하기는 또 너무 죄송하고. 심하게 졸린 날엔 직원분들 점심시간에 잠깐 쪽잠을 자기도 해요. 대학교 친구들이 전부 회사원이에요. 그래서 그 고충을 알겠더라고요.

최근 이번 앨범의 수록곡 ‘쿠기랑 나’가 싱글컷으로 공개됐죠? 작년 발매한 싱글 ‘idontfreestyle’의 뮤직비디오 도입부에서 20초가량 공개된 적 있는 곡인데, 그 당시 반응이 무척 뜨거웠어요.
사실 ‘idontfreestyle’ 뮤직비디오 현장에서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래퍼 랍온어비트 형이 ‘내가 새로 편곡한 게 있는데 한번 들어볼래?’라면서 시작된 이야기예요. 별생각 없이 현장에서 ‘쿠기랑 나’의 훅을 틀었는데 소위 반응이 ‘터졌’어요. 그래서 즉흥으로 한두 테이크를 찍어 뮤직비디오에 삽입했는데 그게 공개된 후로 참 많은 연락을 받았어요. 대체 ‘쿠기랑 나’는 언제 정식 음원으로 발매되는 거냐고. 장르 팬들이 특히 좋아했죠.
랍온어비트와는 자연스럽게 ‘idontfreestyle’에 이어 ‘쿠기랑 나’까지 함께 작업한 셈이네요?
그렇죠. 형을 안 지도 거의 7년이 넘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이자, 더 빛을 볼 수 있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저에겐 약간 교과서 같아요. 단순히 스킬만 좋은 랩이 있고, 듣기 편안한 자연스러운 랩이 있는데 형의 랩은 후자예요. 특유의 바운스감도 있고요. 랍온어비트, 빌스택스, 오이글리. 제가 좋아하는 랩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1집 이 2020년 발매됐으니 5년 만에 새 정규앨범을 내는 셈이에요. 이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나요?
너무 체감해요. 사실 중간중간 믹스테이프나 EP를 계속 내긴 했어요. 그런데 정규앨범을 내지 않은 건 참 다행인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과거만 해도 매년 유행하는 장르나 선도적인 트렌드가 하나씩 있었거든요. 제가 데뷔한 2018년엔 트랩, 소위 ‘멍청 트랩’이 대세였어요. 2019년엔 모두가 멜로디컬한 랩을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하위 장르가 너무 많아져서 도리어 뭐든 해도 되는 시대처럼 느껴져요. 요즘 2000년대 넵튠스, 퍼렐 사운드를 갖고 오는 아티스트도 많고요. 그래서 오히려 지금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1집과 2집은 어떻게 다를까요?
사실 1집은 앨범 전개가 좀 뻔했어요. 신나게 달렸다가 텐션이 서서히 낮아지면서 마무리되는. 어찌 보면 쉬운 접근이고 구성이죠. 2집을 만들면서는 무조건 그렇게 가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집보다 트랙 수가 더 많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을 챙겨야 한다’, 이 마음이 들었어요. 이걸 좀 알아봐주셨으면 좋겠는데, 아마 아티스트들은 캐치할 거예요. 또 아티스트들이 알면 언젠가는 다수가 알게 될 거고요.
1집 <Up!>과 2집 <Upset>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듯 보여요.
그렇죠. <Up!>은 2018년 데뷔해 앨범을 낸 2020년까지 쌓아온 저의 능력치를 다 발휘해 담아보자는 앨범이었어요. ‘나 여기서 더 올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담겼죠. 2집 제목에 쓰인 ‘Upset’은 사실 UFC 경기에서 쓰는 용어예요. 언더독이 상위 랭커를 이겼을 때 흔히들 ‘He Upset’이라고 표현해요. 사실 1집을 냈을 당시 저를 제외한 제 또래 래퍼들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거든요. 식케이, 창모, 키드밀리 등등. 그 당시엔 제가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2022년쯤엔 제가 느끼기에 꽤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점점 자신감을 갖게 된 거죠. 이제는 과거 내가 올려 본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 하다못해 함께 미래에 관한 얘기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드니까 단번에 ‘Upset’이란 단어가 생각나더라고요.
이 사람에게 새 앨범의 ‘샤라웃’을 받는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인물이 있어요?
빈지노 형님. 2018년 EP 을 발매한 바로 그다음 날 갑자기 형님이 제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좋아요’를 눌러주셨어요. 제 기억에 그때 군대에 계셨거든요. 또 언젠가 인스타 라이브에서 저의 ‘Wifey’란 곡을 따라 부르시기도 했고요. 저 그때 영상 아직도 갖고 있잖아요··· (웃음). 형님은 언제나 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뮤지션이에요.
그 다섯 손가락 안에 누가 있는데요?
빈지노, 빌스택스, 더콰이엇, 사이먼 도미닉, 크러쉬. 아, 열 손가락도 더 말할 수 있는데(웃음).

여섯 번째 손가락 정도 더 들어볼게요(웃음).
순위나 이런 걸 떠나서 일본의 그래픽 아티스트 베르디를 굉장히 좋아해요. 제가 2023년 ‘Right Now’라는 곡을 냈는데 그게 틱톡에서 엄청나게 바이럴이 됐어요. 그걸 본 베르디가 연락을 걸어와서는 언제 한번 일본에 놀러 오라 초대해줬고요. 그 말을 덥석 물어 언제 가면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당장 내일 와도 좋다는 말에 곧바로 일본으로 날아갔어요. 그렇게 혼자 베르디의 스튜디오에 가게 됐는데 서툰 영어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것 같아요. 그때 당시 미발매 상태인 나이키 협업 덩크에 대해 얘기하고, 조만간 개최할 파티 얘기도 나누고. 신기하게도 지금도 인연이 계속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베르디가 부탁하는 건 뭐든 다 합니다(웃음).
하하, 이전에도 베르디를 좋아했나요?
그럼요. 실제 친분이 없던 2018년부터 좋아했어요. 베르디를 대표하는 아트워크 ‘Girls Don’t Cry’의 문구가 이상하게도 너무너무 와닿는 거예요. 사실 그 당시 만나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아주 먼 장거리 연애였어요. 그래서 몇 번 만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친구가 너무 외로워하고 많이 울었어요. 딱 그때 제가 ‘Girls Don’t Cry’ 문구를 보게 된 거예요···(웃음). 사실 그러면서 베르디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그가 지금 같은 ‘하이프’는 받고 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이 사람은 무조건 더 대단해질 거고, 이 사람이 나를 알게 되면 더없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그가 베르디 사운드로 한국을 찾았을 당시 처음 대면하고는 말했죠. ‘넌 내 아이돌이다.’ 그리고 사인을 요청했어요, ‘Girls Don’t Cry’ 티셔츠에(웃음).
요즘엔 앨범을 발매하면 리스닝 파티를 개최하곤 하잖아요. 시대와 국적을 떠나 쿠기의 리스닝 파티의 초대장을 보내고 싶은 인물이 있나요?
릴 웨인요. 힙합을 시작한 것도 릴 웨인 때문이에요. 중2 때 처음 ‘Lollipop’이란 곡을 듣고 그때부터 주구장창 릴웨인만 팠어요. 중학생 때는 지금보다 키가 작았거든요.그래서 그 당시엔 키는 작지만 멋진 사람을 좋아했어요. 릴 웨인이 딱 그랬고요. 음악, 몸, 패션, 말하는 것 하나하나 다 좋았던 것 같아요. 릴 웨인을 파다 영 머니를 알게 됐고, 그러다 드레이크까지 듣게 됐어요. 그들에 한창 심취해서 그 당시 대전 유성구에서 그렇게 바지를 내려 입고 트렁크 팬티를 다 드러내고 다니는 애는 저밖에 없었을 거예요(웃음).

릴 웨인을 좋아했던 쿠기, 그리고 2018년 데뷔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쿠기 앞으로 긴 시간이 흘렀어요. 커리어 초반과 비교해 지금, 스스로 가장 변화했다고 느끼는 점이 있나요?
얼마 전 문득 내가 배가 불렀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잠시 왜 내가 음악을 시작했는지 그 목적을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성적만 생각했나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 다시 한번 내가 미처 뿌리지 못한 나의 자양분을, 씨앗을 확인하고 뿌려야 하는 순간이라 생각해요. 이것보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 씨앗 중 하나로 이번 정규앨범이 있는 거죠?
그렇죠. 사실 씨앗은 ‘근본’과 연결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이번 앨범에는 ‘나 그런 사람 아니야, 한번 제대로 들어봐’의 마음도 있어요. 적어도 앨범 작업에 있어서 저는 늘 근본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중적으로 잘된 싱글 몇몇을 두고 ‘얘는 그냥 커머셜한 뮤지션이야’라고 손가락질하는 시선이 없지 않아 있어요. 예전엔 그 말들에 상처받기도 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다 저에게 동기부여로 돌아온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 시선들 때문에 정규앨범 작업에 매달리고 작년 단독 콘서트도 개최할 수 있었어요. ‘그래, 내가 매진시키는 거 보여줄게’란 마음이었죠.
요즘 마음속에 품고 사는 한 단어가 있다면요?
‘열심히 하자.’ 제가 좋아하는 모든 뮤지션들은 자신의 프라임 타임에 노래를 제일 많이 냈어요. 저 또한 그러고 싶어요. 이때 아니면 내가 언제 열심히 살아보겠나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올해 정규앨범을 내고 난 후 최소 EP 2장은 더 낼 거다, 라고 미리 여기서 호언장담을 해봅니다(웃음).
- 포토그래퍼
- 박종하
- 스타일리스트
- 박지연, 박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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