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실크 스카프 위에 펼쳐진 예술의 세계

명수진

구찌 스카프가 90×90 사이즈의 소품이 되었다. 작은 실크 스카프 위에 9인의 아티스트가 펼쳐 놓은 예술의 세계.

‘스카프 안에서 각각의 요소는 생명을 얻는다. 플로라의 중심이 되는 백합부터 사바나의 동물들까지, 때로는 SF적인 모노크롬 젤로, 때로는 모험을 다룬 만화 속 매력적인 캐릭터로 변모한다. 이러한 재해석을 통해 하우스의 상징들은 더욱 강화되고, 생동감을 얻으며, 새로운 시각과 해석, 미래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으로 확장된다.’
– 구찌: 아트 오브 실크(GUCCI: The Art of Silk)

구찌가 흥미로운 아트 콜라보를 공개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구찌: 아트 오브 실크(GUCCI : THE ART OF SILK)’. 하우스의 헤리티지와 풍부한 스토리가 담긴 실크 스카프를 아티스트 9인의 시선으로 재조명한 것. 구찌와 협업한 아티스트들은 90×90cm 사이즈의 실크 스카프를 캔버스 삼아 구찌의 상징적인 5가지 테마-플로라(Flora), 애니말리아(Animalia), 항해
(Nautical), 승마(Equestrian), GG 모노그램 -를 새롭게 해석했다. ‘패션 아카이브에 다가가는 것은, 무엇보다, 끊임없는 관찰과 해석의 과정이다. 스카프 아카이브의 경우, 마치 한 권의 이야기책을 여는 것과도 같다’는 브랜드의 말처럼 구찌 스카프에 담긴 이야기는 상상과 환상의 세계가 담긴 동화처럼 흥미롭다.

구찌 실크 스카프의 역사는 1958년에 시작됐다. 당시 구찌는 이탈리아 코모(Como) 지역의 유명한 실크 제조업체인 피오리오(Fiorio)와 협업해 ‘톨다 디 나베(Tolda di Nave)’ 스카프를 출시했다. 스카프에는 장엄한 항해의 장면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담겼고, 이후 구찌는 마리나 체인 모티프를 활용한 다양한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더욱 풍성하게 채웠다.

구찌 실크 스카프를 세상에 널리 알린 이는 이탈리아의 유명 화가이자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인 비토리오 아코르네로 데 테스타(Vittorio Accornero de Testa)다. 아코르네로는 1960년부터 1981년까지 80여점의 구찌 스카프를 디자인하며 구찌 실크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특히 1966년, 로돌포 구찌가 모나코의 공비인 그레이스 켈리에게 실크 스카프를 선물하고자 했을 때 아코르네로가 일주일 만에 아름다운 플로라 모티프를 완성한 일화는 유명하다. 27종의 꽃을 비롯해, 베리, 나비, 곤충이 어우러진 봄날의 정원 같은 그의 일러스트는 시대를 초월하는 하우스의 심벌이 되었다. 총 37가지에 달하는 색상은 개별 프린팅 과정을 거쳐 섬세하게 구현됐다. 플로라 모티프는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며 1969년에는 브랜드 최초의 실크 드레스 탄생에 영감을 주었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재해석되었다.

한편, 승마(Equestrian) 모티프는 구찌의 헤리티지를 담고 있다. 안장의 버클에서 영감을 받은 구찌 웹(Gucci Web) 스트라이프와 1950년대에 처음 선보인 홀스빗(Horsebit) 모티프 등 승마에서 기원한 구찌의 두 가지 심벌은 스카프뿐 아니라 가방, 슈즈, 벨트, 주얼리, 스카프, 레디투웨어 컬렉션 등에 다채롭게 응용되면서 오늘날 구찌의 대표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구찌는 1980년대 로마의 피아차 디 시에나(Piazza di Siena),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파리 마스터스(Paris Masters) 등 권위 있는 승마 대회를 후원하며 승마 세계와의 유대를 더욱 강화했고, 이러한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는 리미티드 에디션 스카프도 제작했다. 이 밖에 1969년에 아코르네로가 사자, 새, 나비 등 다채로운 야생동물을 생동감 있게 담아낸 것으로 시작된 애니말리아(Animalia) 프린트, 구찌의 초기 디아만테(Diamante) 패턴에서 발전해 1969년 처음으로 선보인 GG 모노그램(GG Monogram) 등 실크 스카프에 생명을 불어넣은 다채로운 모티프가 ‘구찌: 아트 오브 실크’ 프로젝트를 통해 생생하게 재구성되었다.

로버트 배리, 에버렛 글렌, 사라 레기사, 커리뉴, 조니 니쉬, 지오 파스토리, 월터 페트로네, 유차이, 그리고 서인지까지 9명의 글로벌 아티스트가 이번 아트 오브 실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들은 각기 독창적인 시각과 접근 방식으로, 때로는 재치 있고 위트 넘치며, 때로는 감성적이고 아름답게 90×90 사이즈의 실크 스카프 안에 자기만의 세계를 풀어냈다. 아트 오브 실크
프로젝트는 출간 예정인 아트 북 <구찌: 아트 오브 실크: 구찌 스카프 이야기 (GUCCI: The Art of Silk: The Story of Gucci Scarves)>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구찌 2025 S/S 시즌 런웨이의 스카프 스타일링.
구찌 2025 S/S 시즌 런웨이의 스카프 스타일링.
구찌 2025 S/S 시즌 런웨이의 스카프 스타일링.

참여 아티스트

로버트 배리(Robert Barry)
개념 예술 운동(conceptual art movement)의 선구자이자 대표적인 인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예술가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알려지지 않았거나 인지되지 않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전파(radio waves), 텔레파시, 퍼포먼스와 같은 매체를 활용해 비물질적이고 순간적인 것을 탐구하며 전통 예술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는 작품을 시도했다. 1970년대에 그는 언어로 초점을 옮겨 단어를 매개로 서사를 불러일으키고 묵상을 고취하는 작업을 펼쳤다. 배리의 작품은 MoMA, 구겐하임, 퐁피두 센터 등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에버렛 글렌(Everett Glenn)
만화, 그림, 퍼포먼스를 혼합하여 개인적 서사를 조형하고 탐구하는 미국의 다분야 아티스트다. 프랑스-벨기에 리뉴 클레르(Franco-Belgian ligne claire) 만화와 다양한 아티스트의 영향을 받아 액션감이 느껴지는 비주얼과 성찰적인 스토리텔링이 특징이다. 일기를 만화적 형태의 소설인 그래픽 노블로 바꾸어낸 그의 작품은 취약성과 회복력 사이의 대화를 끌어낸다. 글렌은 뉴욕 언더그라운드 코믹스, 라이프치히(Leipzig)에서의 멘토십, 프린스턴 대학교와 하노버 대학에서의 교수 활동을
통해 정체성, 기억, 스토리텔링의 힘을 탐구하고 있다.

사라 레기사(Sara Leghissa)
이탈리아 기반의 독립 예술가로, 공연, 창작, 큐레이션을 아우르는 작품을 선보인다. 맥락과 사람과의 연결과 변화의 필요성을 중요시하는 레기사의 작품은 주로 공공장소에서의 권력 역학을 탐구하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시스템을 구축해 다양한 관객을 참여시킨다. 스트라세 콜렉티브(Strasse Collective)의 공동 창립자인 레기사의 작업은 산타르칸젤로 페스티벌(Santarcangelo Festival)과 밀라노 트리엔날레(Triennale Milano), 라 카사 엔첸디다(La Casa Encendida), 몰타비엔날레.아트(Maltabiennale.art)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으로 소개되었다.

월터 페트로네(Walter Petrone)
월리(Wallie)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애니메이터이며 그래픽 노블 작가이다. 나폴리의 미술 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는 카사딜레고(Casadilego), 지안카네(Giancane)와 같은 아티스트의 포스터나 앨범 커버를 작업하는 등 다양한 뮤지션과 협업했으며, 카파레차(Caparezza)의 뮤직비디오 ‘Campione dei Novanta’와 로셀라 드 베누토(Rossella De Venuto)의 다큐멘터리 ‘Pattini e Acciaio’의 장면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그의 다학제적 접근 방식은 음악, 애니메이션, 문학의 세계를 연결하여 깊이 있는 공명 서사를 만들어낸다.

커리뉴(Currynew)
상하이 기반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및 광고 전문가로 대중문화, 음악, 비디오게임을 성찰적인 상상력과 결합한 활기찬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주관적인 세계를 시각화해 개인적 감정이 외부 현실과 어떠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지 탐구한다. 역동적인 디지털 창작물로 유명한 커리뉴는 Hiii 일러스트레이션 어워드(2020 & 2021) 등을 수상했다.

조니 니쉬(Jonny Niesche)
낭만주의, 추상주의, 미니멀리즘의 전통을 바탕으로 빛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탐구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호주 아티스트이다. 추상표현주의에 경의를 표하는 세련된 미학이 특징인 그의 작품은 표면, 컬러, 건축적인 테크닉을 활용해 생동감 있는 추상주의에 상징적 종교성을 부여한다. 그의 작품은 호주 현대 미술관,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 호바트의 신구 미술관, 유럽, 미국, 아시아의 저명한 프라이빗 컬렉션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지오 파스토리(Gio Pastori)
밀라노 기반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특유의 종이 자르기 기법으로 널리 알려졌다. 예비 스케치 단계 없이 단색 종이를 조각하거나 찢는 방식으로, 형식적이고 색채적이며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구성을 만들어낸다. 패션, 음악, 출판, 무대미술을 넘나들며 작업을 펼치는 그는 다양한 개념을 깔끔하고 강렬한 이미지로 변환한다.

유차이(Yu Cai)
이탈리아 기반의 중국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애니메이터로, 활기차고 상상력 가득한 창작물을 통해 현대 도시 생활을 탐구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전통적인 기법과 디지털 기법을 혼합한 그녀의 작품은 현대적 풍경을 재구성하여, 환경이 거주되고 경험되는 방식에 대한 대안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NFT공간에서 펼쳐지는 그녀의 프로젝트는 기존 서사에 도전을 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삶의 새로운 차원을 발견하고 도시 세계와의 연결을 재고하도록 한다.

서인지(Seo In Ji)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대중문화와 예술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서울 기반의 아티스트이다. 대담한 색상, 역동적인 구성, 재치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유명한 그녀는 케이팝 아티스트 엑소, NCT드림, 레드벨벳을 비롯해 글로벌 뮤지션 페기 구, 리나 사와야마(Rina Sawayama) 등과 협업했다. 그녀는 앨범 커버, 뮤직비디오 비주얼을 비롯해 애플, 삼성,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의 캠페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예술적 비전과 상업적 스토리텔링을 결합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홍익대학교
애니메이션과를 졸업한 그녀는 예술이 매체 그 이상의 것으로서, 영감과 확신의 순간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는 방식이라고 믿으며, 작품을 통해 전통과 현대성이 만나는 상상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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