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내 주요 미술관들은 앞다퉈 고미술 기획전을 개최 중이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조선민화전>, 호암미술관의 <겸재 정선>, 경기도미술관의 <알고 보면 반할 세계: 민화와 K팝아트 특별전> 등. 이 고미술 르네상스의 배경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고미술 전시는 매년 있어왔지만, 올해 전시들은 ‘고미술의 현대성 탐구’라는 공통점을 지녔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젊은 층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여기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 무엇보다도,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즐기며 그것을 ‘쿨’하게 여기는 문화가 Z세대를 중심으로 계속 확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미술 전시는 중노년층의 전유물이 라는 통념을 깨고 2023년 호암미술관 전시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은 2030세대가 관람객 비중의 약 30%를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도 2023년 전시 <조선 병풍의 나라 2>를 개최하면서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Z세대 관람객의 뜨거운 호응을 확인한 바 있다. 최근 2~3년 사이 ‘멋지고 트렌디하다’라는 뜻의 ‘힙(Hip)’과 ‘전통’을 뜻하는 ‘트래디션 (Tradition)’이 합쳐진 신조어 ‘힙트래디션’이 세간에 회자되었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가 시작된 것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다. 한때의 반짝 유행이 아닌 것이다.
필자는 2016년 ‘전통이 재미있으면 하지 말래도 한다’라는 신문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고궁과 삼청동 일대에서 한복 체험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한 현상을 다룬 글이었다. 그들에게 한복 체험을 하는 이유를 물으니 압도적인 이유가 “예쁘고 재미있어서”였으며, “한국 전통문화를 배우고 알리기 위해”라는 대답은 없었다. 필자는 그 대답을 듣고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염려하며 한복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반짝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재미’를 위한 한복 체험이기에 한복 문화 확산에서 강력하게 효과적이며 지속적일 수 있다. 그 재미가 한복 탐구로 이어질 일이 과연 없을까?”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내외국인의 한복 체험은 올해에도 활발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제 단순히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는 놀이에 그치지 않고 전시와 책, 동영상 콘텐츠를 통해 한복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통 음악과 무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콘서트와 공연도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다. 국악과 서구의 오페라를 결합하고 여성이 남성 역할까지 하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으로서 20세기 중반 인기를 누린 여성 국극은 최근에 ‘고정된 젠더 탈피’의 새로운 흐름을 타고 다시 각광받고 있다.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정년이>가 웹툰으로 시작해 공연, TV 드라마로 이어지며 2030 여성에게 특히 큰 인기를 끈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힙트래디션’ 현상은 K드라마는 물론 K팝의 세계적 성공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빅뱅에서 방탄소년단에 이르기까지 월드스타의 반열에 오른 아이돌 그룹이 한국의 전통적 요소를 자신들의 음악과 뮤직비디오, 무대의 비주얼 콘셉트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블랙핑크 제니가 발표한 솔로곡 ‘Zen’을 들 수 있다. 신라 불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진 곡으로, 뮤직비디오에서 제니는 신라 천마총 새날개모양금관장식 형태의 대담한 톱을 착용하고 있다. 의상을 디자인한 브랜드 ‘르쥬’는 “신라의 여성 리더인 ‘원화’가 된 제니를 상상하며 디자인”했으며, 또 “하의는 한국 전통 복식인 ‘살창고쟁이’를 대담한 커팅과 독창적인 볼륨으로 재해석”했다고 말했다.
K팝 스타들의 이러한 비주얼 콘셉트는 글로벌 팬층에게 한국적 미감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면서, 국내에서는 고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1차원적으로는 외국 팬들이 호기심을 보이고 또 스타가 홍보하니 쿨해보여서 다시 돌아보게 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고미술이 현대인에게 어필하는 면을 가지지 않았고, 또 그것을 발굴해서 드러내는 미술 사학자와 미술관 큐레이터, 디자이너들의 능력과 노력이 없었다면, 고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성을 지니는 대표적인 고미술 장르 중 하나가 조선 민화다. 그래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3월 27일 개막하는 <조선민화전>이 “자유롭고 즉흥적인 화법으로 표현된 조선시대 민화의 독특한 미감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전시”이며 “‘표현’ ‘색채’ ‘상징’ 등의 테마로 구성해 민화의 자유로운 화법과 강렬한 색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미술관이 소장한 ‘문자도 8폭 병풍’, ‘책거리 8폭 병풍’ 등을 포함해 16개 기관이 소장한 120여 점의 작품이 나왔다. 한편 조선 민화는 한동안 이름난 화가의 수묵 산수화와 사대부의 문인화에 비해 ‘2류 그림’으로 여겨졌다가 최근 10여 년 사이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 문자도·책거리>(2016년 서예박물관), <민화, 현대를 만나 다: 조선시대 꽃그림>(2018년 갤러리현대) 등의 기획전을 통해 활발히 재평가되었다. 전시 관람객들은 민화의 강렬한 색채와 현대미술을 연상시키는 추상성과 자유분방하고 유머러스한 묘사에 매료되었다.
2월 말까지 경기도미술관에서 개최한 <알고 보면 반할 세계: 민화와 K팝아트 특별전> 역시 민화의 현대성에 초점을 맞췄다. “민화적인 태도와 팝적인 태도의 교집합이 당대 대중적 현실의 반영, 해학과 위트, 현세에서의 욕망 및 내세에 대한 기원의 표현”이라고 보고 “전통 민화로부터 한국적 팝아트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전시로 민화와 현대미술을 함께 전시했다. 이를테면, 눈이 세 개 달린 털북숭이 개의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앙증맞은 방울을 달고 있어 웃음을 자아내는 민화 ‘삼목구’는 그 자체로 현대적이며, 삼목구를 탄 여신을 묘사한 김지평의 현대미술과 어우러져 다시 한번 기이한 매력을 발산했다.

4월 개막하는 호암미술관의 <겸재 정선> 역시 ‘교과서에 박제된 화가’가 아닌 정선의 면모를 조명한다. 대표작 120여 점에 진경산수화는 물론 인물화, 화조영모화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이 전시된다.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국보로 지정된 정선의 수묵담채화 ‘금강전도’다. 관념적인 산수화가 아닌 국내 명승지를 사생한 진경산수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선이 만 58세 때인 1734년 겨울에 만폭동을 중심으로 금강내산의 전체 경관을 그린 것이다. 2015년 리움미술관 <세밀가귀: 한국미술의 품격> 전시에도 나온 이 걸작에 대해 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당시 도록 글에 이렇게 썼다. “정교한 지도와 같이 금강산의 전체적인 경관과 함께 금강산의 구체적인 장소까지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금강산의 장대한 기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으며 아울러 금강산의 명승명소를 일일이 확인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화풍도 현대의 그래픽 디자인과 묘하게 잘 맞아떨어진다. 한편 또 다른 전시작 ‘독서여가’의 경우 아기자기한 채색화인 데다가 관념적인 풍경이 아닌 서재와 정원이라는 생활 공간을 배경으로해 현대인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지난 10여 년간 고미술의 재조명과 재해석이 단순한 반짝 유행이 아닌 지속적인 문화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미술관의 역할이 중요했고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미술관들이 선보이는 고미술 전시 열풍은 단순한 회고적 움직임이 아니다. 오히려, 전통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려는 새로운 문화적 시도이며,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속의 미래’를 찾아가는 여정, 그 중심에 고미술이 있다.
- 글
- 문소영<중앙 일보S>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