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무해한 도파민

천나리

더 이상 도파민 중독의 늪에 빠져 살 수는 없다.

나쁜 도파민이 아닌 건강한 도파민을 자극하는 맞춤형 훈련법, 도파민 메뉴에 대하여.

죄책감만 남기는 나쁜 도파민 대신, 행복감을 주는 건강한 도파민을 유발하는 좋은 자극을 찾아야 한다. 나만의 도파민 메뉴를 만들어 이를 실천하면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CHANGMIN LEE, COURTESY OF SHUTTERSTOCK

도파민 중독 테스트

1. 매일 특정 자극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2. 점점 자극을 찾는 횟수가 늘고 강도가 세진다.
3. 하루도 자극 없이는 생활이 안 된다.
4. 하루에 자극에 쓰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다.
5. 자극을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6. 자극이 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찾게 된다.
7. 자극을 즐기면서 대인 관계, 학업, 업무 등에 점차 소홀해진다.
8. 주변인들에게 자극 문제로 인한 심각성을 숨긴다.
9. 자극을 참거나 멈추었을 때 짜증 나고 불안하고 우울하다.
10. 자극으로 인해 수면, 혈관 질환 등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도파민 중독일까?

삐삐삐삐. 머리맡의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새롭게 올라온 핑계고 유튜브 영상을 보며 아침 식사를 하고, 이걸 이어 보면서 이를 닦고, 화장하고 집을 나선 다음 쇼츠를 보며 출근길 지옥철을 버틴다.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건 퇴근길도 마찬가지. 집에 도착하면 모바일 게임을 하며 쉬고, 넷플릭스를 보며 저녁을 먹고, 다시 릴스를 보다가 잠든다. 도파민 중독의 또 다른 주범인 커피와 음주를 임신으로 중단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아,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됐을까? 자극으로 가득 찼음에도 무료하게 느껴지는 일상에 ‘현타’가 온다.
강남세브란스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는 저서 <도파민 밸런스>에서 흔히 말하는 도파민 중독을 이렇게 표현한다. ‘건강에 해로운 걸 알지만 지나치게 푹 빠져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 흔히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도파민은 의학적으로 중독성이 없다. 그러므로 도파민 중독은 사실상 도파민 자체가 아닌, 도파민 분비를 유발하는 활동이나 자극에 중독됐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그렇다면 나는 도파민 중독일까? 오른쪽 문항은 안철우 교수의 책에 실린 도파민 중독 테스트로, 여기서 말하는 ‘자극’이란 단 하루도 그 행위나 물질이 없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습관적으로 빠져 있다고 생각되는 대상을 일컫는다. 테스트 방법은 스스로 중독됐다고 느끼는 대상을, 예를 들면 쇼핑을 자극이라는 단어에 대입하며 답하면 된다. 10개 문항 중 자신에게 해당하는 문항이 3~4개라면 아직 중독은 아니지만 조심할 것을 권함, 5~6개는 중독이 의심되는 위험군, 7개 이상은 중독 상태를 뜻한다.

좋은 도파민 vs. 나쁜 도파민

점점 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 도파민 폭발, 도파민 파티, 도파민 디톡스, 도파밍(도파민과 수집 Farming의 합성어) 등 도파민 중독과 관련된 다양한 표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것만 봐도 우리의 일상이 도파민에 과도하게 잠식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즐거움을 주는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의 지나친 분비가 반복되면 우리 뇌는 점점 더 큰 자극, 더 많은 자극을 원하는 중독의 악순환에 빠진다. “도파민은 죄가 없어요. 인간의 몸에 존재하는 4000개 호르몬 중 하나인 도파민은 원하는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행동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죠. 동기를 부여해 보상을 추구하게 하는 일종의 화학 물질이랄까요? 도파민 중독에 빠지지 않으려면 호르몬의 노예가 되는 수동적 도파민이 아닌, 호르몬의 주인이 되는 능동적 도파민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안철우 교수는 순간의 쾌락을 즐기며 죄책감만 남기는 나쁜 도파민 대신, 오래 지속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행복감을 주는, 다시 말해 건강한 도파민을 유발하는 좋은 자극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연주, 그림 그리기 같은 창의적인 취미 활동이나 신체를 깨우는 규칙적인 운동, 복잡한 마음을 다독이는 명상, 나눔을 실천하는 봉사 등은 건강한 도파민을 활성화하는 대표적인 활동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와 수다 떨기, 반려견을 힘껏 안아주거나 숲에서 하이킹하기 등 타인이나 동식물, 자연과 연결되는 경험 역시 중독에서 벗어나 건강한 쾌락을 누리는 좋은 방법이다.

나만의 도파민 메뉴 만들기

좋은 도파민을 활성화하는 방법을 찾다가 ‘도파민 메뉴’를 발견했다. 팟캐스트 ‘ADHD 리와이어드(Rewired)’의 호스트이자
ADHD 코치인 에릭 티버스(Eric Tivers)는 좋은 도파민을 선택하기 위해 일종의 메뉴판을 구성하라고 제안한다. 애피타이저부터 스페셜까지 레스토랑 코스 요리를 소개하는 메뉴판 같은 나만의 건전한 도파민 메뉴를 작성해두면, 도파민을 자극하는 건강한 활동을 찾는 정신적 부담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시작인 애피타이저로는 도파민이 샘솟는 짧고 쉬운 행동을 추천
한다. 1분간 팔 벌려 뛰기를 하거나 샤워 마지막 30초 동안 찬물을 끼얹는 식이다. 이중에 나는 팔 벌려 뛰기는 아랫집에 민폐이고, 찬물 샤워는 뼛속까지 시려 바로 포기했다. 대신 화분에 물 주기, 스트레칭, 환기하며 맑은 공기 마시기 등 출근 전 1분에서 10분 이내에 할 수 있는 활동을 적었다. 메인 코스는 시간을 투자하는 열정적인 활동을 권한다. 운동이나 산책, 요리, 독서 등 주로 3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생산적인 취미나 관심사가 대표적인 예. 내 경우 <유퀴즈>에 공개된 송혜교의 수행법인 감사일기 쓰기와 버리지 못하는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용한 물건 버리기를 추가했다. 사이드는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연의 소리 듣기, 차 마시기, 허벅지 바깥쪽에 스트레칭 밴드를 착용하기 등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청소하며 곁들여 즐길 수 있는 행동이다. 디저트는 가끔은 해도 괜찮은, 마치 길티 플레저 같은 달콤한 활동
을 말한다. 1시간 동안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거나, 10분간 쇼츠를 보고, 요아정을 먹는 식이다. 과도한 실행은 자칫 도파민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시간을 엄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스페셜은 고생한 나를 위한 특별한 메뉴로 구성하길 권장한다. 여기에는 마사지를 받거나, 공연을 보고, 근사한 외식을 하는 등 시간을 따로 내 계획하거나 비용이 드는 항목이 포함된다.
레스토랑 메뉴판을 참고해 A4 용지 한 장짜리 도파민 메뉴를 만들었다. 도파민 분비를 활성화하는 활동을 브레인스토밍하고, 현실적으로 지키지 못할 메뉴는 과감히 삭제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한 나만의 메뉴를 냉장고에 척 붙이니 뿌듯함이라는 도파민이 팡팡 샘솟았다. 이제 실천을 위한 도전과 용기의 도파민을 북돋아줄 차례다.

행복 지수 높이기

가장 먼저 캔디크러쉬 게임 앱을 과감히 없앴다. 퇴근 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탕을 부수는 무용한 일 따위는 이제 안녕이다. 일명 ‘구글 타이머’, ‘뽀모도로 타이머’로 불리는 작은 타이머도 구입했다. 일정 시간을 설정해 해당 시간에 다다르면 알림이 울리는 타이머로, 특히 10분간 쇼츠 보기 같은 디저트 메뉴를 골랐을 때 더 보고 싶은 욕구를 확실히 차단해주었다. 스마트폰 알람을 끄느라 다시 스마트폰을 보지 않게 되는 효과는 덤이다. 예전 같으면 주야장천 유튜브를 봤을 시간에 신나게 음악을 흥얼거리며 집 안을 정돈하니 어깨를 들썩이며 춤도 추게 되고,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가장 큰 문제는 출퇴근길이었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 말고는 당최 할 거리가 없지 않나! 유혹을 참기 위해 잠금 화면의 배경을 도파민 메뉴 캡처 컷으로 바꾸고, 감사일기를 쓰거나 전자책을 보는 등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을 해 나갔다. 오후 9시 이후 스마트폰은 무음 모드. 주말엔 드라마 몰아보기 대신 호수 전망의 카페에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 수다로 도파민을 충전했다. 착한 아이에게 칭찬 스티커를 붙여주듯, 그날그날 달성한 과제를 체크해 성취의 도파민을 터뜨리며 하루를 마무리했음은 물론이다.
활기찬 순간들이 모인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름 충만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만 살아내며 하루하루 때우듯 보내는 지루한 일상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꿈꾸며 내일을 기대하는 일상. 문득 눈앞의 현실에 치여 언제부터인가 작성을 중단한 버킷리스트가 떠올랐고, 새롭게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적었다. 언젠가는 멕시코 세노테에서 프리다이빙을 하고, 나무 100그루를 심는 꿈. 기대의 도파민이 터지며 온몸으로 살아 있음이 느껴졌다. 인생의 남은 날들은 행복의 도파민으로 채워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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