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를 소개한다.
2025 LVMH Prize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영앤생, 한국적 정서가 가득한 워크웨어를 선보이는 이지앤아트, 지속 가능성과 첨단 기술을 접목한 타에까지. 이 셋의 공통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보편적 가치로 승화하며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다는 것이다.

YOUNG N SANG 영앤생
중학생 때부터 단짝인 홍영신, 이상림은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의 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에 돌아와 영앤생을 론칭했다. 손맛이 느껴지는 핸드 우븐을 바탕으로 한 ‘Ageless(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Timeless(영속적인)’ 웨어를 선보이는데, 가족적이고 따뜻한 분위기의 이들을 똑 닮았다. 손으로 만드는 것에 진심이고, 치열하고 지난한 과정을 피하지 않으며, 누구보다 친환경 공정에 공을 들이는 영앤생은 과연 사랑받아 마땅하다.

<W Korea> LVMH 프라이즈에 다녀왔다.
홍영신, 이상림 바로 어제 한국에 도착했다. 정신이 없다.
어땠나?
안나 윈투어, 델핀 아르노, 스테판 존스 등이 있었다. 안나 윈투어가 우리의 독창성에 대해 인정해주어서 크게 동기 부여가 되었다. 스테판 존스는 그도 나이가 있으니까, 우리가 하는 ‘Ageless Wear’에 동의하고 굉장히 좋아했다. 패션은 재밌어야 한다며, 우리 옷의 재밌고 창의적인 부분을 칭찬해주었다.
영앤생에서 ‘Ageless Wear’는 중요한 모토다.
옷을 오래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인구 절반이 5년 안에 50세 이상이 된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주요 고객층이 그 연령대가 되지 않겠나. BOF 설립자 임란 아메드도 그 문제에 대해서 계속 리포트했고, 중요한 이슈라고 언급하더라.
알고 있었지만, 막상 들으니 더욱 철렁한다.
이탈리아, 독일도 고령화 사회지만, 한국은 그 속도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다. 그래서 영앤생이 더욱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두 분의 시작으로 돌아가서, 유학한 ‘서배너 칼리지 오브 아트 앤 디자인(이하 SCAD)’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학교가 아니어서 독특했다.
우리는 안양에서 만난 중학교 동갑내기 친구다. 상림이 먼저 유학을 제안했고, 함께 떠나게 됐다. 서배너(Savannah)는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작은 해안 도시인데, 과거 흑인 무역을 하던 곳이라 관련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 예술 대학이 먹여 살리는 동네다 보니 예술적 기운이 넘쳐흐르고, 도시가 알록달록하고 예쁘다. 학교가 명문대기도 하고 설립자가 영향력이 있어서 비비안 웨스트우드나 알렉산더 맥퀸이 와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어떻게 공부했나?
둘 다 패션 전공인데, 상림은 액세서리, 나는 원단을 배웠다. 그렇게 합쳐야 스펙트럼이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4학년은 졸업 컬렉션 준비로 한 해를 보낸다. 그 시간이 아까워서 졸업을 건너뛰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바로 영앤생을 준비했다.
추진력이 대단하다.
상림이 추진력이 강하고, 나는 계획을 세우는 J형이다. 2015년에 CFDA와 NFL 슈퍼볼이 협업해 공 디자인을 하는 공모전이 있었다. 각자 토너먼트 부문에서 1등을 하고 상림이 공모전에서 최종적으로 우승했다. 학생 신분인데도, CFDA 소속 디자이너들과 공을 디자인하는 영광을 누렸고, 그게 우리 커리어의 시작이자 브랜드 론칭에 힘을 실어준 계기였다.
아까부터 얘기하고 싶었는데, 한남동 매장이 예쁘고 아름다운 오브제가 많다.
워낙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다 보니, 몇몇 가구는 직접 만들고, 빈티지를 모으면서 눈에 걸리는 오브제를 하나씩 사 모았다. 룩북 배경이 되는 세트도 직접 만든 것이다. 안양에 아뜰리에를 조성하면서 인테리어 공부까지 하다 보니, 공구와 재료도 모이고 방법도 웬만큼 터득해서 이제 간단한 인테리어는 뚝딱한다. 여기 한남동 매장에는 수프와 커피를 제공하는 공간도 곧 마련할 계획이다.

이누이트의 아뜰리에에 대한 ‘Permafrost’ 컬렉션이 생각난다.
‘우리가 이누이트라고 생각하고, 옷을 만들면 어떤 옷을 만들까?’라고 상상하면서 만든 컬렉션이다. 이누이트는 옷을 직접 만들기 때문이다. 이누이트의 아틀리에에 대해서 상상하며 컬렉션을 구상했다. 룩북에 등장하는 도구도 우리가 옷을 만들 때 직접 사용하는 것들이다.
그다음 컬렉션인 ‘Album’ 컬렉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상림의 할아버지를 모델로 기용하고, 증손자가 함께 출연했다. 가족들이 컬렉션 쇼를 진행할 때마다 너무 좋아한다. 이전에 없던 일인데 가족끼리 패션 얘기도 나누고, 사진을 찍을수록 우리에게 가족 앨범이 풍성해지는 거라 의미가 크다.
‘지속 가능한 패션’이 브랜드의 중요한 정체성이다. 보통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
우리가 디자인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예기치 못한 아름다움(Unexpected Beauty)’이다. 빈티지 원단을 사용할 때 그런 점이 특히 잘 느껴지는데, 커팅하거나 꼬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짜다 보면 마치 추상화를 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업사이클링, 리사이클링을 하는데, 즉흥성과 우연성이 주는 재미가 있다.
친환경 부자재에는 어떤 게 있나?
옷에 들어가는 태그, 안감은 기본적으로 오가닉 코튼을 사용하고, 단추로는 재활용률이 가장 높은 쇠나 자연 조개를 이용한다. 최대한 재활용 가능한 제품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현실적 제약은 어떤가?
핸드 우븐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빈티지 소재도 한계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대량 생산을 하지 못하는 점이다. 다음 시즌부터는 스케치 라인을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세일즈를 해보려고 한다.
핸드 우븐을 하니까, 베틀 도구도 직접 만든다고 들었다.
학교에서는 베틀로 원단을 짜는 굉장히 기본적인 수업만 한 학기를 듣는다. 당연히 아틀리에 레벨이 되고, 판매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더 깊게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공개되거나 널리 알려진 기술이 아니라서 정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검색하다가 내가 실제로 접목할 수 있겠다 싶은 부분을 목수에게 부탁해 기계를 개량하는 식이다. 그렇게 기계를 시스템화하는 데 4년이 걸렸다.
도 닦는 심정이었겠다.
맞다. 그래서 스케치 라인을 만들었다. 자유롭게 스케치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탄생하듯 우리의 즉흥적인 성향을 잘 살리자는 의도로. 1970, 80년대 한국이 원단 생산을 많이 하지 않았나. 그런 빈티지 원단을 모으는 분이 계신데, 그분에게 구입한 원단을 즉흥적으로 선택해서 꽃무늬 패딩이 탄생하기도 했다. 동대문에서 ‘지금’ 파는 원단이 아니라서 더 자유롭고 독특한 느낌으로 작업이 완성된다.
한 인터뷰에서 ‘소비자들이 지속 가능한 패션을 진짜 원할까’라고 자문했다. 답을 얻었나?
일부는 원할 것이다. 다수는 아니다. SPA 브랜드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옷을 만든다고 하지만, 트렌디한 디자인이 금방 버려지는 건 결국 의미 없는 방식 아닌가. 사람들이 아끼며 오래 입을 옷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지속 가능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LVMH 프라이즈에서도 한 심사위원이 ‘지속 가능한 소재로 옷을 만드는 건 의미가 없다. 결국엔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코멘트해주었다. 타임리스한 디자인, 에이지리스한 디자인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음 계획은?
얼른 수프 가게를 열고 싶다.
요리를 잘하나?
유학을 가 자취하면서 요리 실력이 늘었고, 우리 둘의 동생들이 다이닝 쪽에서 일하는데 서로 요리를 나눠 먹는다. 이상하게 우리 요리가 더 맛있는 것 같다(웃음).
패션에 대해서
다시. ‘Ageless Wear’를 전개하다 보니 우리 옷이 세대를 잇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커졌다. 사실은 영앤생을 화두로 가족끼리 패션 얘기가 통한다. 처음 상림의 할아버지를 룩북 모델로 기용했을 때 시니어 모델이 우리 옷을 소화하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었고 가족들 또한 너무 좋아했다. 아버지 또한 60대다. 젊은 사람들이 주류인 사회에서 멀어진 느낌을 갖고 계시다가, 우리 옷을 입었는데 너무 잘 어울리는 거다. 그렇게 현대 사회랑 동시대에 살고 있는 느낌을 갖게 되셔서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이런 의미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수프 가게도 세대 간 교감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우리 옷을 더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나누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이유에서 도모한 일이다.

TAE 타에
타에 디자이너 김태훈은 본인의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컬렉션으로 모 매체가 선정하는 ‘NEXT 100’에 선정되는 등 빠르게 이름을 알린 신예다. 3D 프린팅과 지속 가능한 소재를 결합한 요즘 세대다운 패션을 선보이는 그는 미래적 기술에 대한 관심과 추진력을 갖춘 아주 야심 찬 인재다.

<W Korea> 이름이 특이하다.
김태훈 외국 사람들이 타에(TAE)라고 많이 읽어서 타에가 되었다.
지용킴 어시스턴트 출신이라고 들었다.
맞다. 지용킴 초창기 멤버인데, 타에를 론칭하기까지 거의 모든 것을 그에게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타에는 텍스타일을 도와주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이하 CSM) 동문인 장소영과 함께하고 있다.
2024 CSM 졸업 컬렉션부터 화제가 되었다. 타에 론칭까지의 얘기가 궁금하다.
아프리칸, 아프로 뮤직을 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연락이 많이 왔다. 졸업 컬렉션 공개 이후에, 아프로 뮤직 아티스트 아사케(Asake)에게 연락이 왔고, 코첼라 무대에 서는 한 아티스트가 커스텀 의상 의뢰를 했다. 릴 나스 엑스 뮤직비디오 관련 연락도 있었고, 아직 공개된 것은 없지만 신기한 경험이 많았다. 글로벌 온라인 매체가 선정하는 ‘NEXT 100’에 선정되기도 했다. 여러 아티스트의 긍정적 반응으로 가능성을 엿봤고, 본격적으로 타에 론칭을 결심하게 됐다.
아프로 뮤직이라니 특이하다.
타일라(Tyla) 이후에 아프로 계열 음악이 붐이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컬러 톤이나 실루엣이 그런 아티스트들과 잘 맞는 것 같다.


유학을 가게 된 계기는?
한국에서 전혀 관련 없는 분야를 전공했다. 군대에서 우연히 CSM 졸업 컬렉션을 봤는데, 그것이 유학을 가는 계기가 됐다. 할머니가 한복 디자이너이시기도 하다. CSM 수업 때 크레이그 그린을 만나거나, 맥퀸과 프로젝트를 하면서 디자이너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3D 프린트 부속을 활용한 구조적인 룩이 특징이다. 3D 프린트를 어떻게 시도하게 됐나?
처음 시작은 입체적인 텍스타일 실현을 고민하면서였다. 이세이 미야케처럼 패브릭을 구조적으로 사용해보려고 했으나, 패브릭은 중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3D 프린트를 떠올리고 시도를 거듭했다. 이리스 판 헤르펀같이 오트 쿠튀르 분야에서 3D 프린트를 접목한 사례는 있으나, 기성복이나 남성복에는 접목된 시도가 별로 없어서 더욱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조각가이신 어머니 영향도 있다.
3D 프린트 제작 과정은 어떤가? 건강에 좋지 않다고도 하던데.
3D 프린트는 세팅값 싸움이다. 프린트 자체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지만, 3D 프린트에 완벽한 세팅값과 그에 맞는 필라멘트 재료를 찾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또 온도에 따라 부풀어 오르는 등 필라멘트가 온도에 예민하기도 하다. 3D 프린트를 할 때 발생하는 수증기가 호흡기에 좋지 않다고 하는데, 내가 쓰는 재료는 옥수수 전분 필라멘트라 그런 걱정이 덜하다. 필라멘트에 따라 다를 것이다.
3D 회사와 협업 소식도 예고했는데 어떤 것인가?
3D 프린트 재료인 필라멘트 회사랑 협업이 예정되어 있다. 신소재를 지원받아 2025 F/W 컬렉션에 일부 선보일 예정이다. 필라멘트 회사들은 새로운 소재를 계속 개발하고, 나는 나대로 멋진 디자인을 하고, 서로 시너지가 커지는 것 같다.

첫 번째 컬렉션 이야기를 해보자. 해군 장교셨던 아버지의 삶이 녹아 있다고.
아버지가 30년간 해군 사회에 몸담으셨는데, 아버지를 따라 동해나 해외 등 다양한 곳에서 살았다. 배를 같이 타기도 했는데, 서바이벌 훈련 당시 목격한 로프가 인상적이었다. 해군은 로프를 정말 많이 다룬다. 아름다운 매듭 모양도 많고. 그래서 그런 총알, 로프 같은 것을 가지고 3D 프린트 작업을 했다. 나만의 개인적인 경험이라 더욱 특별하다.
그렇다면 다음 2025 F/W 컬렉션은 어떤 이야기가 담기나?
외교관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블라디보스톡에 산 적이 있다. 당시 아이스하키 선수 생활을 2년간 했는데, 무릎 부상으로 더는 선수를 할 수 없었다. 무릎 보호대가 시스템이 제법 복잡한데, 잘 안움직이는 부분이 불편해서 좀 더 패셔너블하고 인체공학적 접근을 고민하게 됐다. 그런 식으로 보호대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 탈착 가능한 부분, 지퍼의 심미적 요소 등을 이번 컬렉션에 녹였다.
시스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바지도 버클을 돌려서 허리를 조이는 등 살로몬이나 아크테릭스에서 볼 수 있는 테크웨어 흔적이 곳곳에 있다.
맞다. 그런 시스템적인 부분이 타에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최종 목표는 우주복을 만드는 것이다.
왜 우주복인가?
새로운 기술이 끝도 없이 나오지 않나. 패션에 접목하고자 새로운 기술을 자주 찾아보는데, 결국 그 끝은 우주복일 것 같다. 최근 전기로 작동하는 자동적인 옷에 대해서도 서치를 많이 하고 있는데, 전자동 부분이 기능적으로 사람에 도움이 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후세인 샬라얀의 리모티드 드레스처럼?
쇼적인 드레스보다 일상생활을 위한 의복을 염두에 두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봇핏’이라는 게 나왔는데, 사용자의 보행을 돕는 로봇이다. 근력 강화, 체력 증진이 목적이고, LG나 아크테릭스에서도 비슷한 용도의 전자동 장치가 적용된 의복이 나온 걸로 알고 있다. 보조배터리를 매단다기보다, 메카닉한 요소를 어떻게 멋지게 풀어낼지 고민을 많이 한다.
흥미로운 소식이다. CSM을 가장 최근에 졸업한 사람이니까. 요즘의 패션 교육은 어떤가?
과 명칭이 패션디자인과 마케팅이었다가, 마케팅이 커뮤니케이션으로 바뀌었다. 옷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렇다면 퍼렐이 루이 비통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것을 보고 어떤 점을 느꼈나?
퍼렐이 샤넬,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와 협업한 이력이 있지 않나. 패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오래된 경력, 비즈니스 감각이 결합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니, 유의미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관심사는?
신기술.
한결같다.
사실 쉴 때도 기술 박람회 같은 데 다닌다. 3억, 5억 하는 3D 프린터기를 살 순 없지만 새로운 기술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상용화되기 전에 미리 보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는 느낌으로 열심히 서칭한다.
작은 목표, 큰 목표?
작은 목표는 판매 비즈니스를 원활하게 하는 것, 타에를 대중적으로 더 알리는 것. 큰 목표는 우주복을 위해 언젠가 공학을 깊게 공부해보고 싶은 것이다. 전 세계를 대표하는 우주복을 만들고 싶다.

EGNARTS 이지앤아트
인스타그램 DM으로 인연을 맺은 윤규석과 임채민은 패션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다 패션에 대한 순수한 열망으로 의기투합한 희귀한 경우다. 말주변은 없지만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로 이지앤아트를 전개해온 이들은 3년 만에 모 매체가 선정하는 NEXT 100에 이름을 올리며 글로벌하게 인정을 받았다. 우직하게 아이디어를 고심하는 이들은 어디선가 또 사람들을 놀래킬 준비를 하며 패션과 결합한 다양한 장르를 개척 중이다.


기계과와 토지측량과 출신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윤규석, 임채민 우리 둘 다 일을 쉴 때 만났다. 채민이 인스타그램으로 자신의 패션 작업물을 조금씩 올렸다. 그걸 보고 연락을 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된 거다. 천천히 이야기를 나눴고 3년 전에 이지앤아트를 시작하게 됐다.
패션에 대한 선망이 컸던 모양이다. 원래 어떤 브랜드를 좋아했나?
꼼데가르송, 마르지엘라.
그나저나 사무실에 미싱기가 있어서 좀 놀랐다. 당연히 어디에 제작을 맡길 거라고 생각했다.
1부터 100까지 우리 손을 거친다. 아마 평생 공부해야 할 것 같다.
둘의 역할은 어떻게 나뉘나? 서로 좀 더 치중하는 역할이 있나?
선을 긋듯 명확하게 나눈 건 아니지만 윤규석이 비전을 제시하거나 큰 그림을 그리는 편이고, 임채민이 컬렉션 구성이나 옷
제작에 관한 것을 담당한다. 숲과 나무다.


이름을 잘 지은 것 같다.
‘STRANGE’를 거꾸로 해서 ‘EGNARTS’라고 했다.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건데 마음에 든다. ‘어렵지 않으면서 예술성을 띠기’가 이지앤아트가 추구하는 바다.
사람들에게 이지앤아트를 가장 많이 알린 계기는 무엇일까?
히든 포켓 워크 팬츠다. 스냅 단추를 떼면 포켓이 나타난다. 릴스용으로 지퍼를 열고 바나나가 나오는 콘텐츠를 찍었는데 바이럴이 꽤 되었다.
그렇다면 3년 동안 가장 고무적이었던 일은?
휴머니즘 2 컬렉션으로 처음 전시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름 기존의 틀을 깬 전시였다고 자부한다. 도장집, 페인트집, 금은방 등에서 전시를 했고, 장소와 휴머니즘이란 주제가 잘 맞아떨어졌다. 토르소에 입힌 스펀지 폼에 우리 로고를 새기고 허그를 하면 티셔츠에 로고가 스탠실되는 거나, 도장 찍은 후디, 시계가 프린트된 테이프를 손목에 둘러보기 등 재밌는 퍼포먼스를 결합했다. 허그 자체에도 휴머니즘의 의미를 담았다. 젊은 사람들만 오는 게 아니라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관심 있게 봐주시고, 대화하는 것도 재밌었다.


유독 전시를 많이 하는 이유가 뭘까? 내가 이지앤아트를 알게 된 것도 세탁소에서 진행한 휴머니즘 3 전시가 알고리즘
에 떠서다.
이번 컬렉션 중에 슈프림 로고를 오마주한 티셔츠가 있다. 슈프림이 만든 지역사회 기반 문화가 우리와 결을 같이한다고 생각해서 스케이트보더를 동네 어르신으로 치환했다. 세탁소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우리가 초대한 분들께 티셔츠를 직접 찾아가실 수 있도록 했다. 우리가 전형적인 브랜드가 아니다 보니 멋지고 세련된 일반적인 팝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단순한 경험보다 우리 옷을 ‘체험’하게 하고 싶다는 게 더 맞겠다.
휴머니즘 1도 독특하다.
문구점, 바이커 숍, 이발소에서 촬영했다. 바이커 숍에서는 팬츠 주머니가 장갑으로 변형되도록 했고, 또 그걸 수리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바버 숍은 여러 도구를 꽂을 수 있는 히든 포켓 워크 팬츠를 보여주기에 적합했고, 문구점은 흰 재킷의 포켓마다 사인펜을 꽂고 물을 부어 잉크가 번지도록 했다. 인상적인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휴머니즘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아무래도 이 동네(사무실이 있는 마장동)를 많이 다니다 보니 어르신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고, 시니어 모델이 입었을 때 생각지 못한 이질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휴머니즘 시리즈를 기획하게 됐다. 실제로 둘 다 어른들과 교감하는 일을 좋아한다. <유퀴즈>처럼.
그렇다면 어르신 모델들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을까?
정말 돌아다니면서 길거리 캐스팅을 하는 식인데, 언젠가 작업실에 짜장면 배달 오신 기사님을 모델로 쓴 적도 있다. 너무 독실한 불교 신자셔서, 촬영 때 그 얘기를 다 듣는 게 쉽지 않았다. 또 다른 동네에서 모델을 해주신 분이 사무실 근처에서 일하고 계신 신기한 경우도 있었다.
목장갑 라이더 재킷, 등산복을 해체해 만든 호보백, 팬츠로 만든 스커트, 산업 현장의 조끼를 활용한 코르셋 등 주로 워크웨어가 많다.
뭔가 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고 편하고 투박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오간자로 만든 옷도 인기가 많아 보인다.
처음부터 오간자 소재를 많이 썼다. 스웨트셔츠나 캔버스 바지 위에 덧씌웠는데, 밖에서 속이 보인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새로 한 나이키 전시 얘기도 해보자. 아웃솔에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공기인형이 튀어나오고 정확하게 들어갈 수 있게 된 게 신기했다.
새로운 나이키 에어맥스 Dn8을 각 아티스트별로 해석하는 식의 전시인데, 에어맥스의 본질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해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신발에서 옷이 나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회로가 필요했다. 구현하기까지 메커니즘적으로 시행착오가 무척 많았다. 이 전시는 서울 각지에서 하는 프리 전시 형태고, 곧 이태원에서 본 전시를 한다. Dn8의 갑피 모양을 프린트로 활용할 예정이다.


3년 동안 브랜드를 전개하면서 느낀 점은?
이번 나이키 전시도 그렇고 상상을 실현하는 데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아이디어를 던지는 것은 쉽고 재밌는 일이지만 실제로 구현하는 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새로 론칭한다는 이지 라인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하는 예술을 좀 더 쉽고 직관적으로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 옷이든 어떤 형태든 아직 정한 것은 없다.
이 팀은 예술과 전시를 빼놓을 수 없는 것 같다.
미술관에서 식음이 안 되는 부분을 꼬집는 전시 <미식>에서는 일주일 동안 캔버스를 바닥에 두고 그 위에서 음식을 먹으며 흔적이 남은 캔버스를 전시하기도 했고,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 맞기 전까지는’이라는 타이슨의 유명한 말에 빗대 생각하는 사람 vs 실천하는 사람을 대비해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한 적도 있다. 항상 재밌는 아이디어를 고민한다.
아이디어가 많은 팀이니까, 앞으로 어떤 걸 더 시도해보고 싶을까?
결혼? 음악이나 설치미술! 장르를 국한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것을 해보고 싶다.
기억에 남는 코멘트가 있을까?
You’re not Margi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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