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이 쌓이고 1년이 모여 어느덧 100년. 펜디가 올해로 브랜드 100주년을 맞이했다.
그 긴 시간, 다섯 세대에 걸쳐 이어온 하우스의 아이덴티티와 노하우. 그 놀라운 기록이 2025 F/W 컬렉션에 담겼다.


펜디 쇼 전날, 게스트들에게 배달된 건 작고 네모난 가죽 앨범이었다. 론칭 100주년을 맞은 펜디가 보낸 특별한 인비테이션. 쿠오이오 로마노 가죽에 셀러리아 스티치가 더해진, 너무나 ‘펜디적인’ 가죽 앨범 속에는 1964년부터 1977년까지 찍은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1966년 칼 라거펠트의 첫 펜디 컬렉션, 하우스의 황금기가 시작되고 화려하게 꽃피던 순간들, 다섯 자매가 모인 가족 사진까지. 그리고 2월 26일 저녁(현지 시간), 이 특별한 앨범을 받은 사람들이 밀라노의 새로운 스파치오 펜디에 모였다. 이곳은 펜디의 2025 F/W 컬렉션이 열리는 현장이자, 펜디 하우스의 론칭 100주년을 뜨겁게 자축하는 자리였다.


대형 아치와 나무문이 자리한 채 베뉴 전체는 테라코타 브라운 컬러로 꾸며졌다. 로마 보르고뇨나 거리의 옛 펜디 부티크를 재현한 것이다. 낮에는 최고급 맞춤복 고객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밤에는 치네치타(로마 근처의 영화 촬영 스튜디오)의 유명 인사들이 모여들던 곳 말이다. 지금의 펜디를 이끈 다섯 자매가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추억으로 가득한 그곳. 어둠 속에서 음악이 흐르고,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의 일곱 살 쌍둥이 손자, 타지오와 다르도가 등장해 웅장한 나무문을 열자 마침내 쇼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1967년, 일곱 살이었던 실비아가 입은 칼 라거펠트의 승마복을 재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쇼 오프닝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알아챌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패션쇼가 아니라, 시간 여행이라는 것을.
남녀 통합 쇼로 열린 이번 컬렉션은 하우스의 액세서리 및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가 맡았다. 그녀가 진두지휘한 이번 컬렉션은 어땠을까. 분명한 사실은 보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하우스의 역사를 기념하는 방식과는 좀 달랐다는 것이다. ‘아카이브’를 ‘조사’해서 디자인에 ‘적용’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녀가 완성한 86벌의 옷, 이 기념비적인 컬렉션에는 지난 100년의 시간이 오롯이 담겼다. 그 시간을 직접 지나온 사람이 되돌아본 시간 그 자체였다. 컬렉션의 시작은 밍크 코트였다. 무릎 높이에서 찰랑이는, 플레어 실루엣의 코트. 그리고 이어지는 하우스의 핵심 코드! 정교한 테일러링과 곡선미, 그리고 미려하게 손질된 퍼와 빛나는 크로커다일. 핵심은 언제나처럼 매우 귀중한 소재를 매우 편안한 방식과 실루엣으로 다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교한 테일러링을 바탕으로 유머와 아이러니한 포인트를 더하는 것도!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룩과 함께 지아노와 스파이 백이 새로운 소재와 디자인으로 변주되어 등장했다. 지아노 백은 두 개의 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과거를, 하나는 미래를 바라보는 의미를 품고 있다. 주얼리 아티스틱 디렉터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가 ‘메탈릭 퍼’라고 명명한 프린징 주얼리, 그리고 남은 자투리 소재를 활용해 만든 니트 인형과 커다란 참 장식이 컬렉션에 방점을 찍었다. 60년대의 아이콘, 75세의 모델 페넬로페 트리, 60세의 야스민 르봉, 카렌 엘슨, 캐롤린 머피 등 다양한 세대의 모델들을 런웨이에 등장시킨 것 역시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1997년, 바게트백을 만들어 하우스의 전성기를 이끈 실비아. 그녀는 이번 쇼를 통해 지난 100년 세월의 의미를, 세대를 잇는 가족 경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동시에 또 한 번의 황금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밀라노 전체에 짙게 깔린 불황의 그늘을 느낀 관객들도 함께 꿈꾸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하우스가 그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펜디가 백 주년을 표기하는 숫자 ‘100’을 무한대 기호, ‘∞’ 로 표기한 것처럼, 끝없이, 끝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