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넬로 쿠치넬리의 탄생지, 솔로메오로 부터

김자혜

모여봐요 비밀의 솔로메오

귀여운 동물들이 모여 사는 게임 속 비밀의 숲처럼, 이 작은 마을에는 교회와 극장과 도서관, 공장과 사무실이 그림같이 모여 있다. 밀라노에서 차로 5시간 달리면 당도하는 움브리아주의 작은 마을 솔로메오. 이곳은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탄생지이자 본산이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본사 전경
솔로메오 극장과 아피시어터. 이곳에서 음악 축제와 쇼가 열린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로고에는 페루자의 상징인 그리핀과 중세 성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맨 밑에는 ‘Solomei ad MCCCXCI’라는 말이 적혀 있다. 솔로메오 마을이 역사적으로 처음 언급된 ‘주후 1391년’을 라틴어로 적은 것으로, 모든 제품을 이곳에서 생산한다는 자부심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부러 드러내지 않는 우아하고 단순한 디자인,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컬러와 질감. 브루넬로 쿠치넬리만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이곳,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의 작은 도시 솔로메오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브랜드의 본사가 위치한 도시’라는 납작한 표현에 솔로메오의 의미를 모두 담을 순 없을 것이다. 이 도시가 브루넬로 쿠치넬리라는 브랜드 자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니니까.

‘본능과 이성’을 주제로 한 2025 F/W 컬렉션.
‘본능과 이성’을 주제로 한 2025 F/W 컬렉션.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세운 기술 학교에서는 매일 장인을 육성하는 수업이 열린다.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세운 기술 학교에서는 매일 장인을 육성하는 수업이 열린다.

페루자 근처 작은 마을에서 공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남자,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25세가 되었을 때 결심했다. 현대적 스타일의 컬러풀한 캐시미어 스웨터를 만들겠다고. 최고급 소재(몽골 히르쿠스 염소의 목과 배 아랫부분의 미세 섬유를 빗질로만 수확해 사용한다)를 최고 수준의 이탈리아 장인들이 수작업한 뒤 빨간색, 연두색 등 눈에 띄는 컬러로 염색한다는 건 1978년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단조로운 무채색 스웨터 일색인 시절이었으니까. 그는 이 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후인 1982년, 페루자 교외에 있던 작은 공장을 솔로메오로 옮긴다. 그의 아내의 고향으로.

쿠치넬리는 긴 역사를 간직한 중세 성과 탑을 매입한 뒤, 방치되어 황폐해진 작은 도시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쇠락한 고대 도시가 다시 숨 쉬기 시작한 건 브랜드 본사와 공장, 그리고 각종 시설을 만들면서부터다.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위해 일하는 직원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오래된 건물을 재건축해 도서관과 극장, 운동 시설을 만들고 광장의 교회를 리모델링 했다. 그렇게 솔로메오는 ‘있어야 할 것 다 있는’ 어엿한 마을의 모습을 갖춰갔다. 단순히 마을의 모양새만 갖춘 것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가 복원되고, 공동체 사람들의 삶이 개선되었다. 마을 주민 중 대다수가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직원이고, 그들은 바깥 경치가 훤히 보이는, 통창으로 된 사무실에서 일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그들은 회사 안에 있는 식당에서 90분간 느긋한 식사를 즐긴다. 인재를 육성하는 기술 학교에서는 청년들이 기술을 배우고, 장인들이 새롭게 태어난다. 마을의 작은 가게에서는 마을에서 생산된 과일과 채소, 치즈 등을 모아 판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밭을 일구고 포도를 심어 와인을 생산하기도 한다. 지구를 축소해 작은 마을로 만든다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싶은 평화로운 마을이다.

인류에 대한 쿠치넬리의 헌신을 상징하는 건축물과 인간 존엄성 기념비.
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평화로운 풍경. 이들은 이탈리아 패션업계 평균 임금보다 20% 높은 임금을 받는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옷을 만든 노동자와, 그 옷을 입는 소비자가 모두 만족하는 제품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상상은 노동자들이 즐겁고 편안하고 아름다운 직장에서 일하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창의력이 발휘되는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직원들은 가능한 한 적게,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든다. ‘오래 입을 수 있는 좋은 옷’을 만드는 것이다. 그의 경영 철학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사업, 윤리와 존엄성, 도덕성을 갖추고 품위 있게 이익을 창출하는 사업’을 꿈꾸었다는 그는 브랜드를 통해 끊임없이 ‘인본주의’를 말한다. 브랜드 자체가 지역사회가 되고, 그곳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한다는 것. 이보다 꿈같은 일이 또 있을까. 70년대에 시작한 브랜드가 어느덧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성장해 자신만의 스토리를 갖게 된 것 자체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이토록 철학적인 주제를 가시적으로 실현해가는 그 꾸준함이다. 우리가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행보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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